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가족의 생활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던 그림책 <만희네 집>의 작가 권윤덕.
첫 작품을 낸 지 십삼 년 만에 그 공간을 ‘우리 동네’로 옮겨 그 안에서 함께 일하며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책 <일과 도구>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기만의 화법으로 표
                                 현하는 작가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림책 작가로 만들어준 첫 작품 <만희네 집>



어떤 계기로 그림책 작가가 되셨나요?

1992,3년쯤이었던 거 같아요. 안양에서 미술운동을 하다가 운동을 정리하면서 딱히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시사만화나 회화 쪽을 생각했었는데... 당시에 그림책 분야는 예술로 생각도 못하고 그저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초방>을 통해 정승각 씨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알게 된 거죠.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새롭고 다양한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옛이야기에 삽화를 첨가해 넣는 정도가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것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죠.
정감 있는 동?? 많이 좋아했어요. 아이가 심부름 가는 장면, 그리고 아이가 골목길을 빠져나갔을 때, 멀리서 풍경을 잡은 장면에 피아노치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었죠. 그걸 만희가 발견해내는 걸 보고 아이와 엄마가 보는 게 다/> 당시 작가도 몇 분 없었어요. 고민하던 끝에 시작했어요.

글과 그림 작업을 모두 하시잖아요. 글 작가, 그림 작가로서 각각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을 받아서 작업할 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둔 글을 아직 못 만났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글 작가가 모든 이야기를 이미 글로 해버려서 그림이 들어갈 여지가 적은 거지요.
그림책 글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과 그림을 함께 할 경우, 글맛은 글 작가의 글에 못 미칠지라도, 내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적절하게 조절하며 풀어갈 수 있어요. 글과 그림을 서로 맞춰 가다 보면 표현의 영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처음의 글 원고가 그림이 완성돼 가면서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일과 도구>의 경우도 처음 글은 지금 책에 실린 글과는 전혀 달랐어요. 그림을 그려가면서, 그림을 채색까지 다 끝내고서 글을 다시 다듬은 거지요.



모든 작품이 그러시겠지만,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시다면?

모두 애착이 가지요.(웃음) <만희네 집>은 첫 작품이라 많이 애착이 갑니다. 지금은 <일과 도구>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난 터라 거기에 애착이 많이 가네요.
돌이켜 보면 <만희네 집>,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일과 도구>는 정보책의 성격이 많은 편이라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책들은 감정을 끌어내기는 좋은데, 현실을 기반으로 깊이 고민한 이 책들보다는 매력이 좀 떨어지는 거 같아요. 작업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이런 작업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10여 년쯤 지나서 다시 이런 책으로 돌아온 거죠. 힘은 들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작업이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페이지는 어떤 건지요?

좋은 쪽으로 하나, 마음에 걸리는 쪽으로 하나가 있어요.
좋은 걸로는 <만희네 집>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집 도면이에요. 작업하면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많이 묻어 있는 단독주택을 통해 가족의 생활을 표현하다 보니 남녀의 성 역할을 고정시켜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어요. 아파트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전통적인 가옥 구조에서는 남성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지요. 아빠가 개밥 주는 장면으로도 해봤는데 너무 어색했어요.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집 도면 페이지에서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할머니는 누워서 주무시고, 할아버지와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그려서 나름대로 고민을 해결했습니다. 그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하나는 죄책감이라고 느꼈던 것인데,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에 아빠, 엄마, 딸, 아들이 내복을 입고 방안에서 노는 장면이 나와요. 그릴 당시에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렸는데, 몇 년 지나서 나중에 가족이라는 게 뭘까 다시 생각하면서 엄마와 딸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우리 현실은 편모나 편부, 그 밖의 다양한 가족들이 있는데, 혹시 아이들이 이걸 보면서 행복한 가정의 표본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작품에 이른바 ‘전형적인’ 가족을 등장시키지 않았어요. <시리동동 거미동동>에서는 엄마와 딸만 나오죠. <일과 도구>에서는 아이가 가족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설정했어요.

