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로 살고 있습니다 - 롱런하는 마케터의 비밀
강혁진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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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꿈에 대한 이런저런 충고 중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제일 많이 들리는 것 같아요. ‘뭐가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지 말고 ‘뭐가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라고 말이요. 되고 싶은 것만 고민하면 진짜로 그 직업이 가진 그 순간부터 뭘 해야 할지 모를 거라고 하잖아요. 너무 많이 들려서 살짝 지겹기도 한데, 지겨운 것과는 별개로 뼈 저릴 정도로 맞는 말이긴 해요. 요즘 ‘되는 것’에만 지나치게 몰두한 분들, 너무 많아서 제가 죽겠어요(응?).

마케터란 직업에 대해 생각해봤어요(갑자기 분위기 마케팅?). 요즘 많은 분들이 선망하는 직업 같아요. 일단 뭐랄까, 크리에이티브가 넘쳐나는 사람들 같잖아요. 저만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옷도 잘 입는 것 같아요. 그렇게 멋짐이란 게 뿜뿜 솓구치는 직업 같아요. 보아 하니 왠지 돈도 좀 잘 벌 것 같... 아… 이건 모를 일인가요?

이렇듯 마케터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은 시대예요. 그런데 말씀 드렸듯이 요즘은 되기만 하면 끝나는 시대는 또 아니잖아요. 마케터가 됐는데 막상 내가 꿈꿨던 마케터 생활이 아니라면? 문제는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듯, 내가 꿈꿨던 마케터 생활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정의를 바로 세울 줄 알았던 판검사 선생님들이 사실은.. 읍읍 (여기까지만)

📚 체험 마케터의 현장

마케터를 선망했 했던 분, 그 선망이 아주아주 컸던 분이라면 ‘마케터로 살고 있습니다’는 필독서, 까진 아니고, 읽어 두면 많이 좋은 책 같아요. 마케터의 목표를 정확하게 정의하고(“마케터는 고객에게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7), 또 그 목표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정리해 놓았거든요.

이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게 저자 선생님이 운영하는 ‘월간 서른 ‘이야기예요. ‘월간 서른’이란 브랜드는 ‘고민하는 30대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이란 콘셉트로, 한 달에 한 번 자기 길을 걷는 연사와 함께 30대의 이야기를 듣는 강연을 운영한다고 해요. 연사 선택, 섭외, 참가비 결정, 참가자 모집과 관리, 강연 구성까지, 콘텐츠 업로드까지. 이 과정의 모든 게 ‘마케팅’(또는 ‘브랜딩’)과 관련이 있었어요. 참가자들에게 확인 문자 보내는 것 하나까지 그랬어요. 그렇게 ‘월간 서른’은 꽤나 탄탄한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그럼 이 모든 걸 잘하는 좋은 마케터가 되려면 뭘 해야 하나요? 책에선 일단 경험을 많이 해야 한대요. 평소에 하던 일도 다르게 해보고, 영화 ‘원스’의 주인공들이 자동차에서 자기 음악을 들은 것처럼 소비자 입장 바꿔 생각해보고(나라면 이 물건을 살까?), 극장에 일찍 들어가 광고도 좀 살펴보고, 예쁜 게 보이면 사진을 찍어 두고 등등이요. 그냥 경험하지 말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조금씩 다르게 시도해보라고 해요. ‘내가 이런 일 하려고 대학 나왔나?’라는 자괴감이 드는 일을 해도 거기에서 교훈을 얻을 줄도 알아야 한대요.

📚 자질구레한데 좋고 그렇네요

저는 사실 지식이 빽빽한 책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그런 책을 읽고 싶어 하구요(벽돌책 포스팅 안 보신 분들은 좋아요 누르고 오세요). 그런 측면에선 아쉬움이 살짝 남는 독서였어요.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지만, 마케팅이 지식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아니, 어쩌면 지식 이상으로 경험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 자질구레함이 잔뜩 묻어 있는 책이어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마케터를 구름 위 신선 같은존재가 아니라 이런저런 일을 해내는 ‘생활인’으로 보여주었거든요. 마케터가 되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려요. 뭘 하면 좋은 마케터가 되는지, 어떤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오래 일하는 마케터가 되는지,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네요.

* ‘서평단’ 도서이지만 솔직히 썼어요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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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 뉴미디어 전문가 정혜승이 말하는 소통 전략
정혜승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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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기레기가 되었나요?

