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어제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담화를 발표했다. 총리는 '지금까지 100년 가운데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하고 앞으로 100년을 위해 함께 나간다는 생각에서 담화를 발표했다.'고 말했다. 요지는 '식민지배로 한국에 손해를 입히고 고통을 주어서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조선왕실의궤도 인도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각계각층의 반응이 엇갈린다.
담화가 있은 후 자민당 등 보수 야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부적절한 담화였다고 불만이 쏟아졌다. 애초 사과문은 좀 더 파격적인- 예를 들어 조약이 원천무효라는-내용을 담을 예정이었지만 반대가 심해 정도가 약화됐다. 그럼에도 여야당은 '문화재 반환이 개인보상 문제로 불똥이 튈 수 있다.'며 '이미 끝난 문제로, 상대에게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담화가 병합조약의 불법성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그 이전의 담화와 별 차이가 없다고 보도했다. 물론 담화가 아시아 전체가 아닌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총리담화라는 점, 지배가 강제였음을 인정한 점, 문화재를 반환하기로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의 실천에 주목하자고 했다. 군위안부, 독도, 교과서 문제 등은 앞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계는 담화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의궤뿐만 아니라 다른 약탈당한 문화재도 협정해야하는데 말이 없었다며 '변하지 않는 일본의 역사 인식과 태도를 확인한 씁쓸한 담화였다'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은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본 한국인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아무 말이 없다'고 말했다.
[진중권의 아이콘] ‘촛불은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깜박인다.‘에서 진중권은 입장에 따라 세계가 달라 보이기 마련이라고 한다. 빛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가 될 수 있듯이 현실에서도 이율배반인 현상이 많다. 그래서 촛불 시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진보주의자들이 그들의 오른편에 있고, 진보주의자들의 눈에 촛불시위자들이 오히려 그들의 오른쪽에 있을 수 있다. 결국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상황을 가늠 하고 어느 것이 조개인지, 해일인지 판단하기 마련이다.
일본 측의 입장에서 본 총리 담화는 부적절하고 지나치게 앞서 나갔다면 한국 측에서 본 총리 담화는 부족하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사실 개인 보상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일본은 일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합병이 원천 무효라는 선언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조상을 부정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선대의 잘못을 후대에서 인정하고 사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받았던 고통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지 않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과와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 잘잘못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조개와 해일이 달라진다. 여기에 ‘객관적인’, ‘절대적인’ 답도 기준도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진리라는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지만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합의에 이를 수 있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 중간 즈음에서 만나는 것이 현실에서 필요한 자세다. 진중권은 ‘서로 충돌하는 두 입장을- 마치 힘껏 당겨 묶은 활줄처럼- 그 팽팽한 긴장 속에서 함께 유지하는 사유의 새로운 습관’을 가지자고 한다. 이것이 “적어도 ‘A만이 옳다’, 혹은 ‘B만이 옳다’는 독단보다 우리를 현실에 더 가깝게 데려가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