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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
고영직 외 지음 / 이매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부턴가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인문학 경시풍조로 대학에서는 인문학과가 폐지되는 곳이 많다해서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는데, 퍽 반가운 일입니다. 그것은 사회운동 쪽에서 '희망의 인문학' 이름으로 불리며 시작한,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강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도에 성공회대 산하 사회복지기관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벌써 전국적으로 30개 강좌가 넘는다고 하니, 놀라운 속도로 퍼졌네요.

이번 생태독서모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서울 관악, 경기도 수원 등지에서 인문학강의에 참가한 선생님들의 체험과 그 수강생들의 글이 함께  실린 <희망의 인문학>을 함께 읽었습니다. 저번 모임부터는 미리 읽어 올수 있도록 도서목록이 미리 정해집니다. 이를 위해,  녹색평론의 서평에 실린 책목록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녹색평론 5~6월호에 실렸습니다. 

노숙자들에게 돈이나 일자리를 주는 대신, 인간의 존엄성과 숭고한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인문학을 가르친다는 발상은 좀더 인간을 고려한 복지적 접근이라고 보여집니다.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받은 상처와 사회적 냉대는 본래의 인간이 가진 존엄성을 천천히 회복해 갈 때 자신을 일으켜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같이 예술교육이 최근들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퍼져나가는 것도 비슷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문학과 예술을 통해  자신에게 숨겨놓았던 잠재력을 발견하거나, 자신과 세상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더라도, 삶을 지탱하는 정신과 영혼의 줄을 놓친다면, 영영 다시 일어설 가망성이 없기 때문에 인문학강의가 희망의 강의가 됩니다. 문학을 통해서는 역경을 헤쳐간 사람들의 정신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예술을 통해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세계에 눈을 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좀 아쉬운 대목들이 있었습니다. 강의하러 오신 선생님들이 그들에게 쉽게 변화를 기대하는 부분은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인문학강의를 몇개월 들었다고 해서 당장 사람이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노숙자를 보통사람과 달리 특별히 구분하려하기 때문이 아닐까싶어서입니다. 마치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이 온갖 상담을 받아도, 쉽게 치료되지 않는 것처럼 노숙자들이라고 해서 다를까요.

또, 가난한 사람, 노숙자들을 위한 인문학강의에 대한 바람이 있습니다. 인문학강의는 그들이 다시 서는데 필요한 하나의 방법이지,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강생들이 강의를 듣고 나서 어떻게 자신의 일상이 달라졌는지가 궁금합니다. 수업시간에는 문학을 듣고 예술을 논할 수 있더라도, 곧 일상으로 돌아오면 주변의 생활문화때문에 그녀는 시를 읊을 시간적, 내면적 여유를 갖기 힘듭니다.
'돈, 돈하는 세상'에서 생애 처음으로 느낀 감동과 여운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인문학강의가 잠시 누린 사치로 끝나버린다면 너무 아쉬워서입니다. 저는 그 후편으로 공사장에서든, 김밥집에서 일하든, 자신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거나, 그림을 보러가는 취미를 하나 가지게 되었다는 대목을 발견하길 원합니다.

