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데 - 고양이 추리소설
아키프 피린치 지음, 이지영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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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양이를 소재로 한 판타지이다. 고양이가 말을 하고, 책을 읽으며, 예술을 비평하고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동화같은 설정이 그렇다. 고양이가 암암리에 조직을 이루고 지구를 지배한다는 것은, 이 도도한 종족과의 개인적인 첫번째 조우에서 그가 내 손을 화악 할퀴고 간 후에 늘 해오던 생각이다. 고독하면서도 비밀스러우며, 민첩한 이 종의 이미지에 추리소설만큼 잘 어울리는 얘기도 없다.

여기다 음침하고 거대한 저택, 비밀스러운 실험실, 납골당, 사교 집단의 예배,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주인공, 다른 시간대에서 온 것만 같은 미인 고양이들 같은 고딕 소설 스타일을 첨가하니 실로 암울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무용담이 되었다. 읽어갈수록 속도가 붙는 책은 대개 재미있다는 인상이 남는데 이 책이 바로 그렇다. 트릭이나 동기가 좀 스케일이 커서 와닿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책을 읽어갈수록 나는 '푸른수염'군과 그의 고통스러우면서도 쿨한 이미지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불쌍하게 그려지는 구스타프에게도 연민이 가는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무리 똑똑해도 돈을 벌 수 없는 프란시스의 지적 창고를 채워줄 '자료'를 제공한 것은 바로 그 주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속편까지 번역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다음 권에서는 구스타프를 좀 덜 구박해 주길 바랍니다, 프란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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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 동서 미스터리 북스 18
딕 프랜시스 지음, 김병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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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경마/조련 업계로 무대를 살짝 바꾼 스파이 소설이다. 파악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의외의 말이 우승하는 일이 잦아지자 영국의 한 경마 관계자는 호주에서 말 농장을 경영하던 주인공에게 거액의 보수를 댓가로, 마부로 변장하여 흑막을 캐기를 요청한다. 이 책의 묘미는 독특한 주인공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끌어감으로써 얻어지는 첩보극의 긴장감이다. 거칠고 고독하나 결코 천박하지 않은 캐릭터가 밑바닥에 던져진 상황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그것과 비슷한 감이 있지만, 어느쪽에 더 가깝냐고 한다면 스파이 소설을 고를 것 같다.

주인공인 대니얼 로크는 007 캐릭터를 닮아 있다. 배짱 좋고, 임기응변에 능하며, 누추한 마부로 가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에게 인기가 좋다. 그러나 상류층을 주로 상대하고, 항상 엘레강트한 인상에 자기 행위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어 보이는 007과 달리, 로크는 (아마추어답게) 자신이 결코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인간 쓰레기 노릇을 하면서 이런저런 행동을 자책하고, 얼른 이 일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되뇌이는 인간형이라 더욱 인간적이면서도 흥미롭다. 옥의 티는 나오는 여자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다들 로크를 좋아한다는 것...

아무 생각없이 집었다가 추석을 매우 즐겁게 보냈다. 색다른 스파이 소설을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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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거미 클럽 동서 미스터리 북스 9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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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세부 장르를 구분하자면 이것은 '토크박스' 미스터리에 들어가리라. 어떤 작품이 원조인지는 잘 모르지만,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의 살인]이 토크박스 미스터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갖가지 직업의 인물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매번 한 가지씩 기묘한 이야기를 꺼내고, 그 기묘한 사연의 진상을 궁리하지만 정답은 언제나 군계일학의 탐정, 한 사람의 몫.

이런 장르의 재미는 탐정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 사건 얘기를 듣고 불가능한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데 있는 것 같다. 독자 대신 추리의 과정을 밟아 주다 더 이상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탐정의 기발한 생각이 등장함으로써 독자는 막힌 통로가 뚫린 듯한 납득을 얻는데,

아시모프는 그런 장르의 특성을 기가 막히게 잘 살리고 있다. 첫 단편에서 헨리의 등장은 트릭이 어딘가에서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충분히 '탐정' 캐릭터의 능력을 소개하는 장면이 되었고, 시리즈 편수가 늘면서 변호사, 미스테리 작가, 화가, 등으로만 소개되었던 등장인물들의 디테일이 살아나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한 소거 과정의 진행 도구들이 아니라 실제 클럽 모임에서 웃고 떠들며 머리를 짜내는 리얼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인물들의 경험담이 소재가 아니라 고정배역(-_-)들이 아는 사람이 특별 손님으로 초빙되어 사건을 털어놓는 것도 훨씬 있을법한 연출이다.

다만 [화요일 클럽의 살인]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 군상의 추악함과 트릭의 엽기성에서 오는 전율은 확실히 데임 크리스티의 발치에도 따라가지 못한다. 워낙에 소재의 본질이 유산 찾기 같은 사소한 문제 혹은 이해관계가 얽힐 일이 거의 없을 형이상학적 논쟁거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인 사건은 단 1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묘사를 하지 않으면서 대화 한두줄로 인물의 성격 표출을 확실하게 해내는 작가의 재주에 감탄하였는데, [브로드웨이의 자장가] 같은 단편이 그 좋은 예다. 미니멀한 묘사와 대화만으로 조촐한 파티와 뉴욕의 분잡한 생활, 집에서 글을 쓰는 작가를 유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자의 후기로 볼 때,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싶다.) 작자가 장기 연재를 염두에 두고 인물들을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에 인물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더욱 재미있다. 마치 TV 드라마를 녹화해 뒀다 한꺼번에 몰아서 시청한 기분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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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9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양병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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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을 집음. 어렸을 때 계몽산지 어딘지의 아동용 문고로 읽었는데 도무지 결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거든요. 웬걸, 오히려 불면증을 더 부채질해 주고 말았습니다. 결말을 볼 때까지 놓기가 힘들었거든요.