언제부터인가 ‘기레기’라는 말이 사전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어요. 신뢰도 조사를 보면 언론은 거의 대부분 꼴지예요. 저만 해도 3년 전까지 종이 신문을 구독하며 읽었는데, 도무지 못 읽겠어서 구독 끊고 이제는 냄비 받침으로만 써요.

이 와중에 정혜승 전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이 쓴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를 읽었어요. 처음엔 ‘청와대 홍보법 같은 걸 알려주는 책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구요. 오늘날 미디어를 둘러싼 풍경들을 살펴보는 책이더라구요.

기본적으로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각은 저와 다르지 않았어요(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군들 다르겠어요). 3년차 기자조차 ‘기렉시트’를 꿈꾸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그만큼 위상이 하락한 언론, 언론이 고전하는 사이에 등장한 뉴 미디어들(팟캐스트, 유튜브는 물론 새로운 정보 전달 플랫폼들)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요.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이래요. 더 이상 정보 유통 생태계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위계로 나뉘어 있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엉켜 있다는 이야기였어요. 미디어 혁명 전까지 권력을 행사하단 ‘정보 생산자’, 즉 언론들은 더 이상 권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됐어요. 뉴미디어를 선구적으로 이끌어왔던 ‘김어준’ 같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영향력이 비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죠.

기성 언론은 아직도 정보를 혼자 쥐고 흔들던 시절에 취해 있는 것 같은데, 수용자들은 그런 모습 이상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쥐고 흔드는 정보라는 게 잡동사니 수준이거든요. 가끔은 한쪽(주로 광고주) 입장을 과하게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고급 정보가 언론에서 보기 드물다는 건 눈만 있어도 알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독자들은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한번 지껄여보세요.”

📚 소통, 원래 어려웠는데, 더 어려워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방향 ‘홍보’는 바보 짓이 됐어요. 이제는 쌍방향 ‘소통’이 필수예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소통이 답인 건 알겠는데, 대체 ‘소통’이 뭐냐는 거예요. 신나게 떠들게 하면 소통이 되나요 그렇게 떠들었는데 내 의견이 반영이 안 된다면? 모든 의사결정을 떠드는 손에 맡기면 소통인가요? 그 와중에 찬반 의견이 없을 수가 있나요?

사실 ‘소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저자 선생님도 없는 것 같아요. 자신의 소통 경험을 본격소개한 3~5장에서도 신통방통한 소통 방법이 등장하진 않거든요. 선생님이 시도했던 ‘소통의 결정체’라 할 만한 ‘국민 청원’도 완벽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저자 선생님은 그저 몇몇 시도와 반응이 좋았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혹시나 앞으로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함께 말이죠.

📚 어쨌거나 결론은 소통

‘소통이 대체 무엇?’이냐고 하는 질문에, 저자 선생님은 별다른 정답을 내놓지 못했어요(참고로 저는 이게 딱히 유감스럽진 않았네요. 답이 없는 걸 어떡하겠어요). 하지만 책의 핵심 메시지만큼은 분명해요. ‘결론은 소통’이라는 거죠. 괜히 책 제목이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겠어요.

‘아니, 소통이 뭔지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합니까?’ 이 질문이 나올 차례 맞고요. 어쨌든 제가 내린 결론은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래 소통 모르겠으니 내 맘대로 고!” 하는 것과, “어디 말이라도 한 번 들어보자.” 하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 수준을 넘어서는 중요한 차이가 있어 보이거든요. 요즘 같은 때 ‘라떼는 말이야’ 하는 순간, 상대방이 뭐라할 지 저는 100% 확신할 수 있어요. ‘쟤가 대체 뭐라는 거야?’

저는 저자 선생님이 청와대에서 일할 때처럼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방법을 알 수 없으니, 뭐라도 하다 보면 얻어걸리는 게 있지 않을까요? 저자 선생님이 청와대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사실 디바이스만 놓고 보면 이렇게 소통하기 좋은 시기가 또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래요. 소통의 시대를 맞아 저는 지금 운영중인 책판다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면서 소통하겠습니다? (뚱딴지 같은 소리 죄송합니다)


책판다 인스타그램에서 보기

http://www.instagram.com/b.pand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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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쓸모 - 불확실한 미래에서 보통 사람들도 답을 얻는 방법 쓸모 시리즈 1
닉 폴슨.제임스 스콧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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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옛날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컴퓨터가 아무리 머리, 아니 CPU를 돌려대더라도, 결국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을 거라구요. 가령 번역이나 예술 같은 것들이요. 아무리 많은 숫자들을 대응시킨다 해도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어떤 영역을 재현하지는 못할 것 같았어요.

