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베타 사계절 1318 문고 103
최영희 외 지음 / 사계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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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략 일년 전까지만 해도 SF소설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필립 K.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같은 작품을 읽고도 좀 시큰둥했다. 그런 걸작을 읽고도 재미가 없었던 건, 내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이게 다 내 인생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런 맘이 있었더랬다.

지금은 어떻냐고? SF소설, 추리소설, 판타지소설, 리얼리즘 소설 다 읽는다. 내가 쓴 것 빼고 어지간한 소설은 다 재밌어 보인다. 참 아쉽다. 진작에 소설 쓰는 공부를 할 걸.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랬으면 소설 읽는 게 진작부터 별스럽게 더욱 재미있었을 텐데.

‘한낙원과학소설상’ 이라는 문학상이 있다. 평생을 과학 소설을 써 온, 우리나라 청소...년 과학소설의 개척자 같은 분이다. 그 분의 이름을 기려 2015년에 제1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은 작품들을 모아 <안녕, 베타>가 나왔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단숨에 주문해 읽었다.

창작하는 과정에서 학교 생활, 집 이야기에서 뱅뱅 맴을 돌다가 답답해지면 좀 더 넓은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끝도 없는 소재와 이야깃거리가 널려 있다. 널려 있어도 시야가 좁은 나에게는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좀 더 깨끗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 책을 선택했다.

경린 작가의 단편 <엄마는 차갑다>는 김성진의 동화 <엄마사용법>이랑 유사한 설정에서 착안했다. 엄마가 안드로이드라면? 엄마가 돌아가시거나, 편찮으실 때 엄마를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 지는 순간이다. 엄마를 구매할 수 있다면, 자식도 구매할 수 있겠지? 반려동물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김란 작가의 단편 <내 맘대로 고글>도 너무나 신선했다. 모든 걸 고글을 써야지만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텅 빈 방에서도 이 고글만 끼면 산과 바다가 나오고 원한다면 가구도 바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걸어서 오분 밖에 안 걸리는 편의점을 가는데도 고글 없이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까무라친다. 우리의 삶이랑 비슷하지 않은가? 친구가 앞에 앉아 있는데도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어플 너머의 세계만 주물럭거린다. 시물라시옹이 진짜를 압도하는 순간이다.

SF소설이라는 분야는 아득히 멀어만 보인다. 한 오백 권이나 천 권 정도 읽고 나서 저절로 뭔가 차올랐을 때, 비슷하게나마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뭐 꼭 안 될 법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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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고백 김동식 소설집 4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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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이 아닌 책 리뷰를 무려 한달만에 올린다. 더 열심히 읽을 수 없을만큼 맹렬한 기세로 책을 읽고 싶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정말 아쉽다.

김동식 작가의 작품집 <회색인간>을 읽고 작가와의 만남까지 다녀왔다. 그러는 와중에 작품집이 두 권 더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심고백>과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한 편 한 편 짧고 술술 읽혀서 즐겁다. 작가 입장에서는 딱 두 장 이내에서 의외의 도입과 충격적인 결말까지 다 내어 놓아야 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꾸준히 이삼일에 한 번씩 작품을 업로드하고 있는 작가가 존경스럽다.

종이책을 사서 읽는 인구는 줄고, 카카오페이지, 문피아 등에서... 돈을 내고 웹소설을 구독하는 인구는 늘어난다. 처음에 난 그런 흐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세상은 달라지고 있고, 글을 싣는 플랫폼도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모바일 독자들에게 적합하게 글을 올리는 김동식 작가의 작업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는 점도 있다. 반짝이는 짧은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장편을 언젠가는 볼 수 있으면 한다.

네 번째 작품집 <양심고백>의 첫 단편 ‘인간 평점의 세상’을 잠시 소개해 본다. 악마가 인간들에게 저주를 내린다.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 사람에 대한 평점이 머리 위로 둥실 떠올랐다. 평점 1점이 뜨면 얼마나 쓰레기 같이 살았냐고 욕을 먹고, 9점이 뜨면 갑자기 죽은 이후에 존경을 받기도 했다. (스포일러는 여기까지로 줄이겠다.)

