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능력'이라는 단어가 몇몇 서재인들 페이퍼에 뜬지가 이미 1주일이 지난 지금, 
이제서야 불현듯 관심이 끌렸다.
내 학업 능력을 적으면 다른 분들에게 혹시라도 위로가 될까?  ^^;;

어려서, 그러니까 3살에서 7살까지는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한국말을 하시는 것을 조금은 알아들었는데, 말은 잘 못했다.
음.... 그리고 동네의 드센(?) 남자애들에게 늘 주눅들어 지냈던 기억이 난다.

5세 >
무얼 하고 있었지? 엄마에게 그림책 읽어달라고 하고.... 
남동생과 시험지의 반쪽에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맞바꾸어서 나머지 반쪽에 상대방이 그린 그림을
누가 더 비슷하게 그리나 하는 놀이를 했던 것 같다. 당연하게도, 서로 자기가 더 비슷하게 그렸다고 실랑이 하는 걸로 막을 내렸다. 
집근처 반경 한블럭 이상의 우주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6세(유치원)>
사는 동네가 그다지 좋은 동네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가난한 나라의 유학생 딸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생활고가 꽤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엄마가 만들어주신 옷,  엄마가 잘라주신 머리 스타일..... 을 하고 있는
수줍은 여자 아이의 모습이다.

그동네 남자 아이들이 좀 짖궂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양인이라고 "Chinese, Japanese, Dirty knees" 라고 놀리고 도망가곤 했다. 
엄마에게 달려가서 '엄마, 우리는 Chinese야, Japanese야?" 하고 물었다. 
엄마가 "Korean"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Korean이라.... 처음 들어 보았다.
그때 생각은..... 어쨌든 "Dirty knees"와 소리가 다르다는 것에 무척 기뻤했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알파벳을 배운 기억이 난다. 
아, 그리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나를 놀리지 않았던 남자 아이를 짝사랑 했던 것도 기억난다. *^^* 

7세(1학년): 
미국과 한국은 학년의 시작이 다르다. 
아버지의 유학이 끝나 돌아와서, 어느 학교에 1학년 2학기에 전학 왔다. 
문제는, 내가 한글을 '하나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돌아오기 직전에 유일하게 쓸 줄 아는 한글이 내 이름이었는데, 그것도 철자도 틀리고, 삐뚤빼뚤하게
겨우 적었다. 
내가 교과서를 읽을 차례가 되면 일어서서 읽어야 하는데, 잘 읽지를 못했다.
그러면 옆이나 뒤의 아이들이 작은 소리로 읽어주었고, 난 그걸 어영부영 따라 읽었다. 
어쨌든 이때 당시의 기억은 문화적 충격으로 남아 있다.
특히, 민방위 훈련!  나는 정말로 1달에 한 번 전쟁을 하는걸로 알고 정말 무서워했다. ㅜㅡ;;
              
다행히(?) 한학기만 다니고, 다시 반년간 미국으로 갔다.
한국에서 한학기를 까먹은 관계로 한 반 안의 우-열 그룹에서 중간 그룹에 끼이게 되었다. 

그 해가 72년이니까, 10월 유신이 있던 해였다. 어느 날인가 뉴스에서 한국 관련 뉴스, 
경직된 분위기의 군인들... 그리고 남한과 북한 관련 뉴스를 부모님들께서 보고 계셨다.
흠.... Korea는 알겠는데, North Korea랑, South Korea가 따로 있다니!
이번에는 우리는 무슨 코리아냐고 물었다. 엄마가 South 코리아란다. 
그럼 South 코리아는 어디에 있는데? 물으니....엄마가 North 코리아 밑에 있단다.
혼자서 곰곰히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그럼, South 코리아는 커다란 지하 국가였단 말인가!!~!" 
(지도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밑에'를 말 그대로 상상했던 것이다. ㅡㅡ;;  ) 