  

<만희네 집>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인데요. 이런 방식으로 구성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미술운동하면서 그린 그림이 굵은 선 중심의 걸개그림이었는데, 미술운동이 끝나고 나니 무얼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했었나 싶었어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선을 끌어당겨 내 주변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죠. 처음육용으로 생각하고 아파트 구조와 전통 가옥 구조를 비교하면서 옛날 것이 좋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삶의 공간이란 것이 각각 자기 시대 환경의 산물인 거고, 따라서 그렇게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스케치하면서 아파트 부분을 아예 빼버렸어요. 그 대신 지금 실재하는 가옥을 통해, 아직도 전통이 얼마나 쓸모 있게 잘 살아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마침 어머님이 아프셔서 수원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어요. 광에는 놋그릇, 뒤주 같은 살림 도구들이 들어가 있고, 부엌의 장식장에는 신식 커피 잔이 나와 있었죠.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정서를 엿보면서, 놋숟가락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막 벗어놓은 신발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도 읽을 수 있는 법 아닌가요? 말로 이렇다 저렇다 표현하는 것보다 사물들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만희네 집>은 그렇게, 삶이 묻어 있는 공간을 보여주려고 했던 책이에요. 미술운동 할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던 거죠.

 

미술운동은 어느 정도 하셨나요?

거의 5년 정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내 황금기를 거기에 쏟아 부었던 셈이죠. 미술운동을 정리할 때의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그때 많은 분들이 그랬듯이, 영광보다는 상처를 안고 운동을 정리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주변의 작은 것에 집중하고, 그것들을 더 소중하게 보듬으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만희네 집>이 나왔을 때 실제 만희가 무척 좋아했겠습니다.

어렸을 때 많이 좋아했어요. 특히 도서관에서 <만희네 집>을 보면 아주 기뻐했습니다. 다 커버린 지금은 <시리동동 거미동동>처럼 조금 추상적으로 그린 그림이 좋답니다. 이억배 씨의 책 <솔이의 추석이야기>에 나오는 솔이도 그 책을 많이 좋아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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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이 구두를 만들며 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 <일과 도구> 작가 후기 중에서- 

 

 

신간 <일과 도구>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기획하시게 된 건가요?

카센터 도구들, 특히 어릴 때 미장원에서 본 고데기, 파마할 때 쓰는 미장원 도구들, 바느질 도구들을 볼 때마다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것들을 한 번 원 없이 그려보고 싶었나 봐요.(웃음)

<일과 도구>에서 특히 집중하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그림책의 내용에 따라 그림풍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성이 강한 그림책은 사실에 기반을 두게 되지요. <일과 도구>의 경우에는 직업들 사이의 편차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현실 속의 직업들은 실제 환경도 서로 많이 다르고, 사회적 편견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그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건 그것들을 지금 그대로 고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지향하는 건,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의 일터가 소중하고, 그런 만큼 모두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작업장을 꿈의 공간처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일하는 분들이 자기 일에 몰두할 때 모습을 보면 그 공간이 실제로 꿈의 공간이기도 했고요. 구두공장에서 구두가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은 그 때문이에요.
구두공장이 가장 애착이 가는데, 일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중년이셨어요. 작업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지요. 그분들의 자녀가 아빠 일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할까? 여전히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해줄까? ... 취재할 때 처음엔 많이 거부당했어요. 되도록 사진은 찍지 말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하루 종일 오리고 붙이고 못 박으며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분들이 하나의 기계처럼 보였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바쁜 몸놀림에 쓸쓸함이 배어 있다고 할까요? ... 현실은 그래요. 그러나 현실에 머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남자 직공이 멋지게 기타 치는 모습을 그려 넣었어요.
구두공장 아저씨가 그러셨어요. 이런 일을 왜 취재하느냐고. 이렇게 대답했죠. 아이들이 백화점에 가면 진열대에 구두가 엄청 많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구두들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하나하나 땀 흘려가며 만들어 낸 소중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아경계심을 풀고, 오히려 고생한다고 위로까지 해 주시더라고요. 취재 가는 곳마다 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그러면서 책의 구도도 많이 바꾸었지요. 책의 마지막 장면은 본래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먹는 것이었는데, 아이가 일터에서 어??들이 물건을 사고 사용할 때마다 이 물건을 어디에서 누군가 정성들여 만들었겠구나, 그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여자 아이들이 구두 공장 페이지를 보면서 예쁜 신발을 만드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봤습니다. 구도를 흔들었던 작가의 의도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직업마다 네 쪽씩 구성되어 있는데 도구들을 보여주는 앞 장은 스케치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뒷장이 아주 어려웠어요. 할 수 없이 2차 취재를 다시 나갔어요. 거기서 해결점을 찾았지요. 옷 만드는 곳에 갔을 때인데, 재단실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손가락을 눕히고 가위질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목공소에서, 목재의 직각을 확인하느라 긴 나무를 비스듬히 들어 올려 한쪽 눈을 감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목수 아저씨 모습도 그랬고요.
예전에 미술운동하면서 여공들과 그림 수업을 할 때, 그네들이 기계를 참 재미있게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일하는 사람의 시선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앵글, 그런 것이 참 재밌었어요. 어떻게 해야 일하는 것, 노동의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고학년 동화라도 되면 모르지만, 이런 그림책에서는 일일이 말로 풀어낼 수도 없잖아요? 일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재현해 내는 일, 제가 많이 고민한 것이 그것이에요.