어제 독서모임에서 이 부분이 지적됐습니다. 아펙스님도 노숙자들을 위한 후속프로그램이나 인문학에서 관심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에 적합한 일자리가 만들어지거나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수 있었으면 좋겠다는데 공감했습니다. 책에서는, 영국에서 노숙자들이 판매하는 <빅 이슈>를 소개사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국판 <빅 이슈>도 준비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연히, 우리들의 이야기는 자립할 수 있는 일자리로 이어졌습니다. (마침, 다음 번 모임은 요즘 트랜드인 <사회적 기업>을 다룬 책 <달라지는 세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뜻있는 시민들이 회사의 주인이 되는, 말 그대로 사회가 주인인 기업에서 가난한 사람들도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닿으니,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위 '마인드 계발서'였다면, 사회적 기업은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실천서쯤으로 돼 보이네요. 다음 모임에서 다룰 <달라지는 세계> (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식공작소)목차를 보니, 외국 사회적 기업사례와 지침을 묶었던데, 벌써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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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유영일 옮김 / 양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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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성주의영성모임 1월 독서모임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크하르트 톨레/양문출판사)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시작하기 전에 함께 십자가를 보고 108배를 올렸다.
책제목처럼,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산다는 의미와, 현재를 고요하게 살기 위한 기도방식을 중점적으로 이야기 나눴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은 현존하는 신을 깨닫고 그와 함께 사는 길로써, 영생을 사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도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보내시는 분을 아는게 영생이다"라고 씌어 있다고 하니, 모든 영적스승들의 공통적인 가르침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은 과거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혀 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삶을
지금 여기로 끌어옴으로써 제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이다.
지금 현재에 사는 것은 현재에 온존하여 정체되어 있는 삶이 아니라 현재에 오롯이 존재하며 사는 것이므로 엄청나게 역동적인 삶이다. 매순간 누구에게 끄달려 사는 게 아니라, 자기파워의 장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디언문화에서 행동패턴과 습관을 형성하지 않기 위해 식사시간조차 계속 바꾸는 것도 이런 지혜에서 연유한다. 자신이라고 여기는 정체성, 특정유형에 속하는 정형화, 상처받는 자신을 익숙하게 느끼는 상처받기에서 벗어나면서 항상 자신의 삶을 낯설게 하는 것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럼으로써, 과거에 묵은 때를 벗기고, 자신을 객관화시킨다.
지금 현재를 살려면, 쉼없이 기도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비경, 절기도, 때벗기기 기도는 도움이 된다.
불교의 <자비경>을 읊으며 기도한다. 첫째, 적의 마음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요. 둘째, 몸의 고통,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요. 셋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해주십시요.

절기도를 시작할 때는 "하늘 높이 고양되신 분을 경배합니다. 지극히 존귀하게 되신 분을 경배합니다. 깨달으신 분께 경배합니다." 라며 삼귀의하여 절을 올린다.
감정과 욕망, 어리석음으로 끼인 영혼의 때를 벗기기 위해서는 '탐, 진, 치 명상'을 하면 좋다.
"탐욕스러움을 보여주십시요", "분노를 보여주십시요", "유치함, 무지함을 보여주십시요"

점점 더 가속으로 치달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어 어떤 위기와 부딪힐 지 모를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거란, "자기를 고요히 지키고, 깨어 있고, 좋은 기운과 교감하며 비전닝(visioning)"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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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지구별 웰컴 투 지구별
로버트 슈워츠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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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처럼 다함께 십자가를 향해 백팔배를 올리고,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지난 달에는 머리를 땅에 대라는 걸 못 알아듣고 숙이기만 했는데, 이번에 바람선생님께서 다시 알려주시는 대로 했다. 정수리를 땅에 붙이고 절을 했더니, 머리가 땅에 더 깊숙이 꼬꾸라져 내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고 하느님을 경배하는 느낌이 들었다.

백팔배를 할때, (흔히 바램기도를 하기 쉬운데) 바람선생님은 주기도문에 맞춰 순서대로, "죄에서 사하여 주십시오", "시험에 빠지지 말게 하십시오",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느님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기도를 각각 27번씩하라고 일러주셨다. 무엇무엇을 바라는 게 아니라, 본래 깨끗하였던 영혼의 거울에 불만과 탁한기운으로 생긴 먼지를 닦아내는 기도를 할  뿐이라고 강조하셨다.

