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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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리뷰를 썼더니, 누군가가 추천해 준 책. (그 분이 누군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명백히 "어른의 사랑"을 다루었던 '마티네의 끝에서' (주인공 남자가 클래식 기타리스트였다.)와 피아노 콩쿨을 소재로 했던 '꿀벌과 천둥' 에 이어 연장되는 느낌으로 골라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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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강철의 숲. 피아노 조율과 피아노 조율사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은 보고 갸우뚱했던 게 이제야 이해가 된다.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면 건반을 두드리는 하얀 해머는 압축할 양털로 된 것이다. 피아노의 줄은 쇠 줄이고, 그 두 가지가 내는 소리가 우리가 듣는 피아노 소리. 작가는 양과 강철에서 숲의 소리를 듣고, 숲의 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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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주자가 아닌 피아노 조율사에 대한 소설을 누군가 쓰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중심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존재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좋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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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어릴 때 큰 맘 먹고 나와 동생을 위해 구입했던 영창피아노가 아직도 집에 있다. 까만 칠이 된 피아노가 아니고, 원목으로 된 꽤나 고급스러운 피아노였는데, 구입한지 15년이 지난 후에도 조율사를 불러 조율을 부탁드리면 "와, 상태 정말 좋네요. 혹시 팔 생각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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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에요. 계속 치려고요." 하고 조율사께서 조율을 끝내시길 기다렸다. 끝나고서 조율사가 "한 번, 쳐 보시지요." 했다. 그냥 간단한 곡을 쳤는데, 소리가 너무 좋아서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조율사에 대한 반가운 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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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을 가진 사람을 집요하리만큼 따라잡는 그 시선 또한 장인정신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집요함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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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부드럽고 우아하게 흘러가는, 안 읽어도 그만이겠지만 읽어서 내 삶에 풍부한 향을 더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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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쳤던 구절, 이 곳에다 조금 옮겨 적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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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피아노는 연주하는 사람만을 위한 악기가 아닙니다." 야나기 씨가 말했다. "듣는 사람을 위해서도 존재해요.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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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에서 바로 연결된 숲을 정처 없이 걸으며 숲의 진한 냄새를 맡고 나무 잎사귀들이 스치는 소리를 듣다 보면 서서히 감정이 정리되었다. 어디에 있으면 좋을지 모르겠는, 어디에 있어도 침착해지지 못하는 위화감은 흙과 풀을 밟는 감촉과 나무 저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나 멀리서 들리는 짐승 소리를 듣다 보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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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소리라고 일괄적으로 말해도 그 안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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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경치 한 지점에 초점이 정확히 맞았다. 산에서 자란 나무 한 그루, 그 나무를 뒤덮은 녹색 잎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풍경까지 보였다. 지금도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소리였는데, 이타도리 씨가 조율하고 정돈하자 단숨에 윤택해졌다. 선명하게 뻗는다. 다랑, 다랑, 단발적이었던 소리가 달리고 엉켜 음색이 된다. 피아노가 이런 소리를 내던가. 잎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숲으로, 산으로. 이제 막 음색이 되고 음악이 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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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말할걸 그랬어
소피 블래콜 지음, 최세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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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데콧 상을 수상한 그림책 '위니를 찾아서' 의 그림을 그렸던 소피 블래콜의 아주 특별한 어른을 위한 사랑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 특별하냐고? 이렇게 특별하다.

Missed connections 라는 웹사이트가 있다. 당신이 지하철에서 자꾸만 눈이 가는 사람을 바라만 보다가, 그 사람이 먼저 내렸을 때 못내 아쉽다면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글을 쓴다. "난,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었던 초록 셔츠에 갈색 머리의 남자에요." 여기 남겨진 글들은 거의 당사자에겐 발견되지 않고 잊혀지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읽고, 설레하고 가슴 졸여하고, 잠 못 이룰테다.

혹은, 그 날 서로 눈을 마주치고, 망설이다 그 웹사이트에 접속해 결국 만나게 되는 인연들도 실제로 존재한다.

저자인 소피 블래콜이 우연히 이 Missed connections라는 웹사이트를 알게 되고 나서, 그 곳에 올라오는 사연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 그림을 기다리는 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응원의 이메일도 속속 도착하고.

뉴욕에서의 스쳐지나간 인연들. 브루클린에서, 유니온 스퀘어에서, 윌리엄스버그와 첼시에서. 

