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아질수록 누군가의 이야기나 고민을 듣게 되는 상황이 늘어납니다. 이전에는 잘하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일만으로 벅차기도 했고 발언에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가 이야기를 해주면 되도록 마음을 다해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해주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일단은 그걸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지는 나중 문제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에는 단지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고 말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은 구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해답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정리가 되는 순간, 그 사람은 해답을 찾는 것입니다. 


때로는 스스로 해답을 알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만, 의외로 자신에 대해서는 스스로 알기 어려운 법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는 필요에 따라서 느낀 것, 알게 된 것을 대답해주기도 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 중에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나 소개해줄 수 있는 사람, 장소, 떠오른 생각 등을 전해둡니다. 이후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생각나면 메일로 전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역사를 등에 지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일상적인 교류만으로는 그 역사가 어떤 것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등에 지고 있는 것 중에는 슬픔이나 아픔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등에 지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내보이지 않던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은 열려있습니다. 슬픔이나 아픔이 마음을 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나약함과 상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설사 나약함이 있어도 보지 않으려고,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은 계속 그런 식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극복하기 힘든 슬픔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고 들어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가끔 이야기를 끝낸 후에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늘 ‘저도 마찬가지예요’하고 대답합니다. 그 말은 진심입니다. 


나도 등에 지고 있는 인생이 있습니다. 슬픔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용기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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