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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을 위한 투쟁
Norman Sartorius 지음, 젊은정신과의사들의 모임 옮김 / 학지사 / 2006년 10월
평점 :
역자 후기
'정신건강을 위한 투쟁'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이 작은 책의 번역은 2004년 2월 용인정신병원 WHO C.C. 주최로 처음 시작한 제 1회 Development of Professional and Academic Skill of Young Psychiatrists Workshop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거기에서 노만 사토리우스 라는 거장을 만나게 되었다. 3일 동안 12시간씩 영어로만 진행된 빡빡한 일정 속에서 일흔 살이 넘은(그의 정확한 나이는 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그는 조금도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우리들의 발표에 대해 토론했다. WHO 정신보건국장, 세계정신의학회 회장이라는 경력이 무색하게 그는 참가자 한 명 한 명의 의견에 귀 기울였고 감탄하고 칭찬해주었다. 그는 좋은 교육자였다. 발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발표 내용에 대한 진정성, 진심이라는 그의 지적은 그 자신에게 가장 들어맞는 것이었다.
워크삽 후 그의 열정에 감염된 우리는 그의 책을 번역하기 위해 참가자들 중 인터넷으로 자원자를 모집했다. 자원자 대부분은 학문의 주변부(?)에 속하는, 번역의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개인의원 봉직의, 만성 대형정신병원 봉직의, 지방 국립정신병원 과장 그리고 박봉과 바쁜 일정의 대학 병원 전임의들이었다. 200여 페이지의 가벼운 책의 번역에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은 일상 속의 게으름을 보여 주지만 우리 자신들에게 뻔뻔하게 감사와 칭찬을 해주고 싶다. 번역에는 김경중(16장,17장,18장) 박성봉( 5장, 12장) 이주현(10장, 19장) 이성근(1장.6장.15장) 이해원(2장,3장) 유제춘(4장,13장) 장홍석(7장,14장) 조근호(8장,9장) 한창수(11장, 서론) 선생님이, 그리고 김성엽, 박용천 선생님이 수고해 주셨다. 특히 최종 감수에는 이주현, 이성근, 유제춘 선생님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대형 정신병원에서의 제한적인 정신과 의사의 역할, 부적절한 보험수가, 일상 속에서 소진되어가는 자신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낙인과 가난이라는 또 다른 장애와 싸우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현실 앞에 정신과 전문의가 되고 나서 우리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이 책에서 노만 사토리우스는 답답한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한다. "정신의학은 가난하거나 건강 서비스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현장에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탁월한 예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그토록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비통하다." 하지만 항상 끝부분에서는 희망을 놓치 않고 있다. "이리하여 정신보건이 공중 보건 프로그램에 완전히 소개되는데 거의 5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일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소름 끼친다(terrible): 하지만 한편으로 시작할 때에는 거의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도록 놀라운 일이다."
노자 45장에 대지약우(大智若愚)라는 말이 나온다.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쪼그라든 우리의 현실에서는 너무나 큰, 그리고 이상적인 이야기같이만 느껴진다. 하지만 교육 평준화의 문제, 의료법인의 영리기관화, 노령화 저출산, 높은 이혼율, 여가시간의 증대 등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요즘 우리의 세태에서 사회 발전에 대한 그의 혜안에 다시 한 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와 의료의 발전과 별개로 정신보건 문제의 해결을 생각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그의 열정은 더욱 하나의 불씨가 되어 세계 도처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명의 '노만 사토리우스'를 탄생시킬 것이다.
'Fighting for Mental Health'라는 제목의 번역도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숙제였다. 응원 문구로 많이 사용되는 파이팅(Fighting)이라는 영어단어는 우리나라에서 의미가 변질된 콩글리스다. Fighting은 전쟁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돌격이나 전투, 투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투쟁'이라는 단어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나 노사 갈등부터 떠오르며 무언가 거북한 느낌이었다. 제목의 번역을 위해 노만 사토리우스와 나눈 대화에서 그는 자신이 여기에서 사용한 fighting은 한 병사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듯이 한 개인의 헌신을 나타내는 뉘앙스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싸움, 투쟁, 헌신 등의 번역을 두고 가늠하다가 결국 '정신건강을 위한 투쟁'으로 결정지었다.
용어의 통일을 위해 애썼지만 미흡한 부분이 있고 거의 직역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도 눈에 뛴다. people with mental illness를 정신질환자가 아닌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로, disabled people을 장애인이 아닌 기능손실을 가진 사람들로 직역하였다. 그 속에는 정신질환자나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익숙한 현실에서 그들이 단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과 다짐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질환(disease), 질병(illness), 아픔(sickness), 장애(disorder), 손상(impairment), 기능손실(disability), 핸디캡(handicap)와 같은 병의 다양한 표현들을 최대한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했다. (이 원칙에 따라 mental illness는 정신질병이라고 번역하여야 하나 너무나 생소한 단어이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용어집에서도 정신질환으로 번역하도록 제안하고 있어 정신질환으로 번역하였다.) 원어의 뜻과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고자 몇몇 용어는 괄호 안에 영어단어를 그대로 실기도 했다.
그 번역을 하면서 각 장의 첫머리에 멋진 삽화를 넣어주는 센스에서 노만 사토리우스의 거장다운 모습을 다시 한번 보았다. 우리의 미숙한 번역이 노만 사토리우스의 재치 있고 수려한 문장을 흠집되지 않았는지 독자들에게 잘못 전달하지 않는지 무척 걱정된다.
우리는 이 책이 많은 정신과 의사와 정신보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 담당 공무원 그리고 공중보건 정책 결정자들에게 노만 사토리우스의 아래 메시지를 전해주기를 바란다. "연구를 수행할 때 우리는 종종 자신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관용에 대해서, 우리의 참을성과 인내력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우리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과 나누고 도우려는 우리의 의지에 대해서 배운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정말로 정신과 의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가슴 설레이기도 했고 현실의 자신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번역 작업을 통해 몇 명의 뜻이 통하는 친구를 얻은 것이 무엇보다도 큰 성과였습니다.
끝으로 이 책의 번역의 계기가 된 워크샵을 준비해주시고 출판사 섭외에 애써 주신 황태연 선생님과 추천사를 써 주신 이부영, 이호영 선생님 그리고 발간에 애써주신 학지사 김경민 선생님 외 관련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