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견뎌야 하는 순간이 너무 많아 나는 그때 국어 선생님의 담담한 표정을 자주 떠올린다. 견딘다는 것은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힘을 필요로 하는 적극적인 태도라는 걸 뒤늦게 알아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견뎌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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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태양은 광대한 우주에서 모래 한 알에 지나지 않는데 나라는 존재는 또 뭐란 말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유한한 삶 속에서 존귀하고 책임감있게 하루하루 사는 것이다. 우연히 태어나, 필연적으로 죽는다. 죽음에 초연했던 어머니는 가장 소중한 수업을 해 주셨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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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 환자의 고통을 몇 주 혹은 몇 달까지 연장하는 일이 환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윤리에 부합하는가? 입법자, 의료 간병인, 가족의 관점이 과거에 얽매여 있어 환자의 자주권을 찾아보기 힘들다. 임종을 앞두고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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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80년대 이후 우리는 그렇게 열린 새로운 믿음과 영성의 길을 이어가지 못했다. 진보 운동은 세속화되었고, 기성종교는 보수화되었다. 차이를 적대적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건설적 협동이 되게 하는 것은 전체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세속화된 진보운동 속에서도 보수화된 신앙 속에서도 우리는 이제 더는 전체에 대한 믿음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리하여 모두 자기가 선이라 믿으면서 남을 악이라 단죄하고, 남과 싸워 이기는 일에만 골몰한다. - P106

진리든 선이든 오직 전체가 절대자이다. 그런즉 하나님도 전체이다. 부분을 위한 신은 더는 신이 아닌 것이다. 의인이 하나도 없고, 진리를 깨닫는 자 역시 하나도 없는 까닭은 모두 전체로부터 이탈하여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전체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 치우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보다 높은 하나를 이루지 못하는 차이 속에서 적대적으로 분열한다. - P106

하지만 가능한 믿음이든 불가능한 믿음이든, 참된 믿음이 역사와 유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새로운 믿음은 우리가 지금까지 형성해 온 역사의 의미를 믿음의 관점에서 해명할 때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다. 그 역사는 우리가 수난과 저항과 투쟁속에서 형성해 온 우리 자신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 역사에 뿌리 박은 믿음이란 어쩌면 그 속에서 스스로 믿음의 모범이 된 사람들이 선구적으로 보여 주었던 그런 믿음일 것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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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소영웅주의나 알량한 허영심 때문에 목숨을 걸고 불의에 저항하지는 않는다. "짓밟히고 고난당하는 인간들의 인간 회복,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누구도 개인적 이익을 위해 목숨 걸고 도박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한국민주주의의 위기와 진보운동의 변질이나 타락을 비판한다 하더라도, 불의에 대항하여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싸웠던 사람들과 그들의 시대에 대한 감사와 존중의 감정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그런 희생 덕분에 박정희도 전두환도 없는 이 좋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마땅한 염치이다. - P87

목적이 선하다는 확신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정당화 하게 되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최초의 이상은 그 이상을 위한 모든 수단을 무차별하게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하여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고, 지금의 현실은 오로지 적대적 당파성의 구도에 의해 규정된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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