<일과 도구>에는 일곱 가지 일과 일터가 나옵니다. 처음 생각하셨던 직업 중에서 제외하신 직업이 있으신지?

처음엔 방앗간이 포함돼 있었어요. 부암동 <동양방앗간>에 취재를 갔는데 거기 할머니가 아주 고우시고, 말투가 마치 신화 속의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방앗간을 그려야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방앗간 일이 농사와 요리와 겹치더라고요. 농사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요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데.... 그래서 방앗간이 빠지게 되었죠.
카센터도 생각했었는데, 자동차를 고치는 일 이전에, 자동차라는 물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생각이 복잡했어요. 자동차가 이미 집집마다 필수품처럼 돼버리긴 했지만, 그것이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그리고 미래 산업 발전과 관련해서 예민한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잖아요? 이런 생각 때문에 카센터를 빼버렸습니다. 맨 앞의 동네 지도에, 넓은 길에 비해 자동차가 많지 않은데, 혹시 제 생각을 눈치 채셨어요?

병원(의사) 장면에 하트가 많던데요.

아이들이 병원 가기 싫어하잖아요. 의사가 환자를 사랑으로 치료한다는 의미도 있고, 마침 간호사 선생님의 목걸이도 하트 모양이었고요. 다른 한편에서는, 그 장면에서 신체의 일부만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박스 같은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취재 갔던 병원이 공단지역 어려운 처지의 환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어요.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아빠가 얼굴이 파랗게 변한 아이를 안고 병원엘 뛰어들어 왔어요. 의사 선생님이 응급처치 해서 토하게 하니까 혈색이 차츰 돌아오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아이를 살려내는 걸 보면서, 병원이라는 곳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긴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아이가 그 아이인데, 그 얘기 전체를 그림으로 다 그려낼 수는 없잖아요? 그나마 하트로 부분 부분을 잘라서 표현할 수 있었지요.

여자 아이와 함께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있으신가요?

우리 집 고양이를 모델로 했습니다.(작가는 실제 ‘진주’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고양이가 앙큼한 데가 있고, 겁도 많고, 여기저기 너무 잘 숨어요. 개는 주인을 따르고 주인 비위 맞추기 바쁜데, 고양이는 오히려 사람보다 한 수 위인 거 같아요. 개는 자기가 인간인 줄 착각하고, 고양이는 자기가 신인 줄 착각한다고 하던데, 저는 그런 고양이가 좋아요. 사람이 고양이를 닮아야 한다고 하면 아주 우스운 얘기가 돼버리지만, 저는 아이들이 하나하나 똘똘한 주체로 커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고양이하고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거지요.
그리고 고양이를 세워 놓으면, 사람과 닮은 듯한 면도 있어요. 신발을 신키고 팔과 손을 움직이도록 해도 어색하지 않고.

<일과 도구>는 그림을 모두 비단에 그리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비단 그림은 발색이 자연스러워요. 앞뒤로 채색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데, 흐린 색을 앞뒤로 엷게 더해 가면서 색을 곱게 낼 수 있습니다. 한지에서는 물감이 뒤로 빠지기 때문에 선명한 색을 내기가 힘들거든요. 뒤에서 칠하면 강한 색도 거칠지 않고앞뒤로 빨간색을 거듭 칠해서 섬유 공간을 촘촘히 채우는 거지요. 그러다가 잘못 칠하면 비누칠을 해서 칫솔로 지워내기도 합니다. 물감이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앞뒤 각각 두 번씩 아교를 칠하고 작업했습니다.
이번 그림은 채색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물감 접시를 놓고, 칠하고 나서 붓을 빨고, 다시 칠하고 나서 붓을 빨고... 그러면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작업을 하니까 나중엔 팔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어깨 신경에 염증에 생겼다고 쉬어야 한다고 하데요. 그림책 일도 중노동에 속하는 직업이에요.(웃음)
<일과 도구>의 검은 색은 검은색 물감을 단번에 칠한 게 아니라 빨강, 초록, 파란색을 엷게 뒷면에 발라서 만들어 낸 겁니다. 초록은 노랑과 파랑이 섞인 색이니까 결국은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이 됩니다. 여기에 먹색을 섞으면 4도 인쇄와 원리가 통하는 거죠. 불화를 그릴 때 이 원리에 따라 그렸어요. 붓을 물감에 찍을 때마다 물감의 농도가 다르기 마련인데, 매번 그 농도를 조절해 가며 덧칠을 해서 깊이 있고 풍부한 질감의 색을 만들어 냅니다. 중국집 장면 속 프라이팬의 검은 색 같은 것은 검은색을 단번에 칠해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는 이렇게 끊임없이 시선을 잡아끌 수가 없죠.

