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거미 클럽 동서 미스터리 북스 9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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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세부 장르를 구분하자면 이것은 '토크박스' 미스터리에 들어가리라. 어떤 작품이 원조인지는 잘 모르지만,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의 살인]이 토크박스 미스터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갖가지 직업의 인물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매번 한 가지씩 기묘한 이야기를 꺼내고, 그 기묘한 사연의 진상을 궁리하지만 정답은 언제나 군계일학의 탐정, 한 사람의 몫.

이런 장르의 재미는 탐정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 사건 얘기를 듣고 불가능한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데 있는 것 같다. 독자 대신 추리의 과정을 밟아 주다 더 이상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탐정의 기발한 생각이 등장함으로써 독자는 막힌 통로가 뚫린 듯한 납득을 얻는데,

아시모프는 그런 장르의 특성을 기가 막히게 잘 살리고 있다. 첫 단편에서 헨리의 등장은 트릭이 어딘가에서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충분히 '탐정' 캐릭터의 능력을 소개하는 장면이 되었고, 시리즈 편수가 늘면서 변호사, 미스테리 작가, 화가, 등으로만 소개되었던 등장인물들의 디테일이 살아나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한 소거 과정의 진행 도구들이 아니라 실제 클럽 모임에서 웃고 떠들며 머리를 짜내는 리얼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인물들의 경험담이 소재가 아니라 고정배역(-_-)들이 아는 사람이 특별 손님으로 초빙되어 사건을 털어놓는 것도 훨씬 있을법한 연출이다.

다만 [화요일 클럽의 살인]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 군상의 추악함과 트릭의 엽기성에서 오는 전율은 확실히 데임 크리스티의 발치에도 따라가지 못한다. 워낙에 소재의 본질이 유산 찾기 같은 사소한 문제 혹은 이해관계가 얽힐 일이 거의 없을 형이상학적 논쟁거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인 사건은 단 1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묘사를 하지 않으면서 대화 한두줄로 인물의 성격 표출을 확실하게 해내는 작가의 재주에 감탄하였는데, [브로드웨이의 자장가] 같은 단편이 그 좋은 예다. 미니멀한 묘사와 대화만으로 조촐한 파티와 뉴욕의 분잡한 생활, 집에서 글을 쓰는 작가를 유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자의 후기로 볼 때,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싶다.) 작자가 장기 연재를 염두에 두고 인물들을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에 인물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더욱 재미있다. 마치 TV 드라마를 녹화해 뒀다 한꺼번에 몰아서 시청한 기분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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