Strong connection이 되었으면 좋았을 인연들, 하지만 그대로 Missed connections여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스쳐지나 버리는 바람에 60여점의 아름다운 작품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난 셈이니까. 

고운 텍스트와 먹과 수채화로 세심하게 그려진 일러스트가 한몸으로 엮여있다. 이 그림들 전시에서 주루룩 한꺼번에 볼 수 있으면 참 아름답겠다 싶다. 그림 한장 한장 들여다보며 단편 소설 하나씩 알음알음 써봐도 좋겠다 싶다. 

혼자만 알기 아깝고, 한번만 읽기 아깝다. 당신도 눈으로 아름다운 텍스트와 일러스트, 나와 함께 더듬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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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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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질문하는 책들' 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는 김대선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힐빌리의 노래. 처음엔 힐빌리가 뭔지 몰랐다. 제목으로만 추측해선 팔자가 기구한 여인의 라이프 스토리 정도일까? 생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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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Hillbilly Elegy. 힐빌리의 애가, 비가 정도 되겠다. 힐빌리란 백인 노동자층을 의미하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백인 쓰레기를 의미하는 화이트 트래쉬 (White Trash), 흰 피부에 빨갛게 목만 탔다는 레드넥 (Red neck) 등이 있다. 비하하는 의미가 충분히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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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J.D.밴스는 오하이오의 철강도시, 백인 노동자 마을에서 자라났다. 알콜 중독과 마약과 폭력과 저학력이 온 마을의 분위기를 감싸고 있는 그런 곳에서. 그런 곳이 삶의 터전이었던 저자가 내부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 샅샅이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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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때, 젊디 젊은 부모님이 10원 한장까지 아끼며 알뜰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기억은 내 기억에 남아있지만, 절대적인 빈곤을 겪은 적이 없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볼 때 '왜 저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인데도 되려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할까?' 의아한 적이 많았다. 힘들다보니 저런 데 손을 대게 됐구나- 정도의 막연한 생각을 해 보았을 뿐. 찢어지게 가난했던 60년대 한국의 농촌을 떠올려보라. 너무너무 가난했어도, 마을을 감싸는 분위기는 술 중독과 무력감, 패배감이 아니었다. '아껴서 자식들이라도 출세시키자' 정도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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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아주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남학생이 있으면 다른 남학생들이 '계집애처럼 공부나 하고 앉아있어!' 라는 식으로 놀려대고, 괴롭히고. 친구가 내 가족을 모욕했을 때 점잖게 참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총을 들고 가거나 흠씬 두드려패야 명예로운 일이라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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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가 굉장히 균형을 가진 시각으로 책을 쓰고 있다고 느꼈던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 사람들이 제도적 맹점 때문에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괜찮은 일자리가 주어져도 성실하게 근무하지 못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팽배한 무력감을 가진 구성원들을 비난하고 있다. 사람들에겐 문제가 없고, 제도가 우리를 수렁으로 밀어넣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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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 중독자 어머니, 10대에 자식을 낳은 자신의 이모와 누나들에 둘러쌓여, 어떻게 그 수렁에서 빠져나왔는지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오하이오 주립대, 예일대 로스쿨을 갔다.) 그런 탈출의 경험을 모두와 공유하고 모두를 돕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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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결함을 가졌으면서도, 끝끝내 따스했던 할모와 할보 (할머니, 할아버지를 그쪽 은어로 표현하여 번역한 것), 놀라울 정도로 현명한 누나가 있었기에 이렇게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고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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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겨, 리뷰를 충실하게 못 쓰고 있음이 좀 아쉽다. 밑줄 친 부분을 추리고 추렸는데도 꽤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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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 이들은 지역 사회와 국가의 경제, 정치, 사회의 권력을 장악한 백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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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보가 퇴근하고 돌아와 뜨끈한 저녁밥을 지어달라고 하면 할모는 뜨끈한 쓰레기 한 접시를 정성스레 내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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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하는 편의 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미들타운을 떠난 것은 아니다. 그런 시설을 이용해줄 손님이 사라졌기에 편의 시설이 문을 닫고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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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대학에 가기에는 너무 멍청하다고 또는 너무 가난하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런 분위기는 마치 공기처럼 늘 우리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리 가족 중에 대학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동네 선배들이나 형제들은 직업 전망이 어떻게 됐든 미들타운에 눌러앉아 완전히 만족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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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모, 신이 정말 우리를 사랑해요?" 할모는 고개를 떨구고 나를 껴안더니 꺽꺽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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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은 정말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우리는 그 가난한 살림에서 지출을 늘려나간다. 거대한 텔레비전과 아이패드를 산다. 이자가 센 신용카드나 고리대금을 얻어서 자식들에게 좋은 옷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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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감을 끝없이 바꿔가며 만나던 우리 엄마를 떠올려보라. 이런 일이 미국만큼 일어나는 나라는 없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이 어머니의 동반자를 세 명 이상 만날 확률이 0.5퍼센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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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 - 자연농이라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방식
강수희 & 패트릭 라이든 지음 / 열매하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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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게 된 책이었더라. 인스타그램에서 오다가다 우연히 알게 된 책이었을까. 보자마자 "어! 이건 날 위해 출판된 책인가!" 하며 화들짝 놀라, 텀블벅 후원을 했었더랬다. 후원이 성사되어 출금되었다는 문자가 오더니, 이렇게 빨리, 책이 도착했다. (프로젝트가 달성되고도, 여러가지를 준비하시느라, 제품이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인 출판사 열매하나에서 처음 출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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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강수희, 실리콘 밸리에서 전자제품 매뉴얼을 작성하여 고액의 연봉을 받던 패트릭 라이든씨가 자연농의 세계에 풍덩 빠지면서 하게 된 프로젝트가 바로 '자연농(Final Straw)라는 제목의 다큐를 찍은 것이다. 자연농을 실천하는 전세계의 농사들을 찾아가, 그들의 인터뷰를 따고, 관찰하였다. 그것을 영화로 만들고, 다큐에 못 다 담은 이야기를 엮어 또 이렇게 아름다운 책이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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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 자연농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아마, 다른 이들도 나랑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유기농을 떠올리거나, 좀 더 나아가 농약이나 비료를 치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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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은 좀 더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가까운 방식의 농사였다.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벌레와 풀(이 책에서는 절대로 잡초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심지어, 땅을 갈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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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리집 마당이 떠올랐다. 3~4평 정도의 아주 작은 마당인데, 낭군님과 내가 날마다 가꿀 수는 없으니, 그 자그마한 밭 하나도 잘 가꾸기 힘들었다. 가끔씩 낭군님이 땀을 한바가지씩 쏟으며 풀을 뜯어내기도 했지만 (자르지 않고, 뜯었다.) 그게 보통 일인가 말이다. 그리고, 일주일만 지나면 다시 잡초로 밭이 뒤덮이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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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지면 막연하게 뒤죽박죽 이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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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잡초가 땅의 영양분을 빼앗가 가니까 제거해야 한다.-