작품집이 5권까지 나왔지만 그 에너지의 밀도는 전혀 고갈되지 않아 보인다. 나도 소재 부족에 시달리면 두고두고 곶감처럼 한 편씩 한 편씩 읽어보려고 고이 모셔 두었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이리저리 애쓰고 안달하는 과정 자체가 모조리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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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글쓰기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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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새 어떤 리뷰를 남기는지 잘 살펴보면 내 일상도 들여다 보여서 참 재미있다. 식물에 미쳐 있었던 작년에는 온통 초록책들이었다. 도감류부터 시작해서 가드닝 책까지. 어린이책을 파고 들 때는 온동 아동문학이었고. 요샌 아동문학과 장르문학도 같이 읽고 있어서 좀 정신없고 좀 더 많이 즐겁다!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글쓰기 책들은 즐겁다. 은유 작가, 장석주 작가, 곽재식 작가님의 글쓰기 책을 읽었고 셋 다 다른 의미에서 정말 좋았다. 오늘은 장석주 작가의 <나를 살리는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소용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글을 쓰는 방식은 모두다 제각기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연필로 써야만 써진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꼭 맥북 에어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골방에 콕 쳐박혀 써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노래나 사람들 수다소리 같은 백색 소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어떤 사람은 새벽 2시부터 글이 써진다고 한다. 무척 다르다.

각기 다른 작가가 그럼에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짜다. 마음이 급한 사람은 그걸 찾아 그것만 파고 들면 된다.

사실, 나는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하는지가 많이 궁금하지는 않다. 이미 알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글을 못 쓰던 사람이 쓰게 되는지, 혹은 별로 잘 못 쓰던 사람이 잘 쓰게 되는지 그 과정을 알고 있다. 그 과정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날마다 해나가면 된다는 걸 안다. 몰라서 글쓰기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작가들이 못 쓰던 순간에서 매일같이 쓰게 된 지금까지의 나날을 말해주는 게 정말 그저 재미있어서 읽는다. 내게는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버리러 가는 과정만큼이나 이게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작가들이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책이라면 곧잘 사서 읽는다. 달라서 재밌고, 또 같아서 재밌다.

제발 많이 읽어라, 징징대지 말고 쓰라는 건 모든 글쓰기 책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이게 진짜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고 써야지. 작가가 되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미친 듯이 안 읽고, 또 안 쓰겠다는 건가! (이건 나한테 하는 잔소리다.)

장석주 작가의 글은 흉내내기도 쉽지가 않다. 페이지마다 서려있는 언어들의 결이 아주 다르다. 그 단어 하나하나가 문장을 엮는 바느질 솜씨가 다르다. 수만권의 독서량과 광풍처럼 거칠었다가 이내 한숨 내려놓은 삶에서 나온 것을, 그걸 어떻게 흉내내겠는가. 나는 그냥 광채가 나는 비단을 어루만지듯이, 넋을 놓고 그 글에 밑줄이나 그을 뿐이다.

밑줄도 수도 없이 그어서 고르기도 여간 어렵지 않지만, 애써 좀 골라 보겠다. 그렇다고 나누지 않고 넘어가는 건 더 애가 타는 일이니까.

“숙련된 작가들도 문장의 시점, 문체, 리듬을 살펴보고 끊임없이 고쳐 쓴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렇게 해야만 마음에 드는 몇 문장을 얻을 수가 있다.”

“어떤 글은 지루하고 권태에 빠뜨린다. 밋밋한 사유를 담은 상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글을 읽을 때 그렇다. 관습적인 사유로 얼룩진 글에는 분명 뭔가가 빠져 있다.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이 없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침묵과 여백도 없고, 지적인 자극이나 감동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글은 읽는 건 매우 지루하다.”

“오, 유레카! 날마다 꾸준히 술을 마시는 사람의 뇌가 알코올 중독자의 뇌로 바뀌듯이 지난 30년간 날마다 책 읽고 글 쓰는 전업작가로 살면서 내 둔한 뇌가 작가의 뇌로 변환된 사실을 깨달았다.”