 

 

 

01_그림 작업장 모습


권윤덕 작가의 그림 작업장 모습.
불화 기법을 응용하여 작업을 한 <일과 도구>는 비단에 그림을 그렸다. 숨기를 좋아하는 고양이 "진주"가 그림 도구 속에 숨어있다.


 

 
 
 
01
 

 

 
         
 
 
 
 
         
 

 

02_비단에 그린 그림


비단 뒷면에 먼저 채색을 하고(맨 위), 앞면에 다시 색을 입힌다(중간). 이렇게 하면 좀 더 깊고 고운 색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색으로 강조점을 잡아가면서 완성한다.(맨 아래) 

   

 

"비단 그림은 발색이 자연스러워요. 앞뒤로 채색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데, 흐린 색을 앞뒤로 엷게 더해가면서 색을 곱게 낼 수 있습니다."
           

           - 권윤덕 작가 인터뷰 중에서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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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03_주녹청 그림 물감과 도구들

<일과 도구>는 블화 그리기 원리를 이용하여 작업하였다.

작가는 빨강, 초록, 파란색의 물감을 엷게 겹쳐 덧칠을 해서

깊이 있고 풍부한 질감의 색을 만들어 냈다.

 

 

 

 

 

 

 

 
 
 
         
 

불화는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요?

불화 하시는 스님한테서 불화를 배웠습니다. 그 후에도 고려 불화 책을 구해서 혼자 보고 따라하며 연습했어요. 논문도 찾아 읽고, 이렇게 저렇게 실험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일과 도구>를 처음에는 실제 불화처럼 진하게, 즉 진채로만 할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아무래도 쉽게 질릴 거 같아서 담채와 진채를 섞어서 표현했습니다. 고려 불화를 공부하면서, 전통적인 미 양식을 배우고, 또 그것을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불화를 설명하고 있는 작가

권윤덕 작가는 불화 하시는 스님한테서 불화를 배웠고, 고려 불화 책을 구해서 혼자 보고 따라하며 연습했다고 한다.

 
 

권윤덕 작가가 그린 불화1

고려 불화 관련 논문에 나타나 있는 표현 기법을 찾아 보면서, 이리저리 색을 맞춰가며 그린 불화라고 한다.

 

 
 

권윤덕 작가가 그린 불화2

비치는 투명한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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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꾸는 작가, 권윤덕


 

작가는 작품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데, 아이들과 소통하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그림책에 몇 가지 숨겨 놓는 장치들이 있어요. 이쯤에서 아이들이 발견하면 좋아하겠다 싶은 걸 곳곳에 숨겨두는 거지요. 그걸 발견하는 아이들은 희열을 느끼고, 이를 통해 작가와 깊이 대화하는 셈이지요.
<만희네 집> 마지막 장면 바로 앞 장을 보면 방문 하나가 닫혀 있어요. 그 방만 소개가 안 돼서 의도적으로 문을 닫은 거였는데, 이것을 저도 잊고 있었어요.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왜 이 방문만 닫아 놨냐고 물으시는데...(웃음) 저도 덕분에 10여 년 만에 잃어버린 방을 되찾은 느낌이었습니다.
<일과 도구>에는 페이지마다 시계를 숨겨 놓았어요. 또 고양이가 숨어 있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어쩌면 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하나하나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평화를 테마로 한 그림책 작업을 하고 계시다는데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 중, 일 삼국의 작가들이 평화를 주제로 함께 그림책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제가 하기로 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인데, 너무 어렵습니다.(웃음) 그림책 글 원고를 아무리 써 봐도 할머니의 증언을 뛰어넘을 수 없더라고요. 증언 자체가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그림책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요. 1940년대의 역사적, 지리적 상황, 일본군과 위안소의 실상, 할머니들의 육? 않고... 과장 없이 드러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그게 제대로 될지 아직 막막한 상태입니다. 취재부터 열심히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그림책을 계속 그리실 계획이신지?

