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찾아서
베어드 T.스폴딩 지음, 정창영.정진성 옮김 / 정신세계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여성주의 영성모임의 4월 독서모임은 <초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찾아서>(베어드 T.스폴딩 지음, 정신세계사)1부를 다뤘습니다. 각자 돌아가면서 소감을 나누고, 바람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기적에 대해서 인정하게 됐습니다. 인간의 유한성를 넘어서는 차원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됐습니다. (파이시스)"
"의문시 된 게 많이 풀렸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박힌 고통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나비)
"인간은 하느님과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깨우치고 기억하고, 하느님과 분리되지 않을 때 기적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이 <귀향>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물과 물결의 관계로 비유한 데 공감합니다. 하나를 이뤄가도록 수련해야 겠습니다.
부처=깨달은 자, 그리스도=도 라는 구절이 맘에 와 닿았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무늬입니다. 제 기도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에로스)

"설교에 많이 도움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두려움으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죽음, 빈곤, 이별 등에 대한 두려움이더라구요. 성경에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건 결국에는 사랑, 충만함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어디였는지? ㅠ.ㅠ.) 지난 독서모임의 '약발'이 떨어졌는지 두려움이 엄습해왔던 때에 이 책을 읽고 충만함을 느꼈습니다." (00)
 
바람님의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이런 책은 언제나 픽션에 대한 의심이 붙어다닙니다. 두번째 읽으니까 미국사람중심의 편집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사가 설교하는 게 의아스러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인 1895년에는 서부개척시대가 끝나고 열정이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에게는 아시아에 대한 신비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당시에는 미개인 세계, 야만인 세계에 다녀온 아시아모험담이 유행했기 때문에 미국식으로 편집이 가미됐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 그 어느 시기보다도 과거에 대한 후회,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책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 물 위를 건너는 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사위 힘 안에 우주를 아홉번 터뜨리는 힘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즉, 1 입방센티미터의 진공 속에 우주에너지의 총합보다 더 큰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다고 물리학에서는 설명합니다.

옛날에는 마음을 비우는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쫓는데 저절로 풀어져 나가는게 있구나를 알게 됐습니다. 기도를 꾸준히 계속하면 됩니다. '도'를 체현하는 측면에서 보면, 가다가 멈칫하게 되고,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움이 있잖아요. 이렇게 두려울 때 이런 기도를 합니다. 

"두껍아,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기도와 신비의 바다가 비슷하더라구요. 늘 두려움을 쫓는 기도가 이것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를 알게 되는 게 무섭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떠받히는 강한 힘을 의식하게 됩니다. 진심과 전력을 다해서 자기를 던지세요. 기도를 통해 자기 안에  힘(힘의 성)을 만들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게 구체적으로 (앞에)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의 dream안에 나를 체현하는 자세, 하느님에게 맡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씨가 땅 속에 묻혔다가 생명의 싹을 틔우듯, 자기가 썩는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스도=도 라는 점이 저도 강하게 인상에 남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가족배경때문에 늘 기독교와 불교를 분별하고 싶어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늘 의문을 가졌습니다. 문득, 부처님 가르침이 고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불교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을 어떻게 벗어날까, 도를 어떻게 닦을까, 예수의 사랑을 체현하는데 8정도 법이 유용합니다. (예수는 산상수훈 8가지 가르침을 말씀하셨죠.)
부처는 우리에게 가야할 방향을 가르켜줘서 고맙습니다. 부처, 그리스도가 가르키는 손가락은 결국 우리 속의 하느님입니다. 불교의 8정도의 가르침은 진짜 보석같습니다. 우리를 (불교, 기독교로)갈라놓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저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풍기는 분위기에서 사랑이 나오잖습니까. 의식적으로 애쓴다기 보다는 내 안에 무지와 더러움을 털어내면 저절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에서 기독교를 우월하게 보는 것 같아서 저에게는 걸렸습니다. (평소 저는 주를 찬양하는데 어색해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주를 찬양하는 이유는, 사람을 찬양하지 않기 위해서, 인간의 오만함을 붙들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긍합니다. 인간의 자기정당화에 대한 지적에 수긍합니다. 예수=아버지, 옥황상제(강증산)라고 부릅니다. 서열을 매기는 건 언어싸움입니다. 인간의 인지로 알 수 없는 존재에 가족관계의 서열을 대입하는 게 우습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예화를 소개합니다. 인디언 세계에서는, 제자가 되는 마지막 통과관문으로 어느 동굴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통과하라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이 과제는, 심각하면 죽습니다. 물구나무서기를 하거나 어릿광대짓을 해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아야  합니다.
펄펄 살아있는 존재가 인간과 같이 존재합니다. 즉, 하느님 속에 내가 있습니다.  물 위에 있는 물결이 인간입니다.

어려운 시기가 은총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계속 기도하는 길 뿐입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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