그러다 4~5년 전쯤 #빅데이터인문학 을 읽었어요. 책 800만 권에서 뽑아낸 데이터로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읽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어요. 책을 읽으면서 감탄을 만 번쯤 했어요. 시대가 너무나 정확하게 보였거든요. 세계 최고의 도시 예로 들어볼게요. 사람들에게 최고의 도시를 물어보면 뉴욕, 파리, 런던 등등을 꼽을 거예요.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1911년을 기점으로 각종 문헌에서 뉴욕의 언급량이 런던을 앞지르기 시작했어요.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거죠.

아하, 사람의 마음도 숫자로 알아낼 수 있는 거였구나. 지금까지 인문학의 영역인 줄만 알았는데,수학이 이런 일까지 해낸 걸 알고 난 이후부터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런저런 수학책을 섭렵한 것도 이때부터였어요.

‘수학의 쓸모’는 같은 맥락에서 반가운 책이었어요. ‘이런 것까지 하고 있었어?’ 싶은 것들을 마음껏 보여주더라구요. 이 책은 일곱 가지 분야를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이 일들을 하기 위해 쓰인 수학적 원리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구요. 여기에 소개된 수학 원리들을 모두 요약하긴 힘들겠고(어쩔 수 없는 수포자 본능), 어렴풋한 기억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정리해보면 이렇다고 해요.

👉 조건부 확률: 넷플릭스가 내 취향을 귀신 같이 알아내는 방법

👉 패턴 인식: AI가 오이나 피자를 알아차리는 방법

👉 베이즈 규칙: 자율주행차가 혼자 운전을 하는 방법

👉 스무고개(알고리즘): 인공지능 스피커가 내 말을 알아듣는 방법’

👉 제곱근 규칙: 공수를 정하는 동전 던지기에서 계속 이기는 방법

👉 모형 설계(가설 세우기): 지레 겁먹고 피임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

이 개념들은 다른 책 읽거나 옮겨 적은 메모들 보면서 복습하기로 하고, 여기에선 인상적인 대목 몇 개만 남겨볼게요. 하나는 이 모든 성취들이 ‘정답’ 보다는 ‘확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거예요. 가령 “신용카드 거래가 속임수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고, “속임수일 확률이 92퍼센트”라고 말하는 식이래요.(9) 지난번 읽었던 #거의모든것의역사 에서도 불확실성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 있는데요. 숫자가 못 알아먹게 생겨먹은 불확실한 세계를 그대로 재현할 때 큰 일을 해낸 것 아닐까 싶었어요.

다른 하나는 ‘AI시대엔 사람이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대목이었어요. 흔히 AI 때문에 사람이 설 자리가 없어질 거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뉴욕 타임스>에서 소개한 10년 피임간 실패율이 그래요. <뉴욕 타임스>는 콘돔의 피임 성공율 81%를 ‘독립시행’으로 오해한 나머지, 그걸 반복해서 곱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10년 내 콘돔 사용자가 피임에 성공할 확률을 39%라고 결론 내려요(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잘못된 가정 때문에 결론이 엉뚱해진 거죠. 가정이 잘못되면, AI도 똑같이 실수한대요. AI가 잘못된 가정에 발 딛고 서지 않으려면 사람이 똑똑해야 한대요. 그리고 스치듯 이야기하지만, 그 ‘똑똑함’은 민주화 과정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고 해요.

마지막 대목은 여성 수학자에 대한 헌정이었어요. 흔히 수학이나 과학을 다루는 책은 남자 수학자나 과학자만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책에는 우리가 몰랐던 수많은 여성 수학자들이 등장해요. 패턴 인식 시스템을 발견한 헨리에타 레빗이나 역사상 최초로 컴퓨터에 언어를 인식 시킨 그레이스 호퍼, 현대적 의료 시스템을 열어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까지. 수학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어요. 이 책이 다룬 수학 원리만큼 중요한 사실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결론적으로 이런 책을 학창시절에 읽었더라면, 제 수학 성적이 한 뼘만큼은 좋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수학이 이렇게 재밌고 쓸데가 많았다니. 그래서 좀 아쉽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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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 리더스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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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해요.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과 손해를 완벽하게 계산한 다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선택지를 고르는 존재라는 거예요. 언뜻 그럴듯해 보여요. 손해는 누구나 싫어하니까요. 작은 손해도 못 견디는 저 같은 소심이를 보면 언뜻 맞는 말 같아요.