<일과 도구>와 지금 하는 작업이 긴 호흡을 필요로 한 작업들이라 숨이 차서 좀 쉬운 걸로 하고 싶습니다. 스스로도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해 보려고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원하시나요?

사회 문제에 관심이 갑니다. 사회 문제가 따로 있다기보다, 우리들이, 그리고 아이들이 본래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그림책이 주제의 측면에서 사회 문제와 잘 결합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 문제 같은 것도 다뤄보고 싶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주제를 잘하고 나면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외의 여성 문제, 폭력 문제, 분단 문제도 다뤄보고 싶고요. 다른 작가들이 잘 안 다루는 분야라서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내 능력이 미치는 정도 안에서나마 그렇게 노력해보고, 그 결과로 평가받고 기억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엄마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엄마들이 그림책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알아주었으면 해요. 엄마들에게 재미있어야 아이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히게 될 테니까요. 영화감독을 찾아서 영화를 골라 보듯이, 그림책 작가를 찾아서 그림책을 골라 보는 정도가 되면 더없이 좋겠죠.
<일과 도구>를 본 어느 편집자가 전화로 이런 말을 해 주셨어요. "사회와 노동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이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아직 많은 게 부족한 우리 그림책 시장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이지만, 제게는 턱없이 분에 넘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림책 작업에서 작가 정신의 중요성을, 그것을 촉구하는 말로서 공감하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와 출판사가 애써야 할 일이지만, 엄마 독자들께서도 시야를 새롭게 가져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선, 그림책을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림책과 동화책을 혼동하고, 그림책의 그림과 동화책의 삽화를 혼동하는 경우가 아직 많아요. 기회 있을 때마다 열심히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쉽지 않은 일이지요.

좋은 그림책이란 어떤 그림책일까요?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아이들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그림책이 제일 좋지 않을까 합니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으면 진실성이 떨어질테니... 그림도 자기의 느낌에서 솔직하게 출발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본 듯한 그림이 계속 반복되지요. 그저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그림이 되기 일쑤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그림책, 그런 게 좋은 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사실 저는 그림을 못 그린다는 콤플렉스로 10년을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노란 우산>의 류재수 선생님이 제 그림을 보고 칭찬을 해주시면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게 뭐냐? 기법이 세련된 그림이 잘 그린 거냐? 그건 볼거리가 있다는 거지 잘 그렸다, 못 그렸다 와는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많은 용기를 주셨어요. <일과 도구>를 작업할 때도 ‘빨리 끝낼 책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끝내야 할 책’이라고 격려해 주셨고요. 잘 그린다는 게 도대체 뭔가? 잘 그린 그림으로 만든 책이 곧 좋은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저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권윤덕에게 그림책이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작가가 하얀 백지를 앞에 놓고 앉으면 머릿속에 무궁무진한 생각들이 만들어지죠. 그걸 담아내는 것이 작품 활동이고, 그 과정에서 힘든 일, 괴로운 일도 많이 겪어요. 작가로서의 삶이란 게 그것 밖에 따로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제게 그림책은 제 삶을 만들고 또 남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도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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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굴욕
 
 크리스 헤지스 l 옮긴이 김한영 l 발행일 2011년 9월 5일  

 

 《미국의 굴욕》은 여태껏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미국의 맨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숨은 치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미국이 처한 위기,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통찰한 책이다.

 

