솔로이스트 - The Solois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제이미 폭스가 음악가로 등장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솔로이스트>를 처음 대했을 때는 <레이>와 비슷한 작품일 것이라 생각했다. 제이미 폭스가 시각장애인으로 등장하여 혼자만의 외로움과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한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레이>와, 역시 제이미 폭스가 정신분열증(?) 환자 나다니엘로 등장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며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영화 <솔로이스트>는 사실 얼핏 생각하면 닮은 꼴인 듯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이 영화는, 재능을 펼치지 못한 나다니엘의 고난 극복기나 성공기가 아니라, 그를 만난 스티브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성장기'였다. 영화의 제목이 '솔로이스트(The Soloist)'인 것은, 단순히 보면 나다니엘이 거리에서 혼자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일 테지만, 좀더 비약해서 생각하면 '인생'이라는 거대한 음악 속에서 홀로 자신의 삶을 연주해가는 사람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노숙자 공동체에서 생활하지만 정신 분열증 때문에 홀로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는 나다니엘이나, 일에 빠져서 가족이든 자신의 건강이든 돌볼 여력이 없는 로페즈나 모두 '솔로이스트'인 것이다.    

 나다니엘은 더나은 삶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혹은 자신의 정신이 안정을 찾는 지금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로페즈의 호의를 거부한다. 나다니엘이 바라는 삶은 '베토벤'과 같은 삶이다. 적막과 광기로 얼룩졌지만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낸 베토벤과 같은 삶. 나다니엘은 자신의 또다른 목소리들이 계속 말을 걸어 혼란스러운 생활이 반, 말을 걸지 않아 적막할 때는 음악을 연주하는 생활이 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베토벤과 가까워지는 길을 알려주는 로페즈가 점차 자신만의 신으로, 자신의 친구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실은 그렇다. 나다니엘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하기 위한 길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실체를 가진 친구였다. 노숙자이든 정신분열증 환자이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친구 말이다. 로페즈가 생각하는 것은 치료와 성공이지만, 나다니엘이 생각하는 것은 친구이기 때문에 둘 사이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영화는 음악영화의 '전형적인' 감동 코드가 등장하지 않는다. 줄리어드 음대를 중퇴한 나다니엘의 인생 자체가 '음악'이기 때문에, 로페즈가 나다니엘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관계를 지속하게 되는 계기가 '음악'이기 때문에 줄기차게 등장할 뿐이다. 이것은 곧, 현재를 극복하고 위대한 음악가로 성공하는 나다니엘의 모습이나, 제이미 폭스가 연주하는 음악의 활홀경에 빠지고 싶은 사람은 이 영화를 보면 실망할 것이라는 말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흔히 성장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감동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다니엘의 인생에 뛰어든 남자, 로페즈가 나다니엘로 인해 어떻게 변해가는지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제이미 폭스가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좀더 성숙해졌고 능글맞아졌으며, 제이미 폭스는 여전하다. 세상에 어느 배우가 이마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5:5 가르마를 하고도 자연스러워 보이겠는가. 나다니엘이 오랜만의 연주회를 관람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마치 내가 나다니엘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는 적나라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다니엘과 로페즈, 두 사람의 이야기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노숙자'와 관련된 사회 문제를 제기한 점이다. 그로 인해 영화 내내 나름대로의 인생을 꾸리고 살던 나다니엘의 삶이 한순간에 '노숙자의 삶'으로 전락하고 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나다니엘은 노숙자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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