둘러앉아, 00님 진행으로 <웰컴투 지구별>(로버트 슈워츠지음/황근하역,샨티) 소감을 나눴다. 반응이 다르게 나눠졌다, "화가 난다는 측"과 "적절한 시기에 접해서 도움이 돼서 감사하다"는 측으로. 저자의 진의보다는 자신의 상황에 따라 책읽기에 대한 소감이 확연히 달라져, 이 책에 반응하는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이 배움의 목적이 있음을 인정한다하더라도, 부조리와 불합리 가득한 세상을 합리화하고 현실을 체념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지 모른다는 점에서 저항이 터져 나왔다.

반면, 저자의 진의에 다가가서 보자. 영혼의 성장을 위해 지구별에 태어난 것은 축복이며, 대단히 용기있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책 주인공들의 사례들을 통해, 오히려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더 큰 '영혼의 나'가 있다는 게 얼마나 희망적인가!

이것과 관련지어 힌두교의 창조신화에서를 언급할 수 있겠다. 창조신화에서는 가장 '재미있는 게임'으로 인간의 목적을 비유하고 있다. 신이 인간을 만들때,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최초의 자신의 형상과 지어짐의 목적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하고, 세상에서 시련과 고통속에 살아가면서 뉘우치고 깨닫도록  설정해뒀다는 것이다. 

시련 가운데서도 우리가 축복과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역설은, 오로지 하느님과 영적소통하는 가운데 있을 때이다. 시련으로 흔들리면서도, 끊임없이 고요한 자기를 지켜가는게 우리가 배울 과제(lesson)이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불구하고, 매순간 결단하고, 그 속에서 고요하게 자신을 지켜라"이다.  
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몰라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순간 결단하고, 고요하게 자신을 지켜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방법이 필요한 것 같다.
'매순간 결단하여 움직이고 행동하거나, 분노 등 갖 가지 감정을 완전히 표출해라',
아니면,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전에 미쳐 옮기지 못했던 행동과 품었던 생각을 멈추고,  영원히 잊어 버려라".
사람들이 고통과 좌절속에 계속 머무르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전에 품었던 기대와 바램때문이다. 직면한 상황에 대해 기대와 집착(또는 미련)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분노의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고 김수환추기경께서 생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씀 한 대목이 오늘 다룬 책과 관련이 있겠다.
"내가 무엇이 되든 괜찮다.  다 하느님께 맡겨라"
받아들임과 내맡김을 통해서 고요와 평정을 유지하는 삶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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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찾아서
베어드 T.스폴딩 지음, 정창영.정진성 옮김 / 정신세계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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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성주의 영성모임의 4월 독서모임은 <초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찾아서>(베어드 T.스폴딩 지음, 정신세계사)1부를 다뤘습니다. 각자 돌아가면서 소감을 나누고, 바람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기적에 대해서 인정하게 됐습니다. 인간의 유한성를 넘어서는 차원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됐습니다. (파이시스)"
"의문시 된 게 많이 풀렸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박힌 고통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나비)
"인간은 하느님과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깨우치고 기억하고, 하느님과 분리되지 않을 때 기적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이 <귀향>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물과 물결의 관계로 비유한 데 공감합니다. 하나를 이뤄가도록 수련해야 겠습니다.
부처=깨달은 자, 그리스도=도 라는 구절이 맘에 와 닿았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무늬입니다. 제 기도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에로스)

"설교에 많이 도움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두려움으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죽음, 빈곤, 이별 등에 대한 두려움이더라구요. 성경에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건 결국에는 사랑, 충만함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어디였는지? ㅠ.ㅠ.) 지난 독서모임의 '약발'이 떨어졌는지 두려움이 엄습해왔던 때에 이 책을 읽고 충만함을 느꼈습니다." (00)
 
바람님의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이런 책은 언제나 픽션에 대한 의심이 붙어다닙니다. 두번째 읽으니까 미국사람중심의 편집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사가 설교하는 게 의아스러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인 1895년에는 서부개척시대가 끝나고 열정이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에게는 아시아에 대한 신비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당시에는 미개인 세계, 야만인 세계에 다녀온 아시아모험담이 유행했기 때문에 미국식으로 편집이 가미됐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 그 어느 시기보다도 과거에 대한 후회,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책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 물 위를 건너는 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사위 힘 안에 우주를 아홉번 터뜨리는 힘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즉, 1 입방센티미터의 진공 속에 우주에너지의 총합보다 더 큰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다고 물리학에서는 설명합니다.

