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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호러 걸작선
에드거 앨런 포 외 지음, 정진영 옮김 / 책세상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시는 한 분의 추천으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전에 모 출판사에서 나온 모 호러 걸작선에 한번 심각하게 덴 적이 있어서 과연 구입의 원인이 된 [사냥개] 이외에 호러 앤솔로지가 재미있을지 의심하는 편견이 뇌리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첫 두 편을 보고 나자 나머지도 이만큼만 해 준다면 절대 지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서 말한 편견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아주 볼만했다. 슬랩스틱 SF 코미디에 가까운 앨런 포의 [숨막힘]이나, 인간의 이상 심리를 묘사하려는 목적으로 쓰다 보니 호러의 틀을 갖추게 된 모파상의 [오를라] 같은 것도 있지만,
주로 빅토리아 여왕 시대 - 홈즈와 뤼팽의 시대 - 전후의 본격 호러 단편이 중점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편. 인류가 자기들의 이성을 가장 크게 신뢰하던 시대였던 만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실체에 대한 공포도 더 컸던 모양이다. ([헌 옷], [호각 소리], [쐐기벌레]) 또한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파국을 맞는 비극( [악마의 뇌], [사냥개])이나, 이 시대에 어울리는 멜로드라마성 괴담 ([옐로 사인], [살인에 대한 삼인의 독백], [하녀를 부르는 벨소리])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유행하던 모험 소설의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쥐의 매장], [한밤의 목소리]).
어느 범주에도 들어가기 힘든 모던한 작품이 [원숭이 발]이다. 다른 선집에도 실려 있다는 이 작품은 섬뜩하면서도 슬픈, 독창적인 여운을 남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세하면서도 괜찮은 묘사를 구사하여 싸구려 괴담의 범주를 저만치 벗어나 있는 점도 추천할 만하다.
책의 또 다른 장점이라면 옮긴이의 말을 통해 호러 소설의 - 잘 알려진 - 계보 정리와, 각 작가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대표작을 수록해 더 찾아 읽어볼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 내 관점에서는 글자가 좀 크긴 하지만 편집은 괜찮고, 일러스트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호러 입문자라면, 혹은 여기 실린 대부분의 단편이 처음이라면 놓치지 않고 보아도 괜찮을 책. 번역체가 아주 가끔 툭툭 불거지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아주 민감하지 않다면 신경쓰지 않고 볼 만 하다.
본인 취향엔 80% 정도 들어맞긴 했는데, 일반적인 반응은 어떨지 몰라서 별점을 설정하는 데 망설여졌지만 기획과 이야기 외적 정보에 높은 점수를 주어 별점을 임의로 하나 더 올렸다. 그래서 별 다섯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