그런데 문득 궁금해져요. 이득과 손해를 완벽하게 계산하는 게 가능할까? 이런 예를 들어볼게요. 누군가가 암에 걸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가정해봐요. 만약 진짜로 걸린다면, 그 사람은 열심히 저축을 해놔야 해요. 이 과정에서 많은 걸 포기해야 해요. 멋들어진 자동차, 텔레비전, 해외여행 등등. 이렇게 열심히 돈을 모아놨는데 암에 안 걸렸다면? 반대로 내일이면 인생 끝날 것처럼 탕진잼을 즐기고 있는 사이 암이 찾아왔다면? ‘메디컬 푸어가 되는 거죠. 이걸 완벽하게 예측하고 대비한다? 그럴 수 있었다면 보험회사는 다 망했겠죠?


사람이 똑똑하긴 하죠. “여러 해 동안 못 본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고 모국어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층 사이에 있는 일련의 계단들을 넘어지지 않고 뛰어 내려갈 수도있어요(39p).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 해도 엄청난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저런 예측 해내기 어려워요(사실 훈련해도 완벽하진 않은 것 같아요).

 

넛지는 주류 경제학의 인간관을 반박하는 책이에요. 인간은 이성보다는 누구에게나 있는 다양한 편향에 따라 움직이고, 그래서 실수도 겁나 많이 하는 존재라고 해요. 단순히 반박만 하지 않아요. 인간이 오류를 저지르는 패턴을 관찰하고, 그걸 바탕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하자고 주장해요. 자유경제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시점에서, 너무나도 시의적절한 이론적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한번 간추려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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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뇌과학과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사고 시스템은 두 개로 분류된다고 해요.


자동 시스템(시스템1): 신속하고 직관적이며, 혹은 직관적이라고 느껴지며, 주로 사고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것들을 수반하지 않음.


숙고 시스템(시스템2): 숙고 시스템은 보다 신중하고 의식적인 시스템으로, 우리는 ‘411 곱하기 37은 얼마인가?’ 등의 문제를 풀 때 활용.


--> 얼마 전에 읽다 만 (그런데 엄청 유명한) ‘생각에 관한 생각에도 등장하는 분류 체계예요. 동시에 재밌게 읽었던 #해빗 의 합리적 자아비의식적 자아’, #잠못드는뇌과학 의 생각하는 뇌’, ‘반사용 뇌와 같은 개념 같아요.


자동 시스템은 잘만 활용하면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어요. ‘해빗에 따르면, 긍정적인 행동을 습관화하면 우리는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해요. 문제는 숙고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튀어나오는 자동 시스템이에요. 대개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내려요. 그런데 재밌게도 그런 오류에도 일정한 패턴들이 있다고 해요. 대략 다섯 가지 정도예요.


어림 감정: 대부분 사람들은 바쁘고 복잡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몇몇 사소한(?) 사안들, 박나래의 나이’, ‘서울에서 전주까지의 거리’, ‘강원도 평창군의 인구등을 추측할 때 어림 감정을 사용해요. ‘나보다 어릴 것 같아’, ‘목포보다는 가깝잖아’, ‘원주보다는 적겠지등등 나름의 근거를 대면서요.


비현실적 낙관주의: 인간은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있어요. 수업시간에 자기 성적을 예측하라고 하면 50%가 자신을 상위 20%에 들 것으로 예상한대요(ㅋㅋㅋ). 90%의 운전자가 운전 실력을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해요(비웃기게도 제 얘기네요). 이건 우리가 안고 있는 리스크(교통사고, 암 발병 등)를 낮게 평가하는 원인이 돼요.


손실 기피: 만약 도박을 한다면 사람들은 내가 잃을 수 있는 손실의 두 배 이상을 이익으로 거둘 수 있을 때 도박에 나서요. 이건 현재 갖고 있는 걸 고수하려는 타성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현상유지 편향: 사람들은 손실 때문이 아니더라도 현재 상황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여요. 수업 시 지정좌석제가 아닌데도 같은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든지 등등이에요. 심지어 변화에 따른 이익이 클 때도 이 편향 때문에 이익을 포기할 때가 많대요(카드 하나만 바꾸면 통신료 6천원이 할인되지만 바꾸지 않는 제가 빠진 편향 맞네요).


