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파버
막스 프리쉬 지음, 봉원웅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이 아니라 82년도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누런 종이의 양장본 책으로 읽었다.

보통 지하철에서 소설책을 읽는 나로서는 너무도 무거운 이 책을 매일 들고 다니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이 유난히 더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엉망인 책의 번역과 편집 때문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퀘퀘한 책 냄새 맡는 재미가 쏠쏠하여 도서관의 오래된 책들을 읽는 것을 좋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갔을 그 책의 역사에 나 역시 한몫하는 것이 설레이기도 했다. 도서관 안의 책들은 시큼한 낭만을 풍기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책을 읽다보니 예전에 내가 그 책들을 어떻게 '견디'며 읽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짜증나는 오문과 잘못된 맞춤법을 책 속에서 발견할 때마다 빨간색 플러스 펜을 들고 꼭 달려들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날 짓눌렀다.-_-;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 재미있다.
아주 재미있는 캐릭터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호모 파베르는 라틴어로 도구를 만들어 쓰는 인간을 뜻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호모 파베르'는 주인공 발터 파베의 성향을 규정짓기도 한다. 실제로 고급 기술자인 파베는 사색적이고 감성적인 것의 가치를 모르는 철저하게 기계적인 인간이다.

모든 상황에서, 심지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그는 자신의 애인이 임신했을 때도 그가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유태인이기에 정치적 상황으로 봤을 때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여 청혼을 하려 한다.
(물론 그의 애인인 한나는 그의 이런 성향을 감지하고 떠나버린다.)

인간성이 결여된 그는 결국 철저하게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좀 촌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마치 권선징악의 그것처럼 비인간적 성향을 지닌 호모 파베르는 철저하게 벌을 받는 것 같다.)

애인과 헤어지고 2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는 여행길에서 한 어린 여자를 만난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그는 그녀에게 곧 청혼하고 신혼여행을 떠난다.(사랑이라기 보다는 젊은 여자에 대한 육체적 욕망의 표현으로 보이긴 했다.)

그런데 여행 도중 해변가에서 그녀는 뱀에 물려 죽음을 맞이하는데, 곧이어 그녀가 바로 파버의 딸이었음을 알게 된다. 건강상태도 안 좋았던 그는 위암판정을 받고 크나큰 정신적 충격에 혼란에 빠지고 점점 죽어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는 호모 파베르와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와 다른 사고를 지닌 소수의 사람들을 호모 파베르들은 쉽게 비웃곤 한다.
작가는 그런 현대의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렇게 살지 마라.
너넨 인간이잖아.
안그러면 얘처럼 벌받는다... 뭐 이런 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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