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지능 - 합리적 낙관주의자는 어떻게 미래를 만드는가
수밋 폴초우드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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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낙관주의를 주장하기에는 표면적으로는 책내에 낙관주의로 세상을 망치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허나 나에게는 이것들이 '맹목적 낙관주의' 의 사례로 반면교사를 하려는 사례들로 들렸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비관주의적 사고, 그리고 올바른 낙관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듯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구체적인 것들은 없었다. 현실적인 세세한 계획을 세우고 리스크를 생각하며 자기 주장을 펼쳐야 하지만, 원하는 결과는 있는데 과정에 대한 설계는 세세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았다. 즉, 자기 자신 머릿속에만 터무니없는 유토피아가 존재한 셈이다. 이런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잠시 나도 낙관주의를 잃고, 내 본질인 더 큰 비관주의로 나아갈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어이없는 사례들을 보며 과연 낙관주의가 필요한가를 스스로 사고하고, 나는 결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유토피아라도 그곳에서 생각할 거리가 있고 비판할 거리가 있다면 결국 또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이제껏 역사적으로 인식과 정책이 바뀌며 발전했듯이 덮이고 또 덮여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변해가며 세상도 바뀌어간다. 그렇기에 나는 이 허무맹랑한 상상들도 필요하다고 본다. 단, 위험한 것은 이 맹목적인 낙관주의에 빠져 나 자신이 현실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맹목적 낙관주의자를 신도처럼 추앙한다면 엄청난 문제거리가 될것이다. 부디 숲이 아닌 나무를 보고 10년 100년뒤에 있어왔던 역사보다 바로 코앞에 있는 역사와 현실을 계산하며 가장 최근에 것들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너무 먼 미래를 예상하고, 고집을 부리면 본의아니게 나의 유토피아가 선이 아닌 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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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목에서 과학철학자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였던 칼 포퍼가 떠오른다. 그는 이마누엘 칸트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렇게 말했다. "낙관주의는 의무다. 미래는 열려 있다. 미래는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다. 우연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미래를 결정짓는 데 일조한다. 우리는 미래의 성공에 모두 동등한 책임을 진다." 포퍼의 이 말에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겼다. 낙관주의가 더 밝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는 실천이성의 개념뿐 아니라, 낙관주의가 공동의 의무라는 개념까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왜 의무일까? 기후변화와 핵무기, AI 같은 전 세계적 문제는 결코 혼자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집단행동의 문제가 따른다. 자신이 제 몫을 다하면 남들도 그렇게 하리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지는 결코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보상이 돌아오리라는 기대 없이도 자기 몫을 다해야 한다. 의무는 거기서 나온다. 또한 우리는 서로를 낙관해야 한다. 우리는 경쟁보다 협력에 능하고, 이기적이기보다 관대하고, 가만히 앉아 바라만 보기보다는 고군분투하고 도전하고 극복하려는 존재라고 믿어야 한다.

바로 그래서 섀클턴이 낙관주의야말로 참된 용기라고 말한 것이다. 낙관주의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리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믿으며 행동하는 용기다. 섀클턴과 대원들이 작은 구명정을 타고 안전한 곳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의무감, 공동의 의무 덕분이었다. 만일 우리가 작은 금속 구명정을 타고 우주라는 훨씬 더 관대하고 차가운 바다를 건너 이웃 행성으로 이동해야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의무감일 것이다. 이 현실 도피적 환상을 잊고 현재 우리가 사는 지구를 구하기로 마음먹더라도, 여전히 그런 의무감이 필요할 것이다. 낙관주의는 강력한 힘이지만, 우리 혼자서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 누구의 믿음도 이 세계를 홀로 지탱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우리는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믿어야 한다. _ 363 ~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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