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시간 - 흙과 생물의 5억 년 투쟁기
후지이 가즈미치 지음, 염혜은 옮김 / 눌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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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태책방인 '목수책방' 에 갔다가 제목에 단번에 끌려서 구입했던 책. 일본과 세계 각지에서 흙과 재미있는 생물을 연구하는 후지이 가즈미치가 쓴 책, '흙의 시간' 이다. 원제는 大地の五億年. (대지의 5억년). 흙이 주인공인 책이다.

흙이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녔는지, 얼마나 민감하게 주변 환경에 반응하는지 알고 무척 놀랐다. 열대우림의 흙과 건조지대의 흙은 그 위에 축적되는 유기물의 종류도 다르고, 산성도도 다르고 영양분의 보유량도 무척 다르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의 흙은 파보면 숲 바닥은 얇고, 유기물이 많이 없는 편이며, 토양은 산성, 인이 많이 부족하다. 반면에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의 검은 흙은 매우 영양분이 많은 비옥한 토양이다. 토양의 질과 산성도에 따라 자라는 나무도, 작물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점이다.

그렇게 관심 가지지 않았던 흙의 역사와 거대한 변화에 대해서 샅샅이 훑는 느낌이었다. '흙 입문서' 로서 매우 훌륭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고 할 수 있는 책. 비슷한 책이 있다면 찾아 읽고 싶을 정도다. 식물과 흙, 생태에 관심이 있는 바로 당신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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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질소비료는 마약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한번 의존하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질소 비료를 필요로 하게 된다."

"아저씨들의 노상방뇨는 물론 나쁜 짓이고 기본적으로 위법 행위이다. 하지만 토양 산성화를 억제하면서 질소 양분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밭에 한해서는 굉장히 환영받을 만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숲은 흙에서 자라지만 반대로 흙을 키우는 역할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낙엽은 10퍼센트 정도의 분해하기 쉬운 성분과 90퍼센트의 분해하기 힘든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먹기 힘든 90퍼센트가 바로 셀룰로오스와 리그닌이다."

"강한 산성토양이나 중금속으로 오염된 흙에서 처음으로 싹을 틔우는 게 바로 양치식물이다."

"백색부후균은 다른 버섯들이 맛없다고 먹지 않는 리그닌을 처리해주기 때문에 상당히 특이한 입맛을 가진 버섯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사실 효소의 힘으로 리그닌을 제거하면 거기 있는 맛있는 성분(셀룰로오스나 질소)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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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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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가지고 17명의 작가가 그림 1점씩을 골라 그것을 단편으로 쓴 것. 어떻게 균질하게 이렇게 훌륭한 단편들만 모여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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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이어서, 몇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호흡에 훅-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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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Rooms by the Sea를 가지고 쓴 단편 바닷가방(Rooms by the Sea)의 환상에 매혹되었으며, 그림 Summer Evening을 테마로 해서 쓴 단편 캐럴라인 이야기 (The Story of Caroline) 은 뭘까, 뭘까? 하다가 얼떨떨하게 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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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단편 '음악의 방' 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짧은 글에서도 우리를 경악하는 하는 그의 글힘. 워런 무어의 '밤의 사무실' 은 영화로 꼭 보고 싶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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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In Sunlight or in Shadow)라는 제목보다 더 나은 제목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그림에 도시의 밝은 조명이 있고, 그 아래에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17편의 단편들도 꼭 그런 식이다. 그림자가 짙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 왠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화사한 마음으로 미소짓기는 힘들다. 마음에 살짝 그늘을 드리우는 그림들, 그 그림을 가슴에 품고 씌어진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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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이 책 읽은 사람들과 책 얘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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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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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책을 읽는 법, 책을 고르는 법이 이미 확고하게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독서법을 조언받을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순전히 이동진님의 독서이야기가 읽고 싶어서 샀다. 말하자면 내게 자기계발서는 필요없지만, 독서에세이는 필요한 상황이었달까. 

읽으면서 놀랐다. 얼마나 문장들이 깔끔하면 읽을 때 턱, 하고 걸리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의 깔끔한 성격답게 글도 매끄럽고 쉽게 아주 정교하게 잘 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솔직하고 거침없이. 

밑줄 친 부분이 너무 많아서 다 옮겨적을 수도 없다. 다만, 내가 지금 하는 이대로, 한달에 책을 40권씩 사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건 확실히 알았다. 40권의 책을 사려면 40번을 기쁜 마음으로 골랐다는 것이고, 40번 새 책을 펴는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니까. 따로 정리공책을 두지 않고, 책에다 밑줄치고 메모하는 게 가장 간편하다는 것도 이동진님과 나와의 공통점. 

