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코요테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4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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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몰라 말씀드리자면, 스포일러 있습니다)

 

‘외로운 늑대’나 ‘마지막 코요테’는 해리 보슈의 캐릭터를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온갖 불의가 넘치는 도시에서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밀어붙이죠. 이 캐릭터의 가장 큰 매력은 타협을 모르는 뚝심이 아닐까 합니다. 그의 세계 안에서 악은 반드시 응징을 받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들에 열광하고 있죠.

그러나 제 경우 이 캐릭터를 마냥 좋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의 정의감 상당부분이 사실 어떤 결핍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주 화를 내지만, 그 대상이 악당으로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일례로 하비 파운즈가 떠오르는군요. 물론 하비 파운즈는 전형적인 무능한 상사이자 직장 내 진상입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밉더라도 보슈처럼 상사를 유리창에 던지는 건 명백한 신경질입니다.그래서 해리 보슈를 설명하는 외로운 늑대, 또는 마지막 코요테는 이 캐릭터의 매력이자 한계처럼 다가옵니다.

『라스트 코요테』는 바로 해리 보슈의 결핍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 작품에서 드문드문 비춰졌던 그의 결핍은 이 작품에선 시작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파운즈와의 충돌 이후, 비자발적 스트레스 휴직을 권고 받은 그는 소설의 시작부터 치료를 위해 만난 정신과 의사 카르멘 히노조스에게 뿌리 깊은 불신과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사실 카르멘 히노조스는 누가보아도 그동안 해리 보슈가 믿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와의 상담 자체가 불쾌한 보슈는 상담 내내 신경질로 일관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해리 보슈와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소설 속 해리 보슈의 결핍은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캐릭터 소개를 위한 설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으로 기능하죠. 독자들은 초반부터 결핍의 기원이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불행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 마저리 로우가 성매매 여성이었으며, 법원에 의해 친권을 박탈당한 탓에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야만 했다는 것. 심지어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것까지.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던 어머니 살해 사건의 기록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는 수사를 시작합니다. 이 기록을 들춰보던 보슈는 이내 이 사건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닫습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쉽게 풀려난 점, 그리고 용의자가 풀려나는 과정에서 과거 지방검사와 검찰총장을 역임한 아노 콘클린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랬습니다. ‘마지막 코요테’ 보슈는 직감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권력이 연루되어 있다는 걸 말이죠. 좀처럼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는 이전처럼 권력의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이후의 수사는 사실 초반의 의심(또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는 마치 결론이 내려진 것 마냥 한 가지 가능성을 향해 돌진하죠. 물론 이 같은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모든 수사는 강력한 가설 없이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이사이 밝혀지는 단서들이 그의 의심을 뒷받침하죠. 그러나 그가 놓친 결정적 사실이 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직접적인 증거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가령 콘클린과 미텔이 마저리 로우의 매니저였던 자니 폭스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것과 폭스를 선거운동원으로 기용한 점, 나아가 자니 폭스가 뺑소니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로부터 아노 콘클린이 어머니의 살해범이었을 거라고 단정하지만, 그의 지문이 어머니를 살해한 벨트에 찍힌 지문과 일치하는 건 아니었죠. 그러나 그는 이를 외면하다시피 내버려둡니다.

