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 메리디어 호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9
하몬드 이네스 지음, 이태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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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테어 매클린의 [여왕폐하 율리시즈호 HMS Ulysses] 를 읽고 영국 특유의 해양 소설의 전통에 매료된 지는 꽤 되었지만, 아무래도 배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용어들이 어려운 관계로 번역본이 아니라면 독서의 엄두조차 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예의 [여왕폐하...] 첫 장에 있는 배의 각 부분 명칭도만 봐도 그 어려움은 족히 짐작이 간다.) 그래서 더욱 가뭄에 콩나듯 스리슬쩍 끼어서 나오는 이런 해양 미스터리가 더 반가운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바다를 무대로 했고, 또한 거친 자연을 무섭도록 장중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매클린과 그 지향점이 같지만 기본적으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와 같은 미스터리의 틀을 갖고 있다는 면에서 동서 미스터리 문고의 자격을 획득한다. 내용에 대해서는 자켓에 대충 적혀 있으므로 별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미스터리로도, 모험 소설로도 꽤 재미있고 빠르게 읽혔다는 사실만 말해 두자. 사건의 기묘함을 이끌어 가는 기디언 패치라는 인물도, 화자인 '나'의 우직함도 마음에 든다. 결말이 내 취향에는 좀 너무 해피엔딩인 것 같긴 하지만...

한가지 덧붙이면, 미스터리 독자들 중에는 가끔 해설을 먼저 보고 작품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소설은 절대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왜냐면 역자 분께서 아주 친절하게 줄거리를 요약해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해설의 첫 단락에서 언급되는 유명한 소설은 E.S가 아니라 C. S 포레스터의 [혼블로워] 시리즈이다. 해양 모험 소설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이 시리즈도 최근 국내에 3권까지 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회가 닿으면 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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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호러 걸작선
에드거 앨런 포 외 지음, 정진영 옮김 / 책세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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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시는 한 분의 추천으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전에 모 출판사에서 나온 모 호러 걸작선에 한번 심각하게 덴 적이 있어서 과연 구입의 원인이 된 [사냥개] 이외에 호러 앤솔로지가 재미있을지 의심하는 편견이 뇌리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첫 두 편을 보고 나자 나머지도 이만큼만 해 준다면 절대 지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서 말한 편견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아주 볼만했다. 슬랩스틱 SF 코미디에 가까운 앨런 포의 [숨막힘]이나, 인간의 이상 심리를 묘사하려는 목적으로 쓰다 보니 호러의 틀을 갖추게 된 모파상의 [오를라] 같은 것도 있지만, 

주로 빅토리아 여왕 시대 - 홈즈와 뤼팽의 시대 - 전후의 본격 호러 단편이 중점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편. 인류가 자기들의 이성을 가장 크게 신뢰하던 시대였던 만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실체에 대한 공포도 더 컸던 모양이다. ([헌 옷], [호각 소리], [쐐기벌레]) 또한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파국을 맞는 비극( [악마의 뇌], [사냥개])이나, 이 시대에 어울리는 멜로드라마성 괴담 ([옐로 사인], [살인에 대한 삼인의 독백], [하녀를 부르는 벨소리])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유행하던 모험 소설의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쥐의 매장], [한밤의 목소리]).

어느 범주에도 들어가기 힘든 모던한 작품이 [원숭이 발]이다. 다른 선집에도 실려 있다는 이 작품은 섬뜩하면서도 슬픈, 독창적인 여운을 남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세하면서도 괜찮은 묘사를 구사하여 싸구려 괴담의 범주를 저만치 벗어나 있는 점도 추천할 만하다.

책의 또 다른 장점이라면 옮긴이의 말을 통해 호러 소설의 - 잘 알려진 - 계보 정리와, 각 작가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대표작을 수록해 더 찾아 읽어볼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 내 관점에서는 글자가 좀 크긴 하지만 편집은 괜찮고, 일러스트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호러 입문자라면, 혹은 여기 실린 대부분의 단편이 처음이라면 놓치지 않고 보아도 괜찮을 책. 번역체가 아주 가끔 툭툭 불거지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아주 민감하지 않다면 신경쓰지 않고 볼 만 하다.

본인 취향엔 80% 정도 들어맞긴 했는데, 일반적인 반응은 어떨지 몰라서 별점을 설정하는 데 망설여졌지만 기획과 이야기 외적 정보에 높은 점수를 주어 별점을 임의로 하나 더 올렸다. 그래서 별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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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1-0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숭이 발의 그 분위기! 좋지요---
 
바람의 열두 방향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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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단편은 물론 열두 개보다 훨씬 많지만 운을 맞추기 위해 제목을 위와 같이 정했다.

