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MP3가 있다 ㅣ 낭만 가이드 2
크루 편집부 지음 / 크루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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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초등학교를 다니고, 2010년대가 오기전 중학생이었던 나는 아날로그가 가장 발달했던 시절을 겪어봤다. 그때는 명절 용돈을 모아 MP4를 샀었고, 인터넷 지식인에는 어떻게하면 약정지난 휴대폰을 망가뜨려 부모님이 사주게 만들것인가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도 쳐보면 나온다) 나는 아이리버를 썼는데, 그마저도 동생에게 고집부려 돈을 더해 산것이다. 마치 같이 쓸것처럼 말했지만 철저히 나만 썼다. 하지만 설거지를 하던 중 물이 들어갔고, 이후 내 아이리버는 영원히 사망했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그 돈의 반값을 동생에게 갚아야 했다. 어린 나이었지만 다음 명절때 용돈이 생기자 그만큼 반납했고, 동생의 쉰 소리는 끝났다. 이 책 속에서 추억은 옷 속에 이어폰을 숨긴 것이다. 마치 연예인 마이크차듯, 화장실에 가서 주섬주섬 이어폰 줄을 옷속에 넣고 귀에 꽂았다. 그 뒤 교복 치맛주머니에 넣고 아무렇지 않은 듯 문제집을 보는 척 재생버튼을 눌렀다. 왜 했는진 모르지만 한번은 중학교 야간자율을 신청했는데 3반 선생님이 내가 책상위에서 우리결혼했어요를 보는 걸 보고 (P2P 불법다운로드..) 내 MP3를 회수해갔다. MP3를 장기간 마음대로 써보지는 못했지만, 이후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해졌다. 첫 핸드폰은 옵티머스원이었는데, 뭐만하면 핸드폰이 불같이 손난로가 되곤 했다. 스마트폰 중 가장 후린 버전이라 그런지 탭소닉, 애니팡도 깔리지 않았다. 어느날은 내 휴대폰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이어폰 포트가 말을 안들었다. 억지로 줄을 꺽어가며 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줄이 팍 빠지면서 나인뮤지스의 <뉴스> 가 흘러나왔다. 자습시간에 놀라 서둘러 빨리 이어폰을 끼웠다. 이 책을 보며 내 플레이리스트를 떠올렸다. 특이하게도 왼쪽 하단 페이지에는 플레이리스트가 적혀있는데 이 노래중 들어본건 몇개 없었다.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내 없어지고 망가진 MP3를 추억하고 흐뭇하게 봤다. (MP3들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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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는 본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0교시' 자습 시간이 있었는데, 전자사전이 있어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문제집을 펴 놓고 선생님 몰래 노래를 듣거나 인터넷 소설을 읽고는 했다. 교복 안으로 이어폰을 넣어 귀에 꽂고 머리카락으로 귀를 가리면 이어폰 줄이 보이지 않아 감쪽 같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 경험이라고 믿는다) 가끔은 너무 몰입한 나머지 선생님이 뒤에 서 있는지도 모르고 박자에 맞춰 발을 까딱거리다 들킬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럴때면 급하게 전자사전을 닫고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문제집을 내려다보고는 했다. 그렇게 전자사전은 자습 시간부터 야자 시간까지 학창 시절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영어 단어보다 노래 가사를 더 만이 외웠고, 문제집보다 전자사전 화면을 더 오래 들여다보았다. 선생님의 발걸음 소리를 뒤로 한 채, 작은 화면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에 빠져들던 시간이 지금도 또렷하다. _ 32 ~ 33

