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쓰는 글은 어느 한 가지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판사 검사 변호사 가운데...
자기 작품의 등장인물들에 대하여 어느 경우에는 철두철미 그의 편이 되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는 철두철미 그의 심판자가 되기도 하며 어느 경우에는 선과 악의 중간쯤에서 철두철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간자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단지 냉철한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여 쓰기도 한다. 인물을 편드는 것은 변호사와 같은 입장일 테고, 작중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잘잘못을 가려보려고 하는 것은 검사와 같은 입장이며, 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그저 냉정하게 객관적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하려는 것은 판사가 가질 수 있는 입장과 같다고 할 것이다.
내게 있어서 글이란 객관적 관찰자의 시점을 놓치지 않은 공정한 기록이고 싶었다. 선이나 악과 같은 것들은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틀릴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어느 가치를 편들거나 무게를 두고 변호하거나 정죄하는 식의 편협한 글은 글쟁이가 궁극적으로 지향할 바가 아니라고 여겼다.
아무리 객관자라 해도 내심 기우는 '가치'라는 게 없을 수 없다. 아무리 정교하게 객관의 형식을 유지한다 해도 나는 그 어느 쪽인가를 편들고 그 상대가 되는 쪽을 정죄하는 내심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해도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냉정한 중간자, 객관자의 시점을 가진 글이다. 내 자신의 가치와 어긋나는 한이 있더라도 글 만큼은, 神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처럼, 냉정하게도 객관자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실제 삶은 그 어느쪽엔가 기울어 있을 수도 있다. 그것과 무관하게, 나의 글 만큼은(앞으로 쓰여질) 東과 西, 南과 北 사이에서, 묵묵히 중앙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20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