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가 그저 무역규정이라고요?"

[프레시안 멕시코시티=노주희/기자]  국내총생산(GDP) 7581억 달러(2005년), 수출 1878억 달러와 외국인직접투자(FDI) 166억 달러(2004년). 우리 정부가 틈만 나면 선전하는 멕시코의 자랑스러운 경제 성적표다.
  
  정부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NAFTA)이 발효된 후 멕시코의 경제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정해 왔다. 정부의 입장은 '나프타 후 멕시코의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나프타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프타의 체결로 멕시코의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언론의 보도가 줄을 잇자 정부는 아예 입장을 바꿔 '나프타 후 멕시코의 양극화가 심화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가 이같은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근거는 1990년대 중반 멕시코의 지니계수(Gini Coefficient)가 0.52였는데 2000년에 이 수치가 0.48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지니계수는 계층 간 소득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이 지표는 0부터 1까지의 값을 가지며 1에 가까울수록 한 나라의 소득불평등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자유무역에 대한 멕시코 행동연대(RMALC)'의 알레한드로 빌라마르 박사(개발경제학)는 "멕시코 정부가 지니계수 등 소득 불평등 관련 통계를 낼 때 자영업자 가구, 1인 가구, 농어촌 가구, 무직 가구 등이 제외된다"며 "그런데 나프타가 발효된 후 늘어난 것이 바로 이런 가구들"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대로라면 나프타 이후 지니계수가 낮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신빙성 논란이 제기되는 멕시코 정부 통계를 잠시 젖혀두고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리포트(HDR) 2005년'에 따르면 2005년 현재 멕시코의 지니계수는 0.55다. 이는 0.57을 기록한 아프리카의 최빈국 짐바브웨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 정부는 1995년 페소화 위기가 지나간 후 멕시코의 고용이 급증하고 실업률이 떨어졌으며 이것이 바로 나프타의 효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통계에는 1998년부터 멕시코 정부가 실업률과 고용을 계산하는 방식을 바꿨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정부는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 일하는 사람, 4주 이내에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 사람을 모두 노동자로 분류했다. 또 구직에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도 감당할 수 없거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어 아예 일자리를 찾는 것을 포기한 '비자발적 실업자'는 실업자로 분류하지 않았다.
  
  알레한드로 박사는 "멕시코 국민들은 자존심이 강하다"며 "정부가 '일자리가 있나요? 4주 내에 일을 시작할 것입니까?'라고 물으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곧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대답한다"고 지적했다.
  
  한 나라의 경제상황과 삶의 질을 보여주는 것은 데이터와 그래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거시경제 지표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택시기사의 경제진단과 시장 아주머니의 신세한탄이 한 사회를 더욱 잘 드러내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기자는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멕시코 사람들을 만나봤다. 기자는 이들에게 지금 생활이 어떤지, 나프타가 발효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 '사는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이 모든 것이 멕시코인들의 나태함 때문인가요?"
  
▲ 호세 이그나시오 무뇨스. ⓒ 프레시안

  "내가 운영하는 회사는 자동차 부품 만드는 기계를 제작하는 기업으로 나프타가 발효되기 전까지만 해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회사였다. 이제는 기계가 미국에서 직접 들어오기 때문에 전에 생산하던 기계들은 하나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예전에 판 기계를 수리하는 것으로 간신히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 수와 매출액은 대폭 줄었다.
  
  나는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다. 나프타 이후 다른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했다. 물론 이런 상황은 멕시코인들이 나태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프타 이후 '거기(미국)에서 설비를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여기(멕시코)에서 팔지요'하는 식으로 산업 구조가 재편된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산업정책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해외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물과 보증인을 제시해야 한다. 또 이 은행들이 모두 금리를 담합해 대출이자 또한 36%에 육박한다. 4~6% 금리에 대출을 받는 미국기업들과 어떻게 경쟁을 한단 말인가. 물론 내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20~30년 동안 고되게 노동한 대가이고, 나프타 직전에는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경제가 잘 성장하다 갑자기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호세 이그나시오 무뇨스, 마에사 장비 주식회사 사장)
  
  '금융의 역설'…자금중개 안 해도 고수익 올리는 외국 금융자본
  
▲ 방코메르. ⓒ 프레시안

  "멕시코 금융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금융부문이 민영화되면서 방코메르, 바나멕스 등 멕시코의 주요 은행들이 90% 이상 해외자본에 넘어갔다. 대신 멕시코 경제발전을 목표로 중소기업들에 대출해주던 국영 개발은행의 비중은 과거 22%에서 5%로 줄었다.
  
