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 앰비션 - 이기적 야망의 종말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이정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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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사계절 내내 한강공원을 덮어버릴 기세로 쏟아지는 자기계발서 홍수 속에서 나는 다짐한 적이 있다. 언젠가 자기계발서 말고관계계발서같은 걸 써보면 어떨까? 나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꼭 자기만 계발하라는 법은 없을 뿐 아니라, 관계를 계발한다면 무려 연대나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신경과학계의 석학인 로버트 새폴스키도평화학(peaceology)”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인간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에 교역, 인구 통계, 종교, 집단 간 접촉, 화해, 기타 등등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 말이다. 이 지적 시도는 세상에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행동』, p.780)고 말했으니, 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

 

문제는 내가 A4 열 장 이상의 글을 써본 경험이 없다는 거였고, 아이디어만 품은 채 하염없이 보내고 있었는데, 『모럴 앰비션』 출간 소식을 들었다. 꽤나 화제를 모았던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후속작이라고 한다. 본능적으로 이 책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내가 (쓰려고) 상상만 했던 그 책이었기 때문이다. 읽어보지 않을 이유가 있나? 마침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일정 다 제쳐두고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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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요약해보면 매우 간단한 이야기다. 선한 야망을 가질 것, 그리고 그 야망을 실현시킬 것. 책은 강한 어조로 독자에게 세상을 바꿀 것을 주문하면서, 동시에 성과를 반드시 거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냥 강조하는 게 아니라, 거의 강박적으로 강조하는 바람에 솔직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가뜩이나 나는 실패에 관해 긴 글을 쓰고 있는데(혹시 궁금하신 분은 프로필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이렇게 성공해야 한다는 노래를 부르면 대체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런 저자의 조급함을 이해 못할 것도 없는 것이, 정말 많은 일들을 지금 당장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위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기후변화 문제만 봐도,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 기후 협정에서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내 상승 수준에서 관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미 (2015년 대비) 지난해에 1.58℃가 상승했다고 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또 하나의 위기, 핵무기 위협도 다르지 않은 것이, 미국 역사상 가장 정서가 불안해보이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15일이면 끝난다던 이란 전쟁은 무려 4개월이나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저자는 무턱대고 성공을 주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처럼 다양한 성공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성공에 이를 수 있었던 방법을 분석한다. 그 방법들을 내 나름대로 요약해보면 더 큰 성과가 필요한 일에 나설 것, 성과를 수치화하여 공유할 것(KPI), 더 많은 사람의 관심(또는 공감)을 살 것 등이다. 성과 없이는 보상도 없다는 자본주의적 논리 같지만, 그 방법을 고스란히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청소하는 데 사용하자는 것도 나름 신선하면서도 대담한 주장이었던 것 같다.

 

책에서 소개된 역사적 사실도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로자 파크스 사건(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던 사건)이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 운동의 시발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흑인 민권단체들이 이전에 벌어진 갖가지 인종차별 사건에 섣불리 반응하지 않은 것은, 그 사건들에서 최대 다수를 동원할 상징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로자 파크스 사건이 터졌을 때에야 버스 보이콧 운동을 시작했고, 시내버스 인종 분리 규정의 위헌 판결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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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럴 앰비션』은 도덕적 혹은 이타적 야망을 가지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꽤나 선동적인 책이다. 동시에 각자 자신의 소명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놓은 이성이 녹아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내가 막연하게 구상했던 관계계발서의 모습을 대략 83% 정도 구현했다는 점에서 읽지 않았다면 큰 일이 났을 법한 반가운 책이기도 했다.

 

다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이타적 욕구에 대해 등 떠밀리듯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강박에 가깝도록 반복되는 저자의 독려 때문이기도 했지만, 관계계발서 단락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고민해왔던 일이기도 했기에 속 편하게 책만 읽을 수는 없었다. 공존에 관한 책을 소개하고, 설득하기 위한 서평을 계속 써왔던 것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하지만, 첫 발의 보폭이 이제 만 세 살이 된 엄지발가락 길이 수준이어서 크게 내세우기는 어려울 것 같고, 소개할 만한 성과까지 없다는 게 문제다. 그나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구상을 구체화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선물 같은 경험이었달까.

 

그래서 이 책 또한 더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와 같은 독서 경험을 한 이들이 많아지고, 그만큼 새롭고도 좋은 일을 많이 시도할수록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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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 - 경제적 불안을 권하는 사회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법
다우치 마나부 지음, 김정환 옮김 / 부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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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바야흐로 불안의 시대다. 나도 (아직 오려면 한참 남은) 노후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한숨을 쉴 지경인데, 주변에서 틈만 나면 몇 억은 모아둬야 한다고 떠들어 댈 때면 뇌 한 구석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국의 중위소득과 중위자산 모두 세계 상위 10~15% 수준에 이르는 상황에서 불안이 얼마나 합리적인 건지 의문이 들 때면, 머리가 블랙홀 강착 원반에 진입한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버린다. 혼돈의 카오스.


