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되는 법 - 두 언어와 동고동락하는 지식노동자로 살기 위하여 땅콩문고
김택규 지음 / 유유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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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 출판사의 땅콩문고를 또 읽었다. 제목은 <번역가 되는 법>. 도대체 땅콩문고는 날 타겟으로 하고 책을 내고 있는 것인가? <동화 쓰는 법>에 <어린이책 읽는 법>, <번역가 되는 법>까지. 머릿속을 누가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핵심 안내서가 나와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성웅 제 머리를 들여다 보신거죠? ㅎㅎ

부제는 ‘두 언어와 동고동락하는 지식노동자로 살기 위하여’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택규씨는 중국어 번역으로 살아가는 ‘생계형 번역가’이다. 막연하게 번역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궁금한 거 하나 없도록 차근차근, 그리고 가감 없이 솔직하게. 하나씩 하나씩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가 번역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언제인가? 저자가 아주 직설적으로 거기에 대해 써 두었다. 너무 맞는 말이어서 무릎을 쳤다.

“외국어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서투르고 생경한 표현에 독서의 흐름이 턱턱 막혀서 ‘도대체 이 책의 번역가는 왜 이 따위야!’ 라고 자증이 날 때만 비로소 자신이 번역서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영 달갑지 않게 의식합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끝까지 편안하게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한 후 ‘정말 훌륭한 작가야!’라고 찬탄합니다. 그리고 나서 인터넷 서평에 몇 줄의 칭찬을 올립니다. 훌륭한 작가의 놀라운 작품이라고 말이죠. 만족스러운 독서를 가능케 한 번역가에 대한 코멘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번역가는 투명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번역가의 자질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실망스러운 어조로 ”그러면 번역가가 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군요“라고 말할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그렇다고 답해야 할 것 같군요. 정해진 사람, 준비된 삶, 문장력과 통찰력이 이미 안정적으로 구축된 사람만이 출판번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번역가는 번역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기 이전에 프로그램되지 않은 학습과 글쓰기의 오랜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수료한 사람입니다.”

매우 공감한다. 번역수업을 매주 토요일 오전에 들으러 간다. 수강생들끼리 선생님으로부터 돌려받은 번역과제 피드백을 이야기하다 보면 개인차가 상당히 크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The boy with the cigarette said. 라는 문장에서 boy를 무엇으로 표현할 것인가? 주인공 남자아이의 1인칭 시점인 이야기였고, 주인공이 관찰하고 있는 건 소매치기하는 남자아이들 한 무리였다. 그렇다. boy를 뭐라고 번역하면 좋겠는가? 우리들 의견은 분분했다.

“소년이라고 하는 건 너무 문어체 같아서. 요샌 또 잘 안 쓰는 말이라 뺐어요."
"애라고 번역하려니 알지도 못하는 애를 친근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서 녀석으로 바꿨어요.”
“놈이라고 하려니까 적대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기서 boy를 소년, 그 애, 놈, 녀석 중 무엇으로 해도 오역은 아니다. 그런데 그 미묘한 뉘앙스를 위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것이 번역자의 몫인 것이다.

또, 모두가 궁금해 하는 번역자로 데뷔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서도 나와 있었다. 쉽게 말해 뚜렷한 등용문은 없다. 교사처럼 임용고시가 있는 것도, 다른 직종처럼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꼭 학력이 좋아야 되는 것도 아니란다. 그래서 뭐가 필요하냐고? 외국어는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우리말 실력과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참신한 작품을 스스로 발굴해 번역기획서를 성의 있게 써서 출판사 여기저기에 보내보거나, 현직 번역가의 소개를 받는 방법도 있다. 실력이 없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소개해줄 번역가가 있을 리 만문하다. 거기다 우리말 감각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면 어쩌면 좋냐고? 애초에 이 분야에 오지 않는 게 낫다고 저자는 말한다. 백번 공감한다.

수입도 그렇게 풍족하진 않다. 한국에서 번역가들이 받는 대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원고를 넘겼는데 출간까지 1,2년이 걸리기도 한다. 당장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곤란할 일이다. 안정적인 수입을 바라는 사람들은 이 분야에 들어와선 안 된다. 그런데도 왜 저자는 번역가로 살고 있냐고? 이렇게 말한다.

“저자가 상상력으로 새로운 서사와 캐릭터를 고안하며 창조의 자유를 느낀다면, 번역가는 구성력으로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텍스트의 언어 전환을 수행하며 창조의 자유를 느낍니다. 이런 자유는 오로지 번역가만의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나도 언젠가 내게 꼭 맞는 책을 찾아, 번역하는 기회를 꼭 한 번 가지기를 희망한다. 그런 기회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지 않을 기회를 기다리며 또 읽고, 또 쓴다. 그것밖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막막한데도 그저 즐거운 건 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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