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 쏜살 문고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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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테르 북스 갔다가 소중하게 사 들고 돌아온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 '아사히 신문' 에 39회에 걸쳐 연재된 글을 엮은 책이다. 유리문 안에서 관찰하는 갖가지 군상들을 그렸다. 

읽다 보면, 이게 사실인가, 환상인가 싶을 정도로 몽롱한 느낌이 자주 온다. 그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다가왔다가 곧잘 묘연하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비슷한 모습으로 태어나 각자 다른 병과 이유로 죽으니. 

39꼭지의 짧은 곡들 중에 몇 개만 발췌하여 적어 보겠다. 일본어로 직접 이 글맛을 느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언제 일본어를 다시 시작하겠냐, 후-
•••
"어머니는 내가 열서너 살 때 돌아가셨는데 내가 지금 저 먼 데서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환상은 기억의 실을 따라 아무리 더듬어 가 봐도 할머니로 보인다. 부모님의 만년에 태어난 내겐 어머니의 싱싱한 모습을 기억할 특권이 끝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도련님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여기시는 분들은 사실 도련님의 아버지와 어머니세요. 아까 '아마도 그래서 저렇게 이 집을 좋아하는 가 봐, 묘하군.' 하고 두 분이 말씀하시는 걸 제가 들었으니까 도련님에게 살짝 가르쳐 드리는 거예요. 아무에게도 얘기하면 안돼요. 아시겠어요?"

"그럼 절교하자고." 술 취한 남자가 결국 말을 꺼냈다. 나는 "절교하려면 밖에 나가서 하게나. 여기선 방해되니까." 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럼 밖으로 나가서 절교하겠나?" 하고 술 취한 남자가 상대방에게 제안해 보았지만, 그가 꿈쩍도 않는 바람에 결국 거기서 끝이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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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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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 이동진님이 아주아주 강추해서 2015년에 이 책을 구입했다. 왜였던지 기억나지 않지만 조금 읽다가 책장에 다시 꽂아 두었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훅 땡겨서 꺼내 읽었다. 중간에 책갈피가 꽂혔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새로 처음부터 읽었다.

'환상의 빛' 의 시작은 32살이 되는 유미코가 자신의 남편에게 말하듯이 시작된다. 독자들은 주인공 유미코의 남편이 왜 자살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해하면서 읽기 시작하지만 그 이유는 끝내 알 수도 없고, 작가는 그걸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원한 없고, 이유 없는 상실도 있을 수 있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일이라, 유미코는 두고두고 괴로워한다. 합당한 이유로 누구를 떠나보내고, 애도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축복일지 모르겠다. 내 두 번째 남자친구 생각이 났다. 그는 우리의 중요한 기념일 앞두고, 연락두절이 되었다. 수없이 전화를 하던 끝에 간신히 통화를 했다. 어차피 그의 마음을 되돌릴 생각은 없었다. 그 전날 밤만 해도 "사랑해." 라고 하던 그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고 잠수를 탄다는 것은 명백히 관계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붙잡지 않을테니 통화 한 번 하고 잘 마무리해요." 라는 내 문자에 간신히 그 사람은 전화를 받았다. 나는 결코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왜 마음이 달라졌는지 3가지 정도 이유만 말해주세요. 그러면 깨끗이 단념하고 끊을게요." 하니까 그는 미안해하면서 주섬주섬 몇 가지 이유를 말했다. 그러고는 꽤나 후련한 마음으로 관계가 끝났음을 스스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후유증으로 며칠 정도는 입맛이 없었지만, 딱 일주일이었다. 명백히 이유가 존재하는 상실이란 그 고통이 반감된다.

명확한 건 하나도 없는 삶, 불변하는 건 단 하나도 없는 인생,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서 있는 나의 피와 세포마저도 초단위로 새로 생성되는 마당에 "나" 라는 실체 자체 또한 뚜렷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걸 그저 알고서 살았으면 한다. 안경을 닦으면 선명해지는 게 아니라 닦아도 그냥 뿌옇다는 걸 너도 나도 알았으면 한다. 