막연했던 의문이 풀린 것은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을 읽은 후였다. 책의 제목이 이미 결론을 내렸듯이, 돈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착각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근거들을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명쾌하게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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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우리는 항상 돈 때문에 (헛된) 불안을 느끼게 되는 걸까? 책에 소개된 여러 가지 이유를 나는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과제가 그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 경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오히려 새로운 부의 창출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부터 살펴보자. 지난 2019년, 일본에서는 금융청에서 발표한 “노후 자금이 2,000만 엔(26년 환율 기준 약 1억 9천만 원) 부족할 것”이란 보고서가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일본 사회에 작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다. 미래에서 불안을 느낀 개인들이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섰고 기업이 이 수요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불안이 훌륭한(?) 마케팅 소재가 된 것이다. 


후자는 좀 더 문제가 심오해지는데, 화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에 정작 진짜 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소개한 예시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 시장에서 첫날 만 원짜리 판매되던 주스가 다음 날 오천 원, 그 다음날에는 삼천 원에 할인 판매되었고 고객 A와 B, C는 주스를 각각 만 원과 오천 원, 삼천 원에 구매했다. 이 경우 제일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많은 분들이 자신있게 정답을 외치겠지만, 사실은 알 수 없다. 주스를 가장 맛있게 즐긴 사람, 즉 그 주스에서 가치를 느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의 기원을 두 가지로 정리했지만, 둘은 사실 떼어놓고 생각하기에 관계가 지나치게 긴밀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노후 불안은 화폐 가치로 변환되어 설명하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화폐를 불리는 데 최선을 다한다. 문제는 화폐만으로 가치를 만들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이 문제는 특히 일본 같은 심각한 노령화 사회에서 더 심각해진다(우리는 더 심각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돌봄 서비스 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경우에, 잔뜩 쌓아놓은 화폐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이런 의문은 자연스럽게 투자 문제로 이어진다. 2024년 일본의 주식 거래액 1,300조 엔 가운데 기업이 신규로 조달한 자금은 1.4조 엔에 불과했다고 한다. 즉, 주식 거래액의 0.1%만이 가치 투자에 동원되었다는 이야기다. 만약 주가 상승이 통화량 같은 금융 요인에 따른 결과라면, 내가 1년 전에 목표로 했던 자산 1억은 1년이 지난 지금의 1억원과 가치가 같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화폐가 늘어난 만큼 돈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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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제안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보유한 화폐를 늘리기 보다는 가치를, 사회가 함께 창출하는 것이다(더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시기를!) 이 결론에서 나는 아쉬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는데, 아쉬움은 이미 전 세계 나라 대부분이 이 가치 창출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말인 즉, 이 제안이 이 책 고유의 인사이트라고 보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에게 주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투자만 답’이란 인식이 확고해지면서 투자 행위의 가치는 수직 상승한 반면, 노동의 가치는 그 인식 속에서 추락에 가까운 하락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가치의 진짜 기원을 상기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책이었달까. 물론 인식의 전환을 몇몇 개인이 해낼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서 실질적인 변화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일단 반전의 계기로 삼을만한 책을 만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나는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함께 읽으시면 좋겠다.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은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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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 다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안재하 옮김 / 김영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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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침팬지 폴리틱스』의 저자이자 동물행동학의 권위자인 프란스 드 발이 쓴 책이다. 제목 그대로 ‘공감’에 관한 이야기인데, 저자는 사람 의 행동이 아닌, 자기 연구 분야인 동물의 행동에서 그걸 찾았다. ‘공감’이란 말 때문에 홀린듯 들여왔고, 읽는 내내 매우 공감했지만, 시차를 두고 생각해보니 저자의 주장에서 꽤 많은 부분 공감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이래서 생각도 시간을 가지고 다듬어야 하나보다).