2.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또 자라나니까 뽑아야 한다.-

3. 근데, 잡초를 뽑으면 땅이 황폐해 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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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그 모든 정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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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밭에 내가 심지 않았어도 무성하게 자라는 풀들을 미워하며 뿌리째 뽑지 않아도 된다. 좀 더 느긋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재배하여 식탁에 여러가지 채소와 작물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밭은 아직 너무 작아, 가끔씩 식사의 재료 정도만 충당될 정도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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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하다, 먹거리를 직접 구하기 시작한다에서 스스로 자그마한 혁명이 일어나고, 그 먹거리를 직접 구하는 방식을 자연농으로 바꾼다에서 또 다른 혁명이 한 번 더 일어난다. 그런 변화를 일으켰더니, 삶의 방식 전체가 바뀌고, 만나는 사람들도 바뀌고,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도 바뀔 터이다. 말 그대로 Transforming ourselv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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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작가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까. 오사카에서 생태 예술 공간을 새로 꾸릴 예정이라는 이 두 사람. 내 가슴이 덩달아 벅차오르고 숨이 가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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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너무 많이 쳐서 고르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꼭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써서 남겨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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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기계로 땅을 갈면 해마다 겉흙이 아주 많이 유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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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 수조차 없는 건물 46층에서 일하면서, 역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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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 주변에 풀이 많더라도 대략 반년 안에 그 수명이 다할 것이고 이후 잔해물이 썩으면서 흙을 비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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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도 인간처럼 저마다의 삶이 있는데 같은 조건 아래에서 모두 똑같이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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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자연농을 농사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연농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고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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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힘 -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
스티븐 리츠 지음, 오숙은 옮김 / 여문책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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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나를 전율시킨 책. 식물의 힘. 원제는 The Power of a Plant. 노태운님이 멋진 신간이 한 권 나왔다며 추천해주셨는데, 책 목차와 설명을 훅, 읽어보고 바로 주문했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의 학교들을 변화시켜온 놀라운 교육의 힘이 마법처럼 펼쳐진다'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 이라는 설명을 읽는 순간, 두 말할 필요없다. 최대한 빨리 사서 읽자!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9월 4일에 출간된 책이니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책이다.