🔖 미키마우스가 내 손에 있었을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의 일상은 참 재미없었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안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교문을 들어서는 바쁜 발걸음들이 뒤엉킨 웅성거림. 그렇게 교실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0교시가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정규 수업 전에 자율학습과 같은 비정규 수업인 0교시가 있었다. 자율학습 시간이었지만 어쨌던 0교시도 '수업' 이었기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우주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정적이 싫었던 나는 0교시마다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주머니 속을 더듬거려 이어폰 줄과 미키마우스를 꺼냈다. 항상 밀대의 손잡이 부분을 들고 다니던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걸리면 바로 뺏길게 뻔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엉킨 이어폰 줄을 풀어 교복 자켓 안으로 넣어야 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재생 버튼을 누른다. 이때 중요한 점은 이 모든 행동에서 나의 시선이 책상 위 문제집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_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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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자연을 원한다 - 환경신경과학 석학이 밝혀낸 지친 뇌를 가장 빨리 회복하는 방법
마크 버먼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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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가 되고 디지털이 발달할 수록 점점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해진다. 신기하게도 최신기술을 즐기기만 했던 우리들이 세월이 흐를수록 이 사실을 체감한다. 하지만 이것에 사실 이론과 논리, 현실적인 뇌과학이 존재한다는 점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는 '환경신경과학' 이라는 분야를 창제했다. 환경신경과학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에게 자연이라는 요소가 심리적으로, 뇌과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그 자연을 통해 도시 안에서 피폐해진 마음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실용적인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부모님이 전라도 해안가, 산 아래에 사셨던 나는 어릴적부터 담양의 숲, 영광의 바다, 곡성의 뒷산 등 여러 자연을 보며 자랐다. 서울에서 자라면서 벌레를 무서워하고 나무밑을 피하고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동물, 식물들의 입장에서 섭섭함을 느낄 정도였다. 세상에 사람만 있는 건 아닌데라는 마음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좋아하냐 싫어하냐는 취향의 문제다. 하지만 내 어린시절의 교우관계가 좋지 않았음에도 자연을 보러 다닌 것은 분명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꽃과 나무들의 이름을 알고 알려주는 어머니, 해산물의 종류를 알려주고 오이도 (그때는 개방됐다) 에서 따개비를 밟으며 나를 업고 다니고 소라와 게를 잡아주었던 아버지의 추억이 지금도 추억속에 담겨있다. 어릴 적 그런 경험이 없더라도 지금이라도 캠핑을 하고, 집에 큰 식물을 키우거나 그림을 두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 만약 창문너머에 바로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면 이미 이득을 본 것이다. 오늘은 동네 나무와 모르는 나무들을 검색해보며 하나하나 탐구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자연의 일부기에 뇌도 자연을 좋아할수밖에 없다. 인간이 동굴과 자연에 가깝게 산 시기가 문명화가 된 시기보다 더 길고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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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규모 독지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들려면 도시 정부의 지방자치단체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정교하게 설계된 녹지와 수변 공간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데 대규모로 투자해야 한다. 지금까지 충분히 강조했기를 바라지만, 이런 자연 공간과 자연과의 교류는 있으면 좋은 편의 요소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다. 또한 그 효과는 개인의 건강에서 공동체 전체의 건강에 이르기까지 퍼져 나가며 커다른 파급 효과를 낼 것이다.

이는 미래를 잠시 엿본 것에 불과하다. 나는 앞으로 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자연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들어오길 바란다.

