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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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포함한 서사 장르)에 긴장감과 개연성,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좀처럼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편인데, 내 주의력 수준이 진입 장벽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최고의 장점은 당연히 손발에 이마까지 땀을 솟게 하는 재미와 긴장감이 되겠다. 태양에 기생한 이상한 생물체 때문에 멸종을 불과 수십 년 앞둔 지구인들이, 늦어도 십수 년 안에 성간 우주 여행 기술을 개발해 11.9광년 거리의 항성계에 보내 태양의 기생충을 처리할 방법을 어떻게든 알아내야 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미션 수행 과정에서 이쯤이면 장애물 하나 넘었네 싶은 순간에 적절하게(?) 일어나는 사고 때문에 긴박함과 안타까움을 강제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것만 해도 내 문학 수준에선 별 네 개를 꽉 채웠다.

또 하나, 적어도 석사과정 이상은 되어야 언급 가능한 과학 설명으로 (조금 과장하면) 소설 분량 절반을 채우는데, 이게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 만든 영화조차 긴 과학 해설 때문에 ‘설명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별 반 개 정도는 깎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간혹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인과 정도는 알 수 있도록 풀어 쓴 필력, 나아가 해설이 필요한 시퀀스를 기막히게 배치한 본능이 더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 외계인 로키와 주인공 그레이스의 이야기였다. 로키와 그레이스가 만나는 과정부터 내 마음의 설렘 수치는 이미 맥스를 채웠는데, 둘의 협업 과정은 정말 환상적이면서도 즐거웠고, 로키와 그레이스가 죽음을 무릅쓰고 서로를 구하기 위해 번갈아 자기 목숨을 걸었을 때, 우주선 폭발 사고 때 로키가 자신은 생존이 불가능한 공간으로 나가 그레이스를 치료하고, 그리고 결정적 오류 때문에 위험에 빠진 로키와 그의 종족을 위해 그레이스가 우주선의 항로를 틀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버렸다.

나는 두 대목을 소설의 절정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읽었는데, 두 인물이 결정적 위기 상황에서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희생이 가능했을까? 인류와 에리디언(로키 종족의 이름)은 멸종을 막기 위해? 그 또한 당연히 중요했겠지.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썩 공감하기가 어렵다. 소설 후반부에야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그레이스는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우주인으로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헤일메리 프로젝트’가 연료 부족으로 인해 수행원들의 자살로 마무리된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레이스는 ‘인류’라는 집단에 대해 애정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랬던 그레이스가 로키를 위해 죽음을 감수하고 로키를 위해, 망설이지 않고 진로를 돌린 이유는 아마도 우정 때문이었을 거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거리에서 만나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자신을 지키려 했던 로키를, 자신 또한 지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이 소설이 어떤 경지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도덕 또는 윤리가 세워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도덕 또는 윤리는 철학에서 논증 등의 과정을 통해 세워져왔다. 조선 시대의 유학이 그랬고, 칸트의 윤리학이 그래왔으니까. 물론 철학의 방법으로 세워가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너무 먼 곳에서 찾으려 들어왔던 건 아닐까? 도덕이나 윤리는 결국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일 테고, 그렇다면 일상에서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이 그걸 보여준 건 아니었을까?

물론 도덕이나 윤리는 친구가 아닌, 보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우정이 윤리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생각에 이 장면은 보편 윤리로 나아가기 위한, 충분히 멋진 출발이었던 것 같다. 둘은 우정으로 인류와 에리디언을 구해냈던 것은 상상의 한계를 넘어선, 말 그대로 숭고한 순간이었다고 해도 부족함 없었다. 이렇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렇듯 좋은 이야기는 쇼츠의 시대에도, 아니 쇼츠의 시대이기에 더 소중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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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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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부의 증식, 과연 공정했나요?


자산 시장만 두고 봤을 때 코로나19 시대 최고 화두는 ‘자산 증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실물 경기는 역성장했는데 코스피 지수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금 같은 자산 가격 또한 우주까지 뻗어갈 기세로 올랐어요. 그리고 이 상승 열차에 올라타느냐 못 올라 타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렸죠.

