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꾸는 작가, 권윤덕

작가는 작품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데, 아이들과 소통하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그림책에 몇 가지 숨겨 놓는 장치들이 있어요. 이쯤에서 아이들이 발견하면 좋아하겠다 싶은 걸 곳곳에 숨겨두는 거지요. 그걸 발견하는 아이들은 희열을 느끼고, 이를 통해 작가와 깊이 대화하는 셈이지요.
<만희네 집> 마지막 장면 바로 앞 장을 보면 방문 하나가 닫혀 있어요. 그 방만 소개가 안 돼서 의도적으로 문을 닫은 거였는데, 이것을 저도 잊고 있었어요.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왜 이 방문만 닫아 놨냐고 물으시는데...(웃음) 저도 덕분에 10여 년 만에 잃어버린 방을 되찾은 느낌이었습니다.
<일과 도구>에는 페이지마다 시계를 숨겨 놓았어요. 또 고양이가 숨어 있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어쩌면 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하나하나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평화를 테마로 한 그림책 작업을 하고 계시다는데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 중, 일 삼국의 작가들이 평화를 주제로 함께 그림책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제가 하기로 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인데, 너무 어렵습니다.(웃음) 그림책 글 원고를 아무리 써 봐도 할머니의 증언을 뛰어넘을 수 없더라고요. 증언 자체가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그림책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요. 1940년대의 역사적, 지리적 상황, 일본군과 위안소의 실상, 할머니들의 육? 않고... 과장 없이 드러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그게 제대로 될지 아직 막막한 상태입니다. 취재부터 열심히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그림책을 계속 그리실 계획이신지?
<일과 도구>와 지금 하는 작업이 긴 호흡을 필요로 한 작업들이라 숨이 차서 좀 쉬운 걸로 하고 싶습니다. 스스로도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해 보려고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원하시나요?
사회 문제에 관심이 갑니다. 사회 문제가 따로 있다기보다, 우리들이, 그리고 아이들이 본래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그림책이 주제의 측면에서 사회 문제와 잘 결합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 문제 같은 것도 다뤄보고 싶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주제를 잘하고 나면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외의 여성 문제, 폭력 문제, 분단 문제도 다뤄보고 싶고요. 다른 작가들이 잘 안 다루는 분야라서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내 능력이 미치는 정도 안에서나마 그렇게 노력해보고, 그 결과로 평가받고 기억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엄마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엄마들이 그림책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알아주었으면 해요. 엄마들에게 재미있어야 아이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히게 될 테니까요. 영화감독을 찾아서 영화를 골라 보듯이, 그림책 작가를 찾아서 그림책을 골라 보는 정도가 되면 더없이 좋겠죠.
<일과 도구>를 본 어느 편집자가 전화로 이런 말을 해 주셨어요. "사회와 노동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이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아직 많은 게 부족한 우리 그림책 시장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이지만, 제게는 턱없이 분에 넘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림책 작업에서 작가 정신의 중요성을, 그것을 촉구하는 말로서 공감하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와 출판사가 애써야 할 일이지만, 엄마 독자들께서도 시야를 새롭게 가져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선, 그림책을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림책과 동화책을 혼동하고, 그림책의 그림과 동화책의 삽화를 혼동하는 경우가 아직 많아요. 기회 있을 때마다 열심히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쉽지 않은 일이지요.
좋은 그림책이란 어떤 그림책일까요?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아이들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그림책이 제일 좋지 않을까 합니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으면 진실성이 떨어질테니... 그림도 자기의 느낌에서 솔직하게 출발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본 듯한 그림이 계속 반복되지요. 그저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그림이 되기 일쑤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그림책, 그런 게 좋은 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사실 저는 그림을 못 그린다는 콤플렉스로 10년을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노란 우산>의 류재수 선생님이 제 그림을 보고 칭찬을 해주시면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게 뭐냐? 기법이 세련된 그림이 잘 그린 거냐? 그건 볼거리가 있다는 거지 잘 그렸다, 못 그렸다 와는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많은 용기를 주셨어요. <일과 도구>를 작업할 때도 ‘빨리 끝낼 책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끝내야 할 책’이라고 격려해 주셨고요. 잘 그린다는 게 도대체 뭔가? 잘 그린 그림으로 만든 책이 곧 좋은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저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권윤덕에게 그림책이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작가가 하얀 백지를 앞에 놓고 앉으면 머릿속에 무궁무진한 생각들이 만들어지죠. 그걸 담아내는 것이 작품 활동이고, 그 과정에서 힘든 일, 괴로운 일도 많이 겪어요. 작가로서의 삶이란 게 그것 밖에 따로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제게 그림책은 제 삶을 만들고 또 남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도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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