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인구가 120만 정도 되는, 서울의 10분의 1밖에 안되는 도시입니다. 게다가 토박이보다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다지 배타적이지 않고,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알음알음 엮이기 쉬운 동네입니다.
대전의 '한밭 레츠'도 그렇게 알음알음 엮여서 알게 된 모임입니다.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도 연약한 싹이지만, 이 싹을 사랑하고 키우려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전 그저 곁따리 구경꾼 회원이구요.
레츠에 관한 책이 나와서 퍼왔습니다. 저도 제대로 모르던 레츠에 관해 좀더 알기 위해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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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한 돈의 세계
한밭레츠를 디자인 하신 박용남 전 대전의제 21사무처장님이 번역하신 책이 나왔습니다. 각 일간지에 나온 서평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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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의 세계
레츠, 조너선 크롤 지음,박용남 옮김, 이후
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의 세계’다. 즉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돈’은 인간의 얼굴을 띠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전체 인구의 0.1%가 전체 부(富)의 50% 정도를 갖고 있다는 추정도 나오고, 전 세계 통화량 중 실물 교역에 관련된 통화는 5%도 안 된다는 보고서도 있다. 반면 수많은 공동체들은 황폐화돼가고 있다. 통화 공급은 수요에 미치지 못하고, 중소기업은 파산하고, 실업이 일상사가 돼 버리고…. 자, 지역에선 그저 팔짱만 끼고 있어야 하나?
‘레츠(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즉 ‘지방교환 교역시스템’은 이런 흐름에 맞서 지역 고유의 부를 창출하려는 시도다. 도대체 어떻게? 그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를 만드는 거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아사카 지역에서만 사용되는 통화인 ‘아사카 아워’는 1시간의 노동이나 10달러에 해당한다. 장부정리 서비스나 정원 손질, 바이올린 레슨, 침 놓기, 안마…. 지역 주민들이 창출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들에 새로운 ‘가치’가 생겨난다. 이렇게 생겨난 가치로 식료품을 살 수도 있고 집세를 낼 수도 있다.
‘돈’이 없어도 ‘가치’가 생겨나는 이런 시스템은 단순히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레츠가 없었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서비스가 생기면서 공동체의 신뢰와 우정이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됐던 것이다.
영국 노팅엄에 사는 한 여성은 레츠에 가입하기 전엔 거의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이 고독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집안 일을 돌봐주려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온다. 그 대신 그녀는 소장하고 있던 많은 음반과 테이프를 다른 회원들에게 빌려준다. 그녀는 말한다. “시스템이 내 인생을 변화시켰다.”
북아일랜드 밴브리지의 레츠 회원인 마거릿 글로버는 혼자 살고 있었는데, 여행을 다녀온 뒤 파이프가 터져 온통 물로 가득찬 자신의 집을 발견했다. 지역 레츠에 연락을 취하고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섯 명의 남자들이 그 집에 도착해 수도를 잠그고 카펫과 침구류를 밖으로 내다 놓은 뒤 사흘 동안 집안 정리를 도와줬다. 이들에겐 모두 지역통화인 ‘링크’가 지급됐다. 위기의 순간에 레츠가 보여준 극적인 도움의 예다.
물론 문제점이 없을 수 없다. 시간을 단위로 노동의 가치가 평가되는 시스템은 전문직과 비전문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부채에 대한 두려움과 이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다면 레츠의 운영은 커다란 곤란을 겪게 된다. 이 책에는 이와 관련된 고민과 문제해결의 과정들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박용남씨는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안운동가. 전 세계 3000여개 레츠 중 하나인 ‘한밭레츠’의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한 그는 책 말미에 한밭레츠의 운영 사례를 직접 소개한다. 지역화폐인 4종의 ‘두루’를 사용하는 회원수가 400명이 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