반대로 이 시기에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바로 자영업자와 일용직 근로자가 그 주인공이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자영업자들은 돈을 벌기는커녕 가지고 있던 돈조차 소진해야 했어요.

지난 2020년을 수놓았던 이런 풍경은 ‘공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죽어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거의 모든 세계 정부들이 돈을 풀기 시작했잖아요. 유동성 확장이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한 투자자들은 돈을 벌었지만, 방역의 최전선에서 비용을 부담했던 자영업자들은 벌어놓은 돈 마저 써야 하는 풍경. 이런 상황은 ‘공정’했을까요?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의 함정


마이클 샌델 선생님이 쓴 ‘공정하다는 착각’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실마리가 담긴 책이에요. 우리 사회(뿐 아니라 거의 전 세계)를 강력하게 사로잡은 이념, ‘능력주의’가 과연 ‘정답’인지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있어요.

저자 선생님이 책이 던지는 질문 중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만 소개해 볼게요.

✏ “능력은 과연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가?”

✏ “능력주의는 정말 노력하는 만큼 보상을 돌려주는가?”

✏ “능력주의는 1원칙이 된다면, 구성원 모두 보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저자 선생님의 답은 모두 ‘아니다’에 가까워요. 가령 능력 측정 문제부터 살펴볼게요. 미국의 최상위권 명문 대학(아이비 리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상위권 SAT 성적을 받아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최상위권 성적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노력’이 아니었다는 점! 바로 부모님의 소득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미 ‘부모님의 소득’이 ‘명문대 입학의 제일 조건’이 되어버린 건데, 과연 이 기준은 ‘학비 지불 능력’을 입학 조건으로 여겼던 100여 년 전과 뭐가 달라졌을까요?

이외에도 르브론 제임스만큼 노력한 농구 선수들이 왜 르브론만큼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지, 1980년대 일반 노동자들의 30배 소득을 올리던 금융회사 임원들이 왜 2010년대에는 300배 이상의 수소득을 올리는지 등등을 ‘능력주의’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요.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결정적인데요. 능력주의를 신봉하게 된 결과 맞이한 게 바로 포퓰리리즘(과 브렉시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었다는 거예요. 능력에 따라 보상한다고 했지만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해외로 떠나는 일자리를 붙잡을 수 없었잖아요. 경제적 보상도 없는데, 이걸 ‘능력의 문제’라고 지적하니까 무력감이 안 느껴질 수가 있나요? 그들은 사회로 버림 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자기 의사를 드러낸 거였어요!(그 방식의 옳고 그름은 일단 논외로 할게요)


새로운 자원을 위한 새로운 정의를 위한 정치


살펴보았듯이 능력주의가 답이 아니라면 우리에겐 어떤 선택지가 남아 있을까요? 다시 한번 우리나라 상황에 빗대어 설명해볼게요. 일단 팬데믹 시기의 혼란 틈탄 자산 증식이 온전히 ‘자기 능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치를 통해 이런 생각을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내는 것 또한 남은 과제 중 하나일 테고요.

이 모든 게 쉽진 않을 것 같긴 해요. 얼핏 ‘능력에 따라 보상 받는다’는 원칙은 틀린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견고하니까요(사실 이 책을 읽은 저도 쉽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이 책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상을 논의하기 위한 첫 걸음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논의를 함께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여러분께도 일독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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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개정증보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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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 말을 썩 좋아하진 않아요. “너 역사 공부 안 하면 옛날에 맞은 데 또 맞는다? 응? 그래도 안 할 거야?” 세계 최고의 쫄보 책판다는 도리어 이 말에 더 겁이 나는 거예요. “너 이눔 시키 또 맞기 싫으면 열공해!” 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역사 때문에 겁을 먹고 있었는데, 세상에, 역사책을 읽어버렸네요? 유시민 선생님이 쓴 ‘나의 한국 현대사’란 책이에요. 좋아하는 작가 선생님의 신간이라 별생각 없이 펼쳐 들었어요.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꽤나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중 하나가 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었어요. 역사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꼭 미래 때문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나를 긍정하는 매지컬 모먼트
‘나의 한국 현대사’를 다 읽고 난 뒤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보기에 유시민 선생님은 ‘지금의 나를 알기 위해’ 역사를 기억하는 것 같다고 말이죠.

