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2012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야기 구조가 빈약하다는 평가는 익히 듣고 있었던지라 각오는 하고 갔었다. 재난영화가 다 그렇지 않겠나.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지극히 평범하지는 않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재난의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대피를 하는데 몇차례의 죽을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결국은 살아남아 가족애와 인간애를 깨닫는다는 대략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 가족애와 인간애는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감동을 가져주기 때문에, 재난영화를 보고나면 여성 관객 중 몇몇은 꼭 눈물을 닦고 있다(나 역시 그런 관객 중 한 명이다).  

 이 영화 <2012> 역시 재난영화의 서사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인공은 422권의 책을 판 무명의 소설가로 이혼한 남자로 리무진 운전사라는 부업도 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이혼한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재혼한 상태이고 아이들은 그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 우연히 간 캠프장에서 미치광이 찰리를 만나고 지구가 멸망할 것이고, 정부는 이를 알면서도 발표하지 않고 우주선을 만들어 선택받은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한 귀로 흘려듣는다. 하지만 자신이 운전사로 일하는 집의 아이들 입에서 '우주선'을 탈 것이라는 말을 들은 주인공은 모든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가족을 대피시키려 한다.   

 그 이후, 모든 이야기는 내가 상상한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것은 극찬에 가까운 것 같지만, 사실은 악평에 가까운 말이다. 내 상상력의 한계는 이전까지 보아왔던 재난영화 안에 머물러 있는데, <2012> 역시 이 재난영화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든 위험에서도 주인공은 꿋꿋이 살아난다. 비행기를 처음 몰아보는(2번의 경비행기 조종 연습을 해 보았다고는 하나) 사람이 쏟아져내리는 건물과 화산재 속에서 어찌나 조종을 잘 하던지, 항상 간발의 차이로 위험을 어찌나 잘 벗어나던지 보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다음 장면에서는 이렇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감독이 내 마음을 읽은 것인지 꼭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래서 나는 '리메이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CG는 훌륭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역들이 무너져내리고, 해일이 덮쳐오고, 흡사 타이타닉과 같은 배가 침몰되는 장면들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어떤 영화보다 스케일이 크고 잘 만들어졌다. 그런 CG 덕분에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지만, 단지 그것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재난영화인 <해운대>만큼의 유머도, 감동도 없고 단지 CG만이 있을 뿐인 것이다. 절친한 친구가 죽어도,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같이 싸워왔던 사람이 죽어도, 아버지와 같았던 사람이 죽어도, 그들은 그저 눈물 한 번 글썽이다가 이내 잊어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방법에 골머리를 앓는다. 이런 비인간적인 인물들이 150여분의 러닝타임을 빼곡히 채우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재난영화의 마지막 공식인 인간애를 실현하기 위해 들어간 장면(에이드리안이 다른 사람들을 태우자고 연설하는 장면)은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결국은 이미 다 죽었으며, 에이드리안이 살리자고 주장하는 그 사람들은 결국 10억 유로를 낸  '부자'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이제까지 나온 재난영화,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이 영화는 추천할 수가 없다. 단지, 화려한 CG만이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주인공 단 한 명의 이야기보다 수십명의 이야기(존 쿠삭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재난영화답게,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수십 명의 조연들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감독의 의도는 실현되지 못한 듯 싶다. 너무나 '전형적인' 인물들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가 궁금한 사람은 이 영화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