아파트 바로 아래 편의점을 갈 때도 허전할까봐 책을 가지고 가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읽는데, 그런 내용이 이 책도 나와서 또한 반가웠고! 

수많은 밑줄 중 몇 개만 엄선하여 이 곳에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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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서 정말 신비로운 순간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을 때 책과 나 사이 어디인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신비로우면서도 황홀한 경험입니다."

"'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라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 이 아니라 '있지 않은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영이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허세일까요. 저는 지금이 허영조차도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신의 깊이와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에 학교에서 가훈을 붓글씨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고 해요.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 묻는 딸에게 박찬욱 감독이 '아님 말고' 라고 했다죠. 정말 명쾌하고 좋은 말 아닌가요? '아님 말고' 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정말 인생이 행복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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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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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준의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을 기차 안에서 다 읽었다. 아주 묘한 느낌을 가진 작가다. 크게 울거나 웃지 않았고 또렷한 음성을 낸 것도 아니다. 나는 그가 미농지같다고 느꼈다. 모든 색을 파스텔로 만들지만 분명히 부드럽게 그 톤을 드러낸다. 외치진 않는데, 존재감은 뚜렷한 종이. 


우연이었겠지만, 나와 동갑이었다. 나와 동갑인 이 시인은 이런 밤들을 보냈고, 그렇게 주춤거렸고, 별스러울 것 없는 울음을 울라고 담담히 권했다.

책 내지를 펼치면 그의 사인이 있다. "울어요, 우리" 17. 박준

미농지 같은 그의 글 몇 구절 이곳에 적어보겠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내 경우에는 그것이 소리였따. 터뜨리는 웃음이나 나지막이 흥얼거리는 상대의 콧노래, 심지어는 마른기침 소리까지도 살갑게 느껴질 때 나는 내가 사랑에 빠졌음을 알아챈다. 반대로 상대가 가진 특유의 말투나 부르는 노래, 음식물을 씹는 소리가 귀에 거실를 때 나는 이 사랑이 곧 끝을 맞이할 것이라 직감한다.”

ps. 어떤 것이 책이고, 어떤 것이 노트일까요? 하드커버인 책을 사니, 하드커버인 노트를 한 권 준다. 곡진한 민쟁김 시인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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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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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야말로 작가해야 하는구나. 김애란 정말 너무한다. 이 책의 첫 단편, 입동이 너무 좋아서 '아마, 이 작품이 이번 단편집 중에 최고일 것 같아.' 예상했지만, 내 예상은 번번히 깨졌다. 읽을 때마다, '아, 이것도 좋은데?' '앗, 또 좋은데?' 계속 좋은 작품들이 갱신됐다. 


결론을 말하자면, 굉장히 균질하게 작품들이 너무너무 훌륭하다. 특히, 처음 잘 읽히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미뤘던 '침묵의 미래'는 더더욱 '이런 상상까지도 할 수 있구나-' 하고 신선한 충격이기까지했다.

반려견과 인생을 함께 바라보게 하는 작품 '노찬성과 에반'도 정말 좋았다. 상실의 아픔을 함께 느끼게 하는 '입동' 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도 조금씩 다른 톤으로 좋았다.

소설을 쓰려면 이 정도로는 훌륭해야 쓰나보다. 김애란 작가, 여전히 글맛이랑 글힘이 그대로 살아있다. 정말 좋다.

밑줄 친 구절이 정말 셀 수 없이 많지만 몇 구절만 이곳에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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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라운 뺨과 맑은 침을 가진 찬성과 달리 할머니는 늙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늙는다는 건 육체가 점점 액체화되는 걸 뜻했다. 탄력을 잃고 물컹해진 몸 밖으로 땀과 고름, 침과 눈물, 피가 연신 새어나오는 걸 의미했다. 할머니는 집에 늙은 개를 들여 그 과정을 나날이 실감하고 싶지 않았다."

"도화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눈가 주름에 파운데이션이 끼지 않았는지 살폈다. 그러곤 자신이 한창때를 지났다는 걸 체감했다. 아무렴 한창때가 지났으니 나물맛도 알고 물맛도 아는 거겠지. 살면서 물 맛있는 줄 알게 될지 어찌 알았던가."

"(출산 후) 한동안 나 자신이 비리고, 뜨겁고, 미끌미끌한 덩이로 느껴졌다. 이름이 지워진 몇십 킬로그램짜리 영양 공급 팩이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했따. 그게 격려나 존중의 형태였대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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