책에 소개된 2020년의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예요. 세계에서 꽤나 잘 나가는 부자 나라이자, 서구 선진국 못지않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이구요. 그러면서도 잘 사는 사람만 잘 사는 나라이기도 해요. 코로나19 방역은 꽤나 훌륭했지만, 산업재해가 앗아가는 목숨은 아직까지도 어쩌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구요.

선생님은 이 책에서 과한 자기 긍정이나 부정 없이, 지금 이 순간의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닥 정당하지 않은 출발(건국)을 결국 뒤집었는데(4·19) 그걸 또 뒤집어 엎고(5·16), 그게 또 어찌어찌 곯아 있던 배는 채워내는 과정(경제발전), 죽은 줄 알았던 독재의 망령이 다시 등장했지만(신군부) 그걸 또 뒤집어내는 데 성공한(6월 항쟁) 나라. 그 어느 것 하나 빼먹거나 비난하지 않고 살펴보니 왜 이 나라가 ‘흉하면서 아름다’워졌는지 알겠더란 말이죠. 그걸 알고 나니 역사 공부가 이렇게 신기한 것이었다는 돈오의 순간이 뙇(!) 오고 말았던 것이죠!

📖 타협주의자 아니죠~ 현실주의자 맞구요!
또 하나 신기했던 건, 이 과정을 서술할 때 선생님의 어조였어요. 이 모든 과정을 어떻게 보면 건조하게, 다르게 보면 평온하게 설명하고 계셨거든요. 제가 그래도 선생님을 아주 모르지는 않는데요. 말로 논평할 때와는 사뭇 달라서(최근에는 논평도 많이 순한 맛 됐지만) 조금 놀라웠어요.

그런데 골똘히 생각해 보니 꼭 놀랄 일은 아니더라구요. 선생님은 책의 말미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그 소망이 ‘흉함’을 부정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가령 책판다가 월급을 많이 받고 싶은데, 월급이 적은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진 않는 것처럼 말이죠. 어쨌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유를 따져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니까요. 저는 이 책을 그렇게 이해했어요. 역사나 현상이 흉하든 아름답든 일단 이해부터 하고, 그 다음에 흉한 부분을 고쳐보자는 것으로 말이죠.

꼭 “흉한 건 지금 당장 없애버려야 한다”며 선생님 같은 사람을 ‘타협주의자’라고 낙인 찍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의 방법이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진짜 변화는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얼마 동안 역사 때문에 겁을 먹었는데(혹시나 미래가 없어질까봐…),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사를 공부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하나마, 앞을 뭔가 변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순전히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과거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반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혹시 그 보람과 희망을 책판다와 같이 느끼고 싶은 분들 계신가요? 그렇다면 ‘나의 한국 현대사’를 꼭 읽어보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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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
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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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좋은 독서 경험’에 대해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좋은 독서란 ‘호기심 있는 분야에서 유익한 정보를 얻는 것’이라고 정의해 왔는데, 『나쁜 유전자』를 읽으면서는 솔직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게 유익한 정보 맞아?”

내 안의 뿌리 깊은 상식, 그러니까 ‘공부 머리 같은 능력은 타고난다(유전된다)’는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어댔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나의 상식이었던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반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결국 유전이 전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령 책에서는 동성애 여부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함께, 태아 시절 산모가 분비한 호르몬 같은 환경 요소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의 이 치밀하고 탄탄한 논증을 (사실 조금은 힘겹게..) 따라갔더니, 어느새 내 머릿속엔 ‘유전이 전부인 게 더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책장을 덮은 후엔 끝내 ‘너무나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편견이 똬리를 틀었던 곳에 새로운 상식이 뿌리를 내린 셈인데,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연 ‘좋은 독서’였다. 더불어 그동안 내가 찾던 ‘유익한 정보’라는 게 사실은 ‘내 입맛에 맞는 정보’는 아니었는지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으니, 더더욱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이렇게까지 좋은 독서 체험을 안겨주신 저자 선생님(@romanc_grey)께 감사 인사를! 🙏

➕1️⃣ 얼마 전 읽었던 로버트 새폴스키의 『행동』을 보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정보가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행동』을 먼저 읽은 것이 『나쁜 유전자』의 독서에 깊이를 더해준 것 같다. 벽돌책에 도전할 용기가 있다면 함께 읽어보시길 강력 추천!