“스타일이 없는 글은 죽은 글이다. 다른 작가의 것을 모방하지 말고 자기만의 문체로 써라. 자신의 개성, 피의 기질, 독특한 호흡법이 문장에 스며들도록 하라. 스타일은 누가 보아도 자기의 글임을 증명하는 여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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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손님 - 2018 뉴욕 타임즈 / 뉴욕 공립 도서관 베스트 일러스트 어린이 도서 수상작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21
안트예 담 글.그림, 유혜자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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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 빈틈이 없다는 말보다는 벽이 높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담장 너머 뭐가 있는지 빼꼼 보고 마당에 놀러 한 번 가고 싶은데, 그렇게 마당을 허락해 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당에 수선화와 작약이 빼곡이 피어 있는데도 그걸 보여 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문지방이 높아서 사람들이 걸려 넘어진다. 걸려 넘어지는 사람을 보고 ‘그럼 그렇지. 아무도 못 올거야.’ 하고 입을 앙다물고 그만 방문까지 걸어 잠그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창호지 바른 문을 침 바른 손가락으로 폭폭 찔러 구멍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캄캄한 쥐구멍에 볕을 들게 하고, 허파에 바람을 넣는 사람들이 있다.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그저, 우연히 당신이 거기... 있는 걸 봤고 그냥 얘기 한 번 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벽을 세우는 사람과, 굳이 그래야 하나 싶을 정도로 다가서는 사람. 그런 사람이 둘 모이면 아주 궁금한 이야기가 된다.

겁이 많아 거미도, 사람도, 나무도 무서워 집 안에서만 지내던 엘리제 할머니의 일상이 얼마나 놀라운 방식으로 변하는지 보았으면 한다. 보는 당신의 가슴도 같이 벅차 오를 것이다. 마지막엔 눈물이 왈칵하고 났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OST인 ‘나의 피아노’ 기타 버전을 곁들었더니 더할 나위 없었다.

안트예 담 <색깔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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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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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쯤 반가운 분을 만났다. 2014년에 내 삶을 반짝이게 만들었던 행복화실 동기! 성우로 활약하고 계시는 신소윤님과 잠깐 차 한 잔 할 시간이 있었다. 이런 저런 근황을 나누던 중, 소윤님이 최근에 녹음한 <KBS 라디오 극장> 방송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문학 하나를 정하여 라디오 드라마 형식으로 각색하여 30회 정도에 걸쳐 방송된다. 소윤님이 녹음한 건 박연선 작가의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편!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듣고 싶었지만, 내 성격상 원작을 먼저 읽고 싶었다. 그 말씀을 듣자마자 바로 책을 샀고, 이번 주말에 다 읽었다. 제목은 으스스한데, 표지를 보면 아주 그렇지만도 않다. 표지가 이 작품의 분위기를 아주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박연선 작가 이름만 들으면 잘 몰라도, 드라마 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드라마 <연애시대>와 최근에 방영된 JTBC 드라마 <청춘시대>는 거의 다 알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온 식구가 시골 할머니댁에 모였다. 며칠만 모여 할머니를 위로하는가 하더니 (사실 자기들 입장에선 아버지가 돌아가신거 아닌가!) 엄마아빠는 21살짜리 다 큰 처자만 남겨놓고 도시로 돌아가 버린다. 5만원짜리 지폐 10장만 남겨둔채. 졸지에 시골집에 쳐박히게 된 20대 초반 손녀 강무순과 80대 홍간난 여사가 지지고 볶는 이야기. 그 사이에 이 마을에서 일어난 미제 살인 사건이 스리슬쩍 끼어든다.

읽다보면 ‘이게 추리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대사가 예사롭지 않다. 아마 작가님의 드라마 작가 경력이 거기 한 몫 더하지 않았나 싶다. 1인칭 시점으로 추리소설을 쓴다는 건 참 제한이 많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모든 정황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단편을 쓸 때마다 1인칭을 피해왔던 내게는 시점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시골 생활을 아주 적나라하게 그리기도 했고,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이제 작품을 다 읽었으니 맘껏 소윤님이 목사댁으로 열연한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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