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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직 입으로만 전해져야 하는, 여자들만 아는 레시피
-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카르마 브라운.김현수.창비)
2018년 앨리스와 네이트 부부는 시골의 오래된 집에 이사 온다. 앨리스는 직업도 잃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서 임신과 집안일을 잘 해내리라는 남편의 기대가 부담스럽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전 집주인인 넬리의 요리책을 발견하고, 넬리가 죽은 엄마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넬리의 삶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2018년에 사는 앨리스의 이야기와 1952년에 살았던 넬리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서술한다. 또한 매 이야기마다 1950년대 현명한 아내가 되는 법을 실은 책의 문구를 전면에 배치했다. 가족을 위해 멋지고 맛 좋은 음식을 만들고, 남편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실제로 넬리는 남편 리처드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임신을 강요받으면서도 그를 위해 맛깔스럽게 음식을 만든다.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레시피에 따라 솜씨 좋게 음식을 만들어낸다.
남편을 위해 질투도 참고, 성적인 매력을 키우라는 옛날 책 속 지침들이 요즘 독자에게는 낯설게 느껴질까? 앨리스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앨리스는 넬리에 비해 현모양처 콤플렉스에 덜 시달리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거라 기대한다. 실제로 네이트는 리처드 보다 다정하고, 앨리스를 배려한다. 하지만 앨리스는 경제적으로 네이트에게 기대고 있고,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는 네이트의 요구에 대해 자신이의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혼란스럽다.
이런 앨리스가 넬리의 편지(죽은 엄마에게 쓴 편지)를 읽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넬리의 엄마가 넬리에게 전해 준 비밀, 넬리의 정원에 심어둔 아름답지만 독이 강한 디기탈리스, 앨리스의 이웃인 샐리가 전해주는 엄마 미디엄의 말들(미디엄은 넬리의 이웃이었다.). 이것을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안과 밖에서 강요된 현모양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꿋꿋이 살아내게 하는 힘이 대를 이어 내려왔음을 깨닫게 된다.
넬리의 엄마는 여성에게 엄혹했던 시대를 사는 딸을 위해 ‘입으로만’ 전해야 하는 비밀 레시피를 남겼다. 넬리는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지켰다. 샐리의 엄마 미디엄은 딸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잊지 말고, 외부의 압력이 있더라도 그 질문의 답은 스스로 찾으라 당부한다. 넬리가 ‘완벽한 아내’가 되라는 외부의 힘 때문에 힘들었다면 앨리스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거라는 불안,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자기 안에 갖고 있었다.
책은 넬리와 앨리스의 삶을 교차하며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를 새로이 완성한다.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대물림되는 어둠 안에 그녀들이 비밀스레 숨겨둔 한 조각의 빛을 보여준다. ‘완벽한 아내’는 자신을 잃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다른 이에게 온전히 내어주지 않는다. 딸이며 엄마이며 아내인 나, 그 모든 것이 아닌 나.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완벽한 아내’를 정의할 수 있고, 나만의 인생 레시피를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