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특설대 - 1930년대 만주, 조선인으로 구성된 친일토벌부대
김효순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짜 뉴스와 역사 왜곡이 판을 치는 가운데, 한가닥의 진실이라도 알리려 애쓰는 분들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다행스럽고 감사할 일이다.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을 한 자들이 광복 후 소탕되거나 숨어지내기는 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애국한 자들로 둔갑하고 국내외의 요직을 두루 접수했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여전히 자신의 과거를 계속 미화하면서 후세대들에게 진실을 은폐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행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런 못된 짓거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효순님의 <간도 특설대>는 그 공로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일제의 패망을 둘러싼 국제적 정세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바로 종전이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이해 관계에 따른 설계였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은 전쟁 후 자신들이 얻게 될 이익과 전후 질서에서 패권을 장악할 생각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던 우리나라를 반토막내어 신탁통치를 하게 되고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다시 격화된다. 이러한 강대국들의 이해 특히 반공주의에 대한 광풍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은 친일파들이 이제는 그들 스스로 애국자라고 떠들면서 만주에서 활동했던 항일 독립군들을 비적이나 공비로 몰아세우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선 1930년대 만주의 상황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진실을 위한 자료 수집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게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만주국의 역사는 바로 항일 무장 세력에 대한 '토벌'의 기록임과 동시에, 그것에 맞서 투쟁한 '반토벌'의 기록'이다. 그런데 그 '토벌'이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수부대 중에서 조선인 부대, 즉 간도특설대가 가장 강력했고 유명했다고 하니 참..뭐라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게다가 자신들의 그런 활동을 일본이나 미국에서 회고록으로 발행하여 자랑스레 떠들고 다니는 걸 보면 그들은 그저 뼈속까지 일본군이 되고 싶었던 것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제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국적을 파갔으면 하는 마음일세.


   꼭꼭꼭 반드시 읽고 한권씩 더 사서 선물해야 하는 책. 읽도록 강요해도 되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맘먹고 실제 읽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책을 처음 본 건 미용실에 읽었던 한 잡지에 실린 이달의 책, 뭐 이런거였을 것이다. 책 제목이 맘에 들어 사진을 찍어 놓았다. 그 이후로 이 책은 내 휴대폰 속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가 얼마 전에야 나의 눈에 띄는 기특한 능력을 발휘했다. 아..맞다, 이 책을 까먹고 있었네. 바로 주문하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안녕 주정뱅이'라니, 술꾼들이 읽으면 뭔가 자석처럼 착 달라붙는 운명의 기운을 느끼는 제목이 아닌가. 주정뱅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작가라니, 본인도 술꾼임에 틀림없다. (책 뒤에 작가의 후기를 읽어보니 술꾼 맞다 ㅎㅎ) 보통 단편을 담은 소설집이라면 단편 중 대표작이라 할만한 이야기의 제목을 소설집의 제목으로 내세우기 마련인데 이 소설집은 단편 7편의 제목 중 '안녕 주정뱅이'라는 글이 없다. 그냥 모든 이야기에 주정뱅이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술을 미화한다거나 반대로 혐오한다거나 하는 그런 류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는 않다.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인생에 술이 필요한 사람들, 술이 생각날 수 밖에 없는 상황들,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상화되지 않은 인물들의 조금은 슬프고 비극적이지만 순간적인 숭고함 같은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의 삶에 칼로 잘라낸 듯한 완벽한 경계를 지닌 흑백의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술이라는 것 역시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그 경계가 모호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여기 실린 일곱편의 단편들은 그 경계 언저리에서부터 좀 더 어두운 쪽을 향해 있는 이들에 대해 저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하는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작품 <봄밤>이 나는 그렇게 좋았다. 특히 "영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그리고 수환이 떠난 후에는 비로소 안심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을" - 이 부분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위해서 마음을 추스려야 했을 정도로. 왜 그랬을까 지금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이게 문학이 던지는 예고없는 돌팔매질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 때의 그것과 닮았다'라고 말하면서 '술'을 마시던 이가 '설'을 푸는 소설가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작가. '술'판이건 '설'판이건 결코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하지 않는 이 작가의 작품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든 '설'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정희 컬렉션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몇 페이지를 읽고 확신했다. 아.. 이 책은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론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그런 확신으로 무장한 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천진한 악의 얼굴에 압도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안나 카레리나의 유명한 그 첫문장을 좀 패러디 해보자면 선은 비슷비슷한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악은 제각각의 얼굴을 가진다.


   엄마가 아빠한테 얻어맞는 걸 보고자란 열두살 짜리 아이가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누나이지만 엄마이고 선생님이기도 하고' 말하며 아빠가 행사했던 물리적 폭력을 아무런 갈등 없이 그대로 답습할 때 악의 얼굴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다른 이들이 남매에게 주었던 경멸을 그대로 곰순이에게 돌려주었을 뿐인데 왜 그저 헝겊인형에 불과한 곰순이는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하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한지 억울해 하지조차 않는 아이들의 마음 속 악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상처가 상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폭력이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삶 속에 깃든 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아이들을 끝내 아무도 보듬지 못하는 세상의 인심에 가려진 악의 얼굴은 웃고 있었을까.


