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어제 아침 일찍 서울에 갔습니다.  
시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국가인권위 사무실에 잠시 들려서 볼일을 보고,
사무실 창을 통해 일찍부터 광장을 채운 검고 노란 색의 물결을 잠시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몇 시간을 보내면 노무현 대통령의 운구차도, 노제도 볼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남지 못했습니다.
대신 서거 소식이 전해지기 이전에 참가하기로 했던 어떤 학회에 참가하러 발을 옮겼습니다. 
학회.... 빠지자면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FTA 와 이라크 파병 등으로 당신에게 실망하고 비난했던 것이 미안해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와서 슬퍼하며 보낸다는 것이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 눈물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회가 '대안 세계'를 모색하는 자리였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저녁에 학회가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시청을 지나 대학로로 갔습니다.
밤에 촛불이 켜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대학로에서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앞으로 의료인이 될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과 권력의 병리학, 그리고 보건의료 부문에서의 국제 연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롤모델을 찾고 있었습니다.   

무궁화호 막차를 타고 대전에 내려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반.
지쳐 잠들때까지 차마 실황으로는 보지 못한 영결식과 노제 소식을 찾아 읽고, 보았습니다. 


지난 1년 반,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권력기관의 벌거벗은 욕망을 보았고,
커다란 계획 하에 언론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는 손길도 보았습니다.
촛불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경찰의 히스테리는 오히려 그들의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싹이 얼마나 여린 것인지, 굳건한 토대에 올려놓으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죽음을 통해서 이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커다란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어제 당신을 보내면서 많은 이들이 이 과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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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패한 '대통령', 역사적 '정치인'
    from 남은 건 책 밖에 없다 2009-05-31 10:19 
    트랙백에 또 트랙백을 답니다.   "........FTA 와 이라크 파병 등으로 당신에게 실망하고 비난했던 것이 미안해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와서 슬퍼하며 보낸다는 것이 염치가 없었습니다....."         네. 제가 딱 그랬어요. 염치가 없더군요. 제 눈물의 정체를 잘 모르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