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불어요! 창비아동문고 224
이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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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 정도만에 이현 작가의 <짜장면 불어요!>를 새로 읽었다. 그 당시엔 아동문학에 큰 관심이 없었던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기억이란 참 휘발성이 빨라, ‘짜장면 배달하는 아이가 있었지.’ 정도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캐릭터를 살펴보려고 책장을 펼쳤다.

후아, 여전히 재밌다. 이현 작가님 솜씨는 맛깔스럽다.

6학년 아이들이 사춘기와 성을 다룬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고, 제목이 왜 그렇게 붙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던 ‘봄날에서 흰곰은 춥다’도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그래도 그래도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건 역시 ‘짜장면 불어요!’의 주인공 기삼이. 마치 시나리오처럼 대사가 거의 분량의 반 정도를 차지한다. 동화로서는 드문 케이스인데 (어제 최나미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 그러거나 말거나 재밌으니까 됐다. 책장이 막 넘어간다. 도대체 기삼이는 어떤 10대길래 궁금해서 자꾸 자꾸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럼 된거다. 저렇게 매끄럽게 입이 착착 붙게 쓸 수만 있다면 누구든 영혼을 갖다 팔고 싶겠지. (나만 그런가? ㅎㅎ)

“형은 철가방 드는 게 그렇게 좋아요?”
“나, 난 그냥 내가 좋아.”
“형, 왕자병 아니에요?”
“왕자병? 몰라. 뭐, 왕자도 괜찮겠지. 난 철가방 드는 나도 좋고, 왕자인 나도 좋고...또 뭐 다른게 하게 되면 그런 나도 좋아할 거야. 난 내가, 너어어ㅡ무 좋아.”

최근 10여년간 우리나라 창작 어린이문학 중에서 기삼이보다 눈에 띄는 캐릭터가 과연 있을 것인가! 실제로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아, 생각해보니 존재한다. 요즘 방송에서 엄청 유명해진 중딩농부 한태웅. 그 친구의 낙천성은 기삼이랑 비슷하게 느껴진다.) 기삼이의 따발총 철가방 예찬론을 듣다보면 어느새 나도 설득돼 있다. 듣다보면 구구절절 맞고, 이젠 귀가 좀 따갑다 싶을 정도 질리게 들었는데, 이상하게 또 듣고 싶다.

세상을 긍정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 두고 오래오래 보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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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창비아동문고 219
유은실 지음, 권사우 그림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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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아슴푸레 생각나는 책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이 책을 읽고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하고 싶다는 거다. 그러고는 내 어린 시절의 단 하나의 작품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답을 내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J.M.바스콘셀로스의 <라임 오렌지나무>.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엄마 말로는 나는 이미 갓난쟁이부터 책을 좋아해서 안달이었다고 한다. 엄마가 무리해서 산 계몽사 전집이 너덜너덜할 때까지, 심지어 마침표와 쉼표까지 다 읽어댔던 나. (이렇게 평생 책벌레로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ㅎㅎ)...

책을 좋아하는 것치고는 많이 읽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외출을 해 엄마가 책을 사주면 너무 기뻐서 팔짝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엄마가 사다주신 책이었을 거다. 내 기억이 맞다면 4학년 때 나는 이 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라임오렌지가 뭔지도 모르는데, 어렴풋이 향긋하고 새큼한 향기가 나는 열매일거라고 상상했다. 뽀르뚜가 아저씨가 왜 죽어야 하는지, 라임오렌지 나무는 왜 잘려나가야 하는지. 너무 거대한 슬픔에 압도됐지만, 반전은 없었다. 아저씨는 죽고, 나무는 잘려나가고. 둘 중 하나도 살아나지 못했다.

아무리 떠올려도 그 책만큼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책은 없다. 유은실 작가에게는 그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들이었다. 자기 얘기를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쓸 수 있다니, 아니 써도 된다니! 그게 작가로 산다는 것의 특혜 아니겠는가! (오해 마시라, 글을 쓰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으니.)

모든 챕터의 제목이 다 린드그렌의 작품이다. 첫 장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산적의 딸 로냐’, ‘미오, 나의 미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지나 현덕의 ‘나비를 잡는 아버지’도 등장한다. 난 여기 나오는 작품들을 다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모두 읽었으며,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동화가 얼마나 재미있고 가슴에 품고 싶을만큼 좋을까?

린드그렌을 좋아하는 소녀 비읍이가 써내려가는 이야기. 엄마가 린드그렌을 읽었으면 좋겠고, 돈은 없지만 헌책방에 린드그렌 책을 한권 두권 모아가는 게 세상 최고의 기쁨인 비읍이. 린드그렌 선생님이 언젠간 읽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한 통 한 통 쓴다. 그 편지들을 읽다보니 비벌리 클리어리의 <헨쇼 선생님께> (원제 :Dear Mr. Henshaw)도 떠올랐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작가를 그리워하는 어린이 독자들의 마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수하게 반짝이고 고마운 마음. 당신이 책을 안 읽고는 못 배긴다면, 어제도 읽었고, 오늘도 읽으며, 내일도 읽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면 이해할거다. 당신이 바로 비읍이라는 걸. 다름아닌 그 소녀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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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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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리뷰를 하나 더 세상에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사랑받는 책. 늦었지만 뒤늦게 읽었다. 이현 작가의 <동화 쓰는 법>의 추천도서였기도 하고, 여기저기 추천도서 목록에서 빠지는 법이 없는 책이다.