독제들이 이 책에서 단 한가지를 얻어간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개인적 요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기를 바란다. 우리라는 존재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고, 개인적 요인과 자연 같은 환경적 요 인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진다. 과학은 녹지에 대한 접근성을 넓히는 일이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 혹은 자연의 근본적인 특징에 둘러싸일 때, 우리는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비로소 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연 혁명에서 여러분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일터와 학교, 집에 자연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 나와 함께 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 보자. 나뭇가지를 올려다 보며 새로운 해결책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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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지능 - 합리적 낙관주의자는 어떻게 미래를 만드는가
수밋 폴초우드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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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낙관주의를 주장하기에는 표면적으로는 책내에 낙관주의로 세상을 망치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허나 나에게는 이것들이 '맹목적 낙관주의' 의 사례로 반면교사를 하려는 사례들로 들렸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비관주의적 사고, 그리고 올바른 낙관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듯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구체적인 것들은 없었다. 현실적인 세세한 계획을 세우고 리스크를 생각하며 자기 주장을 펼쳐야 하지만, 원하는 결과는 있는데 과정에 대한 설계는 세세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았다. 즉, 자기 자신 머릿속에만 터무니없는 유토피아가 존재한 셈이다. 이런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잠시 나도 낙관주의를 잃고, 내 본질인 더 큰 비관주의로 나아갈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어이없는 사례들을 보며 과연 낙관주의가 필요한가를 스스로 사고하고, 나는 결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유토피아라도 그곳에서 생각할 거리가 있고 비판할 거리가 있다면 결국 또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이제껏 역사적으로 인식과 정책이 바뀌며 발전했듯이 덮이고 또 덮여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변해가며 세상도 바뀌어간다. 그렇기에 나는 이 허무맹랑한 상상들도 필요하다고 본다. 단, 위험한 것은 이 맹목적인 낙관주의에 빠져 나 자신이 현실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맹목적 낙관주의자를 신도처럼 추앙한다면 엄청난 문제거리가 될것이다. 부디 숲이 아닌 나무를 보고 10년 100년뒤에 있어왔던 역사보다 바로 코앞에 있는 역사와 현실을 계산하며 가장 최근에 것들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너무 먼 미래를 예상하고, 고집을 부리면 본의아니게 나의 유토피아가 선이 아닌 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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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목에서 과학철학자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였던 칼 포퍼가 떠오른다. 그는 이마누엘 칸트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렇게 말했다. "낙관주의는 의무다. 미래는 열려 있다. 미래는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다. 우연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미래를 결정짓는 데 일조한다. 우리는 미래의 성공에 모두 동등한 책임을 진다." 포퍼의 이 말에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겼다. 낙관주의가 더 밝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는 실천이성의 개념뿐 아니라, 낙관주의가 공동의 의무라는 개념까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왜 의무일까? 기후변화와 핵무기, AI 같은 전 세계적 문제는 결코 혼자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집단행동의 문제가 따른다. 자신이 제 몫을 다하면 남들도 그렇게 하리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지는 결코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보상이 돌아오리라는 기대 없이도 자기 몫을 다해야 한다. 의무는 거기서 나온다. 또한 우리는 서로를 낙관해야 한다. 우리는 경쟁보다 협력에 능하고, 이기적이기보다 관대하고, 가만히 앉아 바라만 보기보다는 고군분투하고 도전하고 극복하려는 존재라고 믿어야 한다.

바로 그래서 섀클턴이 낙관주의야말로 참된 용기라고 말한 것이다. 낙관주의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리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믿으며 행동하는 용기다. 섀클턴과 대원들이 작은 구명정을 타고 안전한 곳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의무감, 공동의 의무 덕분이었다. 만일 우리가 작은 금속 구명정을 타고 우주라는 훨씬 더 관대하고 차가운 바다를 건너 이웃 행성으로 이동해야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의무감일 것이다. 이 현실 도피적 환상을 잊고 현재 우리가 사는 지구를 구하기로 마음먹더라도, 여전히 그런 의무감이 필요할 것이다. 낙관주의는 강력한 힘이지만, 우리 혼자서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 누구의 믿음도 이 세계를 홀로 지탱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우리는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믿어야 한다. _ 363 ~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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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지도를 바꾼다 - 부모·교사·리더를 위한 질문과 성장의 코칭 철학
윤인식.이혜경 지음 / 파지트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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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자주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질문이 올바른 질문은 아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같은 자책의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하는 질문은 애초에 싹 바꾸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 "나는 어쩌다 그런 신념을 가졌는가" 즉, 이미 판단이 완료된 질문이 아니라, 절대 판단하지 않고 분석하는 질문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통째로 나를 판단하는 질문이 아니라, 생각을 쪼개고 계획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이다. 이 책은 리더, 코치, 교사 같은 사람을 관리하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쓴 책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끌어 가야하며, 우리 자신의 리더로 살아간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도 하지만, 내 인생을 누가 살아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내 인생을 이끌어가주는 멘토나 리더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판단의 질문이 아닌 가슴 깊이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끝없이 질문을 던져보자. 그 답이 나오면 행동이 되며 마음이 편해지며 웃음이 피식 나올지도 모른다. 이 책들의 피코치인 (내담자) 들이 그랬다. 마음이 편안해지며 자신에 대한 질문의 본질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적용 대상이 없음에도 충분히 만족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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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키우는 일은
답을 대신 주는 일이 아니다.
필요할 때 가르치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묻고,
자기 힘으로 설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다.

부모와 교사, 리더의 말은
한 사람이 자기 지도를 그려 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공동체의 문화를 바꾼다.

문육(文育) 은 질문을 통해 생각의 주도권을 돌려주고,
각육(各育) 은 자기 경험을 새롭게 보게 하며,
치곡(治穀) 은 깨달음을 작은 행동으로 옮기게 하고,
찬육(贊育) 은 자기 가능성을 스스로 펼치도록 돕는다.