뉴욕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브롱크스에서 식물로 학생과 지연사회 전체를 변화시킨 교사 스티븐 리츠가 쓴 글이다. 그렇다. 나는 교사고, 식물에 관심이 많다. 햇살이 쏟아지는 조그마한 마당을 가진 집에서 사는 나는 허브도 키우고, 고추와 가지, 깻잎과 토마토를 길러서 먹는다. 하지만 지금 나와 우리 아이들이 있는 교실에는 해가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다. ㄷ자 모양의 건물 틈새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능좋고 깜빡임이 없는 LED등이 천장에 달려있지만 못내 아쉽다. 식물을 키워보겠다고 학부모님들에게 화분도 빌려서 모아두었지만, 해가 전혀 들지 않는 교실임을 파악하고는 포기했다. 거의 대부분의 식물은 (음지식물을 제외하면) 햇볕과 통풍이 절반 이상의 중요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스티브 리츠가 발하는 환하고 밝은 빛에 눈이 밝아지고, 난로 주변에 손을 갖다댔을 뿐인데 온 몸이 따스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패로 가득한 책. 그런데 실패 끝에 얻어낸 아이들과의 성공경험으로 책 전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나도 이렇게 해 보고 싶다. 좋은 삶을 모두가 살게 하고 싶다. 유의미한 근사한 일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막 스물스물 꿈틀꿈틀 강력하게 피어오른다. 

마약과 범죄,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는 브롱크스의 열악한 학교들의 졸업률은 17% 정도. 그 아이들의 졸업률을 100%까지 끌어올리게 하고, 무너진 가정을 일으켜 세웠다. 직접 채소를 키워 수확해서 그것을 먹으면서 자신의 식생활과 가족의 식생활을 둘러보게 되고, 스스로 자존감을 세웠으며, 그것이 학습에서의 성취를 불러왔다. 이어, 여러 전문가를 초빙한 체험을 통해 진로를 멋지게 설계하는 데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기적같이 일어난 일, 하지만 누구든 시작하면 손에 쥘 수 있는 기적이다.

그 가운데 저자가 TED 무대에 서면서 폭발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던 것도 큰 기폭제가 되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그린 브롱크스 머신' 이라는 모자와 티셔츠를 

아, 이 아름다운 여정을 내가 짧은 글로 설명하는데 너무 부족하다. 안타깝고 안타깝다. 정말 모두가 읽고 함께 전율했으면 좋겠다.

이 책보다 내가 밑줄을 더 많이 친 책은 없었던 것 같지만, 꼭 공유하고 싶은 문장들, 이 곳에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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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에 싸음이 일어났다. 잊지 못할 10월의 그날, 수업 중에 두 학생이 갑자기 의자를 뒤로 밀치며 벌떡 일어났다. 곤살로라는 아이가 라디에이터 밑으로 손을 뻗는 게 보였다. 안 돼, 제발 그 밑의 무기는 건드리지 마, 나는 생각했다. 그 아이가 무언가를 잡아 뜯었고 와르르 쏟아졌다..... 꽃들이었다. 기다란 초록색 줄기마다 피어난 수십 송이의 밝은 노란색 꽃.....마치 곤살로가 마술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기라도 한 것처럼 교실엔 탄성이 흘렀다. 그 꽃은 너무도 뜻밖이라 형광등 불빛 아래서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날아가던 주먹들이 곧바로 멈추었다. 이제 남학생들은 수선을 떨며 여학생들에게 꽃을 건넸다. 여학생들은 한두 줄기를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싶어했다. 그리고 과학교사로서 내 본능은 방금 일어난 이 소동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우리가 일을 더 많이 할수록 공원은 보기 좋아졌다. 결과가 한 눈에 보였고, 그만큼 전염성이 있었다. 열한 명의 십대가 공원 화단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 아니었고, 사람들은 그 풍경을 무척 좋아했다."

"물론 나는 실패에 관해선 토머스 에디슨이나 스티브 잡스만큼 위대하지 않을지 몰라도, 상당히 그에 가깝다. 그들이 그랬듯, 좌절감 때문에 배움을 멈춘 적은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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