프레이밍: 그 유명한 프레임이야기 맞아요.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100명 중 10명이 5년 내에 죽는다고 얘기하면, 대개 수술을 거부한다고 해요. 반대로 ‘100명 중 90명이 산다고 얘기하면 반응이 다르다고 해요. 알려주는 정보가 정확히 똑같은데도요. 심지어 의사들도 앞의 이야기를 들으면 수술을 거부하고, 뒤의 이야기를 들으면 수술을 시도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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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 편향에 가득 찬 인간들을 어떻게 구원(?)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어요.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예요. 이건 책 서두에 소개되는 급식 담당자의 사례를 통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어요. 학생들의 건강을 고려해서 가장 이로운 쪽으로 음식을 배열하되(제일 눈에 띄는 자리에 채소를 놓는 식으로), 최종 선택권은 학생들에게 주는 거예요. 배열 순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몸에 좋은 음식을 먹게 돼요. 하지만 몸에 나쁘지만 맛있는 음식을 빼앗기지는 않아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넛지’(Nudge)가 돼요. 사전에 따르면 이끌다’, ‘살짝 찌르다’, ‘자극이라는 뜻이래요.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해요.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편향에 빠져서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가 많죠. 이건 개인에게도 손실이지만, 사회적인 손실로 이어지기도 해요. 저축을 하지 않는다든지, 충분치 않은 정보만 갖고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다든지, 대출 서류가 너무 복잡해서 앞뒤 안 보고 사인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추심이 들어온다든지. 이걸넛지로 방지하지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에요.


이 책에선 저축을 늘리는 법을 비롯해 손해 보지 않는 연금 상품에 가입하게 하는 법 같은 경제적 제도뿐 아니라 장기기증, 환경 보호 같은 사회적 제도에 넛지를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뭐가 좋고 나쁘다고 설명하는 캠페인보다 넛지를 이용할 때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요(가령 별다른 의사표시가 없으면 저축액을 임금상승률과 연동해 자동으로 늘린다든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을 장기기증자로 간주하되 기증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미리 신청을 받는다든지 등등). 선택할 기회를 주되(자유주의), 기본 옵션을 지정하는 거죠(개입주의).


저는 이 책의 제안이 꽤 마음에 들어요. 애초에 인간은 이래저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데,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남은 실낱같은 합리성을 발휘하기엔 너무나 크고 복잡해요. 자유주의 아무리 해도 전 제 인생 최선의 선택 못 할 것 같아요. 반대로 누군가 선택지를 제 손에 쥐여준다면? 엄마한테 듣는 잔소리도 짜증 나는데 내 선택지들을 누가 다 골라준다면 아마도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제가 합리적이지 못한 것과는 별개로 저한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까요. 내가 선택하되, 적절한 선택지를 쉽게 고를 수 있다면?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가 하나 남아요. 그 선택지는 누가 만드나요? 아마도 정치가와 전문가 관료집단일 거예요. 그렇다면 정치가와 전문가 관료집단에 그냥 믿고 맡기면 모든 게 끝날까요? 아닐 것 같아요. 전문가 집단 또한 인간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돼요. 그들 또한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에요. 공익적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데, 꽤 자주 사익을 위해 움직여요. 책에도 등장하는 예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어요. 믿고 집 산 사람들, 채권 산 사람들 다 망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예들 너무나 많지만 그냥 넘어갈게요.


제가 내린 결론은 좋은 넛지에는 민주주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좋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신뢰가 없다면 사회를 유지할 수 없겠죠. 신뢰가 있더라도 실제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면 개인이든 사회든 망하겠죠. 좋은 넛지에 대해 주권자와 정치인, 전문가 관료집단이 합의해가야 이 책이 넛지를 주장한 취지도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아요.


p.s1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나라는 그게 좀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네요. (찡긋)


p.s.2

인스타그램에도 넛지 하나를 심어놨는데, 넛지가 잘 될지 모르겠어요….


p.s3

생각의 관한 생각읽기 프로젝트로 먼저 꺼내 들었는데, ‘생각에 관한 생각을 먼저 읽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넛지가 도리어 응용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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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탐정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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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탐정) 캐릭터가 이러기 쉽지 않은데, 엘비스 콜은 뭐랄까, 좀 사랑스러운 것 같아요. 이쪽 동네의 다른 인물과는 다르게 장난기도 넘치고, 또 감정도 대단히 풍부하거든요. 『L.A. 레퀴엠』(이하 『레퀴엠』에서 자기 슬픔을 감추지 않고 오열하던 모습은 좋은 의미에서 충격적이었고, 심지어 그 모습이 너무나 설득력 있어서 마음으로 따라 오열했어요.


