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금 죽으러 갑니다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평점 :
평소 스릴러나 SF장르를 즐기는데 우리나라 책은 흔치 않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꼽아봐도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 주로 일본 소설뿐이다. 확실히 새롭고 재밌어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 나오는 이질적인 문화나 이해되지 않는 감정에 몰입감을 방해하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된 '지금 죽으러 갑니다'는 한국 소설! '정해연' 작가님이라고 한다. 한국 추리소설은 실로 오랜만에 봤기에 매우 반가웠다. 더욱이 현실의 문제점을 담았다고 하니 훨씬 더 집중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읽기도 전에 기대가 많이 되었다.
먼저, 책 제목은 '지금, 죽으러 갑니다.'로 되어 있는데 일본의 영화 제목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패러디가 먼저 생각나 섬뜩한 느낌보단 익숙하고 약간 우스운 느낌을 먼저 받았다. 지금 죽으러 간다는 말만 놓고 봤을 땐 마치 홀가분하게 산책이나 나가는 것처럼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섬뜩하다. 표지에 그려진 인물들과 대사만 봐도 '동반자살'을 위해 모인 사람들답게 무겁고 잔인한 말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다섯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인물만이 문의 반대편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처음 보고 나는 반대로 오는 사람이, 모두 함께 죽으려는 다른 사람과 달리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살인자라고 생각하게 했다. 설사 아니더라도 그가 다른 등장인물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책의 서사는 단순하다. 삶이 괴로워 자살을 선택한 자들 중 살인자가 섞여 그들간에 나타나는 갈등과 사건들이 주를 이룬다. 같이 죽자며 모인 5명 사이에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 하나하나 맞지 않는다. 이를 위해 마련한 자칭 메시아조차 의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 중 누가 살인자인지는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드러나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누가 살인자인지 찾고 어떻게 어려움을 벗어나는지가 아니다. 캐릭터들이 매우 입체적이고 특색있다. 단순히 살인자가 나쁘고 잘못된 인물이고, 주인공이 착하고 정의를 쫓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데다 기억까지 잃은 주인공이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며 덤덤히 살아가는 모습에 오히려 죽음을 응원할만큼 애처로워 보였다. 다른 등장인물 역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거나 작은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가진 한편, 죽음 앞에선 남보다 나의 안위를 먼저 챙기고, 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등장 인물 모두에게 양면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마냥 착하고 순진한 모습만 보이는 게 아닌.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등장인물들에게 애정을 가지게 만들고 무엇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주인공은 기억을 잃기 전의 모습과 현재 모습을 재차 보여주어 더 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누구보다 죽음을 원했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만큼 살기를 원했을 그가, 또 어린 시절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면서 그렇기에 탈선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다. 선의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 건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처지가 너무 안 되었기에 가족들에게 그를 버릴 수밖에 없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길, 어쩌면 모든 게 거짓인 오해이길 바랐다. 그만큼 가족의 애정을 원해왔고, 현재 남아있는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살인마는 매우 비슷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가족에게 쓰레기 취급을 받고 내쳐졌지만 한 명은 돈 때문에 죽음에 버려졌고, 또 한 명은 명예가 중요하기에 어떠한 짓을 저질러도 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 배경 차이가 서로 상반된 입장을 만들어 낸 것이 보여 재미있었다.
'지금 죽으러 갑니다' 는 캐릭터 하나하나의 모습과 배경, 그리고 섬세하게 장치해놓은 복선들이 매력있는 책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인공 외의 나머지 등장 인물의 상세한 배경도 보여줬으면 그들의 사정에 더 이입할 수 있었을텐데,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힘듦이 있었는지, 어떤 기분인지 되려 궁금할 정도로 주인공의 모습은 재미있고 입체적이었다. 역시 배경이 한국이고 현실에도 있는 사회 문제, 그렇기에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어 몰입이 높았다. 다른 작품에서도 또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