-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꽃,미국이 죽어가고 있다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미국의 5가지 불편한 진실
- 미국의 위기를 거울삼아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성찰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꽃, 미국이 죽어가고 있다
《미국의 굴욕》은 미국의 숨은 치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미국이 처한 위기,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통찰한 책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비판적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 크리스 헤지스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꽃 미국이 죽어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하나하나 증명하는 것처럼, 이 파탄의 조짐은 단순히 금융 위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 경제 문화에서부터 일상과 정신세계에 이르기까지 체제와 삶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은 여태껏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미국의 맨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미국 파탄의 근본 원인이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전제한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환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으며, 삶은 “거대한 쇼”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본모습보다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고, 진실보다는 광고와 선전이 더 설득력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는 잡동사니 정보와 유명인의 뒷공론이 지식이 되고, 포르노는 사랑이 되며, 교육은 체제 유지와 권력 세습의 도구가 되고, 심리학은 행복을 파는 돌팔이 과학이 되며, 빚은 경제를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그러한 환상을 팔아 살아가는 이른바 전문가를 자처하는 유명인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궁극적으로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든 거리끼지 않는 탐욕스런 기업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기업 권력은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서 대중문화와 언론 심지어 정부까지 장악한 채, 나도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처럼 유명해질 수 있고,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다 이루어질 수 있으
며, 돈이 돈을 벌어줄 거라는 자기기만의 덫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저자는 단언한다. 만일 미국이(또는 미국인들이) 이러한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끝내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미국의 5가지 불편한 진실
이 책은 오늘날 미국인들의 삶과 정신을 사로잡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또는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나아가 거기에 더 적극적으로 집착하고 갈망하게 만드는 5가지 황홀하지만 치명적인 환상들을 다룬다. 이 환상들은 각각 대중문화, 포르노그래피 산업, 엘리트주의 교육, 긍정심리학, 그리고 빚잔치로 운영되는 국가경제를 둘러싼 것들로, 서로 맞물려 미국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거대한 하나의 쳇바퀴를 이룬다.
1장 ‘지식의 환상’에서는 프로 스포츠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분석을 통해, 미국 위기가 미국인들의 지적 능력 저하와 어떻게 깊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살핀다.
미국 노동자 계층이 주된 관객인 프로레슬링은 복수와 출세의 드라마가 기본이다. 비천한 신분에서 신화 속 영웅으로 격상되는 이 드라마에 관객들은 열광하고, 스스로를 그들과 동일시하면서 링 밖 고단한 세상사에서 벗어나 짜릿한 해방감을 맛본다. 리얼리티 변신 프로에서는 성형외과 ‘드림팀’이 등장해 볼품없는 한 여성을 이상적인 여체를 가진 새 사람으로 ‘교정’시켜준다. 이 여성은 결혼 파탄, 실직 등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 완전해지고 유명인이 된다. 가수나 모델 발굴 오디션 프로, 인기 토크쇼, 유명 종교인의 설교, 실업계 거물의 자기계발서 등 모든 대중문화가 유명해지라는 열망을 부추기고, 유명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긴다. 유명인들을 신으로 숭배하면서 그들처럼 되고자 소망하는 오늘날의 이런 대중문화를 저자는 ‘유명인 문화(celebrity culture)’라고 말한다. 이 문화에서는 부와 명성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리고 누구든 간절히 바라면서 숨은 자질과 능력을 계발하면 유명해지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이 유명인 문화가 미국인들의 지식 수준 하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진단한다. 대중문화의 저급함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지적 능력 저하와 맞물려 돌아간다. 미국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문맹이거나 겨우 읽고 쓸 줄 알 정도로 문맹률이 심각하며, 예능 프로에서 선거 토론까지 모든 대중 담론은 10살짜리 아이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이 수준에서 오락과 지식이 제공될 때 사람들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 능력을 잃어버리며, 그런 문화는 멸망에 이르고 만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2장 ‘사랑의 환상’에서는 극단에 이른 환상의 문화의 또 한 예로 포르노그래피 산업을 분석한다. 저자는 전직 포르노 배우와 포르노 중독자, 업계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포르노물의 충격적인 대사와 장면들을 지면에 그대로 옮겨 싣는다. 그리하여 포르노의 잔인성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배우들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포르노그래피 산업이 인간(특히 여성)의 사물화와 상품화, 폭력 숭배 사회를 정확히 반영하는 거울임을 폭로한다.
3장 ‘지혜의 환상’은 엘리트주의와 돈에 물든 미국의 교육과 그 시스템에서 배출된 전문가들이 미국을 어떻게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지 분석한다. 이른바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들은 엄청난 기부금을 거둬들인다. 돈을 내는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 또한 이들 대학 출신이고 그들의 자녀들 역시 그 대학들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사교 클럽에서 인맥과 관계를 쌓고, 졸업 후에는 정관계와 재계의 요직을 차지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 교육은 부와 권력의 대물림을 착실하게 수행해낸다.
문제는 이 엘리트들이 모두 체제 유지 및 관리 집단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엘리트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권위에 도전하거나 자기비판을 통해 기존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법을 모른다. 이는 대학들이 기업의 손에 장악되고, 실용성이 없는 학문들은 모두 퇴출되는 미국 교육의 현실과 궤를 같이한다. 인문학은 고사 지경에 이르렀고, 대학들은 지혜를 갈고 닦고 정신과 도덕성을 살찌우기보다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오늘날 미국의 지배계급은 경제 위기를 포함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그저 자신들이 배운 대로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을 줄만 알 뿐이다. 저자는 냉담하게 잘라 말한다. “그들이 우리를 구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그들은 그 방법을 모른다. 그들은 심지어 문제를 제기할 줄도 모른다.”
4장 ‘행복의 환상’에서는 행복을 설계할 수 있다는 긍정심리학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자기기만이고 현실도피로 귀결되는지를 밝힌다.
5장 ‘미국의 환상’은 금융 위기를 기본으로 삼아, 껍데기뿐인 환상의 제국의 실체를 파헤친다. 미국 경제 위기는 최근이 아니라 오래 전에,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생산의 제국’에서 ‘소비의 제국’으로 넘어갈 때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돈이 돈을 벌어준다’는 카지노 자본주의 체제와 그 체제로 이득을 보는 자들이 있다. 카지노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세계화라는 타락한 이데올로기를 팔면서, 복잡하고 불법적인 거래를 통해 부채를 마법의 자산으로 변질시켜 사람들에게는 허구의 부를, 지배계급에게는 거액의 부를 창출해주었다.
정부가 기업과 결탁한 또는 기업 권력에 잠식당한 이른바 법인형 국가, 기업 정부의 출현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미국을 속으로 곪아가게 만들었다. 미국의 부채는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을 정도로 불어나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다. 기업들은 생산설비를 해외로 옮겨 제조업의 기반을 파괴하고, 방위산업체들은 정부를 대신해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엄청난 이권과 이득을 누려왔다. 전체 소득의 50% 가량을 상위 10%가 가져가고 또 그중 대부분을 상위 0.1%가 가져간다. 이런 부의 편중은 노동자 계층을 가난으로 몰아넣었고,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다. 이 와중에서 도로, 철도, 하수도 등 기간시설들은 노후화되고, 의료보험을 비롯한 복지는 돈 없는 사람들을 길거리와 감옥으로 내몬다. 미국의 수감자 수는 전 세계 죄수의 25%를 차지한다.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각종 공안 법안의 제정으로 영장 없이 체포 구금이 가능하며, 정보기관은 개인의 전화와 이메일도 마음대로 수집할 수 있다.


