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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그리고 봄
<꽃피는 봄이 오면>을 보고

  남편이 섹소폰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평소 남편은 음악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고 음악을 즐기는 편도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악기의 값이 다른 사람이 산다고 따라 살만한 부담없는 가격도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말로 빈정거려 보았지만 결국 배우고 싶은 열정을 뺏지는 못했다. 거의 매일 교회 지하기도실에서 연습하는 열정을 보이면서 섹소폰에 대한 나의 냉소적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럴 즈음 <꽃피는 봄이 오면>이란 영화에 섹소폰이 나온다고 하기에 남편과 함께 보러 가기로 했다. 영화를 보면서 섹소폰 보다 트럼펫이 더 멋있어 보였다.
  주인공 현우는 늘 진지하고 고뇌에 찬 모습을 하고 다닌다. 참된 음악을 하기 위해 현실적인 것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하는, 적어도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연희와의 이별을 잊으려고 산골마을의 관악부 지도교사로 지내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돕기 위해 자신이 그렇게도 멸시하던 밤무대에서 섹소폰을 연주하기도 한다. 혈육이라고는 할머니 밖에 없는 학생이 할머니를 잃는 슬픔을 보면서, 현우는 묵묵히 자신을 뒷바라지 해 온 어머니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는 가난하고 별 재능도 없어 보이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새삼스럽게 살아가는 기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관악부 단장이자 섹소폰을 연주하는 학생이 자신의 여자 친구와 헤어지겠다고 하자 사랑은 그렇게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던 현우를 보면서 가르치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준다고 생각했다. 현우와 헤어진 연희는 음악을 같이 하던 친구와 함께 현우가 있는 탄광마을로 찾아 가지만 현우를 만나지는 않고 바닷가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걷는다. 그 때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바닷가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가 연주하는 곡은 사랑했던 사람 현우가 작곡한 곡이었다. 그 연주를 들으면서 연희는 지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오합지졸이던 아이들을 데리고 관악연주대회에서 연주를 할 때, 나 또한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러면서 현우의 상처는 점점 회복되고 있었다. 자신을 떠날 것 같았던 연희가 아직 자신의 주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서 꽃 피는 봄이 왔을 때 사랑하는 연희에게도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연희가 운영하는 음악학원에 강사로 채용해 달라고 말하면서...
  인생에 있어서 겨울은 다음 봄을 예비하는 전주곡 정도의 위치인 것 같다. 현우에게는 자신이 들어가고 싶었던 관현악단에 자꾸 떨어지는 것이었으며, 사랑하는 연희가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우는 산골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 긴 겨울을 잘 넘기고 봄을 맞이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 겨울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또 하나 가르치는 일은 피곤한 일이지만 자신의 삶에 더 열정적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 교사인 나에게는 인상적으로 남았다.
  학생들 앞에서 연주한 <꽃피는 봄이 오면>의 메인 테마곡은 최민식이 직접 불렀다는 기사를 보았다. 관악기 중에서 트럼펫이 제일 배우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맡은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배우 최민식, 역시 그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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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이순원 지음 / 세계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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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19세', 심상치 않은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는 짐작과 함께 호기심이 발동했다. 역시 기대가 빗나가지 않았다. 너무나 솔직하게 청소년기 남학생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것에 놀랐다. 사실 99년부터 중학교 남학생들을 가르쳐 왔는데,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성'에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 있는지 몰랐다. 이제 나는 그들의 이 집착을 성장기의 한 과정임을 인정해 주어야 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주인공 정수는 평범한 남자 중학생이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공부는 좀 하고, 자신의 주장이 강한 아이이다. 정수도 이 땅의 모든 어른들이 경험한 사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정수가 경험한 사춘기는 다른 아이들보다 좀더 강도가 세다. 자신의 몸에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여자들의 거기에 털이 났을거라고 당연한 사실을 음밀하게 상상하는 것은 『나는 아름답다』에 나오는 주인공 남선우가 여자 친구의 가슴에 손을 대어보고 아주 큰 가슴에 짓눌리는 꿈을 꾸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나도 중학교 때인가 텔레비전에서 진한 키스를 하는 장면을 보고 그 장면이 며칠동안 나의 머리에 박혀 문득문득 떠오른 경험이 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지만 그것을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 한 책은 처음 대한다. 그리하여 이 호기심의 끝이 어떻게 될까, 무엇이 이 호기심을 잠재우는 계기가 될까 무척 궁금했다. 결국 정수는 성적으로 어른이 되는 경험을 하기에 이르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기대한 것과 달리 후회와 큰 죄의식을 가진다. 후회와 죄의식이 정수가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힘이 되었다는 점에서 굳이 인생의 오점이라고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대가는 톡톡히 치러진 것이다. 이 책이 적나라하기까지 솔직한데도 불구하고 청소년 권장도서인 것은 아마도 성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끝나지 않고 극복해 나가는 성장해 나가는 일부로 다루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 한 가지는 청소년기에 가지는 꿈에 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의 꿈은 현실성이 좀 부족한 꿈이었던 것 같다. 정수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간 형과는 다른 꿈을 꾼다.  대관령 너머에 빨간 지붕을 한 별장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겠다는 꿈을 가진다. 농군의 삶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아는 부모님은 그 꿈을 반대한다. 결국 정수는 열일곱에 농군이 된다. 5천 평 배추밭의 농군이 된 정수. 어른인 농군들과 같이 농사짓고 다방에도 가보고. 비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보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술집도 가고, 그 해 배추농사는 대풍을 이루었고, 그 다음해도 손해를 보지 않을 만큼 이루었다.  그러나 2년의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일찍 어른이 되면서 놓친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학교로 돌아온다. 정수는 그런 결단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아이였고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 부모님이 계셨다. 나의 청소년 시절을 돌아볼 때, 공부하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춤', '노래', '그림'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하는 아이들을 보면 노파심이 발동한다. 정수처럼 스스로 바른 결정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길 바랄 따름이다.