밑줄 친 부분이 많진 않아도, 글이 너무 길어져 여기서 줄여야겠다. 이 작품 이미 읽은 분,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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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해부도감 - 집짓기의 철학을 담고 생각의 각도를 바꾸어주는 따뜻한 건축책 해부도감 시리즈
마스다 스스무 지음, 김준균 옮김 / 더숲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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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후루룩 넘겨보고 매료돼서 바로 샀던 책, 주거해부도감. 해부도감 시리즈가 대여섯권 정도 된다. 주거 정리 해부도감, 주거 인테리어 해부도감, 자연해부도감, 농장해부도검, 집짓기 해부도감 등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 손잡이, 지붕, 창문 등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떻게 선택되고 건축되는지 희미하게나마 알고 싶었기에 이 책을 골랐다. 


어떤 집이 쾌적하게 잘 지어졌는가, 아닌가는 여행을 가서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 가 보면 가장 쉽게 알 수가 있다. 아무래도 여행자에게는 저녁에 샤워를 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니까. 6인실의 도미토리에 들어갔다고 치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세면대와, 샤워꼭지와, 변기가 같이 있다. 나는 샤워만 하면 되는데, 내가 들어가면 세수를 하고 싶고 볼일을 보고 싶은 사람 모두가 나를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섬세하게 잘 건축된 곳에 가면 변기는 따로, 세면대도 웬만하면 따로, 샤워실은 따로 있는 경우가 있다. 굉장히 투숙객을 많이 고려한 건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최근 지어진 한국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콘센트의 위치다. 여행자들 대다수에게 전자기기가 최소 1~2개는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콘센트가 침대마다 배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적절한 높이에 있어 충전 연결선 길이에 관계없이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경우. 또, 샤워실의 배수구가 약간 낮은 곳에 있어 물이 저절로 그쪽으로 빠질 수 있게 돼 있는 경우는 최상이다. 샤워하면서 물이 빠지지 않아 불쾌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가게에 가서 화장실에 들르면, 사람이 앉고 간신히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좁다거나 문을 밖으로 열어야 하는데 안으로 열게 되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극장에서 화장실을 사용하고 세면대에서 손을 간단히 씻으려는데, 자동 센서여서 한동안 물이 안 나오는 경우라든지, 이미 손을 다 씻었는데, 물이 한참을 더 나오는 경우 등등도 있다.

이 책은 현관, 계단, 문, 거실, 부엌, 침실, 화장실, 욕실, 소리, 통풍, 차양, 처마 밑, 지붕 등으로 챕터가 아주 상세하게 나뉘어 있다. 주거자가 불편함을 최대한 적게 느끼고, 가장 쾌적하게 느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적어두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발걸음하는 곳들의 이상한 구조가 더 눈에 잘 들어오긴 하지만, 내가 가구를 배치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른 해부도감 시리즈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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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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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몇 년간 흠모해 왔던 정혜윤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 인생의 일요일들. 이 책을 다 읽은 건 벌써 지난 주말인데 이제야 리뷰를 쓰다니. 글을 쓰기 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 잠시 내는 게 이렇게 쉽지 않았을 줄이야. 


내가 가지고 있는 정혜윤 작가의 책이 몇 권이 있나 해서 찾아보니 꽤 많다. 침대와 책, 삶을 바꾸는 책 읽기,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따, 여행, 혹은 여행처럼, 마술 라디오까지. 분명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단 한 줄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숨쉬기처럼 책을 읽어왔지만, 이럴 때 느껴지는 허탈감이 있지만, 내 몸 속 어딘가엔 흐르고 있겠지-라는 믿음으로. 다시 '침대와 책' 부터 밑줄 그으며 읽고 싶구나. 

키가 크고 검은 머리를 매력적으로 풀어헤친 작가가 호기심 가득한
갈색 눈을 살며시 뜨고 그리스 이곳 저곳을 땀 흘리며 다녔을 모습이 눈 앞에 떠오른다. 책 표지는 희미한 민트색이었지만 이 책에는 뜨거운 햇볕이 느껴진다. 