미국의 위기를 거울삼아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성찰한다
미국 사회와 문화의 밑바닥에서 이끌어낸 이 날카로운 증언과 예언들은 낯선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갈수록 공고해지는 세계화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이 책이 이야기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일부는 이미 살아가고 있고 일부는 닮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위기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위기인 동시에 우리의 위기다.
우리 사회 또한 오락 천국과 유명인 숭배, 성 상품화와 인간성 및 도덕성 타락, 대학의 서열화와 교육을 통한 부와 권력 세습, 행복을 보장한다는 온갖 사이비 전문가들, 돈이 돈을 만들어낸다는 카지노 자본주의에 깊이 빠져들어 있다. 《미국의 굴욕》은 비록 미국의 치부를 해부한 책이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치부 역시 거울처럼 오롯이 담겨 있다. 만일 우리가 아무 반성 없이 환상으로 쌓아올린 이 신기루를 계속 따라간다면, 미국이 처할 막다른 운명에 대한 저자의 섬뜩한 예언처럼, 돌이키지 못할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크리스 헤지스 Chris Hedges
미국의 언론인, 작가, 종군기자. 중앙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발칸반도에서 20년 가까이 해외특파원으로 일했고, 50개국 이상을 취재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댈러스 모닝 뉴스》 등에서 근무했으며, 《뉴욕 타임스》에서 1990년부터 15년간 재직했다. 현재 비영리 미디어센터인 네이션 인스티튜트The Nation Institute의 선임 연구원이다.
2002년 국제 테러리즘을 보도한 《뉴욕 타임스》 기자단의 일원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국제사면위원회의 인권언론상을 수상했다. 《네이션The Nation》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하퍼스Harper’s》 《뉴욕 서평The New York Review of Books》 《그랜타Granta》 《마더 존스Mother Jones》 등 여러 간행물에 글을 쓰고 있으며, 웹매거진 <트루스디그Truthdig>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다른 저서로 《전쟁은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힘이다War Is a Force That Gives Us Meaning》 《미국의 파시스트들American Fascists》 《나는 무신론자를 믿지 않는다I Don’t Believe in Atheists》 《진보 계층의 죽음Death of the Liberal Clas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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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한 세계 명화 갤러리 - 역사화에서 추상화까지
 