  누가 청소년기를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고 했다. 깔깔거리다가도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는 아이들. 철없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가도 한번씩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아이들. 정말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것 같은 아이들. 때로는 반항적인 말투와 머리, 옷 맵시가 나의 눈에 거슬리더라도 조급하게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어른의 따스한 시선을 가져 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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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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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적 체벌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 책 제목을 어디서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무언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를 했는데 내용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읽기가 머리로 이해하는 활동과 가슴으로 느끼는 활동이 있다고 본다면 이 책은 대체로 가슴으로 느끼는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안아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고 내려 놓아도 발자국조차 생길 것 같지 않는 아이, 군인이 되면 먹을 것도 주고 총도 있고 힘이 생기니까 반군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열여덟 살 모하메드, 열세 살에 반군 대장의 다섯 번째 아내였다가 그 후 자신의 남편을 죽인 정부군 대장의 아이를 낳게 된 레베카를 보면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겪고 있는 이러한 상황은 몇 해의 가뭄이 그 원인인 것 같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정권의 부정부패와 부족간의 내전이다. 오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들어선 정권이 부정부패에 빠져 있고 그 정권에 저항하여 일어난 반군도 세력다툼에나 관심이 있지 그 국민의 삶에는 전혀 무관심하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내전 중에 결국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선량한 국민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굶주리게 되고, 남자들은 군대에 차출되어 가서 죽음을 담보로 전쟁을 하고, 숱한 여자들은 과부가 되며, 아이들은 고아가 되어 떠돌고, 이러는 중에 사람의 생명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가난도 가난이지만 사람의 생명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게 하는 풍조는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이 상처받은 아이들을 내가 원인제공을 하지 않았다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굶어죽는 아이들을 내 눈에 안 보인다고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책 사이사이에 삽입된 사진은 실제 상황을 가슴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김혜자씨가 함박웃음을 짓는 새까만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 밑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모든 아이들은 살아갈 권리가 있다.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사랑과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또 지친 아이들의 사진 밑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사람들은 명상과 자비심에 대해 말하지만, 살아 있는 어린 생명들을 눈여겨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정신이다.” 현실이 비록 이 지경이지만 세상에는 행복, 사랑, 희망, 꿈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러한 것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나누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뱃살 때문에 예쁜 옷도 못 입고, 정말 울적해진다. 어떤 운동을 하면 이 뱃살이 쏙 빠진담’, ‘결혼 10주년 기념일에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해 달라고 해야지.’ 내 생각의 대부분은 이런 비본질적인 것들이다. 가난한 사람이 늘 자신의 주변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밥의 절반을 덜어 놓고 식사를 하시는 「선생님의 밥그릇」에 나오는 선생님처럼 가난한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를 가져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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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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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롱초롱한 눈망울 80개가 나를 주목하는 순간, 이 순수한 영혼들 앞에서 정말로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나에게도 있었다. 처음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를 부른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교무실까지 걸어왔고, 아이들이 나를 따라 교무실로 들어와서 내 등을 치면서 다시 "선생님, 불러도 왜 대답 안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선생님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정말 야릇한 기분이었다.
  『내 생애의 아이들』은 지은이 가브리엘 루아의 20대 초반 교직생활을 회상한 자전적 소설이다. 입학한 첫날, 학교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 빈센토가 선생님을 발로 찬 이야기, 상심을 준 그 아이가 자신에게 달려들어 안기는 이야기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나와 가끔 일어나는 사소한 신경전과 그 후의 화해를 떠올리게 했다. 교사는 아이의 작은 반응에 울고 웃는다.