그렇다고 넘치는 감정 때문에 일 처리가 프로답지 못하냐면 그건 아니에요. 모든 수사 과정 내내 냉철하고 철두철미하진 않지만, 프로답다는 수식어가 어색할 정도는 아니죠. 어려운 사건들이 그의 추리로 풀리니까요(예외가 있다면, 조 파이크가 주인공이었던 『워치맨』 정도?)그런데 또 그게 전부인 것 같지는 않고요. 보통 이런 위악은 사연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감정적이면서도 일은 잘 하는데, 사연까지 있을 것 같은 캐릭터. 좋아하지 않기가 힘들지 않나요? 


『마지막 탐정』(이하 탐정)은 이런 엘비스 콜의 캐릭터를 마음껏 활용한 이야기입니다. 『레퀴엠』 때부터 엘비스에게는 루시 셰니에라는 애인이 있었어요. 『레퀴엠』에서의 어떤어떤 일 때문에 헤어진 줄 알았는데, 그때까지 잘 만나고 있더군요. 그리고 엘비스도 무척 사랑하는 루의 아들 벤 셰니에도 있어요. 루시가 출장을 간 사이, 엘비스는 벤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 동네 아이들이 그렇듯, 벤도 엘비스를 잘 따르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런 벤이 말 그대로 눈 한 번 깜빡한 사이에 사라지고 맙니다. 벤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옵니다. 이 납치는 엘비스가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한 복수라고 말이죠.


여기에서 눈여겨본 대목은 이렇습니다. 엘비스 콜은 과연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냉정함의 끝판왕이라 해도 냉정해질 수가 없는 상황인데, 게다가 엘비스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거든요. 달리 말해, 그가 활극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단 뜻이죠. 더불어 엘비스의 위악 뒤에 숨은 사연을 알아낼 기회이기도 했어요.


그렇게 ‘영혼의 파트너’ 조 파이크와 함께 엘비스는 벤을 찾으러 나섭니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활극이 펼쳐지기 시작하죠. 가뜩이나 제멋대로이고, 또 제멋대로 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엘비스를 작가는 더욱 옥죕니다. 벤의 친아버지인 리처드 셰니에의 등장이 그렇죠.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엘비스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데, 나름 권력도 없지 않아서, 그걸 이용해 경찰을 움직여요. 엘비스를 수사에서 제외시키려고요. 협박 전화를 먹잇감 삼아 엘비스와 루시와의 사이도 이간질하고요. 그러나 엘비스는 절대로 이런 일을 그만둘 사람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긴장을 향해 치닫기 시작합니다. 엘비스의 추리가 벤의 주변에 얼씬조차 하지 못했을 때의 상황이에요. 자, 함께 손잡고 긴장의 지옥으로 출발합시다.


이 과정이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면, 엘비스가 베트남전 참전 경력을 살려 벤에게 다가가는 대목들은 (다른 범죄물에서 그렇듯) 쾌감으로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추리 과정이 좀 색다릅니다. 추리 과정의 많은 부분이 엘비스의 과거와 맞물린다는 점에서요. 엘비스의 과거는 사건을 풀기 위한 단서로의 역할 이상을 수행합니다. 엘비스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죠. 엘비스가 왜 엘비스가 되었는지, 엘비스가 지금 해나가고 있는 추리는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엘비스가 이렇게 왜 유쾌해졌는지(이 부분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 설명은 작품에 맡겨두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이걸 달리 말하면 감정을 이입하기에 좋은 범죄물이란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이 시리즈가 안 그랬던 적은 없지만, 이번에도 멋지게 성공해냈어요. 개인적으로는 사건 추리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엘비스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죄책감, 사명감, 절박함 같은 감정들을 엘비스와 함께 충만하게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엔 이 모든 감정은 즐거움으로 변하죠. 어디까지나 대리체험이니까요.


여하튼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레퀴엠』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결코 실망스럽진 않았습니다. 이 시리즈를 사랑하는 분들에겐 추천. 단, 이 시리즈를 처음 읽는 분이시라면 전작 『레퀴엠』을 먼저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거든요.


덧붙임. 반가운 인물 하나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아는 딱 그 사람처럼 나타나요.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직접 목격하고 나니 이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것도 비밀로 남겨두겠습니다. 직접 만나는 순간의 쾌감을 여러분도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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