보부상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 장터를 떠돌던 아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꼭 전해져야 하는 중요한 ‘서찰’을 몸에 지니게 된다. 한자도 읽을 줄 모르는 아이가 그 서찰의 내용을 알아내고, 어딘지도 모르는 그 곳에, 누군가에게 이 서찰을 전해주기 위해 떠나는 여로.

손에 땀을 쥐는 신나는 모험도 아닌데 이상하게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한윤섭 작가 글의 힘이겠지. 오갈 데 없는 아이가 ‘오늘 밤은 어디서 잘까’, ‘이제 돈이 없는데 어떻...게 될까.’ ‘한자도 못 읽는데 어떻게 알아낼까.’ 1인칭 시점으로 진행돼서 더욱 아이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서찰을 전해 받아야 하는 사람이 녹두장군 전봉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독자는 반신반의한다. 결국, 만나게 될까? 서찰은 전해줄 수 있을까?

비극 앞에서도 허둥지둥하지 않는 아이. 두려울 게 없는 아이. 기대고 싶어지는 아이.

배유안 작가의 <초정리 편지>의 어마어마한 성공 이후로 많은 동화작가들이 역사 동화를 쓰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철저한 고증과 연구 없이는 허술한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 작품을 분석하기 전에 이야기의 힘에 매료되었다. 다른 설명이 무엇 필요 있을까.

자연스럽게 이 책은 고학년에서 ‘동학 농민 혁명’을 지도할 때 프로젝트 수업에 많이 사용되는 책이기도 하다. 모든 역사수업을 문학과 함께 연결시킬 시간적 여유가 나진 않더라도 최소한 2권 정도는 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하게 든다. 책을 못 놓게 하는 역사동화를 더 찾아봐야겠다. 추천해 주셔도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언제 고학년을 또 맡게 될지 모르겠지만, 차곡차곡 읽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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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 - 제5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57
김준현 지음, 차상미 그림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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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동시에 살짝 빠져 있다. 사두고 미처 못 읽은 이야기책이 너무 많이 쌓여서 잠시 사재기를 중단하였다. 도서관에서 빌리고, 친구들에게 빌려서 읽기로 했다. 하지만 동시집은 예외라며(?) 책쇼핑을 합리화할 빌미를 찾아냈다. 동시는 곁에 가까이하고 두고두고 읽어야한다. 한 번 읽고 ‘와, 좋네,’ 하고 넘어가면 의미가 없다. 내가 외우고 낭송하고 아끼면 좋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읽히면 더욱 좋다.

말이 좀 길었는데, 결론을 내자면 동시는 맘껏 살테니 나 말리지 말란 얘기다! ㅎㅎ

요새 내가 집에만 도착하면 거실에다 켜 두는 ‘이안의 동시 이야기_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팟캐스트에서 알게 된 동시집이다. 김준현 시인의 ‘나는 법’....

고백을 먼저 해야겠다. 안에 어떤 시가 있는지 알기도 전에 나는 표지만 보고 이 책을 사기로 결정했다! 동글동글 알차게 잘 다듬어진 동시와 예쁜 삽화가 결합됐을 때의 그 엄청난 행복을 동시를 사 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손에 뿌듯하게 와 잡히는 행복을 나 혼자 누려도 되는거야? 일요일 아침 일찍 눈을 떴는데도,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어 혼자 꿈틀꿈틀 왕꿈틀하다가 이 시집을 읽었더랬다.

다른 책과 달리 동시집엔 차마 삽화가 그려진 고운 종이에 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는게 꺼려지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좋은 동시엔 하트로 별로, 글자로 여러 표시를 하며 읽었다. 그렇게 마크해둔 동시집 중에 하나의 일부만 여기서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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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사람은 어른한테만 씨를 붙이는데
열매랑 꽃은 어릴 때만 씨를 붙여 줘요

이불을 덮어 주는 것처럼 흙을 덮어 주고는
그만 까먹어 버린

장미씨
봉숭아씨
수박씨
자두씨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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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심했다. 누가 봄에 생일이라고 하면 이 동시집을 선물하기로. 동시를 즐기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강제 선물이다. 읽다보면 몸이 두둥실 뜨는 걸 경험할 수도 있는데. 이 좋은 걸 나만 어떻게? 정말로 좋은데!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네! 할 땐 무조건 선물하는거다.

