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 실격 ㅣ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다자이 오사무 지음, 하성호 옮김, 홍승희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책을 안 읽는 사람이라도 '인간 실격'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유명한 자전적 소설이라 하는 이 소설을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낱낱이 파헤쳐 꽤 침울하다는 그 소설. 하지만 난 왜 여태 읽지 않았을까. '인간 실격'은 70년 전에 나온 소설로 고전이라면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전'은 당장 듣기에 어렵게 느껴지는 데다 현대가 아닌 옛 시대상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쉽사리 손이 안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은 유명하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지금도 새로운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판에 자연스럽게 우선 순위에 밀려서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표지부터 일러스트가 가득 그려져 있어 고전에 대한 부담이 한 층 덜어지는 느낌이다. 일러스트 자체도 누구나 보기에 아름답다고 느껴지고 어떤 이야기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작중 주인공의 모습은 다른 사람과 무척 다르다. 날 때부터 사람과 공감이 없는 모습, 감정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동까지 인과 관계가 이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보통 '배고픔', '분노' 등 본능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다.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아닌 존재인 것이다. 주위 사람들, 심지어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감정, 행동을 하고 도저히 적응할 수 없자 주인공은 어릿광대 짓을 하며 가면을 쓰며 살아가게 된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걸 처음부터 깨달아 버렸으니 끝없는 외톨이 신세였을 것이다. 사람의 감정과 행동은 일관되지 않다. 때와 장소, 또 상대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예의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주인공은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조차 어릿광대라는 가면을 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연민이 들기도 했지만 너무 답답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건 그들의 반응을 알고 또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설령 그게 진짜가 아니더라도. 주인공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분노나 예상치 못한 행동이 나온다면 말을 돌리거나 그 상황을 피해버린다. 누구에게 자신의 상태를 말하고 이해 받았을 사람은 없었을까. 주인공의 상태라면 누구나 깊은 이야기를 못하게 되고 쓸쓸해지는 건 당연지사이다. 아무리 날 때부터 인간이 두렵고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상'에 살려면 인간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내면은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모른다. 겉으로 보면 자기주장 못하고 어영부영 남만 따라다니는 이 남자는 소심하고 모자란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더욱이 자신에게 다가와주고 보살펴준 여자들을 번번이 말도 없이 떠나버린다. 이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처음엔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어 주인공이 겪었어야 할 어려움이 안타까웠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개선할 의지 없이 종이처럼 나풀거리는 주인공이 이기적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자신은 날 때부터 부유하고 모자람없이 자랐지만 본인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겪고 있기에 매춘부나 이법적인 것에 끌린다. 누군가에겐 아픈 현실이고 열렬한 희망이자 운동이었을텐데 오직 자기 마음 편하자고 빌붙는 게 또 아니꼬와보였다. 주인공의 성격이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어도 '이해'는 아니더라도 '개선'되어 '적응'할 수 있을텐데.
나는 주인공에게 그리 이입하지 못하였지만 왜 이런 책이 쓰여졌을까 생각해 보았다. 일본은 '남에게 피해를 줘선 안 돼'라는 걸 먼저 교육시킬 정도로 예의를 중요시 여긴다. 그렇기에 더 가면을 쓰게 되고, 쉽사리 남에게 아픔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것 같다. 솔직함이 무례함으로 비춰질 수 있을 테니까. 또 책에 나오는 여자들은 여자 주인공이라고 하기 무색할만큼 존재감도 없고 스쳐지나가는 존재이다. 이들 역시 주인공 못지 않게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이상한 주인공과 충돌하는 장면도 없고 죽음, 사건, 일상이든 수용하고 시간에 따라 흘러들어간다는 느낌이다. 일본의 정서와 내면이 잘 녹아들어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책 표지에 그려진 것처럼 예쁜 일러스트가 내부에 더 많을 것이라 가대했는데 생각보다 부족해서 아쉬웠다. 진행하면서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못 본 것 같은데 글만 있다 갑자기 일러스트가 나와니 흥이 깨지긴 했다. (일러스트 존재 자체가 그렇게 되는지, 너무 적은 일러스트 수가 존재감이 없어 그렇게 느껴졌는지는 몰라도.) 일러스트가 좀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고전은 고전인만큼 불편한 내용도 종종 보였지만 현재와 과거, 또 일본과 우리나라의 모습과 정서에 대해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가면을 쓰는 것에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간에 '선'이란 게 있고 관계의 정도에 따라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다 다르니까.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 썼다고 확연히 느껴져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