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컬렉션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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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몇 페이지를 읽고 확신했다. 아.. 이 책은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론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그런 확신으로 무장한 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천진한 악의 얼굴에 압도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안나 카레리나의 유명한 그 첫문장을 좀 패러디 해보자면 선은 비슷비슷한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악은 제각각의 얼굴을 가진다.


   엄마가 아빠한테 얻어맞는 걸 보고자란 열두살 짜리 아이가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누나이지만 엄마이고 선생님이기도 하고' 말하며 아빠가 행사했던 물리적 폭력을 아무런 갈등 없이 그대로 답습할 때 악의 얼굴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다른 이들이 남매에게 주었던 경멸을 그대로 곰순이에게 돌려주었을 뿐인데 왜 그저 헝겊인형에 불과한 곰순이는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하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한지 억울해 하지조차 않는 아이들의 마음 속 악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상처가 상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폭력이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삶 속에 깃든 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아이들을 끝내 아무도 보듬지 못하는 세상의 인심에 가려진 악의 얼굴은 웃고 있었을까.


   우주에서 가장 예쁘라고 우미, 우주에서 가장 최고가 되라고 우일이라고 이름 지어졌지만 그저 세상에 방치된 아이들은 우주에서 가장 예쁘기도, 우주에서 가장 최고가 되기도 어렵다. 늘 새처럼 날고 싶었던 우일이의 영혼은 새처럼 훨훨 날아갔을까. 우주소년 토토의 죽음은 우일이의 죽음을 대변한다. 우미는 이씨 아저씨의 새 안에 우일이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생각했을까. '한줌 바람처럼 가볍고 작은 새가 들어있을 뿐인데도' 우일이의 영혼의 무게가 더해져 새장은 그렇게 무거웠던 것일까. 세상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다던 철길에서 우미는 우일이를 잃어버린다, 아니 놓아주었을 것이다. 그 순간 우미의 귀에 '우주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되라고 우미라 이름 짓고 우주에서 제일 멋진 남자가 되라고 우일이라 이름 지어 그렇게 부르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가 연숙 아줌마가 말하던 먼 옛날의 별빛이라면 우미는 언젠가 그 목소리를 만나게 될까. 그 목소리는 우미를 어디로 데려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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