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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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책들이 잔뜩인데 늘 새로운 책이 눈에 들어온다. 밀린 책들을 제치고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다. 한약봉지가 석달치 쌓였는데, 내 눈앞에 시원한 망고주스가 떡하니 놓여진 느낌이랄까. 그럴 땐 만사 제치고 무조건 망고주스지.

최근, 김민정 시인에 대한 호기심이 몽글몽글 크게 피어 올라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중고로 샀는데 세상에 사인본인다. "ㅇㅇ선생님, 김민정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각설하고, 사랑으로..2014.1.20" 

사인본을 중고로 팔아버렸는데, 그 책을 또 누군가 샀다. 그것도 왠지 김민정 시인에겐 어울린다. 어찌보면 이 책은 호사를 누리는 게 아닐까? 한 독자의 품에만 깃들 뻔 했는데, 새로운 독자를 만났으니 말이다.

김민정 시인은 세상이 궁금하고, 참견하고 싶고 오지랖도 넓고, 투정도 많고 애교도 많은 사람. 왜 주변 사람들이 그토록 예뻐하고 챙기는지 알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웅숭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이것과 저것, 여기와 저기. 

산문집인데 산문들이 시 같다. 그 리듬, 숨길 길 있겠는가. 혼자 고개 까딱거리고 어깨 들썩거리기 아까운 줄글들 이곳에 좀 적어보겠다.

"요즘 들어 접속부사에 편히 기대려는 의지박약인 제가 자꾸만 걸립니다. 그리 짧지 않은 다리라 생각해왔는데 도통 보폭을 못 벌리겠는 저입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놓인 깊고 깊은 크레바스에 자꾸만 발이 빠져 구두 속에 고인 물을 빼고 젖은 스타킹을 말리는데 한나절입니다."

"하루는 한 마케터가 회의 중에 내게 물었다. 시집, 꼭 그렇게 하셔야겠어요? 재고 때문에 창고가 난리예요. 대체 팔리지도 않는걸 왜 이렇게 내는지 원. 꼿꼿했던 허리가 풀어지면서 일순 내 하이힐이 비칠, 했다. 모든 책은 다 한 편의 시거든요. 참나,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시는 무슨 시요, 돈도 없어 죽겠는데. 존댓말을 유지하던 평정심이 무너지면서 순간 내 입에서 반말이 가래처럼 튀어나갔다. 야, 너 어차피 죽을 건데 살긴 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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