저는 보슈의 이 같은 돌진이 그의 결핍 가운데 하나인 ‘권력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상담을 맡았던 히노조스는 “그렇지만 당신은 언제나 권력층이나 지배층의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가 봐요.”(p.483)라고 이야기하죠. 물론 이 적개심은 타당한 구석이 있습니다. 파커 센터에서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된 이후 아무런 잘못이 없었음에도 내사과 형사들에게 내내 감시당했던 점이나(『블랙 에코』) 피해자는 안중에 없이 실적 부풀리기에만 골몰하는 팀장(『블랙 아이스』), 권력의 훼방(으로 보인) 탓에 미결로 남은 어머니의 사건까지(『라스트 코요테』). 특히 마지막 사건으로 인해 그는 자라는 내내 불행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타당한 것이 곧 용납 가능한 것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가 의심치 않았던 가설은 사건의 진실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틀린 것도 허탈한데, 심지어 수사 과정에서 몇몇이 죽어 나가는 작지 않은 비극을 초래하고 말죠. 그중에서도 아노 콘클린, 그리고 하비 파운즈는 보슈 자신의 말대로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전 단지 죽은 내 어머니에 대해 질문들을 던졌을 뿐인데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한 겁니다.”(p.449)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는 틀렸습니다. 이전처럼 날카로운 형사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비극이었습니다. 이 비극은 그의 결핍에 큰 빚을 지고 있었던 셈이죠.

소설 말미에서 보슈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마지막 상담 장면에서 그는 히노조스에게 사직 의사를 밝힙니다. 그것이 바로 속죄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히노조스는 그의 속죄를 만류합니다. “당신은 이미 그 두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책임을 인정했어요.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고요.”(p.481)

저는 이 대목이 해리 보슈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작품들에서 보슈는 미세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레이스 빌리츠 경위나 키즈민 라이더와 같은 유능하면서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만나게 되죠. 심지어 제리 에드거와의 관계도 원만해집니다. 단순히 그의 운이 좋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그가 세상을 달리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제게 『라스트 코요테』는 범죄소설 이상의 페이소스를 품은 작품이었했습니다. 그의 결핍에서 슬픔을 느꼈고, 타당한 결핍이 야기하는 비극을 엿보았으며, 나아가 그걸 끝내 극복해내는 보슈를 지켜보았죠. 범죄소설 특유의 긴장 또한 놓치지 않았고요. 이런 이유로 이 소설을 마이클 코넬리의 전체 작품을 통틀어 가장 좋아합니다(완성도는 『시인』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선호도는 별개입니다). 오랫동안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비로소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해리 보슈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통해 더욱 세상을 사랑하고, 그래서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보슈를 만난 겁니다.

p.s. 우연일까요? 마이클 코넬리 또한 한 인터뷰에서 『라스트 코요테』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손꼽더군요. 그는 “매일 신문사에 출근하느라 작업을 중단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많이 나아졌”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아마 복잡다단한 감정을 능숙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건 그가 작가로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진 덕분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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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우 - 비밀을 삼킨 여인
피오나 바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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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언론의 극성스러움은 그곳에서 1만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도 유명합니다. 얼마 전 축구 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한 펩 과르디올라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나는 당신들이 가장 두렵다.” 얼마 전 경찰의 오판으로 최종 판결이 나면서 다시 한 번 조명 받은 헤이젤 참사 판결과 관련해서도, 서포터들의 과실을 ‘자극적으로’ 주장했던 <더 선>은 사과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언론 이상의 극성스러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위도우: 비밀을 삼킨 여인』(이하 『위도우』)에서 가장 두려움을 느낄만한 지점은 바로 영국 언론의 프로토타입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4년 가까이 용의자를 물고 늘어지는 언론 덕분에 용의자의 아내이자 주인공 진 테일러의 삶은 복구가 불가능합다. 날마다 문을 두들겨 대는 기자들, 그들 때문에 집 밖에 나갈 때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그녀. 대부분의 스릴러 장르가 차용하는 ‘살아남아야만 하는 선’과 ‘응징받아야만 하는 악’의 구도는 이곳에서도 유의미한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 초반부에서 진 테일러는 전자를, 후자는 언론을 담당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위도우』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진 테일러와 언론의 대결 구도에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처음 우리가 만나는 진 테일러는 어릴 때 멋모르고 결혼한 뒤에 남편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순종적이면서 순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저는 진이 순진한 사람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의 모호한 독백은 그녀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임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명백히 작가의 의도로 보입니다.