📚 적자생존을 향한 카운터 어퍼컷


마치 내 의지와는 관계 없이 내 공감을 강탈해간(?) 부분부터 시작해보자. 내 생각에 이 책이 남긴 가장 중요한 성과는 자연계(또는 과학)에서 공감의 지위를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또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이없도록 많은 사람들이 자연 선택을 부자나 권력자, (더 이상하게는) 근육을 부풀린 개체들이 생존 경쟁에서 이긴다며 착각하는데, 드 발은 시작부터 “삶에 대한 투쟁이 자연의 본질이니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도 믿지 마시라”라고 못을 박는다. 다시 말해 포유류나 영장류의 행동을 보면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경우가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실상 전체가 이 주장에 대한 증거라고 봐도 좋을 정도인데, 그러다 보니 책을 읽다 보면 적자생존 광신도들을 신나게 비웃게 된다. 과학책 읽으면서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낄 줄이야. 


이런 카타르시스도 좋았지만, 적자생존 신도들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힘 자랑을 ‘과학의 탈’을 쓰고 할 수 없다는 게 더 좋았다. 이전까지는 ‘자연주의 오류’ 같은 어려운 말을 써가며 길게 반박해야 했는데(당연히 상대방은 이런 말도 모른 척했지만), 이 책이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준 덕분에 그건 ‘네 희망사항’이라거나 ‘미신’이라고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으니까. 사실 과학자 입장에서 이런 책을 쓰는 게 쉽진 않았을텐데, 반대 진영에서 날을 세워가며 논쟁을 위한 논쟁에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그러나 프란스 드 발은 용기를 냈고, 좋은 과학 레퍼런스를 안겨주었다. 이러니 의미 있는 책이 될 수밖에. 



📚 과학도 껴줄 때가 되었다


기억하고 싶었던 또 다른 대목은 “법학, 경제학, 정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객관성을 가지고 자신의 사회를 볼 방법이 없다”면서 과학이 확인한 협동 “경향을 간과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는 드 발의 주장이었다. 과학이 발견한 협동-친화적 성향을 사회과학 연구자들, 나아가 정치인들이 모른 척한다는 이야기다. 가령 경제학은 인간을 아직도 최대한 자신의 목표을 실현시키기 위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 간주하고 논리를 펼치는데, 과학자들은 이런 인간관을 흡연 호랑이 연구하던 시절에 내다 버렸다는 걸 알고 계시는지. 문제는 손가락만 가져다 대도 먼지 날릴 것 같은 경제학의 영향력이 사회과학 중에서도 끝판왕이라는 거다. 한정된 재화의 효율적 분배를 목표로 한다는 경제학이 목표를 잘 수행해냈을까? 아니, 설명은 잘 해냈을까? 책에서 소개한 앨런 그린스펀의 사례를 보면 전혀 안 그런 것 같다. 


드 발은 호모 사피엔스가 마냥 친절한 종은 아니더라도, 반대로 폭력적이기만 종 또한 아니라고 말한다. 포유류 대부분이 협동이 필요한 상황에선 언제든 뭉치고, 심지어 연대감까지 발휘한다는 것이다. 인류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렇기에 정치는 기존의 사회과학에 더해 과학적 발견을 보태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드 발의 주장을 내 방식대로 읽어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적어도 사람이 세상을 모두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점, 사람의 뇌가 열량을 최대한 아껴 쓰다보니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신경과학의 발견 감안한다면, 인간이 받아들이기에 ‘편안한’ 사상 또는 제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모듈론 vs 구성론


하지만 이 책의 몇몇 대목은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내 마음에 남았는데, 공감의 기원을 ‘진화’라고 못 박은 대목이었다. 아니 대목이란 말도 맞지 않는 것이, 진화가 공감의 기원이라는 말은 책의 논지를 세우는 철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의 몸과 마음은 사회적 삶에 맞게 만들어져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희망을 읽고 낙담하게 된다.”(p.26)는 말이나, “공감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 인간 종보다도 훨씬 더 이전에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p.100)는 발언이 그 예시인데, 처음엔 공감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나도 모르게 실눈을 뜨거나 고개가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이게 된 것이다.


내 의문은 인간의 협동이 생물학적 진화에서 유래했느냐는 것이다. 『위어드』의 저자 조지프 헨릭은 유전자 진화에 문화가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대표 주자인데, 전작인 『호모 사피엔스 - 인류를 지배종으로 만든 문화적 진화의 힘』에서 그 이론을 아주 잘 정리했다. 짧게 요약하자면, 인간이 지배종이 된 것은 ‘학습 능력’ 덕분이고, 생존에 필요한 지식은 문화의 형태로 전수된다는 것, 그리고 문화가 생물학적 진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헨릭은 후속작인 『위어드』에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유럽이 산업혁명을 전후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2000여년 전 유럽에 자리 잡은 이러저러한 문화(여기에 대해선 서평 작성 예정)을 학습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 2000년 동안 자리를 잡은 문화 때문에 유럽 바깥의 사람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관찰되었는데, 헨릭은 이걸 문화가 생물학적 유전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 생각한다.