[어둠의 왼손] [빼앗긴 자들]로 대표되는 헤인 시리즈, 땅바다 Earthsea 시리즈, 그 외 하드 SF 몇 편과 SF라고 하기에 약간 애매 모호한 심리물, 판타지, 심지어 현대물까지 들어 있는 이 일련의 작품군의 시대나 배경에는 거의 아무련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시야]랑 [길의 방향]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작품을 꿰뚫고 있는 주제가 고독이라는 데서 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주여행의 시공간적 한계로 인해,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혹은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추방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낭만적이고 담담한 어조를 유지한다.

심지어 플레이보이 지(紙)에 실린 [아홉 생명]이란 작품에서도 서로 고독하기 짝이 없는 타인들 간의 관계를 다룬 것이 어찌 보면 이채롭다. [플레이보이 걸작선] 1권에 있던 것으로 처음 접했었는데, 다시 읽은 이 판에는 소재에 의한 센세이션보다는 조금 더 주제에 집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묘사가 낯설면서도 아름답기 때문에 더욱 인물이 겪는 내면의 고독이 부각되는 듯한 인상이 모든 단편에 흐르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어둠상자]였다. 엉성하면서도 독창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헤인 시리즈의 외전 격인 이야기들의 경우 [빼앗긴 자들]에서 작가가 추구했던 사회적 사고 실험의 분위기보다 환상 소설적 분위기가 훨씬 더 살아서 괜찮았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처럼 진지한 사회적 화두를 담은 작품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땅바다 시리즈 두 편도 그럭저럭 읽을만 했는데, '룰'만이 존재하는 작품이지만 동양의 독자가 볼 때에는 마치 무협지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줬다. [시야]는 SF의 수법을 차용해 지식의 한계를 그린 우화이고, [길의 방향]은 문명에 대한 나름의 경고에 가깝다. 오직 [머리로의 여행]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자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파국에 빠져 그 돌파구로써 쓴 거라고 하는데 역자분 말씀만큼이나 난해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위안을 얻기도 한다. 가장 고독할 때에 좋아하는 작가의 아름다운 책을 읽으며 마음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기에 별 다섯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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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1-02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할 때에 좋아하는 작가의 아름다운 책을 읽으며 마음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ㅎㅎ 그 말에 아주 어울리는 책이란 생각이 들어요. 바람의 열두 방향 말이어요^^

저도 [머리로의 여행] 때문에 골머리가 아팠죠. 그래서 머리로의 여행인가...^^

비로그인 2005-04-13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방향을 제대로 타지 못타나 봅니다. 돌고 돌다보면 다시 제자리에요..;;;
 
공상과학대전 3 - 거대한 로봇 편, 개정판
후데요시 주니치로 & 야나기타 리카오 지음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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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1,2권 + 공상 비과학 대전에 이어 [과학적으로 올바른] 지구 정복 가이드 3탄.

정치를 하면 모르겠지만, XX적으로 올바른 어쩌고 하는 모토를 걸고 그런 이데올로기를 문학으로 구성하면 필연적으로 코미디가 된다. 이유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픽션을 읽으며 느끼는 감동이란 게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물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억지로 [객관적 잣대]에 맞추려 하는 시도 자체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 만화책이 수시로 나오는 계몽적인 과학 강의에 의해 가끔씩 맥이 끊어지는 고통(?)을 감수하고도 시종일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에 모드킹 일당은 거대 로봇을 들고 나오는데 소위 거대 로봇물의 로망을 이미 로봇태권V를 위시한 여러 만화로 이미 접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여러 번 연출된다. 이건 기본적으로 전작의 유머 답습에 불과하지만, 2탄부터 보여지는 뭔가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으면서도 지구에 위협적인 정복 방법을 짜내려 하는 노력이 이번에도 꽤나 난감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허나 언제나 그 난감함을 타개하는 요소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네코야나기 박사의 불타오르는 과학 아이디어. 불가능한 벽을 만드는 것도 사이언스, 그 불가능을 뛰어넘는 것도 사이언스. 그러므로 당당히 SF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다. 물론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과학을 무시한 설정이 없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으나, 거대 로봇물의 로망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만화적 허용으로 봐 주도록 하자.

