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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조애나 틸은 조류학자를 목표로 숲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연구원이다. 조애나는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자신도 암으로 가슴과 난소를 제거해 더욱 위축되어 더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를 연구하고 있을 때였다. 숲에 있을 리 없는 한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거기다 그 아이는 꾀죄죄한 몰골에 몸 곳곳에 멍과 상처가 있었다. 분명 가정에서 학대받고 있거나 가출한 아이라고 짐작한 조애나는 도움을 주려하지만 그 아이는 경찰의 도움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외계인이라고 밝히며 기적 5개를 보면 다시 자기 별로 돌아가겠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그 아이는 과연 외계에서 온 것일까? 자신은 어디까지 이 아이를 믿어줘야 할까?

그 의문의 아이의 이름은 얼사라고 한다. 다른 은하에서 왔다는 둥, 이미 죽은 이 몸에 들어온 것 뿐이라는 둥 아이의 말은 믿기 힘들지만 홀로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다. 조애나는 경찰에 신고도 해보고 이웃인 개브리엘에게 도움을 청하며 최선을 다해 아이의 정체를 밝히려 노력한다. 빛을 뿜는다던가 하는 휘황찬란한 능력은 없지만 얼사는 아이라고 하기엔 매우 뛰어난 두뇌, 빠른 습득력으로 정말 외계인이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든다.
얼사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조애나나 그 이웃 개브리엘에게도 남모를 비밀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치유되지 않았기에 이 깊은 숲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꺼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숲 속에서 그들은 서로 소통하고 마음 속 아픔을 치유받게 된다. 암으로 인해 두 가슴과 난소를 들어내야 했던 조애나와 과거 부모의 불륜으로 상처를 받은 개브리엘, 그리고 숲에서 발견된 의문투성이 얼사까지. 우리는 심신이 건강하고 항상 기쁨으로 차있는 사람들만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숲과 별이 만날 때'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지만 남을 돌보고 위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며 결국 기꺼이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준다.
처음엔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말밖에 해주지 않던 얼사가 점차 마음을 열며 조애나와 개브리엘과 점점 소통하게 된다. 얼사는 그들과 함께 다니며 조애나의 연구를 통해 첫 번째 기적을 찾았고 개브리엘의 집에서 두 번째 기적을 찾는다. 나는 얼사가 찾는 '기적'을 거창하게 생각했지만 얼사는 숲 속 새들에게서, 귀여운 아기 고양이에게서 감동을 느끼고 기적이라 칭하는 것이다. 얼사도 순수한 마음이 엿보인다.
이 세 사람이 각자 가진 비밀이 너무 가슴 아프고 감히 건드리기 어려운 상처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보여준 포용과 사랑은 더더욱 값져보인다. 흔히 안 좋은 과거를 가진 사람은 트라우마도 깊을 것이라 생각해 그들과 관계를 가지는 일에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그런 상처를 직접 겪어봤기에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따뜻한 동화였다. 삭막한 사회 속 사람 간 끈끈한 정, 깊은 이해가 그리워질 때 한 번씩 꺼내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