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데리다 [시선의 권리] 서평을 둘러싼 황당한 사건

지난 번에 말했던 것처럼 [한국출판인회의]라는 단체에서 매달 내고 있는 [북 앤 이슈Book & Issue]라는 서평지에서 지난 달에 서평을 부탁해와서 보름전에 서평을 써서 보냈습니다. 이제 책이 나오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이 단체 관계자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이 책을 선정했던 분이 책을 꼼꼼하게 읽지 않고서 책을 선정한 것 같아서, 내부 회의 결과 이 책의 선정을 취소했고, 따라서 서평도 빼고서 책을 냈다고 말입니다.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잦은 오역시비가 일어나는 줄 뻔히 알고 있는 사람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서 이 달의 책을 선정한다는 관행 자체(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위를 부여했는지??)도 어이가 없거니와, 자신들이 서평을 부탁해서, 고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평을 부탁해서 여러 날 동안 없는 시간 들여가며 책을 읽고 서평을 써주니까, 그제서야 책의 선정을 취소하고 서평을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은 어디에서 나온 발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서평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단체의 공신력이 떨어지는 것이나 선정자의 위신이 실추되는 것, 또 아마도 출판사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 등이 고려되었겠지요.

하지만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300여개 출판사들이 창립한 <한국출판인회의>는 지식문화의 근간인 출판의 개념과 영역을 확장시키고 그 산업 발전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지식정보 사회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라고 자신의 정체를 표방하고 있고, 자신의 정체에 따라 소임을 다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이 달의 책들을 선정하는 일을 여러 차례에 걸쳐 해온 단체라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닌가요? 이처럼 엄연히 이미 이 달의 책으로 선정, 발표하고 나서(이는 이미 중앙일간지에 보도된 바 있고, 인터넷 서점들 가운데는 이러한 선정의 결과를 공지한 곳들도 있습니다) 선정의 행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자, 그제서야 선정의 행위를 취소하고 서평을 싣지 않겠다고 하는 것(처음부터 선정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은 자신들의 선정 행위가 갖는 권위는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잘못된 선정 행위의 책임은 회피하겠다는 발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경우 또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될 쪽은 잘못된 정보를 갖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일 텐데 말입니다.

그동안 이 책에 관해 인터넷 서평을 쓸까 망설였는데, 이제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번역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포함시켜서 본격적으로 인터넷 서평을 써야 할 것 같군요. 시간에 쫒겨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고맙게도(??) 시간을 내라고 부추기는군요. 

아래는 [북앤이슈]를 위해 써준 서평의 원문입니다.

 

 