헨릭의 논의를 거드는 또 한 명의 학자가 있으니, 바로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이다. 배럿은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 TCE)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인데, 구성된 감정 이론의 요지는 대략 이런 것이다. 기존 심리학은 사람이 즐거움, 기쁨, 슬픔, 공포 등을 뇌에 장착한 상태로 태어난다고 설명했는데(basic emotion theory, BET)(이 이론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은 진화일 것이다), 우리(뇌)가 학습 능력을 타고난 탓에 이러한 감정 또한 태어난 후에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감정을 구성하는 복잡한 절차는 생략). 이 경우에도 학습이 주요한 화두인데, 드 발이 협동, 나아가 (협동을 이끌어내는) 공감이 내재된 본능으로 간주한다면 배럿은 그게 다 태어나서 학습한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드 발이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에 관해 펼친 논리는 헨릭-배럿의 입장과 대척점에 놓인 셈인데, 드 발이 협동의 기원을 진화, 더 정확하게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찾고 있으며, 이는 협동이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헨릭은 『위어드』에서 “문화적 진화 과정은 유전자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에 비해 빠르고 강력하다”고 주장하면서 근거로 20세기 동안 교육 제도(문화)와 자연선택이 유럽 청소년들의 학업 성취도 향상에 기여한 수준을 들었는데, 아니 글쎄 교육이 9~11년 향상, 자연선택이 8개월 퇴보라는 압도적 차이를 기록한 것이다. 


내 생각에 이는 문화와 유전자 중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는데, 여기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에서 문화의 영향이 이 정도로 크다면, 협동의 기원을 ‘진화’에서 찾은 드 발의 주장이 얼마나 설명력을 지닐 수 있을까? 드 발이 후천적 학습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무시한 것 같진 않지만, 이러나저러나 논지가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을 수밖에. 그렇다고 누굴 지지하네 마네 선언(?)하기도 어려운 것이, 두 입장이 각각 모듈론(Modularity / Nativism)과 구성론(Constructionism) 진영으로 나뉘어 한창 논쟁중이었던 탓이다. 전혀 없는 일개 서평러로서 누굴 지지하기엔 학술적 배경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열혈 지지자가 된다면 그것도 우스운 노릇이니까. 어쨌든 책을 덮고 나서도 마냥 후련하기만 하진 않았다는 게 책이 남긴 약간의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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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의문이 남았어도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남겨준 책인 걸 부인하진 않으련다. 요즘 사회가 바닥을 드러낸 호수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그만큼 협동, 공감 같은 걸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의 시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곤 해도, 충분히 단비 같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은 무조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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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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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빈곤 가정에서 자란 여덟 명의 삶을 청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추적 관찰한 기록이에요. 여기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그 여덟 주인공들은 그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든 견뎌냈고, 그렇게 청년이 되었을 땐 자립은 기본, 심지어 몇몇은 부모님까지 함께 책임지고 있던 거였어요(심지어 청소년 시절에 ‘비행청소년’으로 분류되었던 피관찰자조차 열심히 살아갔어요).

한편, 청년이 되어서 자기 밥은 스스로 챙겨먹는 ‘1인분’을 해내는 와중에, 하나 같이 심리적·경제적으로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들을 옭아맨 빈곤의 끈은 오랫동안 질기게 남아 있더라구요.

이 대목에서 엄빠의 사회경제적 지위 세습 이야기를 떠올릴 분 많으실 텐데, 책판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피관찰자들의 기록을 읽으면서, 책판다는 우리 사회가 많은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눈부신 발전을 사람이 거의 다 일군 우리나라는 좋으나 싫으나 사람이 많고 봐야 하는데, 정작 그 사람이 너무나 없는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의 가능성을 알아보기도 전에, 부모님의 자원 유무가 자주 첫 번째 거름망이 되어버려요. 이런 상황에서 가능성 높은 이들을 많이 모으기 어려운 건 당연하구요. 이렇게 거르고 거른 사람만으로 우리가 일군 기적 같은 성장이 앞으로도 가능할지, 저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구성원의 경제적 기본권과 사화의 안전(박탈감이 클수록 증오도 늘어난다는 연구를 봤거든요)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피관찰자 같은 구성원을 복지 제도로 품어야 한다는 게 책판다의 결론이에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공동체에선 우리 자녀 너희 자녀 할 거 없이 모두가 힘겹게 살아갈 테니까요.


