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준비나 됐나

김영호 (시사평론가 언론광장 공동대표)


용광로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월드컵 열기가 모든 국사를 용해시키는 듯하다. 월드컵에 매몰되어 지방선거가 있는지조차 모를 판이었다. 한-미 FTA가 험난한 파고를 몰고 닥쳐오지만 국민의 관심 밖에 머물러있다. 이 나라의 산업구조-사회체제를 뒤집어 놓을 사태가 벌어질 판인데도 말이다. 6월 5일이면 본협상에 들어간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지난 2월 2일 불쑥 협상개시를 선언하고는 넉 달이 지나도록 협상방향과 진척내용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과연 협상준비나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다.

USTR(미국무역대표부)대표는 협상개시를 선언한 당일 상-하 양원의장에게 공한을 보내 협상방향의 대강을 밝혔다. 또 협상과정에 의회-재계와 긴밀하게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청회를 통해 재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한-미 FTA는 모든 국민이 이해당사자이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국민에게 비밀로 붙이고 있다. 다만 미국에 전달한 협정문 초안의 일부를 5월 15일 비공개로 국회에 전달했을 뿐이다. 그 내용도 일반적이어서 국익을 지키려는 의지마저 의심스럽다.


영어구사력·전문지식 의문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얼마나 졸속으로 추진하는지 협상인력충원계획만 봐도 알만하다. 3월 21일에야 국무회의가 그것을 의결했다. 외교통상부 36명, 농림부 5명, 재정경제부 6명, 산업자원부 5명, 해양수산부 4명 등 59명을 충원한다는 것이다. 협상단을 이렇게 급조해서 어떻게 복잡하고 난해하고 방대한 협상현안에 대처할지 의문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130명의 전문인력이 협상현안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연구해 왔다. USTR은 주한미국상공회의소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근거로 통상정책을 수립해 왔다.

협상단이 협상기량과 영어 구사력을 겸비했는지도 모르겠다. 협상력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협상단원은 상대의 심리를 읽고 표정을 관리하며 지구전을 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이론으로 배우기보다는 오랜 경륜을 통해 터득된다. 영어도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완벽한 구사력을 요구한다. 그들의 혀에 국익이 달렸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USTR 대표들이 한국과는 언어소통에 애로를 느낀다는 점을 더러 토로한 적이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협상분야에 대한 해박한 전문지식이다. 관련산업-분야를 철저하게 이해하고 협상결과가 미칠 영향-효과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해당산업-분야가 입을 피해에 대한 예측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그냥 수입증대로 피해가 예상된다는 따위로는 안 된다. 협상결과에 따라서는 해당산업-분야를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생하는 사회비용은 계측이 어렵다. 그 방대하고 전문적인 영역을 비전문 관료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불안하다.

1994년 1월 출범한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엮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는 체결까지 35개월이 소요됐다. 미국은 이어 남-북아메리카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작업에 나섰다. 그것이 FTAA이다. 1995년 11월 마이애미에서 34개국 정상회담을 갖고 10년 이내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10년만인 작년 11월 남미 국가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미국은 남미국가들이 FTAA에 소극적이자 압박수단으로 중미 5개국과 도미니카를 엮는 CAFTA를 추진했다. 이것도 비준까지는 32개월이 소요됐다.


국민적 동의 구했으면

미국은 또 다른 압박을 위해 칠레와도 FTA를 맺었다. 2000년 12월 협상을 개시하여 2년만에 타결하고 발효까지 또 1년이 걸렸다. 유럽이 1994년 1월 EU(유럽연합)를 출범시킨 데 이어 1999년 1월에는 단일통화 유로를 도입했다. 그것은 백인국가인 호주의 입장에서 시장상실을 의미한다. 호주가 초조해졌지만 1년간 협상하고 비준을 거쳐 발효하는데 또 1년이 걸렸다. 자유무역도시인 싱가포르와도 2000년 11월 협상을 개시하여 2004년 1월에야 발효했다.

한-미 FTA는 미국의 TPA(무역촉진법)시한에 따라 내년 6월말까지는 끝내야 한다. 늦어도 내년 3월말까지 협상을 마치고 3개월간의 의회 청문회를 거쳐야 미국의회가 비준한다. 그래서 미국은 금년 말까지 협상을 마무리 지을 방침이라고 한다. 참여정부는 한 술 더 떠 금년 9월까지 끝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일정에 쫓겨 서두는 이유를 모르겠다. 넉 달 동안 협상내용이나 파악하겠는가? 국민적 동의도 구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결판내려는 의도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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