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에 출범선언한 한미 FTA 협상에 대응하기 위한 '범국민대책위' 산하에는 우리 사회 거의 전 분야의 단체들이 참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FTA저지 교수학술단체 공동대책위원회'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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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현 한미FTA저지 교수학술단체 공대위 대외협력위원장.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
"2월 중순경에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를 중심으로 결성되었습니다. 한미 FTA가 한반도 전체에 끼치는 영향과 피해가 전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수준의 타격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지식인·교수들이 가만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나서게 됐죠."
교수학술 공대위에서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있는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연대)는 교수들이 단지 양심에 따라 나서는 것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교수들도 한미 FTA의 폭풍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양심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니고, 교수도 직접 타격을 받는다." "교수들에게도 커다란 직접 타격이 있습니다. 벌써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 개방 문제가 그렇습니다. 대학구조조정이니, 국립대 민영화니 논의가 활발하죠. 국립대에서 국가보조금 등의 지원이 사라지고, 외국 대학들이 밀려들어오면 살아남는 대학은 거의 없다고 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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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한일합방이라는 말이 꼭 맞는 표현"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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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말해 캘리포니아 주립대가 서울에 설립된다고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미국 대학 사랑은 유별나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외국 유학생 중 50%를 한국인이 차지할 정도이다.
그런 한국인들이 생활비 등 유학에 들어가는 추가비용없이, 수업료만 내고 한국 땅에서 미국 대학을 다닐 수 있다면 선택은 뻔하지 않은가.
"서울대는 50개 주립대 중 하나가 되어 똑같이 경쟁하게 되고, 나머지 대학들이 그 뒤로 줄을 설 것"이라고 심 교수는 전망했다. 지방대들은 대부분 통폐합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노동계 구조조정은 IMF 사태가 온 9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지금 전체 노동자의 55%가 비정규직입니다. 똑같은 일이 대학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지금 한국 대학의 전임교수가 6만명인데, 구조조정 바람이 쓸고가면 2만명 정도 남을 겁니다. 강사들은 일자리를 잃을 거고요."
서울에서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다닐 수 있는데, 과연 한국대학에 가려할까? 미국 주립대학의 등록금은 일년에 4만불에서 6만불 정도이다. 소위 '교육 개방'이 이루어지면 미국의 기준에 맞춰 한국 대학들의 등록금도 수직상승하게 될 것이 뻔하다.
"총궐기해야하는 상황이죠. 교수들은 연구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내가 교수인데, 직장을 잃고, 자식들을 대학에도 못 보내고, 의료보험까지 없어져 아파도 비싼 병원비때문에 치료조차 받을 수 없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견딥니까."
이건 영화시장이 당한 정도가 아니다. '카트리나'보다 훨씬 더 큰 피해라고 심 교수는 잘라 말했다.
"이렇게 엄청난 영향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정부보고서 하나 없습니다. 정부가 내놓지 않으니까 우리가 해야죠. 한미 FTA 범국민대책위 내에서 교수학술단체가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정리한 '국민보고서'가 되겠죠. 정부에서 보고서를 내놓지 못하면 우리가 만들테니, 정부는 그것을 가지고 협상을 하라 이겁니다."
교수학술단체 공대위에 '정책연구기획단'의 이름으로 모일 연구인력은 300명 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 150명 이상이 확보된 상태라고 심 교수는 설명했다. 그에 반해 얼마전 정부가 한미 FTA 협상팀 구성인원이라고 내놓은 인원은 69명.
예측 보고서도 협상팀도 빵빵한 미국에 비해 한국 정부는 협상단에 들어갈 사람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아직까지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정부 내에 사람이 없으니까 사법연수원에서 사람을 데려다 2달간 교육시켜서 협상팀에 참가하게 한다고 하더군요. 참 기가 찰 노릇이죠."
교수학술 공대위, 한미 FTA 영향에 대한 '국민보고서' 준비중
요즘 한미 FTA 범국민대책위를 비롯해,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중 누구한테라도 연락을 시도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을. 교수 공대위도 마찬가지다.
언론이나 정부의 한미 FTA 논리에 대응해 문화연대에서 내보내는 '데일리 논평'을 쓰는 사람이 심 교수다. 또 요즈음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는 한미 FTA토론회에 참석하고, 1주일에 1번은 상임 집행위원회가 있어서 참석을 한다.
곧 본격적으로 가동될 한미 FTA 순회 강연도 조직하는 중이다.
"정신없죠. 또 학교수업도 해야하니까."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이다.
"이 협정으로 정치, 군사안보. 경제 사회적으로 영향을 안받는 데가 없어요. 대외관계도 더 심하게 종속될 수밖에 없죠. 제 2의 한일합방이라는 말이 꼭 맞는 표현입니다. 한일합방 당시 처음에 일반 국민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죠. 처음에는 모르고 있다가 차차 하나 둘 뺏기고, 언어도 뺏기고, 나중엔 정신대까지 끌려갔죠."
친일파들은 지금도 일제 36년 동안 우리나라에 많은 산업 인프라가 건설되고 발전하지 않았느냐며 일제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36년 앞뒤의 경제 상태를 비교해보면 거의 변화가 없다는 조사가 있다고 심 교수는 설명했다.
36년동안 증가한 부가가치를 모조리 수탈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허수열 교수가 지난해에 내놓은 '개발없는 개발'이라는 책에 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가 폭로되어 있다.
"그 당시 친일파들은 지금도 잘 살아요. 마찬가지로 한미 FTA가 체결되면 훨씬 더 잘살게되고, 심지어 '특수'까지 누릴 계층이 있죠.
강남의 일부 '비싼' 외국어 고등학교에서는 한국 고등학교 과정에서 의무교육으로 규정한 '국사' 과목 대신 미국사를 가르친다는 것을 아시나요? 한국의 부자들, 기득권층이 자녀들에게 벌써부터 미국과의 국가통합을 준비시키는 것이죠."
월드컵 시기맞춰 한미 FTA 추진.. "지배자들은 언제나 '타이밍'을 노린다" 한일합방 당시 찍은 도장 하나가 불러온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지금 한미 FTA를 앞둔 우리나라가 같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어리석은 질문입니다만, 옳지않다는 것이 뻔한데도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지배자들이 민중들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죠. 올해는 월드컵이 있잖아요. 월드컵 기간이 바로 한미 FTA 협상이 한참 진행될 시기예요.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WBC도 있었네요.
지금 한미 FTA에 대한 보도는 일부 신문에만 조금 나오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방송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아요. 이제 곧 지방선거가 있죠. 지배자들은 언제나 적당한 타이밍을 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