※ 24년 3월에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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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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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기적으로 인생책을 바꾸는 편인데, 로버트 새폴스키의 책 『행동』을 읽고 나서 또 한번 인생책을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이렇게 자주 바꾸는 게 인생책이 맞나 싶지만). 얼마 전 다 읽은 『행동』은 내게 그만큼 의미 있는 책이었는데, 세 가지 이유를 꼽아보면 이렇다.

첫째, 이건 조금 소소한 이유인데, 그동안 내가 읽었던 가장 두꺼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꺼운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니, 이런 독서 경험은 몇 번을 반복해도 지겨울 일이 없을 것 같다(김명남 선생님의 믿고 보는 번역도 이 즐거움에 큰 몫을 했는데, 저자의 글재주가 번역에서 단 하나의 손실 없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혹시 두께 때문에 읽을 엄두를 못 낸 독자들은 당장 오늘부터 시작해보시길(참고로 저는 해외여행 갈 때 비행기에 들고가서 읽었다).

둘째, 인간행동의 메커니즘을 그 어떤 책보다 명쾌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뇌과학이랑 심리학 책 좀 읽어봤다’며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인간 행동의 근원이나 동기에 대해 답해보라고 했다면, 한참을 궁리하다 이렇게 답했을 것 같다. “잘 모르겠는데요.”

문제는 ‘모르겠다’고 넘어가기엔 답이 너무나 궁금했다는 거다. 특히 정치, 성별, 이념, 국제 관계 등등 거의 모든 곳에서 갈등이 터져나오는 요즘, 인간 행동의 기원만 알아낸다면 세상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이 책이 그 어떤 사이다보다 시원하게 더 답을 알려준 것이다!

셋째, 그렇게 알려준 답이 뇌와 유전자, 호르몬, 환경, 문화, 사회구조 등등이 거미줄처럼 엮여 나타난 결과물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새폴스키는 책을 통해 사람의 행동을 단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행동 직전의 신경생리, 며칠 간의 스트레스와 감정, 성장기의 경험, 문화·제도·진화까지 여러 층위의 기제가 서로 얽혀서 비로소 ‘하나의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포함해 신경과학, 내분비학, 심리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게임이론)까지,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데, 이 연구들을 절묘하게 엮어내며 신뢰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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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학과 뇌과학 책을 그렇게 읽었는데도 뿌리를 뽑기 어려운 편견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사람이 뭐 하나라도 (잘) 하려면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벽돌 세 개 두께의 책을 쓴 새폴스키는 “세상일은 언제나 책보다는 복잡하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한 곳이고, 사람의 행동은 단 하나의 원인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새폴스키가 이 이야기를 귀에 피날 때까지 강조 또 강조하는 건, 사람들은 세상 거의 모든 문제들을 가능한 한 단순하게 이해(또는 설명)하려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우리 뇌가 다른 일로 워낙 열량을 많이 쓰다 보니 이런 문제까지 고민하고 싶어하질 않다고 한다(우리가 지나치게 자주 “아 됐고, 결론이 뭔데?”라고 되묻는 이유인데, 이걸 심리학 용어로 이를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로 부른다고 한다). 나라고 예외일 리는 없어서 단단한 편견을 내 마음 속 깊이 묻어두고 있었는데, 새폴스키가 『행동』에서 완벽한 논증과 강박적인 강조를 거듭한 끝에 이 편견을 통해 깨뜨려준 것이다. 오, 이런 독서 경험은 얼마나 즐겁고 소중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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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독서 경험이었지만, 나는 여기에서 조금 더 욕심을 내보고 싶어졌다. 책에서 소개된 예시 하나를 생각해보자. 옥시토신 호르몬은 내부 구성원에 대한 친밀감과 외부 구성원에 대한 적대감을 동시에 유발한다고 한다. 아기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엄마가 낯선 타인에게 쉽사리 경계를 높이는 이유가 바로 이 호르몬 때문이라는 거다.

좋아! 그럼 새폴스키의 말대로 ‘행동’이 유전과 문화가 뒤섞인 결과물이라면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작은 넛지 하나를 심어본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강남구민’을 ‘서울시민’으로, ‘서울시민’을 ‘대한민국 시민’으로 호칭하며, ‘우리’의 테두리를 슬그머니 넓혀보는 것이다. 교양 이상의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 장담은 못하겠지만, 이 가설이 유효하다면 꽤 많은 일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외국인 노동자’를 대할 때 막연한 친절을 기대하기보다는 ‘같은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침 미국의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이 쓴 『옳고 그름』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기에(아마도 공통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냉큼 책을 구했다(절판 소식에 절망했지만 온라인 중고서점엔 있었다!). 더 깊이 있는 이해와 의미 있는 변화를 찾는다면, 『행동』은 진정한 의미의 ‘인생책’으로 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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