  해외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은 일반대출, 부동산대출 등을 중심으로 고수익을 올린다. 생산부문에 대한 대출은 거의 없고, 있더라도 은행들이 과점체제를 구축해 중소기업이 대출 받는 것은 매우 힘들다. 따라서 멕시코의 생산부문에 유입되는 자금은 줄지만 은행의 실적은 올라간다. 우리는 이것을 '금융의 역설'이라 부른다. 보험과 증권 부문 역시 외국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금융계는 전반적으로 해외자본이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
  
  금융계 노동자 수도 1990년대 초반에는 20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12만 명가량으로 줄었다. 신규고용 수도 감소했고 근로조건도 악화됐다. 나프타 체결 당시 멕시코인들을 현혹했던 것은 바로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나프타에 따른 금융시장의 개방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지침을 문자 그대로 따른 금융시장 개방에 대해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세계적인 흐름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엑토르 이슬라스, 국립수출은행 노조 대외교류 담당자)
  
  "의료보험도 없는 노후가 막막해요"
  
▲ 멕시코시티 거리. ⓒ 프레시안

  "미국계 은행인 시티뱅크가 남편이 다니던 은행인 바나멕스를 인수합병하면서 남편이 강제퇴직 당하게 됐다. 그때 받은 퇴직금으로 구멍가게를 냈는데 멕시코 경제상황이 어려워 잘 안 됐다. 최근 남편은 퀵서비스 일을 시작했다. 은행에 다닐 때는 1만3000페소(130만 원) 정도 벌었는데 이제 수입이 6000페소(60만 원)도 되지 않는다. 그것도 기름값을 빼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다.
  
  노후에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역시 돈 문제다. 남편이 직장을 잃으면서 의료보험이 없어졌다. 의료보험이 없는데 아프면 어딜 가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도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지만 의료보험이 없어 꾹 참는 경우가 많다. 대신 약국에 간다. 약국 역시 간단한 상담만 받아도 25페소(약 2500원 정도)라 부담이 된다. 약값도 너무 올랐다. 의료비와 약값, 모든 것이 너무 비싸다." (마리아 막달레나 가르시아스 모레노, 은행 퇴직자의 아내)
  
  "미국 비자 받기는 여전히 힘들어"
  
▲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멕시코 사람들. ⓒ 프레시안

  "나프타로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해졌다고 하지만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 비자를 받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미국 대사관 앞에 가면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멕시코인들이 새벽부터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멕시코도 과테말라, 에콰도르 등 인접 남미 국가들에 대한 멕시코 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했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이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미국이 이런 조치를 멕시코 정부에 명시적으로 요청한 적은 없지만 우리 정부는 항상 그랬듯 알아서 기고 있다." (알레한드로 빌라마르 박사, 자유무역에 대한 멕시코 행동연대(RMALC) 정책국장)
  
  "카길의 횡포에 피해 보는 건 우리 소비자도 마찬가지"
  
▲ 마리아 구달루페 에레라 에스코바르. ⓒ 프레시안

  "예전에는 코나수포라는 국영 유통기업이 옥수수 유통을 전담했다. 이 기업은 또르띠야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와 같은 옥수수 또르띠야 제조업체에 전기, 가스의 저렴한 공급, 저리 대부,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줬다. 이제는 그런 정책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 카길 등과 같은 미국 대기업들에서 우리 옥수수를 구입한다. 이런 곡물 유통업자들이 옥수수 값을 올렸기 때문에 또르띠야의 값도 1Kg당 7페소까지 폭등했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1.5~2페소 정도였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멕시코의 주식인 또르띠야마저 먹기 힘든 상황이 됐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지불되는 옥수수 값은 항상 낮았다. 언제나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농민들이다."(마리아 구달루페 에레라 에스코바르, 또르띠야 공장 주인)
  
  "정부는 나프타 선결조건으로 농민들의 땅을 강제로 뺏어 갔다"
  
▲ 아구스틴 모랄레스 살리나스. ⓒ 프레시안

  "1992년 정부는 우리가 살던 베라크루스 지역의 집, 학교, 교회, 숲 등을 파괴하고 이에 항의하던 500명의 농민들을 체포하고, 그 중 103명을 교도소에 집어 넣었다. 아주 잔인한 억압이었다.
  
