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헤미아 우주인
야로슬라프 칼파르시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보헤미아'란 체코의 서부 지역인 체히를 영어로 부르는 말이다. 즉, 체코 사람인 우주인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는 작품 내용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이 책 '보헤미아 우주인'은 마냥 우주에 가서 탐구하는 SF적인 소설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에 적힌 말처럼 체코의 역사, 사회비평, 풍자가 녹아 있는 작품이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사는 곳의 정세가 어땠는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일 것이다. 사실, 체코의 역사나 다른 나라의 상황에 대해 문외한이었기에 부끄럽게도 주인공은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줄 알았다. '벨벳혁명'이라는 명칭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서야 아,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역사들이 종종 언급되고 주인공의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몰라도 상관 없겠지만 체코의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체코는 나치독일에 점령당했다가 소련에 의해 해방 당했고 그 결과 공산당 체제 아래 있게 되었다. 스탈린식 통제정치와 검열 그리고 자치권의 제한에 국민들은 숨죽여 살아갔다. 이에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두프체크라는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일명 '프라하의 봄'이라고도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자유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 현상이 동유럽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한 소련군에 의해 개혁은 저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1989년 11월 바츨라프 하벨이 반체제연합인 '시민포럼'을 조직해 공산 독재체제를 무너뜨려 마침내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시민혁명을 이룩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벨벳혁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모습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단순히 우주의 아름다움과 공허함을 보여주는 소설인 것 같은데 그보다는 체코인의 역사와 그 과도기에 있던 인물을 성찰하는 내용이 더 가깝다. 다른 나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그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꽤 새롭고도 유익했다. 주인공은 착한 인물은 아니다. 선하진 않지만 더없이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고 인간답게 그려냈다고 생각한다.나도 아버지가 사라진 후 그제야 자신의 주변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안위를 챙기며 과거의 영광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는 주인공의 마음은 이기적이면서도 솔직해 마냥 욕하진 못하겠다. 그의 아버지의 실제 모습도 궁금하다. 그는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을까? 무엇이 됐든 이들이 주위에 두려움을 심고 독한 짓을 행했다는 것은 벌받아 마땅한 일이다. 어떻게 그의 이웃들을 고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가? 다른 사람들의 우위에 있다고 느끼고 싶은 졸렬한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몸은 우주를 떠다니는 우주선에 있지만 그의 회상과 번번이 일어나는 사건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우리는 그제서야 그의 과거, 그의 내면을 알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주선에 갇힌 상황에서. 아내 렌카는 사라지고 외계존재를 만나고(혹은 환각을 경험하고) 자신은 영웅이 되어 막중한 임무를 받았지만 손 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기다리는 것 뿐.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의 성격이었다. 선하지도,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은 복잡한 사람의 심리를 명확하게 그려주었다. 그래서 주인공의 이기적인 모습에 비판하면서도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기회에 체코라는 나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이 당시 어땠는지, 실제 살다온 느낌이 들었다. 지루할 수 있는 주제를 우주와 연관시켜 이렇게 휼륭히 얘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니 저자의 필력이 놀랍다. 여태 읽은 책들과 다른 장르다 느낄만큼 신선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