덤으로 마지막에 글로 때워준 XX로봇과 YY로봇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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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앤 나이트 블랙 캣(Black Cat) 3
S. J. 로잔 지음, 김명렬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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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고 두꺼운 이야기 두루마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가족, 학교, 마을, 그 외 자기가 속한 사회의 안녕과 절대적인 정의(justice)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탐정 앞에 갑작스레 나타났다 사라진 15세 조카의 행방을 찾는 것으로 시작하여 찾아간 미국 동부의 한적한 마을, 워런스타운. 이곳처럼 특정 운동 내지 기능에 목숨걸듯 집착하고 그에 얼마나 쓸모가 있느냐에 따라 애들의 가치를 판단하는 상황은 일견 과장된 듯하고 정서에 맞지 않아 보인다. 허나 풋볼(=미식축구)을 대학입시로 대체하면, 그렇게 이해 못할 얘기도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어쨌든 특정 기능, 지적 능력이든 육체적 능력이든, 그런 기능으로 한 아이의 쓸모 전체를 평가하는 불문률 내지 사회구조를 만들고, 그 지상과제를 지키기 위해 마을 전체가 썩어가는 내용이 23년전의 강간 사건, 그리고 오늘 한 소녀의 의문의 죽음과 함께 파헤쳐진다.

읽으면서 미국의 사회구조가 훨씬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구조가 안정되어 있다는 얘기는 거꾸로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의 차이를 넘기가 몇 배는 더 어렵다는 뜻. 워런스타운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풋볼을 하기 좋은 육체적 조건은 세습되고, 돈과 체격을 가진 자들이 주류를 차지하여 권력을 휘두른다. 여성을 포함한 비주류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류에게 꼬리를 치거나 평생 무시당하며 살거나' 뿐인 말만 들어도 끔찍한 사회.

이러한 땀투성이 풋볼 마을 얘기는 끝까지 제3자의 입장에서 쿨하게 전개되는 데 비해 탐정 자신의 얘기는 더없이 가슴저린 감성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아버지를 고발했다는 원죄와, 그로 인해 엇나가 버린 그의 여동생 가족과의 관계를 기술하는 스토리 라인은 워런스타운의 그것과 명백히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끔찍한 불균형을 감내하더라도 느슨한 테두리라도 유지하는 것이 좋은지, 응당 있어야 할 정의를 위해 그 테두리를 깨는 것이 좋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탐정 빌의 운명은 일견 당연해 보이는 질문의 답에 일말의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처음 3분의 1정도 읽었을 때 떠오른 생각은 '고인물은 썩는다' 였는데, 다 읽고 나서는 스티븐 킹의 [캐리]가 떠오르고 말았다. 스토리상 그런 것이니 더 이상 자세히 쓸 수는 없다. 결국 비주류는 주류에 처절한 복수를 시도하는데, 20여년 전의 사건을 덮어두려는 세력과 진실을 밝히고 싶은 이들, 그리고 철없는 아이들이 한데 모인 절정의 순간은 짤막하고 거대한 혼란으로 끝맺음을 하고 만다. 이런 게 현대 사립 탐정의 한계. 경찰과 협력하여 범인을 유쾌하게 잡는 빅토리아 시대의 로망은 현대 수사물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아마추어의 미숙함으로 인한 실수와 자책, 뒷수습이 있을 뿐이다.

리뷰 문두에 제기한 질문에 대해 탐정 빌 스미스의 입을 빌어 '정의란 없다'는 씁쓰레한 진단을 내리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 허나 사필귀정, 극은 비록 통쾌한 권선징악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며 끝맺게 된다. 그렇게 '그저 겨우 납득할 만한' 해결을 얻기 위해 주인공과 그의 가족에게 돌아간 댓가는 너무 참담했지만... 제목처럼 겨울 밤 한 줄기 칼바람에, 어디 하나 의지할 데 없이 시린 몸을 추스르는 듯한 탐정의 고독이 책을 덮는 순간 이후에도 계속 가슴을 저리게 했다. 

번역은 시쳇말이나 속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쉽게 술술 읽히는 수준. 묘사는 평이한 편이고 캐릭터 유형도 대부분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우나  그 일상적인 모습에 정감이 가고, 철저하게 탐정의 시점에서 기술된 꼼꼼한 이벤트 서술이 돋보였다. 리디아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완벽해서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논리상 몇가지 사소한 허점이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에드가 상 수상이 과연 허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은 재미있고 복잡했으며 또한 아름다왔다. 원조 하드보일드의 색채를 풍기고 있으면서도 구질구질하다는 거부감 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최초의 하드보일드였으므로 거리낌 없이 만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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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9-2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질러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