“진 테일러의 이름이 얼마나 빨리 다시 나올지 궁금했고 혼자서 그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진은 기묘한 여자였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충격을 받은 표정과 의심스러운 취조, 흔들리지 않던 대답이 떠올랐다. 그녀가 글렌을 감싸고 있고 이런 맹목적인 충성심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건 확실했지만, 그 이유가 그녀도 무슨 관계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185

결국 이야기의 초점은 ‘누가 벨라(용의자인 글렌 테일러가 훔친 것으로 의심받는 아이)를 훔쳤느냐’로 맞춰집니다. 영국 언론의 극성스러움은 이 비밀에 긴장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처럼 보입니다. <헤럴드> 지의 ‘벨라를 찾아주세요’ 캠페인이 아니었다면 사건이 이렇게 오래 이어지지도 않았겠죠. 저도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누가 벨라를 훔쳤느냐’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4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아이의 생존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누가 아이를 훔쳤든 파국은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죠. 아이를 시선에서 놓친 던 엘리엇과 남편인 글렌 테일러와 함께 납치에 가담한 진 테일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죠. 쉽사리 누구 하나에게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둘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파국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죠. 세상만사가 쉽사리 선과 악으로 이어지지 않듯, 회색 시재에서 긴장은 더욱 자신을 증폭시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작가의 기술적 측면입니다. 이 상황에서 독자들은 누구 하나를 쉽사리 범인으로 지목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기본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이런 장르에서는 말이죠. 그러나 용의자가 글렌 아니면 진 테일러로 좁혀진 상황에서 작가는 독자를 의심과 결백 사이를 마음껏 이동시킵니다. 글렌 테일러는 아내인 진에게 벨라가 실종된 당일 아이를 보았음을 고백하지만 그럼에도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데 성공하죠. 아이에 대한 진 테일러의 집착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아무것도 증명해내지 못하고, 그래서 정말로 던 엘리엇의 부주의 때문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죠. 실제로 던 엘리엇은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몇몇 과거의 행적은 ‘이 사람이 간절히 아이를 찾고 있는 걸까’ 의심하게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진 테일러를 ‘애먼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는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서 완급조절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흐름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어요.

앞서 언급한대로 이 소설이 ‘회색 이야기’라는 점 또한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합니다. 때때로 소설 속에서 어떤 종류의 간절함은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령 제게는 꼭꼭 숨은 범인을 찾지 못하는 형사들의 간절함이 그랬습니다. 선과 악이 너무나 뚜렷한 상황에서, 선한 사람들의 ‘잘 설계되지 않은 간절함’은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말죠. 그러나 벨라를 둘러싼 간절함은 누구에게나 절실합니다. 아이를 찾아야 하는 엄마, 감옥에 가지 않으려는 남편, 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아내. 각기 공감을 살 그럴듯한 이유 하나를 가지고 있죠.