8세(1학년): 
정신 없게 또 한학기 만에 돌아와서 다시 1학년 2학기에 편입했다.
1학년 2학기만 3번을 다닌 셈이다. 알고 보니 이번에 편입한 것이 제 나이에 들어간거였다.
음하하하~~~!  이번에는 한글을 읽을 수 있었다! 
배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반년동안 엄마가 열심히 가르쳐 주셨나보다. 
그래도.... 받아쓰기 뭐 이런 건 너무나도 어려운 장벽이었다! 
쪽지시험에서 100점 맞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학교를 다닌 지 1달 쯤 후에,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물으셨다. 
" **야,  너 혹시.... 전과 보고 공부하니?"
내 대답: " 전과가 뭔데요?"  
선생님은 기가 막히다는 듯, 메모지에 '전과'라고 적어주시며,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이거 사서 숙제 할 때 참고해서 해와라..." 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국어 숙제가 비슷한말 몇개, 반대말 몇개, 어려운 낱말 몇개 찾아서 적어오는 식으로 주어졌는데,
일학년 교과서를 다 뒤져도 단어 몇 개 안되는데, 그중에 그 '몇개'를 어떻게 다 채운다냐~?
매일 그 '몇개'를 채우느라 엄마랑 나랑 국어사전 붙잡고 씨름을 했었는데.....! 

세상에나!  그 전과를 딱 펼치니 '비슷한 말,  반대말, 어려운 낱말 풀이가 일목요연하게 쪽별로 정리되어 있는거다!  그냥 베끼면 되는 거였다!!
"정말 전과를 발명한 사람은 천재임이 틀림없다!" 라고 생각했다.  ^^;;

그 후에는.....>

무엇보다도 '외우는 것'을 싫어했다.
구구단도 학교 진도를 겨우 좇아서 외웠고,
한때 의무로 외우도록 했던 '국민교육 헌장'도 아마 반에서 끝에서 5번째 정도로 통과했던 것 같다.
교과서의 '시'를 외우는 것도 싫었다. 
작품 - 작가 - 소속되는 문예사조는 나름대로 외우려고 하다가, 언젠가부터는 '그냥 한문제 틀리지' 하고 거의 포기했다.
가끔 전설처럼 들려오는 '국사 교과서를 외운다'는 아이들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시험공부도 교과서 한번 읽어보고 '~~ 생각해 봅시다' 하고 써 있으면 머리 속으로 한번 생각하는 걸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었다.

믿었던 영어도..... 한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곧잘 말했던 것 같은데...
6학년이 되니까 다~~! 까먹었다!
하다못해 Who are you? 의 are 자를 읽는 법도 잊어먹었었다.
게다가 유치원생의 어휘가 오죽하겠는가? 중고등학교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똑같이 단어를 일일이 외워야 했다. ㅜㅡ

난 지금도 사람 이름 - 작품- 사조 이런 건 젬병이다.
마찬가지로,  이름 - 얼굴 - 아이디  이런 것도 연관을 잘 못 시킨다. 아마 뇌의 구조적인 결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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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8-1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재밌게 쓰셨네요

sooninara 2005-08-11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두나라 사이에서 문화충격이 크셨군요.
지하나라..ㅋㅋ
전 야간 등화관제가 안잊혀져요. 전쟁나면 죽을수도 있구나 생각하게 만든 훈련이었다죠. 그리고 박대퉁령 시해후에 전쟁나서 다 죽게 됐다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손잡고 울었던일..^^

sooninara 2005-08-1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추가..저도 사람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는거 힘들어요.
학년 올라가면 같은반이었던 아이들 이름도 가물가물..지금은 대학 동창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요..ㅠ.ㅠ
당연히 연예인..운동선수 이런것은 너무나 어려웠다죠.

明卵 2005-08-1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는 즐겁네요^^
전 이름을 금방 외우는데, 문제는 금방 까먹어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이름도 기억이 안 나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