글·그림 장세현 l 발행일 2011년 8월 30일
 


세계 미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명화를 접하고 감상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명화를 많이 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명화를 좀 더 깊이 있고 풍부하게 이해할 방법은 없을까요? 특정 작품이나 화가 한 사람에 대해 알아 가는 방법도 있지만, 서양미술의 주제별 갈래에 따라 명화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역사화에서 추상화까지 주제별 갈래로 보는 명화 감상
세계 미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명화를 접하고 감상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명화를 많이 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명화를 좀 더 깊이 있고 풍부하게 이해할 방법은 없을까요? 특정 작품이나 화가 한 사람에 대해 알아 가는 방법도 있지만, 서양미술의 주제별 갈래에 따라 명화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서양미술의 각 주제에는 나름의 의미와 역사가 있습니다. 서양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 신화와 성서 이야기를 그린 그림부터 역사적 사건이나 영웅적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역사화,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을 소재로 한 초상화, 자연 풍경을 통해 새로운 미술의 길을 연 풍경화, 갖가지 상징을 담은 정물화,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린 풍속화, 현대미술의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각 주제 속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또한, 주제별 갈래로 보면 같은 그림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피카소의 작품〈게르니카〉는 입체파 그림으로도 유명하지만 스페인 내전을 그린 역사화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역사화가 교훈을 전하는 목적이 컸다면 〈게르니카〉는 현실 고발이자 새로운 미술 실험이었지요. 주제별 갈래에 따른 명화 읽기는 명화를 보는 관점을 풍부하게 해 주고 명화를 보는 눈을 한 단계 올려 줍니다.

세계 명화 115점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
이 책은 세계 명화 115점을 역사화, 신화·성서화, 초상화,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 추상화의 7가지 주제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먼저 각 주제의 정의와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주제에 속하는 작품들을 소개하였는데, 작품이 탄생한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듯 흥미롭게 설명하여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울러 화가의 삶과 화풍, 세계 미술사에 끼친 영향까지도 꼼꼼하게 소개하여 시대 배경, 화가, 작품의 관계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명화를 주제별 갈래로 나눈 구성은 시대나 화가 중심으로 그림을 볼 때에는 느끼기 어려운 색다른 관점과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한 가지 주제 속에서도 고전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그림을 비교하며 볼 수 있습니다. 중세의 결혼식 풍경에 도덕적 메시지를 담은 피터르 브뤼헐의 〈농민의 결혼식〉과 현대 노동자의 삶을 표현한 레제의〈시골의 야유회〉는 같은 풍속화에 속하지만 표현 기법도, 분위기도 무척 다릅니다. 한편으로 한 화가가 그린 다양한 명화를 주제별로 만나는 느낌도 특별합니다. 예를 들면, 고흐의 작품 중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은 초상화로,〈해바라기〉는 정물화로,〈별이 빛나는 밤〉은 풍경화로 각각 만나게 되지요. 이처럼 고전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아우른 풍성한 작품, 그림의 주제와 작품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 꼼꼼하고 알찬 설명은 명화 감상의 깊이와 재미를 더해 줄 것입니다.

화가의 생각과 열정이 느껴지는 실감 나는 글과 큼직한 도판
작가는 어린이들이 명화의 세계를 폭넓게 접하고, 명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린이들이 명화와 더욱 친해질 수 있도록 풍부한 도판과 함께 그림 및 화가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다 빈치나 렘브란트, 고흐같이 잘 알려진 화가의 작품뿐 아니라 랑크레, 뤼겐, 칼프 등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으나 서양 미술사에서 뛰어난 화가의 작품도 큼직하게 실어 다양한 그림과 마주할 수 있게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복잡하고 방대한 명화의 세계를 알기 쉽게 전하기 위해, 작가는 명화가 그려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직접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글쓰기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명화에 얽힌 역사적 사건이나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사회 분위기 등을 실감 나는 묘사와 대화로 생생하게 풀어서, 명화에 담긴 사회와 문화적 맥락을 쉽고 흥미롭게 이해하고, 화가의 생각을 읽어 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아울러 ‘명화 플러스’라는 꼭지를 따로 마련해 본문에서 다루는 화가의 작품과 유사하거나 아주 대조적인 작품, 남다른 개성으로 미술사에 영향을 준 재미난 작품 등을 소개하여 다양한 명화들을 좀 더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글·장세현
1968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시집 《거리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로 시인이 되었고, 계간지 《시인과 사회》 편집위원, 시사 월간지 《사회평론 길》의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열심히 그림 공부를 하였고, 미술에 관한 책을 여럿 썼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친절한 우리 그림 학교》, 《한눈에 반한 세계 미술관》, 《한눈에 반한 우리 미술관》, 《찾아라! 명화 속 숨은 그림》, 《고구려 벽화가 들려주는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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