기자 출신만이 쓸 수 있는 문장도 참 좋았습니다. 기자들 세계에 녹여낸 현실감뿐 아니라 어렵지 않게 상황 파악을 도와주죠. 눈에 띄는 단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별 의미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거슬렸던 대목들이 후반부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거든요. 그만큼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잘 짜인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과 함께 이 계절이 스릴러 소설의 대목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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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자살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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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자살』의 단점을 지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위악적이거나 모자란 인물들, 결말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무리한 설정, 올드한 문장들, 주인공의 장황한 설명을 빌어서야 밝혀지는 결말까지. 내내 이 단점들을 의식하며 읽어야 했다. 결론도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인데, 내 감상은 나쁜 쪽에 가깝다. 비극적 또는 괴기스러운 정서를 자극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심하게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정신없이 읽었다는 것이다. 마냥 나쁜 소설이라고 단정짓기가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정신없이 읽었던 가장 큰 이유는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일단 기본은 충실히 해내는 셈이다. 이게 범인을 감춘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닌데, 콕 찝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내내 ‘범인이 누구지?’를 연발하며 읽어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전에 읽었던『다크 할로우』의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은 탓에 더 돋보이는 장점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교훈은 ‘하나만 잘해도 중간은 간다’는 것. 아니, 이 책은 솔직히 중간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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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할로우 찰리 파커 시리즈 (구픽)
존 코널리 지음, 박산호 옮김 / 구픽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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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뒤섞인 작품이었습니다. 일단 뒤표지의 ‘문학적 경지’는 글쎄요, 솔직히 제게는 군더더기의 다른 표현으로 읽히더군요. 어떤 문장들은 조금 걷어냈다면 이야기 전개가 훨씬 빠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조금 바쁘긴 했지만, 유난히 이 책을 다 읽는 데 오래 걸렸거든요. (바로 전에 읽었던 『인 어 다크, 다크 우드』는 사흘 걸렸는데 이번 소설은…) ‘문학적 경지’가 제일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주인공에게는 일종의 ‘치트키’ 같았던 루이스와 앙헬의 존재도 탐탁치는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찰리 파커는 결정적 순간에 이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탈출하죠. 물론 소설 내내 이들을 작지 않은 비중으로 다룸으로써 찰리 파커를 구하는 순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오히려 이런 이유로 이들의 역할만큼은 소설 초반부터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연히 긴장과 재미는 반감되었죠.

사건의 얼개도 조금은 복잡한 느낌이었습니다. 리타 페리스부터 마피아인 토니 첼리, 루이스와 앙헬, 수십 년 전에 살해당한 여자들, 엘렌 콜, 그리고 빌리 퍼듀까지. 플롯의 그물이 사방으로 뻗어가는 바람에, 적어도 저는 파악하기 어렵더군요. 그 얼개 속에서 악인인 칼렙 카일의 능력 또한 과장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들인 빌리 퍼듀에 대한 위협을 인지하고 아내 페리스를 죽인 것에서 시작해 최고의 킬러인 스트리치까지 죽이는 칼렙 카일은, 적어도 제 상식으로는 ‘전지전능’으로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다만, 찰리 파커의 위기를 묘사한 부분들은 좋았습니다. 랜드 제닝스에게 일방적으로 맞는 부분에서는 제 턱이 얼얼했고, 토니 첼리 일당과의 일전에선 긴장과 고통을 고스란히 안겨주었습니다. 칼렙 카일과의 마지막 일전에서도 다르지 않았고요. 메인 지방 특유의 추위를 묘사한 대목도 와 닿았고요. 개인적으로 범죄소설의 큰 두 줄기를 ‘추리’와 ‘묘사’로 생각하는데, 저는 후자 때문에 더욱 자주 긴장합니다. 물론 존 코널리 수준의 소설가라면(저는 사실 이 작가의 책이 처음입니다만) 이런 건 기본이겠죠. 그런데 제게는 그 기본이 중요해서인지, 이 부분 덕분에 많은 걸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겠냐고 물어보신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긴 했습니다. 일단 저는 말이죠. 장바구니에 『더 게이트』라는 작품을 쟁여놨는데, 이 소설과는 사뭇 다를 듯해서요.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될지 안 그럴지는 그 책을 읽은 후에 판단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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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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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코널리는 『죽이는 책』에서 이야기합니다. “처음 출간된 소설 치고 『블랙 에코』는 놀랄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분명 미스터리 소설 장르에서 가장 뛰어난 데뷔작 중 하나다.” 그의 소설을 읽어본 분이라면, 쉽게 공감할 듯합니다. 이 책에서 데뷔작의 허점을 찾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 소위 ‘한 가닥 한다’는 작가의 데뷔작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개 작가들은 처음 쓰기 시작할 땐 설익어 있었고, 시간을 보약삼아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첫 작품의 강렬함 때문인지, 마이클 코넬리와 그의 캐릭터 해리 보슈는 제게 1순위 캐릭터입니다.

