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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을 걷다
이이정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 고요해서 밋밋한 것보다는 바람 부는 인생 풍경이 좋은 것 같아.
바람 속으로 달려가고 싶어지잖아.
바람이 안 불면 소금간하지 않은 무국처럼 맹탕 같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
부모님과 아들, 마누라에게
"남편역할도 지겹고, 아빠역할은 더 지겨워. 회사 다니는 것도 싫고,
어느 날 정말 평범한 여자가 되버린 너도 싫어!
인생이 별거야?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고 살꺼야!"
라는 말을 하며 가출해버린 남편,
"아들을 봐줄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라는 말로 집나간 남편 기다리는 속마음을 애써 변명하며
그의 부모님의 집에서 2년을 버티고 사는 출판사 팀장 심정원은,
사랑이 넘치는 가족을 갖는 것, 그것이 평생 소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이 지친 그녀에게,
평상시 그녀에게만 유독 지독하게 구는 독설가 출판사 사장인 윤태주는
농담처럼 거만하게 묻는다,
"내가 결혼해 줄까?"
어릴 때부터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던 윤태주 = 윤빵주는, 어느 날부터 빵은 밍밍해서 싫다고 밥만 고집하는 심정원 = 심밥통에게,
나는 심밥통이 해주는 밥이 없으면 죽어 - 라며, 밥달라고 내내 괴롭힌다.
그래서, 그렇게 정원이는 어릴 때 집나간 엄마에게 버림 받았던 순간 이후,
가족처럼 돌봐주던 선생님을 교통사고로 잃고,
자신을 평생 행복해서 미치도록 만들어주겠다는 첫사랑 남편의 배신을 겪어내면서,
그렇게 바람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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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이 책은, 책 뒤의 소개글을 퍼오고 싶지 않아졌어요.
어린 시절, 그녀를 천사처럼 생각했던 남자가
첫사랑을 이루어내는 그 지고지순한 사랑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단순히, 애 딸린 이혼녀가 재기하고,
미혼남 사장을 만나 "그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해피엔딩으로만 그려지는 그 소개글은,
이 책의 슬픔과 서정과 아픔과 감동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서입니다.
평생 한번도 갖아보지 않았던,
'가족'이란 것을 갖고 싶단 소원을 품었을 뿐인데,
남편에게는 그저 꿈을 잃은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버린 정원,
그녀에게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그와 함께 절대 어떤 일로도 깨지지 않는 가족을 이루는 것 이상으로,
결혼을 통해 뒤로 미뤄두었던 그녀의 자아와 이상을 찾는
그 혼자만의 여정을 그려내는 것이
이 소설에서 더 비중있게 다룬 가치가 아닌가 생각해요.
세번, 그쯤은 울었던..
모든 문장과 문장이 다 참 잘 써졌구나 싶은,
수필과 일반 소설의 중간 쯤 되는 듯한 로맨스소설.
어쩌면 너무 로맨스적인 부분이 적지 않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고,
윤태주 사장의 어처구니 없는 독설이 짜증난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고,
전남편의 그 끝을 모르는 이기적인 언행들이 죽이고 싶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참, 지지리 복도 없는 년 - 이라고 취급하기가 뭔가 어울리지 않는 심정원의 삶이,
그녀를 잘 아는 친구와 언니로 하여금 "부러워 죽겠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런 정도의 삶에서도 정말 복은 타고 났어 -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정원 : 이** = 1 : 1 대입 시켜서 지나치게 심정원과 나를 동일시 하여,
미래의 팀장을 꿈꾸는 출판인으로, 나도 이렇게 멋진 기획자가 되고 싶다 거나,
나도 이렇게 훌륭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 거나 하며 나를 그녀에게 너무 몰입시켜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나이의 그녀와 같이, 결혼을 한 입장에서 이러쿵 저러쿵 남편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게 살자"라고 생각하는 나로서,
"그래, 내 남편이니까 하지, 다른 남자와 함께 였다면 정말 이런 일, 저런 일 모두 안하고 싶었을꺼야?"
라며 여러번 생각하고 적당히 감사해하며 사는 나로서는 유달리 몰입이 된다는 말 이상으로 참 공감이 많이 가는 내용이었어요.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슴을 울리는 문장력과 스토리텔링,
윤사장의 그 깜찍한 장기"심정원"프로젝트에 탐복하며,
나는, 진짜 오랜만에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을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간만에 정말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은,
그런 한국소설을 만났습니다.
빌려 읽었는데, 아무래도 소장해야 할 것 같아 구매를 결심하게 만든_
이 작가분의 다른 작품도 이미 소장해두었습니다.
휴... 나도,
그리고 바람 속을 걷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않고
많이는 흔들리지 않도록,
뿌리를 뽑히지 않도록
단단히 자리를 잡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