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신건강을 위한 투쟁
Norman Sartorius 지음, 젊은정신과의사들의 모임 옮김 / 학지사 / 2006년 10월
평점 :
추천사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 정신건강부 책임자였던 Norman Sartorius 박사와 함께 공동연구나 각종 자문회에서 일하던 경험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내가 접할 수 있었던 그의 깊고 넓은 지식과 탁월한 행정능력, 지도력을 보고 배우는 것이 큰 즐거움 이었다. 세계정신의학회(World Psychiatric Association)의 회장직을 맡으셨을 때는 아시아 19지역 대표로 그를 보좌하는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의 눈부신 활동을 지켜보면서 그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세계정신의학회가 역사적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각종 회의에서 그의 생각과 지혜를 능숙한 언어 구사로 처리하던 그의 말솜씨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의 문학적인 재능은 가끔 잡지에 실린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을 정도여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의 정신건강에 대한 개인의 식견을 저술한 에세이집 Fighting for Mental Health가 출판 되었다는 소식에 나를 비롯해서 그를 아는 정신보건 분야 전문가들과 지식인들이 자못 기대가 컸던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우선 표지의 그림부터 시작해서 책의 구성과 삽화나 내용에 인용된 은유, 하다못해 책의 부피나 크기에 이르기까지 빈틈없는 예술작품 임을 알 수 있었다. 내용인즉 그의 방대한 경험과 정신건강에 대한 깊은 지식을 우리가 교훈 삼을 수 있는 실용적인 지혜로 설득력 있게 펼쳐 크게 감동 받았다. 그는 정신과 의사라는 확고한 정체성으로 정신의학을 공중보건과 연결시켜 우리들의 의식을 확장시켜주었고 특히 정신보건 정책과 프로그램을 어떻게 효과 있게 구축해서 정책결정자들을 깨우쳐 주느냐에 대한 전략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또한 이야기 조의 논리전개를 즐겨 여러 가지 은유를 이용했는데 읽는 이의 이해를 촉진하는데 특별한 효과를 주었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 효과나 케샨병 연구의 비유로 연구결과가 의사결정자들에게 어떻게 자극적이고 관심을 모을 수 있게 연구 과제를 구상을 하느냐에 대한 전략을 일깨워 준다. 연구내용의 난의도, 제출시기의 선택, 정부의 준거기준에 부합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역학조사에 대한 착안 등 우리 모두가 정치적 이여야 함을 시사한다. 또한 심리사회적 이슈의 사회발전에 대한 공헌을 끝없이 알리고 부각시켜서 자칫하면 우선위의 바닥을 면하기 힘든 정신보건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선택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 준다. 또한 정책 구상자들에게 여러 곳에서 얻은 다양한 정보들의 방향들이 일치되게 하고, 또한 그들이 이런 정보를 접할 때 감정적으로 공감 할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간접적이지만 보강효과가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다.
일단 수립한 정신보건 정책과 각종 정신건강프로그램을 사회가 받아드리게 하고 이를 확산시키는데 정신의학 그리고 정신과 의사의 책임 크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들을 제시한 제6장은 개발도상국가인 우리들 정신과의사들이 깊이 새겨야할 대목이다. 국민들 각자의 삶의 질의 향상이 산업화와 개인의 번영지향에 따라 급격히 중요시되는 현시점에서 정신보건 프로그램이 얼마나 국민 개개인이 적응하는데 촉진효과를 주는지, 그리고 특히 지역사회 정신보건운동이 지역사회의 발전과 그 구성원들의 참여의식을 높여주는 많은 지혜와 방법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설득해야 한다. 이 같은 설득이 결국 정책결정자들이 정신건강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게 하고 예산을 배려하게 하며 일반국민들이 스트레스의 가속화로 피곤한 와중에서 스스로 정신건강을 돌봄으로 스스로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동안 정신의학의 과학적인 지식들이 주로 정신질환에 관한 연구의 결과들로 나름대로 풍부해졌지만 이 지식들이 정신건강 증진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우리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정신의학의 지식들이 일반인들의 정신건강 증진에 무슨 효과가 있는지 특히 이 지식들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잘 번역 되어 있는지에 대한 그의 비판을 우리나라 정신과 의사들과 정신건강에 종사하는 여러 전문가들이 새겨들어야 한다. 우리들이 노력의 소산인 여러 가지 연구도 이런 실용적 관점에서 얼마나 적절한지를 평가해야 한다. 실용성 없는, 연구를 위한 연구들은 정책결정자나 비전문가들에게는 전혀 흥미꺼리가 될 수 없다. 저자는 또한 정신과 의사들이 기꺼이 자문 역할을 담당해서 사회 여러 기관에 전문가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 적극성을 갖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노인 정신보건에 대해서 저자는 우리가 노인 인구의 증가를 강조하면서 노인들에 대한 복지나 건강에 대한 정책을 촉구 한다고 해서 정책결정자들이 깨달아 정책을 입안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급증하는 노인 인구를 위해 나라가 새로운 정책을 세워야한다고 강조하지만 정책결정자들은 이런 주장을 마이동풍으로 흘려버리고 노인층에 대한 정책을 우선위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인구가 늘어도 노인들은 여전히 영향권이 없는 소수집단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노인들이 단결하여 집단형성해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그래서 노인에 대한 복지나 건강에 대한 정책수립을 쟁취한 경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노인들은 다른 소수집단에 비해 정치적인 집단행동에 있어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비록 집단행동이 없다 하더라도 노인층의 증가는 정치적인 안목에서 앞으로 가장 고려해야 할 집단으로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앞으로 두터운 노인층이 행사 할 수 있는 투표권은 그 어느 선거에서도 무시 못 할 영향인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균질의 집단으로 조직화되어 투쟁은 하지 않지만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퇴직 후 남은 여생을 여가생활이나 새로운 활동의 선택으로 저축한 돈을 쓰면서 뜻있게 살고 있는 제3기 인생 집단이 바로 노인층이다. 다른 연령층이 분명히 이 집단을 포용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움직임이 생긴다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요원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결국 사회가 노인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고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서비스도 발달하게 될 것이 라는 낙관적인 저자의 견해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연결”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신건강을 위한 투쟁”도 정신의학을 다른 여러 분야와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새롭고 돋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는 물론 정신보건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에게는 필독의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공중보건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나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 읽어 볼 수 있다면 더 없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우리나라 젊은 정신의학도들이 합심하여 이 책을 번역 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이 번역서가 우리나라 정신보건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 할 것이라고 믿는다. 번역하는데 용기도 필요하고 또 힘든 작업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책이 단순한 전문서적이 아니라 높은 지성을 가춘 격 높은 문화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그 번역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격 높은 연결과 은유적 표현을 한국어로 옮기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 제언하고 싶은 것 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거나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면 원문을 참고하라는 것이다. 원문을 참고하면 내용의 뜻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한번 읽고 덮어 둘 것이 아니라 다시 읽어 은미하면 좀 더 깊은 이해가 생긴다.
2006년 8월 15일
이 호 영
(전) 대한 신경정신의학회 회장, 아주대 총장
(현) 대우의료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