좀처럼 ‘훌륭한 데뷔작’을 찾기 쉽지 않았는데, 그 목록에 오늘부로 루스 웨어의 『인 어 다크, 다크 우드』(이하 『다크 우드』)를 반드시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은 ‘훌륭한 데뷔작’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꾸준히 추리물(또는 범죄물 또는 스릴러)을 읽다 보니 완전한 몰입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비슷비슷한 자극이 반복되는 듯했고, 쓰는 사람도 아닌데 왠지 모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쉽게 타협(?)하기 시작했죠.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았지’, ‘나쁘지 않았네’ 하고 말이죠. 『다크 우드』를 읽으면서 그 매너리즘을 잠시, 멀찍이 떨쳐놓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일단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가령 경찰이 주인공인 소설이라면 ‘궁금증’ 이외에 우리가 공감할 여지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총격에 위협받는 경찰에, 평생 총의 실물 한 번 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선 끝내주는 묘사가 필요하고, 거기에 실패하면 독자는 쉽사리 지루함을 느끼죠.

반면 『다크 우드』의 주인공 리오노라 쇼(이하 노라)의 상황은 조금 특별하긴 하지만, 한 번쯤은 겪을 법한 상황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론 모든 대목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고, 첫 번째 결정, 즉 싱글파티에 참가하기로 했던 대목은 좀 의아하긴 했습니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가 ‘싱글파티’에 초대한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답장도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 결정 이후부터는 모든 이야기가 일사천리입니다. ‘숲 속’에 외따로 떨어져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 괴팍한 플로라는 인물의 존재. 이 불길한 공간 속에서 노라를 스치는 감정들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후부터는 스포일러에 주의해 주세요)

또 하나, 노라가 용의자임을 고지 받는 순간 그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범죄소설을 많이 읽어서인지, 밤길을 걸으며 종종 ‘만약 이 시간 내 알리바이를 대라고 하면 나는 꼼짝 없이 잡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노라의 위기를 읽는 동안 그 생각이 떠오르면서 제가 다 막막해지더군요. 모든 증거가 꼼짝없이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순간, 나는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일단 제 시선을 완벽하게 돌려놓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절정이 일어났을 때 범인은 함께 별장에 머무르던 인물일 수밖에 없고, 작가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머리 좋은 독자들은 쉽사리 결말을 예상하게 되겠죠. 그래서 노라의 기억상실, 플로의 존재가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라의 기억상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미스터리가 형성되고, 제정신이 아닌 듯한 데다 언제든 폭력을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은 플로 덕분에 작가는 범인의 존재를 완벽하게 지워내죠. 물론 플로의 괴상함이 지나쳐서 ‘적어도 얘는 범인이 아니겠다’는 짐작을 할 수도 있겠지만(이건 뭐, 고전적인 방법이죠), 적어도 이 인물을 통해 팽팽한 긴장을 형성하는 데에는 성공한 듯 보입니다.

물론 모든 게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구멍은 바로 노라가 병원을 탈출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경찰은 마치 일부러 노라를 놓아준 것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라보다 더 심하게 다친 클레어까지 아무런 설명 없이 플로의 별장에 나타났어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야기를 전진시키고 싶었던 작가의 무리수처럼 보이더군요. 싱글파티에 참가하기로 했던 노라와 더불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습니다.

무튼 다시 데뷔작 이야기로 돌아가면, 데뷔작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이 데뷔작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범죄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반드시 권해야 할 책의 목록에 포함시킬 생각이에요. 아마 이 책을 읽는 누구든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리즈 위더스푼도 저와 같은 생각을…. (웃음)

마지막으로 저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크 우드』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클레어를 그저 좋아했을 뿐,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던 플로의 결말은 조금은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애먼 제임스보다 더 안쓰러웠네요. 아마도 제가 노라, 니나와 함께 플로를 함께 의심했기 때문일 겁니다. 반면 진짜 범인은 원한을 가질 법했을 노라조차 의심하지 않았고, 저 또한 ‘적어도 그 사람이 그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결론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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