➕2️⃣ 그렇다고 전적으로 ‘환경 결정론’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꼭 밝혀두어야겠다. ‘그래서 얘 결론이 대체 뭐야?’ 싶으신 분들은 아래 인용한 『행동』의 서문 일부를 참고해보시기를!

“이 책은 과학에, 특히 생물학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점에 따른 중요한 사실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생물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공격성, 경쟁, 협동, 감정이입 등등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기를 손톱만큼도 기대할 수 없다. 굳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논할 때 생물학을 끌어들이는 것이 부적절할뿐더러 이념적으로 수상쩍다고 여기는 일군의 사회과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못지 않게 중요한 점으로, 둘째, 오직 생물학에만 의존하더라도 똑같은 곤경에 처한다. 굳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사회과학은 언젠가 ‘진짜’ 과학에 흡수될 운명이라고 믿는 일군의 분자생물학 근본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여러분이 이 책을 다 읽으면, 어떤 행동의 ‘생물학적’ 측면과 이른바 ‘심리학적’ 혹은 ‘문화적’ 측면을 구별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다.”

➕3️⃣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니 못 쓴 이야기가 너무 많이 생각나서 브런치에 다시 한번 긴 서평을 써볼 예정. 서평을 두 번 써도 좋을 책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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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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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0년 어느 날, 빨치산 출신 아버지가 감옥살이를 끝내고 돌아왔다. 하지만 화자이자 딸, 고아리가 훌쩍 자란 어느 날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처음 본 남자처럼 낯설었”고(226), “아버지와 나와의 거리가 아득해졌다는 걸”(226) 깨달았다. 가장 예민한 사춘기에 아버지의 빈자리는 두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골짜기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멀어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 때문에 할아버지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고, 조카 또한 희망하던 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경력이 자신의 앞길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웠음을 깨달은 딸은 마음에 아버지의 공간을 남겨두지 않았다.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했을 뿐이다.


그렇게 딸은 아버지의 세계에 무심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빨치산의 굴레가 무거웠”던 만큼, 굴레를 벗어던질 상상조차 못했을 터였다. 아버지의 배경 때문에 결혼식 하루 전날 혼사가 깨졌을 때도, 결혼이 깨진 덕분에 방 한칸을 마련했다며 “빨치산 부모 덕을 본 적도 있다”고 읊조리는 딸의 모습에서 나는 체념을 엿보았다. 굴레를 벗어난 삶을 더는 꿈꾸지 않겠다는 체념이었다.



딸은 장례식을 찾은 조문객 덕분에 아버지가 남긴 세계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고를 당하면 제 논의 모내기를 제쳐두고 수습에 나섰고,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자퇴한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게 “미국을 이긴 위대한 민족의 후손”이란 위로를 건네며 담배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베트남 전에서 장애를 얻어 공산당을 증오하는 참전 용사와도 술잔을 나눴다. 수감 생활 이후에도 사회주의자로 남았던 그는 사실, 이념의 경계 너머를 바라보고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딸을 사무치게 그리워한 사람이었다. 딸이 모르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 대화가 (이 서평처럼) 마냥 진지했다면 쉽사리 화해하기 어려웠을 터. 투철한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뜻밖에도 “삶의 방식이 유머”(7)였고, 그는 딸 모르게 유머와 진지함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가끔은 어이 없고, 때때로 폭소를 자아내며, 이따금 감동을 주는 아버지의 세계와 대화를 마친 딸은 그제야 자신이 체념했다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딸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225) 그제야 딸은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231)


화해와 함께 마무리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숙제를 남겼다. 이곳에서 어떤 이념은 가져보았던 경험만으로 낙인이 되어버린다. 아버지의 빨치산 활동은 4년에 그쳤지만,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딸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워서 아버지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남한 사회는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252). 그러니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부녀의 불화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념을 짓누르는 역사 이야기였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도 아버지에게 그랬듯 누군가를 낙인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무엇을 없애야겠다는 강박이 도리어 우리 모두가 원하는 자유를 짓누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남긴 채 소설은 홀연히 독자의 곁을 떠나버렸다.

