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족한 삶  / 정명

 

한여름 열기가 가라앉자 

세상엔 평온이 찾아왔지 

 

굶주리는 이도 없고 헐벗은 이도 없고 

우는 이가 없으니 웃는 이도 없고 

그러자 바람은 더이상 불지 않으며 

세상은 적막해졌던 것이다. 

 

물줄기는 갈 곳 몰라 흐름을 멈추고 

시간이 멈추자 낙엽도 지지 않는다. 

 

아아, 충족이란 무서운 것이로다 

 

찾는 이 없는 꽃들은 말없이 피었다 지고 

아무도 연모하지 않는 달은 홀로 머물다 가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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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이들에게 바치는 책! - 뒷표지에 박힌 부제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뿌듯한 무게로 가슴 속에 얹혀진다.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사람. 문학을 향해 유심했거나 무심하게라도 한번이라도 무언가를 맹세했거나 다짐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인공이 겪어낸 오랜 지병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설사 그러다가 이제는 문학소년 문학청년기의 '철없는' 다짐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설가의 꿈을 미루어두고 방송작가로 일하던 주인공 수영은 도스토옙스키의 흔적을 찾아가는 다큐물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손에 넣게 된 도스토옙스키의 돌맹이 하나로부터 잊었던 문학여정의 회상을 시작한다. 이 돌맹이는 도스토옙스키가 수감되었던 시베리아 옴스크 감옥의 작은 독방에 깔려있던 것이다.

소설가의 꿈을 안고 입학한 대학 문창과 시절의 꿈과 방황, 오만과 좌절, 그리고 작품을 접어두고 글로 먹고살기 위해 택한 방송작가 생활 등 수영의 여정은 어느 정도 작가 자신의 자전적 회상과도 맞닿은 듯하다. 그 와중에도 문학에의 열정을 되살려내고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일이라든가.

소설은 당연히 픽션이지만, 작가의 길을 향한 주인공의 식지 않는 열망과 사랑은 작가 스스로의 고백이며 지조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 소설 속에는 주인공이 수련과정에서 써놓았던 여러 습작들과,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발표되었던 작가 자신의 길고 짧은 단편들도 소설 속 소설 형태로 담겨 있다. 작가의 길에 대한 의지를 잠시도 잊은 적이 없는 주인공의 삶을 빌려 작가 자신의 문학역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셈이다.

 

그(주인공)에 비하면 지난날 문학에 대한 나의 연모는 사소할 정도로 소극적이거나 지지부진한 것이었다. 얼치기로 문학을 동경하는 데 지나지 않았던 내게 이 책은 하나의 지고한 <순애보>와도 같았다.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 문학을 가슴에 품은 한 작가의 진정을 엿보는 동안 '사랑은 이런 것이야'하는 가르침을 얻는 기분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사랑도 현실적인 거리감이 느껴질 때 엄두가 나는 법이다. 그 대상이 너무나 지고한 곳에 있거나 결코 닿을 수 없는 바다 건너에 있다면 어쩌겠는가. 한때 품었던 짝사랑을 회상하는 것으로 자족하고 마는 사랑도 있지 않겠는가.

 

그가 지중해변에서 까뮈의 뫼르소처럼 햇살에 눈이 멀고, 바다를 향해 걸어들어갈 때, 그리고는 '나는 이 세계의 영원한 침묵을 향해서 걸어갔다.'라고 말을 맺을 때, 나는 한없이 그가 부러웠다. 그는 이제 날개를 달고 문학의 바다로 걸어들어간 소금인형이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삶에 지쳐 잠시 글쓰기가 중단되었던 작가 친구와,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다른 일로 인생경험을 쌓고 있는 딸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했다. 당장 또는 장차 작가의 길을 갈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은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사랑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거나 최소한 대리만족이나 신선한 문학에의 담론을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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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쓰는 글은 어느 한 가지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판사 검사 변호사 가운데...  

자기 작품의 등장인물들에 대하여 어느 경우에는 철두철미 그의 편이 되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는 철두철미 그의 심판자가 되기도 하며 어느 경우에는 선과 악의 중간쯤에서 철두철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간자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단지 냉철한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여 쓰기도 한다. 인물을 편드는 것은 변호사와 같은 입장일 테고, 작중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잘잘못을 가려보려고 하는 것은 검사와 같은 입장이며, 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그저 냉정하게 객관적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하려는 것은 판사가 가질 수 있는 입장과 같다고 할 것이다. 

내게 있어서 글이란 객관적 관찰자의 시점을 놓치지 않은 공정한 기록이고 싶었다. 선이나 악과 같은 것들은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틀릴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어느 가치를 편들거나 무게를 두고 변호하거나 정죄하는 식의 편협한 글은 글쟁이가 궁극적으로 지향할 바가 아니라고 여겼다. 

아무리 객관자라 해도 내심 기우는 '가치'라는 게 없을 수 없다. 아무리 정교하게 객관의 형식을 유지한다 해도 나는 그 어느 쪽인가를 편들고 그 상대가 되는 쪽을 정죄하는 내심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해도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냉정한 중간자, 객관자의 시점을 가진 글이다. 내 자신의 가치와 어긋나는 한이 있더라도 글 만큼은, 神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처럼, 냉정하게도 객관자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실제 삶은 그 어느쪽엔가 기울어 있을 수도 있다. 그것과 무관하게, 나의 글 만큼은(앞으로 쓰여질) 東과 西, 南과 北 사이에서, 묵묵히 중앙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201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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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정명

 

서울을 가려다가 나도 모르게 

발걸음 고향으로 향했네 

 

눈앞에는 붉은 노을 스러져가고 

등 뒤로는 하얀 달빛 서리 내릴 때  

 

(200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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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정명

작가 P씨의 글은 밤중에 쓰여졌다.
열달 가까이 밤을 새면서 쓰고 지우고 고쳐 탈고했다. 
 
대신 멜라토닌이 나오지 않는 낮에 잤다. 
그 사이에 십년은 더 늙었다.
 
- 왜 하필 밤에 쓰죠?
- 밤이어야만 새 글이 나오니까요.
- 멜라토닌과 바꾼 셈이로군요. 
- 창작이란, 자기 생명을 글로 바꾸는 일이랍니다. 
 

1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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