또 하나의 참담한 데리다 오역본


  데리다는 현재 인문사회과학 및 예술이론 분야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심지어 영미 학계에서는 데리다의 작업에 관한 논의가 하나의 독자적인 하위학문(sub-discipline)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데리다의 이론적 작업은 여러 학문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인문사회과학 및 예술이론 분야의 이론적 발전을 위해서는 데리다의 작업을 소개하고 이해하는 일은 필수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데리다의 중요한 예술론 저서 중 한 권인 [시선의 권리](아트북스)의 출간은 원칙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 없다. 데리다는 문학에 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회화에 관해서도 여러 권의 책(La vérité en peinture(1978), Mémoires d'aveugle(1990), Atlan: Grand format(2001), Artaud le Moma(2002))을 낸 적이 있지만, 사진, 포토로망에 관해 이처럼 체계적인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벨기에 출신의 사진작가인 마리-프랑수아즈 플리사르의 포토로망에 관해 데리다가 긴 ‘해설’을 붙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격조 높은 사진들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지만, 데리다가 덧붙인 탁월한 ‘해설’은 이 책을 통상적인 사진집(과 해설)의 차원을 넘어, 이미지와 문자, 보기와 말하기/쓰기, 장르와 젠더, 현전/현상과 환영/유령 및 더 나아가 시선과 감시, 법과 권력 등에 관한 예술적, 철학적 논의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번역이 제대로,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이루어졌을 때의 이야기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이는 대부분의 국내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전설, 신화일 따름이다. 사실 국내의 데리다 독자들은 이미 이같은 사실과 소문, 현실과 신화 사이의 참담한 괴리를 여러번, 너무나 자주 경험한 바 있다. 아쉽게도 이는 이 번역본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인데, 이 책은 [그라마톨로지](민음사, 1996)나 [해체](문예출판사, 1996), [불량배들](휴머니스트, 2003) 등과 더불어 데리다 저서의 최악의 오역본들 중 하나로 꼽을 만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저런 기회에 지적했던 것처럼 데리다는 현대뿐만 아니라 철학사 전체를 통틀어 볼 때에도 보기드문 문장가(그에 비견할 만한 현대의 이론가는 라캉 정도일 것이다)여서, 이론적인 논증과 수사학적인 어법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글을 쓰며, 그의 작업이 갖는 의의, 중요성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논증과 수사학의 결합이 산출해내는 의미효과들에 있다. 따라서 데리다 저서에 대한 번역의 성패는 이러한 의미효과들을 얼마나 정확히, 얼마나 충실하게 옮겨내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하지만 내가 읽은 바로는 이 책의 역자는 “dont”이나 “que”와 같은 프랑스어의 초보적인 관계대명사의 용법이나 과거시제의 용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격자”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abyme”를 줄곧 “심연”으로 번역하거나 “독촉”과 더불어 “총합”이라는 의미를 지닌 “sommation”이라는 단어를 줄곧 “독촉”이라고만 번역하는 등의 일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결과이며, 더 나아가 복잡하게 뒤얽힌 논증과 수사학의 결합을 풀어내어 이해 가능한 표현으로 전달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로 가득차 있는 이 번역본은, 데리다를 신비스러운 인물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쓰는 데도 외국에서는 놀라운 명성을 누리고 있는 불가사의한 인물로 만드는 데 기여할 뿐, 독자들이 미묘한 논의들을 통해 산출되는 놀라운 의미효과들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데리다의 이론적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역자만이 아니라 출판사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문학동네의 자회사인 아트북스 같은 출판사라면, 그리고 “데리다의 3대 예술서의 하나”―무슨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라고 광고할 만큼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면, 더 나아가 역자가 불어 능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면, 데리다 전문가나 적어도 불어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외주를 줘서 이 책의 번역을 꼼꼼하게 교열하고 교정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 번역본의 상태는 출판사에서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이 책을 출간했음을 잘 말해준다. 그런 마당에 “3대 예술서 중 하나”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럴 바에야, 재판을 찍을 경우에는 아예 [자크 데리다, 시선의 권리]라는 민망한 제목을 빼고 대신 [마리-프랑수아즈 플리사르의 포토로망: 시선의 권리]라는 제목으로 고쳐내는 게 옳을 것이다. ‘포토로망의 번역본’이라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한국출판인회의의 공신력 역시 이 책으로 인해 시험을 받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위촉해서 달마다 우수한 도서들을 선정하는 일은 매우 바람직하고 장려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데리다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데리다의 책이 이처럼 우수도서로 선정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달의 최악의 도서들 중 한 권으로 꼽힐 만한 오역본을 우수 도서로 선정해놓으면, 이 단체의 권위를 믿고 이 책을 마음놓고 사서 읽는 독자들이 입게 될 피해는 과연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이래저래 이 책의 출간과 우수도서 선정은 한국 출판계 및 인문학계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또하나의 사건, 또하나의 해프닝으로 기록될 것 같다. 제발 이런 류의 참담한 사건, 이런 식의 어이 없는 해프닝은 이번으로 끝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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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거울 2004-09-2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어이가 없네요. 그런 공신력 있는 곳에서 어찌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선정하고 또 나중에서야 고생해서 써 논 서평을 없던걸로 하자니... 참 세상이 험하다 험하다 별 놈의 험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구만요... 기분 드럽고 씁쓸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