수도꼭지라도 튼 듯 쏟아지는 헤픈 눈물이 어쩐지 미덥지 않기도 하였으나 나는 또다시 방관자가 되기로 했다. 황사장 덕분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잠시 놓여나기도 했거니와 어쩌면 진정으로 위로받는 사람은 황사장이 아니라 어머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 P24

나중에야 알았다. 그에게 동생이 하나뿐이었다는 걸, 일찍 어머니를 잃어 그가 업어 키운 아들 같은 동생이었다는 걸, 그 동생이 아버지 바로 곁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걸, 자기 몫까지 잘 살라는 동생의 유언을 그에게 전해준 사람이 내 아버지였다는 걸. 그날 이후 아버지는 그에게 동생 대신이었다. 그러니 나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용돈 쥐여주며 귀여워했을 조카였던 셈이다. 그 마음 쌩 깐 것이 늙어서야 마음에 걸렸다. 그래봤자 그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아버지도 그랬다. - P28

함박눈 내리던 겨울날이 떠올랐다. 오빠의 마음속에도 그날이 사무치게 남아 있을 터였다. 그날을 마음에 품은 채로 오빠와 나는 멀어지면서 살아온 것이다. 빨갱이의 딸인 나는 오빠를 생각할 때마다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빨갱이의 딸인 나보다 빨갱이의 조카인 오빠가 견뎌야 했을 인생이 더 억울할 것 같아서였다. 자기 인생을 막아선 게 아버지의 죄도 아니고 작은아버지의 죄라니! - P81

그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 그저 빨갱이 아버지 때문에 집안 망하고 공부 못한 것이 한이라 사사건건 아버지를 원망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홉살 작은아버지는 잘난 형 자랑을 했을 뿐이다. 그 자랑이 자기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작은아버지는 평생 빨갱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랑이었던 아홉살 시절의 형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작은아버지의 인생이, 오직 아버지에게만 향했던 그의 분노가, 처음으로 애처로웠다. - P129

"할배가 그랬어라. 엄마 나라는 전세계에서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라고. 긍게 자랑스러워해야 헌다고. 애들은 천날만날 놀리기만 했는디……"
엄마가 베트남 출신인 모양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미 제국주의 운운, 아버지다웠다.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이고 담배를 피우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이가 겪어왔을 세월을 나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알았을 테고 아버지 방식대로 위로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게 아버지식의 위로였다. 그 위로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잘 먹혔다. - P141

어머니의 옛 시동생 가족들이 아버지의 영정을 향해 절을 올리는 모습을 나는 어쩐지 처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저들에게 내 아버지는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형수를 빼앗아간 사람만은 아닐 터였다. 형의 친구이고 동지였으며, 운명이 조금만 달랐다면 형과 친구의 처지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건 어디에나 있을 우리네 아픈 현대사의 비극적 한 장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대단한 것도, 그렇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현대사의 비극이 어떤 지점을 비틀어, 뒤엉킨 사람들의 인연이 총출동한 흔하디흔한 자리일 뿐이다. - P169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 P181

아버지의 시신을 보자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네살 때의 아버지는 나에게 나와 같은 존재였다. 일심동체. 아버지의 알몸을 본 섬진강에서 나는 이미 아버지와 분리되었다. 그러니까 내게서 아버지를 빼앗아간 것은 이데올로기나 국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다. 아버지와 다름을 깨닫고 아버지를 닮고자 서서 오줌을 눌 만큼 아버지는 나의 전부였다. 그 아버지를 이데올로기가, 국가가 빼앗아간 것이다. - P201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 P225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 P252

"할배가 그랬는디, 언니가 여개서 썽을 냈담서? 할배가 아줌마 궁뎅이 두들겠다고?"
아무튼 아버지는 제 허물도 제 입으로 까는 데 선수다. 그것도 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 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겡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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