   우주에서 가장 예쁘라고 우미, 우주에서 가장 최고가 되라고 우일이라고 이름 지어졌지만 그저 세상에 방치된 아이들은 우주에서 가장 예쁘기도, 우주에서 가장 최고가 되기도 어렵다. 늘 새처럼 날고 싶었던 우일이의 영혼은 새처럼 훨훨 날아갔을까. 우주소년 토토의 죽음은 우일이의 죽음을 대변한다. 우미는 이씨 아저씨의 새 안에 우일이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생각했을까. '한줌 바람처럼 가볍고 작은 새가 들어있을 뿐인데도' 우일이의 영혼의 무게가 더해져 새장은 그렇게 무거웠던 것일까. 세상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다던 철길에서 우미는 우일이를 잃어버린다, 아니 놓아주었을 것이다. 그 순간 우미의 귀에 '우주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되라고 우미라 이름 짓고 우주에서 제일 멋진 남자가 되라고 우일이라 이름 지어 그렇게 부르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가 연숙 아줌마가 말하던 먼 옛날의 별빛이라면 우미는 언젠가 그 목소리를 만나게 될까. 그 목소리는 우미를 어디로 데려가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띵 시리즈 9
윤이나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터넷 서점 서핑하다 눈에 들어온 책. 일명 '띵' 시리즈인데 "인생의 모든 '띵'하는 순간, 식탁 위에서 만나는 나만의 작은 세상"이라는 명분을 달고 없던 식욕까지 생기게 하는 먹독 시리즈라고 하겠다. '라면'은 9번째로 나온 띵 시리즈이며 이 8권의 책을 놓쳤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자책하게 했다. 조만간 이 8권은 내 손 안에 있게 될 것이며 앞으로 나올 신간은 알람을 해놓았다.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내가 왜 이 책에 반했나. 일단 솔직하고 재미있다. 소설처럼 창작을 해대는 그런 종류의 에세이가 아니다. 그리고 읽고 나면 진심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 진짜 '물 올리러' 가게 된다. 나는 평소에 라면을 즐겨먹는 타입이 아니다. 면을 많이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한번에 먹는 양이 많지 않아 라면도 하나 반을 먹는 사람이 있어줘야 두개 끓여서 나 반개, 상대방 한개 반 이런다. 안그러면 면을 반만 넣는다. 그래도 마트에 가면 늘 라면 코너를 기웃거리며 새로운 제품이 나왔는지 탐색하고 꼭 하나 정도는 구입해본다. 게다가 나는 1인분의 라면을 아주 만족스럽게 끓일 줄 알고 내가 끓인 라면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저자의 철학과 완벽 일치한다는 점에서 보너스 점수 추가!


저자는 라면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저자의 라면인생이 이 책 안에서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다. 라면 1인분을 끓이는 과정에 맞추어 그에 얽힌 라면 이야기가, 저자의 과거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책 속에서 라면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면 이야기가 끝난다. '라면이 우리 모두를 위한 완전식품'이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설득당한 채로. 그리고 나서는 책을 읽는 동안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던 물을 올리러 가게 되는 것이다. 아.. 집에 라면이 없는 사람은 일단 사놓고 책을 읽기 시작할 것. 그렇지 않으면 책을 다 읽었을 때 굉장히 난감해 질 것이 확실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니고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 제목도 어쩜!


* 이미 출간된 띵 시리즈 : 일단 해장음식과 훠궈가 끌린다.


- 조식 :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 해장음식 :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 그러너리 푸드 : 오늘도 초록

- 프랑스식 자취 요리 :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

- 치즈 :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 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 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 훠궈 : 내가 사랑하는 빨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러드차일드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옥타비아 버틀러의 단편 소설집이다. 작가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닌지라 그녀의 소설은 되도록이면 아껴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으로 야금야금 읽는다. 이분도 테드 창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단편 하나하나마다 작가 노트 같은 것을 써놓았는데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생각이나 읽었던 신문기사나 경험했던 단편적인 장면 하나가 이런 대단한 작품으로 탄생하는 걸 보면서 역시 위대한 작가는 다르다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니까 될 사람은 어떻게든 된다는 약간의 운명론적인 생각?


   외계인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표제작인 '블러드 차일드'와 '특사' 라는 두 작품인데 두 작품 모두 기존의 외계인이 나오는 작품들과 굉장히 다르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만큼 독특하다.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존재가 만났을 때, 우리는 싸우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의 머리 속에 '공존'이라는 단어가 유용하게 쓰일만한 순간이 오게 될까? 누군가는 '블러드 차일드'에서 남성의 임신을 다룬다고 해서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특사'가 미국에 첫 발을 디딘 유럽인들과 인디언들의 관계에 대한 은유라고 하지만 나는 작가가 독자에게 제공한 작가 노트를 존중하여 그저 순수한 SF 작품으로만 생각하기로 한다. 완전히 다른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가진 미지의 두 존재가 만났을 때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는 걸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위의 두 작품 이외에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말과 소리'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후 인류에게 남은 후유증은 언어 능력과 읽고 쓰는 능력의 상실이었다. 어떤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었고 어떤 사람은 읽고 쓰는 걸 하지 못했다. 일종의 뇌졸증 같은 이러한 현상은 인간을 야만인으로 만들었다. 내가 말을 못하는데 누군가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질투를 유발했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말을 못한다고 해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니.. 정말이지 인간이란..문명이 인간의 야만성을 얼마나 억누르고 있는지, 무장해제 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하다는 사실에 한없이 우울해진다.


   이 작품집에는 SF 이외에도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제법 수록되어 있다. 1947년에 흑인 여성으로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글은 공격적이거나 선동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 세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새로운 작품들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