  나프타 체결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농민들에게 경작권이 보장된 농토인 '에히도'를 빼앗아 대기업에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에 항의했지만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침묵했다.
  
  그래서 우리 농민들은 12년 전부터 정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해 왔다. 지금 모두 600명의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살리나스 대통령은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는 정부가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농민들에게 땅을 돌려주길 바란다." (아구스틴 모랄레스 살리나스, 농민 알몸시위대 홍보 담당자)
  
  "그래도 노점상이 옥수수 농사보다 낫다"
  
▲ 에리카 기르시아. ⓒ 프레시안

  "멕시코시티에 온 지 11년이 지났다. 고향에는 병든 남편과 두 아이들이 있다. 고향에서는 원래 사탕수수와 옥수수를 재배했었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먹고 살기 힘든데다가 가뭄으로 작황도 나빠져 도시로 오게 됐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 전화비가 비싸서 자주 통화를 못한다. 한 달에 3번씩 아이들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은 딸 아이의 졸업식에 맞춰 고향에 가기 위해 다른 데 돈을 쓰지 않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 왕복 버스비가 약 800페소(약 8만 원)다. 내가 하루에 버는 돈이 잘 되면 200~300페소(2~3만 원), 잘 안 되는 날에는 50~60페소(5000~6000원)다. 그래도 농촌에서보다는 훨씬 벌이가 좋다. 옥수수 농사는 아무리 지어봐야 적자만 났다.
  
  큰 딸은 방학에 멕시코시티에 와 내 일을 돕겠다고 한다. 개강하면 다시 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학비가 비싸졌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이가 나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학교에 계속 다니기를 바란다."(에리카 가르시아, 농민 출신 노점상)
  
  "거리의 아이들이 거리의 아이들을 재생산"
  
▲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 ⓒ 프레시안

  "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3년 전 유엔아동기금(UNICEF)의 통계에 따르면 3만 명 정도인데 1만5000명이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나머지 1만5000명이 지방에 있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거리의 아이들이 더욱 늘어났고 그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멕시코시티에만 2만 명의 아이들이 거리에 방치돼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아이들은 구걸을 하거나, 교차로에 멈춰선 차에 뛰어가 무작정 세차를 하거나 거리에서 광대 흉내를 내 받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범죄나 마약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성매매도 빈번히 일어난다. 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1980~1990년대 멕시코에 많은 석유가 묻혀 있다는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의 자녀들이다. 이 아이들이 또 거리에서 아이를 낳아 거리의 아이들을 재생산하고 있다.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농촌에서 몰려오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현상이 멕시코시티에 국한됐지만, 지금은 구아달라하 등 멕시코의 다른 대도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미국과 FTA를 맺었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나프타가 그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알레한드로 누네스, 거리의 아이들 보호소인 '카사 알리안사 재단'의 단장)
  
  "FTA는 단순한 무역규칙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모델"
  
▲ 아르토르 알칼데 후스티나아니. ⓒ 프레시안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처음에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매우 한정된 것들이었다. 'FTA는 세계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경제가 더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된다', '국민들은 다양한 제품을 더 싼 값에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등과 같은 이야기들이 먼저 나온다. FTA가 새로운 삶의 모델이라는 점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FTA는 단순한 무역규정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뿐 아니라 사회, 문화, 기술, 지식 등 한 나라의 모든 부문이 바뀌게 된다.
  
  가령 나프타 이후 멕시코의 노동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현실은 완전히 변했다. 멕시코 정부는 미국의 거대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회의 자유 등과 같은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함에 있어 더욱 큰 제약을 받게 됐다.
  
  이런 변화들은 협정이 체결되는 그 순간에 모두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협정이 발효한 후 시간이 흐르면서 생활 속에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아르토르 알칼데 후스티나아니, 노동 전문 변호사)
  
  나프타가 발효된 해인 1994년에 멕시코는 선진국 클럽이라고 불리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 '선진국' 멕시코에서 단 하루라도 지내본 사람이라면 멕시코 사람들의 피폐한 삶에서 눈을 돌리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담박 알아챌 수 있다.

멕시코시티=노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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