옛날에는 마음을 비우는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쫓는데 저절로 풀어져 나가는게 있구나를 알게 됐습니다. 기도를 꾸준히 계속하면 됩니다. '도'를 체현하는 측면에서 보면, 가다가 멈칫하게 되고,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움이 있잖아요. 이렇게 두려울 때 이런 기도를 합니다. 

"두껍아,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기도와 신비의 바다가 비슷하더라구요. 늘 두려움을 쫓는 기도가 이것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를 알게 되는 게 무섭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떠받히는 강한 힘을 의식하게 됩니다. 진심과 전력을 다해서 자기를 던지세요. 기도를 통해 자기 안에  힘(힘의 성)을 만들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게 구체적으로 (앞에)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의 dream안에 나를 체현하는 자세, 하느님에게 맡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씨가 땅 속에 묻혔다가 생명의 싹을 틔우듯, 자기가 썩는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스도=도 라는 점이 저도 강하게 인상에 남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가족배경때문에 늘 기독교와 불교를 분별하고 싶어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늘 의문을 가졌습니다. 문득, 부처님 가르침이 고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불교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을 어떻게 벗어날까, 도를 어떻게 닦을까, 예수의 사랑을 체현하는데 8정도 법이 유용합니다. (예수는 산상수훈 8가지 가르침을 말씀하셨죠.)
부처는 우리에게 가야할 방향을 가르켜줘서 고맙습니다. 부처, 그리스도가 가르키는 손가락은 결국 우리 속의 하느님입니다. 불교의 8정도의 가르침은 진짜 보석같습니다. 우리를 (불교, 기독교로)갈라놓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저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풍기는 분위기에서 사랑이 나오잖습니까. 의식적으로 애쓴다기 보다는 내 안에 무지와 더러움을 털어내면 저절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에서 기독교를 우월하게 보는 것 같아서 저에게는 걸렸습니다. (평소 저는 주를 찬양하는데 어색해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주를 찬양하는 이유는, 사람을 찬양하지 않기 위해서, 인간의 오만함을 붙들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긍합니다. 인간의 자기정당화에 대한 지적에 수긍합니다. 예수=아버지, 옥황상제(강증산)라고 부릅니다. 서열을 매기는 건 언어싸움입니다. 인간의 인지로 알 수 없는 존재에 가족관계의 서열을 대입하는 게 우습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예화를 소개합니다. 인디언 세계에서는, 제자가 되는 마지막 통과관문으로 어느 동굴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통과하라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이 과제는, 심각하면 죽습니다. 물구나무서기를 하거나 어릿광대짓을 해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아야  합니다.
펄펄 살아있는 존재가 인간과 같이 존재합니다. 즉, 하느님 속에 내가 있습니다.  물 위에 있는 물결이 인간입니다.

어려운 시기가 은총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계속 기도하는 길 뿐입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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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이야기 - 플라스틱 여신의 탄생과 성장
스티븐 C. 더빈 외 지음, 요나 젤디스 맥도너 엮음, 김숙 옮김 / 새움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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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비 이야기> 는 일개 플라스틱에 지나지 않았던 인형이 40여년에 걸쳐 어떻게 '여신'이 되었는지에 대해 역사적, 문화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특히, 백인여성의 비현실적인 몸매를 가진 바비인형이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부추긴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소상히 들려준다. 아울러, 바비를 가지고 논 어린시절의 경험담을 성찰적으로 풀어내 바비에 대한 개인적 의미를 담은 글도 실려 있어, 이른 바 '바비 비평서'라 해도 손색이 없다. 문화비평에 관심있는 독자들의 취향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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