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우 - 비밀을 삼킨 여인
피오나 바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언론의 극성스러움은 그곳에서 1만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도 유명합니다. 얼마 전 축구 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한 펩 과르디올라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나는 당신들이 가장 두렵다.” 얼마 전 경찰의 오판으로 최종 판결이 나면서 다시 한 번 조명 받은 헤이젤 참사 판결과 관련해서도, 서포터들의 과실을 ‘자극적으로’ 주장했던 <더 선>은 사과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언론 이상의 극성스러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위도우: 비밀을 삼킨 여인』(이하 『위도우』)에서 가장 두려움을 느낄만한 지점은 바로 영국 언론의 프로토타입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4년 가까이 용의자를 물고 늘어지는 언론 덕분에 용의자의 아내이자 주인공 진 테일러의 삶은 복구가 불가능합다. 날마다 문을 두들겨 대는 기자들, 그들 때문에 집 밖에 나갈 때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그녀. 대부분의 스릴러 장르가 차용하는 ‘살아남아야만 하는 선’과 ‘응징받아야만 하는 악’의 구도는 이곳에서도 유의미한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 초반부에서 진 테일러는 전자를, 후자는 언론을 담당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위도우』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진 테일러와 언론의 대결 구도에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처음 우리가 만나는 진 테일러는 어릴 때 멋모르고 결혼한 뒤에 남편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순종적이면서 순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저는 진이 순진한 사람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의 모호한 독백은 그녀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임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명백히 작가의 의도로 보입니다.

“진 테일러의 이름이 얼마나 빨리 다시 나올지 궁금했고 혼자서 그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진은 기묘한 여자였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충격을 받은 표정과 의심스러운 취조, 흔들리지 않던 대답이 떠올랐다. 그녀가 글렌을 감싸고 있고 이런 맹목적인 충성심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건 확실했지만, 그 이유가 그녀도 무슨 관계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185

결국 이야기의 초점은 ‘누가 벨라(용의자인 글렌 테일러가 훔친 것으로 의심받는 아이)를 훔쳤느냐’로 맞춰집니다. 영국 언론의 극성스러움은 이 비밀에 긴장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처럼 보입니다. <헤럴드> 지의 ‘벨라를 찾아주세요’ 캠페인이 아니었다면 사건이 이렇게 오래 이어지지도 않았겠죠. 저도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누가 벨라를 훔쳤느냐’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4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아이의 생존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누가 아이를 훔쳤든 파국은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죠. 아이를 시선에서 놓친 던 엘리엇과 남편인 글렌 테일러와 함께 납치에 가담한 진 테일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죠. 쉽사리 누구 하나에게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둘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파국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죠. 세상만사가 쉽사리 선과 악으로 이어지지 않듯, 회색 시재에서 긴장은 더욱 자신을 증폭시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작가의 기술적 측면입니다. 이 상황에서 독자들은 누구 하나를 쉽사리 범인으로 지목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기본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이런 장르에서는 말이죠. 그러나 용의자가 글렌 아니면 진 테일러로 좁혀진 상황에서 작가는 독자를 의심과 결백 사이를 마음껏 이동시킵니다. 글렌 테일러는 아내인 진에게 벨라가 실종된 당일 아이를 보았음을 고백하지만 그럼에도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데 성공하죠. 아이에 대한 진 테일러의 집착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아무것도 증명해내지 못하고, 그래서 정말로 던 엘리엇의 부주의 때문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죠. 실제로 던 엘리엇은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몇몇 과거의 행적은 ‘이 사람이 간절히 아이를 찾고 있는 걸까’ 의심하게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진 테일러를 ‘애먼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는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서 완급조절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흐름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어요.

앞서 언급한대로 이 소설이 ‘회색 이야기’라는 점 또한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합니다. 때때로 소설 속에서 어떤 종류의 간절함은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령 제게는 꼭꼭 숨은 범인을 찾지 못하는 형사들의 간절함이 그랬습니다. 선과 악이 너무나 뚜렷한 상황에서, 선한 사람들의 ‘잘 설계되지 않은 간절함’은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말죠. 그러나 벨라를 둘러싼 간절함은 누구에게나 절실합니다. 아이를 찾아야 하는 엄마, 감옥에 가지 않으려는 남편, 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아내. 각기 공감을 살 그럴듯한 이유 하나를 가지고 있죠.

기자 출신만이 쓸 수 있는 문장도 참 좋았습니다. 기자들 세계에 녹여낸 현실감뿐 아니라 어렵지 않게 상황 파악을 도와주죠. 눈에 띄는 단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별 의미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거슬렸던 대목들이 후반부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거든요. 그만큼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잘 짜인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과 함께 이 계절이 스릴러 소설의 대목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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