한글 형태와 시상을 멋지게 뒤섞어버린 재치있고 아름다운 동시도 많았다. 결심한 기념으로 한 편 더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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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공부ㅡ이(ㅣ)

김준현

비가 내리는 날
빗소리를 적고 싶은데 적을 수 없는 건
빗소리가 비와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야

비는
l l l l l l l l l l l l l
모습으로만 내리니까

바닥에 닿는 비는
l , l , l , l , l , l , l , l , l , l , l , l , l ,
빗방울 같은 쉼표들을 튕기고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입술을 한껏 벌린
ㅂ을 붙여 주자







진짜 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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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는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그 전에 이미 당신의 그 찰나를 아름답게 한다. 그 찰나가 자주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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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되는 법 - 두 언어와 동고동락하는 지식노동자로 살기 위하여 땅콩문고
김택규 지음 / 유유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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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 출판사의 땅콩문고를 또 읽었다. 제목은 <번역가 되는 법>. 도대체 땅콩문고는 날 타겟으로 하고 책을 내고 있는 것인가? <동화 쓰는 법>에 <어린이책 읽는 법>, <번역가 되는 법>까지. 머릿속을 누가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핵심 안내서가 나와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성웅 제 머리를 들여다 보신거죠? ㅎㅎ

부제는 ‘두 언어와 동고동락하는 지식노동자로 살기 위하여’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택규씨는 중국어 번역으로 살아가는 ‘생계형 번역가’이다. 막연하게 번역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궁금한 거 하나 없도록 차근차근, 그리고 가감 없이 솔직하게. 하나씩 하나씩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가 번역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언제인가? 저자가 아주 직설적으로 거기에 대해 써 두었다. 너무 맞는 말이어서 무릎을 쳤다.

“외국어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서투르고 생경한 표현에 독서의 흐름이 턱턱 막혀서 ‘도대체 이 책의 번역가는 왜 이 따위야!’ 라고 자증이 날 때만 비로소 자신이 번역서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영 달갑지 않게 의식합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끝까지 편안하게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한 후 ‘정말 훌륭한 작가야!’라고 찬탄합니다. 그리고 나서 인터넷 서평에 몇 줄의 칭찬을 올립니다. 훌륭한 작가의 놀라운 작품이라고 말이죠. 만족스러운 독서를 가능케 한 번역가에 대한 코멘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번역가는 투명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번역가의 자질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실망스러운 어조로 ”그러면 번역가가 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군요“라고 말할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그렇다고 답해야 할 것 같군요. 정해진 사람, 준비된 삶, 문장력과 통찰력이 이미 안정적으로 구축된 사람만이 출판번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번역가는 번역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기 이전에 프로그램되지 않은 학습과 글쓰기의 오랜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수료한 사람입니다.”

매우 공감한다. 번역수업을 매주 토요일 오전에 들으러 간다. 수강생들끼리 선생님으로부터 돌려받은 번역과제 피드백을 이야기하다 보면 개인차가 상당히 크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The boy with the cigarette said. 라는 문장에서 boy를 무엇으로 표현할 것인가? 주인공 남자아이의 1인칭 시점인 이야기였고, 주인공이 관찰하고 있는 건 소매치기하는 남자아이들 한 무리였다. 그렇다. boy를 뭐라고 번역하면 좋겠는가? 우리들 의견은 분분했다.

“소년이라고 하는 건 너무 문어체 같아서. 요샌 또 잘 안 쓰는 말이라 뺐어요."
"애라고 번역하려니 알지도 못하는 애를 친근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서 녀석으로 바꿨어요.”
“놈이라고 하려니까 적대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기서 boy를 소년, 그 애, 놈, 녀석 중 무엇으로 해도 오역은 아니다. 그런데 그 미묘한 뉘앙스를 위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것이 번역자의 몫인 것이다.

또, 모두가 궁금해 하는 번역자로 데뷔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서도 나와 있었다. 쉽게 말해 뚜렷한 등용문은 없다. 교사처럼 임용고시가 있는 것도, 다른 직종처럼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꼭 학력이 좋아야 되는 것도 아니란다. 그래서 뭐가 필요하냐고? 외국어는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우리말 실력과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참신한 작품을 스스로 발굴해 번역기획서를 성의 있게 써서 출판사 여기저기에 보내보거나, 현직 번역가의 소개를 받는 방법도 있다. 실력이 없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소개해줄 번역가가 있을 리 만문하다. 거기다 우리말 감각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면 어쩌면 좋냐고? 애초에 이 분야에 오지 않는 게 낫다고 저자는 말한다. 백번 공감한다.

수입도 그렇게 풍족하진 않다. 한국에서 번역가들이 받는 대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원고를 넘겼는데 출간까지 1,2년이 걸리기도 한다. 당장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곤란할 일이다. 안정적인 수입을 바라는 사람들은 이 분야에 들어와선 안 된다. 그런데도 왜 저자는 번역가로 살고 있냐고? 이렇게 말한다.

“저자가 상상력으로 새로운 서사와 캐릭터를 고안하며 창조의 자유를 느낀다면, 번역가는 구성력으로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텍스트의 언어 전환을 수행하며 창조의 자유를 느낍니다. 이런 자유는 오로지 번역가만의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나도 언젠가 내게 꼭 맞는 책을 찾아, 번역하는 기회를 꼭 한 번 가지기를 희망한다. 그런 기회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지 않을 기회를 기다리며 또 읽고, 또 쓴다. 그것밖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막막한데도 그저 즐거운 건 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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