사람을 내 답으로 이끌지 말고,
자기 길을 찾도록 도우라. _ 시작 글

🔖 질문은 상대의 지도를 빼앗지 않는다.
"당신 생각은 틀렸습니다" 라고 선언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이 자신의 지도를 잠시 손에 들고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는 말이 '나는 지금까지 나를 이렇게 생각해왔구나' 로 바뀌는 순간, 작은 거리가 생긴다. 그 거리에서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성격이라고 믿었던 것이 오래된 방어 방식일 수도 있다.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한 번의 상처에서 나온 해석일 수도 있다.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겼던 것이 아직 다시 확인해 보지 않은 지도일 수도 있다.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행동부터 고치려 하기보다 그 행동을 만들어 낸 지도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코칭에서 질문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과 믿음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기 위해 만든 지도라는 뜻이다. 그런데 NLP의 전제 가운데는 이와 나란히 놓이는 흥미로운 표현이 하나 더 있다.

"지도는 영토가 된다"

처음에는 모순처럼 들린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라면서 어떻게 다시 영토가 된다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믿음이 현실을 마술처럼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지도를 믿느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고, 선택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다. 그 행동이 반복되면 실제 삶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지도는 현실 그 자체는 아니지만 현실에 개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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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법 - 설계된 세상을 읽어내는 7가지 수학 도구
노아 지안시라쿠사 지음, 김성훈 옮김 / 청림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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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과 정책 문제에 마음이 흔들리고, 알고리즘에 신경이 왔다갔다 한다. 어쩌다 스크롤을 잘못내려 한참을 쳐다보면 싫어하던 극우콘텐츠도 내 피드를 지배해버린다. 좋아요를 안눌러도 사진을 넘겼다는 것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세계대학순위와 같은 공식적인 통계에 마음이 흔들리기 보다는 자신만의 통계를 만들 것을 추천한다. 자신의 주관적인 순위를 매기고, 그것의 평균을 내고 실행에 옮기는 것. 우리 모두는 국가, 세계적 기관이 말해주는 수치나 검색피드가 모두 공적이고 공평하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서로 더 잘되려고 광고하고 경쟁하고 조작하는 것뿐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반칙을 써서라도 더 인지도를 올리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최소한 이들이 반칙 행위를 하는 걸 알아둔다면, 순위나 광고피드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다. 무엇보다 뒤로 갈수록 내가 원하는 피드로 되바꾸고 알고리즘을 관리하는 방법도 나와있으니 SNS 알고리즘 피드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면 읽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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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급속한 성장이 페이스북 입장에서는 성공이었지만, 대신 필리핀 사회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페이스북 무료 서비스 도입 2년 후에 새로 인터넷과 연결된 유권자들에게 밈과 허위정보를 쏟아부으며 플랫폼을 교묘하게 활용해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페이스북이 무료 광고 기반 인터넷 말고는 인터넷에 접속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페이스북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주요 창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7장에서 살펴봤듯이 페으스북에서 알고리즘을 좌우하는 것은 정확성이 아니라 참여도다. 일단 집권에 성공하자 잔혹한 두테르테 정권은 마약과의 전쟁으로 포장된 대학살로 수천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내가 들어본 매우 가슴 아픈 인터뷰 중 하나는 테크 전문 저널리스트 카라 스위셔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레사를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필리핀에서 두테르테에게 맞서는 언론사를 운영한 레사의 용기에 대해 그리고 페이스북이 그녀의 조국에서 저지른 파격적인 행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30억 명이다.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20억 명이다. 틱톡은 10억 명이 넘는다. 구글은 매일 거의 100억 건의 검색어를 처리하고 있다. 거대 테크기업은 거대한 규모 위에 구축되었다. 광고 수익의 수학적 논리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상에서 이보다 훨씬 더 작은 규모의, 마치 '이웃 동네' 같은 공간을 구성하는 움직임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수십억 명의 낯선 사람들을 거대한 방에 몰아놓고 가장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내는 사람에게 가장 큰 마이크를 쥐어 주는 방식보다는, 소규모 공간이 훨씬 더 정중하고 쾌적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좋든 싫든 인터넷의 경제학이라고 하면, 곧 광고의 경제학으로 통하는 현 상황에서 이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_ 279 ~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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