  신참인 선생님이 자신의 수업에 대해 발전적인 고민에 빠졌을 때, 클레르의 정리 잘된 공책은 그녀에게 큰 기쁨과 격려를 던져 주었다. 비록 클레르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방학식 하는 날에 다른 아이들처럼 선생님께 드리지 못하여 맘 상해 하지만 선생님은 그 이상의 선물을 이미 받은 것이다. 공책검사를 했을 때 정말 잘 정리된 공책을 보고 감탄하며 기쁨을 느낀는 것은 나도 경험해 보았다. 성탄절에 많은 양의 눈을 헤치고 선생님에게 선물을 드리기 위해 달려온 클레르의 마음씨도 정겹다. 비록 그 선물이 보잘 것 없는 손수건일지라도.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내가 잘 가르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 클레르와 같은 아이를 보면 작은 기쁨이 된다. 수업이 정말 엉망으로 끝나버리고 돌아나오는데 "선생님 목 아프시죠?"하면서 목캔디를 내미는 아이가 떠올랐다. 또 강아지똥에게 편지쓰기를 하는 활동에서 '별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듯이 강아지 똥도 그렇다'고 위로하는 내용을 보고 아이들은 역시 내가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해 낼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위로해 줄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닐을 보면서는 그림을 잘 그리는 유경이가 떠올랐다. 드미트리오프를 읽으면서 흔히 교실에서 발견되는 학교부적응아, 학습부진아를 떠올렸고, 아이들이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그들의 부모님이 가장 큰 원인제공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메데릭을 보면서는 공격적이고 반항적이지만 다소 매력이 있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메데릭은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녀도 메데릭을 좋아한 것일까? 교사가 학생을 이성으로 대해도 될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가장 내 마음을 끈 작품은 「집보는 아이」였다. 가난하지만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어른스러운 아이, 앙드레는 나에게도 인상 깊었다. 주인공 선생님은 학교를 마치면 지평선 끝으로 사라져 버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에서의 생활과는 다른 가정의 생활을 궁금해 한다. 바디우집의 초대를 받고서 자신이 매일 바라보던 그 지평선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면서 가난한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눈으로 보게 된다. 그 중에서 늘 피곤해하는 아이 앙드레. 그 아이의 집은 정말로 먼 거리에 있었다. 겨울이 되자 앙드레는 학교에 오지 못하게 된다. 집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궁금해진 그녀는 앙드레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앙드레는 집안 일의 무게에 눌려 있다. 그러나 앙드레는 그것을 불평하지 않는다. 고단한 중에도 공부를 배우려고 애쓰는 앙드레는 그런 와중에도 동생 에밀을 걱정한다. 자신에게 처해진 가난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묵묵히 이겨내고 있는 앙드레를 보며 그녀는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지만 학교생활을 잘 하는 아이에게는 묘한 동정심 같은 것이 생긴다. 주인공 선생님은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이 절제되어 있다. 그 동정심이 그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리라. 모든 아이들이 다 앙드레와 같지는 않아서, 자신이 처해진 환경에 때로는 반항하고 자포자기의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적응해 나가는 것을 본다. 그 옆에서 바르게 성장하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 선생의 자리인 것 같다.
  이 책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와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주로 선생님이 주인공인 소설은 선생님의 가슴 뭉클한 교육애가 돋보이는데 이 책은 너무나 사소한 이야기라서 처음에는다소 실망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 사소함이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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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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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내 행동방식을 진보냐, 보수냐로 말하라고 하면 '생각은 진보로 행동은 보수로'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인 촘스키는 진보의 선봉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는데 모두 다 이해하진 못 했고,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 다국적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 언론을 보라보는 시각 정도만 이해했다. 그것도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셋의 공통점은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속시키기 위해 방송이나 법 등으로 민중을 속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기득권층이 생각한 것처럼 멍청하지 않아 결정적인 순간에 기득권층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주로 기득권층에 해당되는 지식인의 임무는 이런 현상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식인인가'하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책 내용에서 어떤 사람을 지식인이라 했는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지식인의 부류에 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촘스키가 말하는 지식인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사실 나는 일상적인 삶에 파묻혀 사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내 문제는 먼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고, 실상 그 일에 대해 관심이 있다하더라도 바람직한 입장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확신이 안 생긴다는 것이다. 문제를 발견했으나까 해결책도 마련해 보아야겠지. 매일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를 표제만이라도 훑는 것, 그런 후에 사회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바람직한 입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이라크 재파병의 문제가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이미 현실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외교적 불이익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어쩌면 이런 생각조차도 언론의 선전에 세뇌당해 버린 것일까? 아~ 혼란스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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