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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ㅣ 페이지터너스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2월
평점 :
실비오는 조용한 삶을 살고 있고 그 고독을 사랑한다.
한때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를 느끼고 방랑을 한 적도 있었다.
노년이 된 지금은 자신의 작은공간에서 고독을 느끼는 것을 사랑한다.
P11. 나에게는 파이프 담배, 다리 사이로 기어드는 강아지, 다락방에서 들려오는 생쥐 소리, 씩씩거리며 타는 불, 장작 받침쇠 옆에서 천천히 데워지는 보졸레산 포도주 한 병이면 족하다. 신문도 책도 필요 없다.
실비오 가까이에는 사촌인 엔렌이 남편과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고 그 가족은 실비오와 제법 잘 지내고 있다.
엘렌의 딸 콜레트가 물랭뇌프 방앗간집 아들장과 결혼하며 사건이 생긴다. 어느 날 외출했던 장이 돌아오다 집 앞의 강에 빠져 죽는다.
그렇게 이야기는 가족의 슬픔이나 장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인듯 흐른다.
하지만 이 글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젊은 실비오의 이야기 엘렌의 이야기, 엘렌의 이복언니 세실과 그녀가 입양한 자유분방하고 소문이 나쁜 브리지트의 젊음 또는 그들에게 흐르는 뜨거운 피에 대한 이야기다.
노년의 실비오가, 고독과 평화로움을 사랑하는 실비오가 그들 사이에 흐르는 뜨거웠던 순간을 말하고 그 가족에 흐르는 욕망보다 더 뜨거운 피가 흐르는 그 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P151. 육체의 욕망은 헐값으로도 채워진다.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마음, 사랑하고 절망하고 어떤 불로든 타오르길 갈망하는 마음이 문제다. 우리가 원했던 건 그것이었다. 타오르는 것, 우리 자신을 불사르는 것, 불이 숲을 집어삼키듯 우리의 나날을 집어삼키는 것.
조용하고 평화로운 실비오가 옛일에 대해 말하며 다시 뜨거워지는 그 순간. 실비오는 살아있음을 다시 느꼈을것 같다. 그 시절 광기와도 같았던 그 때가 있었기 때문에 평화로움 속에 몸을 의탁하고 살수 있었던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