연애로 치자면, 첫눈에 반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미팅이나 다른 연유로 우연히 알게 된 남자가 마음을 끌어당겨 정신없이 빠져들듯이, 그렇게 새벽을 헌납해 가면서 세속적이면서도 스피디한 문체와, 인간의 본성을 그린 듯 그려내는 낭만적인 묘사에 빨려들어 기름 떨어질 때까지 질주하는 자동차 마냥 결말까지 달려갔습니다만,

범인이 너무 허망하더군요. 범인의 정체는 이 멋진 소설의 별점을 1.5개는 깎습니다. 그렇게도 의외의 범인이 필요했던 것인지? 거의 힌트를 주지 않는 범인의 정체에다, 책 제목인 '환상의 여인'의 정체는 또 얼마나 허무한지.. 거의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또 한번 실망했습니다.

이 허름한 결말을 제외하면 다른 부분들은 매우 훌륭합니다. 특히 웨이터가 '스토커'(곧 정체가 알려지지만)에게 쫓기는 부분의 묘사나 몰아가는 맛은 어떤 영화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입니다. 절대 별점 5개가 섭섭하지 않답니다! 이 소설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 이보다 더 묘사가 허름한 작품에도 더 나은 별을 주었던 생각이 납니다만 - 좋은 결말을 만들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시작치 말라는 어딘가의 누군가가 말한 경구를 떠올리게 해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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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세계
마틴 피도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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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DVD의 supplement같은 필수자료가 아니다. 왜? 본편과 같이 끼워 팔지 않기 때문에. ^^ 굳이 정의하자면 일종의 평전이나 연구 논문에 가까운데, 저자에 의해 지어지지 않은 이런 문서를 읽는 이유라면 1) 홈즈의 왕팬이라 홈즈란 이름 비슷한 게 붙어 있으면 모두 읽고 싶어서, 2) 다른 팬, 혹은 좀더 진지한 '연구자'들의 감상을 듣기 위해, 3) 시리즈에서 내가 모르는 사실이나 외전을 찾기 위해, 등등이 있을 것이다. 이 하드커버 양장판은 적어도 1,2번의 목적으로는 훌륭하다. 허나 내용상 재미로 읽을 책으로 생각되진 않는다.

소설적 재미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이것보다는 베어링 굴드가 쓴 홈즈 전기가 더 웃기고 재미있을 것이다. 허나 굴드보다 자료의 방대함에서는 좀 많이 떨어지지만, 정서적으로 훨씬 온건하고 안정된 서술을 밀고 나간다. '진정한 홈즈의 팬이라면 '도일이 원고 마감을 맞추느라 자기가 써놓은 작품을 들춰보지도 않은 관계로 실수한 거잖아'라고 말해선 안된다.'와 같은 표현으로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그걸 결코 굴드와 같은 오버(이를 테면 일레인 아들러의 남편이 실은 폭력남편이었다든가..)로 윤색시키지 않는 것이다.

책 내용을 보면 전반부는 작가 자신이 '셜로키언 놀이'라고 칭한 행위 자체에 해당된다. 홈즈,왓슨의 생애를 실제 인물인 양 기술하면서 도일의 오류들이 어쩔수 없이 열거되는데,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독자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들로 채워져 있어서 별로 놀랍지는 않다. (이를 테면 4인의 서명에서의 날짜 오류 같은 것)

그런 trivia보다 책의 가치를 높이는 부분은 중반을 차지하는 도일의 생애. 셜록 홈즈/왓슨 박사의 캐릭터가 작가와 주변 인물들의 생애와 비교되면서 이 유니크한 인물들의 탄생 배경이 그럴듯하게 설명된다. 이 부분은 확실히 인터넷 같은 오픈 소스를 뒤져서는 얻을 수 없는 사진과 사실들이 매우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투자한 금액이 아깝지 않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추리 문학 황금기 전반에 대한 홈즈 시리즈의 영향과 파생 산업 - 소설, 연극, 라디오, 영화, TV, 기념품, 관광 산업을 정리한 것도 Good. 이 부분은 홈즈 현상을 간략히 둘러보는 관광 가이드에 가깝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BSI나 '런던 셜록 홈즈 협회'같은 클럽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다.

내용을 떠나 겉모양을 얘기하면 옥의 티가 있다. 오리지널 영문판의 베이커 가(街), 권총과 소설 표지, 제레미 브렛이 모델로 등장하는 겉표지 대신, 검은 바탕에 피터 쿠싱이 슬그머니 표지 모델을 차지했는데 브렛 주연의 TV시리즈의 팬으로서 슬쩍 실망 ^^;; 아마도 편집부는 원본 표지의 80년대풍 느낌이 21세기에는 좀 촌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나 보다. 다행히 그는 속표지에서 단짝 친구랑 함께 가장 선명한 전면 사진을 장식했다. 이 최근의 TV 각색에 대해 저자는 간략하면서도 가능한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그냥 원래 표지를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런 종류의 기획물은 그 매니악함 탓에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릴 수 있는 것이며, 절판되기도 매우 쉬울 것으로 생각된다. 소설을 읽으며 정립한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최악일 수도 있겠지만, 매니아가 되고 싶거나 홈즈를 소설을 비롯한 이런저런 매체로 만나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괜찮은 입문서가 되리라. 글쓰는 본인이 매니아이므로 별5개에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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