나는 기본적으로 삶과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예찬하는 태도를 가진 작가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녀도 그런 작가 중의 하나다. 삶이 유한하고 그래서, 제대로, 따스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늘 다짐하는 것 같은 작가. 만난 적은 없지만 눈에 하트를 박고 무한한 애정으로 바라보고 싶은 작가다.

그녀의 아름다운 문장들 몇 개 이 곳에 적어보겠다. Nat King Cole의 Darling, Je Vous Aime Beaucoup를 듣고 있으니까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내가 누워 있는 기분이 든다. 유한한 나의 삶. 어떻게 사는 게 최선인지 알 수 없어서 재미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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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어머니의 말이 또 떠올라요. "존,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의 선을 대신 그어줄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건 같지 않아. 그리고 삶을 존중하려면 선을 그어야 해."

"인간적 온기 속에 있고 싶은 마음과 고독하고 싶은 마음의 경계, 나이고 싶은 마음과 나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뛰어넘고 싶은 마음의 경계, 과거를 훌훌 털고 싶은 마음과 과거에서 배우려는 마음의 경계,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의 경계, 표현하고 싶은 마음과 조용히 숨고 싶은 마음의 경계, 안정되고 싶은 마음과 자유롭고 싶은 마음의 경계, 은둔자가 되고 싶은 마음과 뭔가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의 경계, 저는 이 모순들과 잘 지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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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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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책들이 잔뜩인데 늘 새로운 책이 눈에 들어온다. 밀린 책들을 제치고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다. 한약봉지가 석달치 쌓였는데, 내 눈앞에 시원한 망고주스가 떡하니 놓여진 느낌이랄까. 그럴 땐 만사 제치고 무조건 망고주스지.

최근, 김민정 시인에 대한 호기심이 몽글몽글 크게 피어 올라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중고로 샀는데 세상에 사인본인다. "ㅇㅇ선생님, 김민정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각설하고, 사랑으로..2014.1.20" 

사인본을 중고로 팔아버렸는데, 그 책을 또 누군가 샀다. 그것도 왠지 김민정 시인에겐 어울린다. 어찌보면 이 책은 호사를 누리는 게 아닐까? 한 독자의 품에만 깃들 뻔 했는데, 새로운 독자를 만났으니 말이다.

김민정 시인은 세상이 궁금하고, 참견하고 싶고 오지랖도 넓고, 투정도 많고 애교도 많은 사람. 왜 주변 사람들이 그토록 예뻐하고 챙기는지 알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웅숭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이것과 저것, 여기와 저기. 

산문집인데 산문들이 시 같다. 그 리듬, 숨길 길 있겠는가. 혼자 고개 까딱거리고 어깨 들썩거리기 아까운 줄글들 이곳에 좀 적어보겠다.

"요즘 들어 접속부사에 편히 기대려는 의지박약인 제가 자꾸만 걸립니다. 그리 짧지 않은 다리라 생각해왔는데 도통 보폭을 못 벌리겠는 저입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놓인 깊고 깊은 크레바스에 자꾸만 발이 빠져 구두 속에 고인 물을 빼고 젖은 스타킹을 말리는데 한나절입니다."

"하루는 한 마케터가 회의 중에 내게 물었다. 시집, 꼭 그렇게 하셔야겠어요? 재고 때문에 창고가 난리예요. 대체 팔리지도 않는걸 왜 이렇게 내는지 원. 꼿꼿했던 허리가 풀어지면서 일순 내 하이힐이 비칠, 했다. 모든 책은 다 한 편의 시거든요. 참나,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시는 무슨 시요, 돈도 없어 죽겠는데. 존댓말을 유지하던 평정심이 무너지면서 순간 내 입에서 반말이 가래처럼 튀어나갔다. 야, 너 어차피 죽을 건데 살긴 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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