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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지 않는 아이
펄 벅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주볏거리는 경험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이 책은 가장 최근에게 나에게 이러한 감정을 선물해준 책이다.
이 책은 정신지체 딸을 가진 엄마로서 펄벅이 쓴 자전 수필이다.
"자폐증과 정신지체 앞에만 서면 우리는 한없이 작아진다."라고 소아정신과 의사들끼리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다. 몸이 회복할 수 없이 불구가 되는 것, 그것은 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이다.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 속에 묻고 잊을 수 있는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슬픔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나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다. ... 나와 같은 짐을 진 사람이 많다고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슬픔을 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들을 보고 나도 그럴 수 있으리란 걸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자폐증이나 정신지체라는 진단을 받아들은 부모님은 처음에는 부정을 하고 그 심각성을 이해 못하시다가 기대를 가지고 아이를 특수 교육을 시키는 과정에서 또 한번 낙담하시기도 한다.
[ 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을 감당하는 법을 익히기는 쉽지가 않다. 그 방법을 깨달은 지금은 되돌아보면 내가 밟아 온 단계가 보인다. 그렇지만 그 길을 걷고 있을 때에는 한 계단 한 계단이 너무 힘들었고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아이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부모가 죽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실질적인 문제뿐 아니라 나 자신의 고통이라는 문제까지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삶의 기쁨은 모두 사라지고 아이로 인해 대가 끊겼다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 역시 얼마나 자주 마음 속으로 차라리 내 아이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울었던가! ]
나에게 1달에 한 번씩 처방전을 받기 위해 심한 정신지체를 가진 장성한 아들을 데리고 오시는 어머니가 계신다. 그 아들은 들어올때 항상 땀범덕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매일 아침에는 산을 올라 3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병원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매일 그렇게 하신다. 어머니는 교육도 많이 받지 못하셨고 집안사정도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 하는 등산이 즐겁다고 하신다. 눈이 오는 겨울은 미끄러워서 항상 조심스럽다고 말씀하고 웃으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도를 통한 도인을 만난 느낌이 들고 숙연해진다. 그리고 그 아들과 최선을 다해 웃어주고 즐겁게 악수한다.
[인내는 시작일 뿐이다. 슬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슬픔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슬픔에는 어떤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지혜로 모양을 바꿀 수 있고, 지혜는 기쁨을 가져다 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행복은 줄 수 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 질문에는 아무런 해답이 있을 수 없다. 해답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나는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어, 나 스스로 만들어 낸 해답일지라도 해답을 얻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
하지만 자폐증이나 정신지체를 가진 이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부터 국가적으로 대사장애( 이 책의 주인공인 캐롤이 앓아던 PKU 같이 정신지체로 진행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을 무료로 선별검사하고 있다. 임신 중의 음주와 같은 위험인자에 대한 교육도 많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개발된 약들은 이들의 충동적 행동이나 불안정한 기분을 안정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 국가가 얼마나 선진국인가는 소수의 약자를 얼마나 배려하는가에서 알 수 있다고 한다.
최근 5년동안 정신보건센터나 그룹 홈, 통합 교육, 특수 학교 등의 정신장애인을 위한 사회적인 지지나 정책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물론 너무나도 부족하지만 이러한 발전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자폐증이나 심한 정신지체를 가진 이들이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앞으로 많이 생겨날 것이니 독립생활을 위한 교육을 해야한다는 기대쓰인 나의 조언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나도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인간성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며 누구나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가르쳐 준 것이 바로 내 아이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 받아서는 안 되며 누구나 세상에서 자기 자리와 안정을 보장받아야 한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이런 사실을 틈?수 없었을 것이다. 나보다 못하나 사람을 참지 못하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나에게 인간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셈이다.]
펄 벅이 1950년 [자라지 않는 아이]를 썼을 때, 유명인으로서 정신지체 자녀를 두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최초였다고 한다. 펄벅은 미국인 최초로 퓰리쳐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이 책을 계기로 미국 내에 정신지체를 위한 많은 제도들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또한 펄 벅은 펄 벅 재단을 통해 많은 전쟁고아를 돕는 일을 하였고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인 수혜국이다. 얼마전 미식 축구 선수인 하인스 워드가 방문하여 화제의 촛점이 되었고 하인스 워드- 펄벅 재단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정신지체인 딸 캐롤이 없었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캐롤은 세상에서 큰 의미를 남겼다.
[당신의 아이가 당신이 바란 대로 건강하고 멀쩡하게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몸이나 정신이, 아니면 둘 다 부족하고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더라도, 이 아이는 그래도 당신의 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아이에게도 그것이 어떤 삶이든지 간에 삶의 권리가 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서 부모가 그 행복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서는 안 된다. 아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이 아이는 당신 자신과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존재이다. 아이를 위해, 아이와 함께 아이의 삶을 완성해 주는데에서 틀림없이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
자폐증이나 정신지체라는 진단을 부모에게 전할 때 나는 꼭 이 책을 함께 권한다.
출처 ; 소아정신과의사 이주현과 함께 하는 부모를 위한 책읽기
http:// cafe.daum.net/fmschoo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