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버4/절단 동서 미스터리 북스 45
조이스 포터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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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이 꽤 두꺼운지라 읽어보지 않고 책의 두께에 질릴 사람들이 꽤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사실 '도버 이야기'는 딱 책의 절반이고, 뒤에는 라이오넬 화이트의 '어느 사형수의 파일' 이 합본되어 있다.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고 유명할 듯한 소설인데 표지에 둘 다 표시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나 자신이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몇장 읽지 않아 'Black Adder'에나 나오면 딱 좋을 거 같은 도버라는 캐릭터를 이 두터운 책 내내 보아야 하나? 하는 기분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조이스 포터의 캐릭터 묘사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실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이 탐정(?)의 행각에 독자는 눈살을 찌푸리지만 다음에 어떤 사고를 칠지 재미있어하는 것도 사실이다.

패러디 소설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천박한 느낌이 들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은 경탄할만 하다. 전개가 상당히 빠르다는 - 즉, 읽기가 쉽다는 - 느낌도 들었는데, 아마도 추리할 필요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할 수도 없다. 추리 좀 하려고 하면 도버가 귀찮아하면서 단서를 막아버리다시피 하거나, 도버가 추리한 내용이니까 믿지 않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초점은 상사를 잘못 만난 불행한 매글레거(Mcgregor?) 에게 맞추어져 있으니, 진지하게 추리 소설 하나 읽고 싶은 독자에겐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가장 황당한 것은 그들이 헛다리에 헛물만 켜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결말의 한 순간인데, 이것도 해결은 커녕 '몬티 파이돈' 식의 대소동 짝이 나면서 엑스파일처럼 끝나 버린다. 그것도 성질 나쁜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아무래도 60년대에 쓰여져서 그런지 TV나 영화에서 낯익은 스토리텔링의 냄새가 나는데, 그것도 익숙한 헐리우드의 느낌이 아니라, 영국 특유의 것이다. 영국 드라마의 그 썰렁한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 Mr.Bean같은 물건이 아무 연고없이 생기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는 도버의 쫀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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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
S.S. 반 다인 지음, 안동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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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현학 취미와 난해한 인용구, 번역하기 매우 힘들었을 것만같은 읽기 싫어지는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번스 시리즈의 본질은 '열혈'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시리즈 최고의 걸작. 그린 씨 가문이라는 사건 무대의 설정으로부터 끔찍한 비극의 전말을 예감하는 그의 일장 연설이야말로 피가 끓는 불타오름을 선사해 주었다. 친구 매컴과 벌이는 두뇌 대결(물론 번스가 이기게 되어 있지만), 연쇄 살인으로 사건의 국면이 바뀌면서 고조된 긴장감이 막판 자동차 추격씬으로 끝나고 나면 본격 추리의 재미란 바로 이런 거군, 하는 찬탄이 나오게 된다. (늘 그렇듯 범인을 예상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범죄 심리나 동기는 기상천외하지만.)

번역도 끔찍하게 잘 되었는데 이유인 즉슨 번스의 장광설이 적절하게 잘 안 쓰는 현학적 단어로 잘 대체되어 제3자인 나도 매컴이 느끼는 것과 같은 짜증을 유발하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역자가 <이한장의 명반>의 안동림 선생님이라는데, 어째서 베토벤의 '운명'을 바단조라고 해버리는 실수를 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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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
S.S. 반 다인 지음, 김성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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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대 미스터리 소설 중에 하나라는 거창한(?) 문구와 자칭 미스터리 팬이면서 반 다인의 작품을 거의 접하지 못한 컴플렉스는 이 책을 주저없이 구매하게 만들었으나, 워낙 고전이다 보니 범인이나 트릭에 있어서는 전작인 벤슨,그린 보다 확실히 못하다는 느낌이다. 전체적인 인상은

- 번스가 사건의 초점을 흐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 동요에 맞춰 살인했다고 열심히 독자를 세뇌하는 것은 다름아닌 번스이다. 취미 고약한 아저씨 같으니. :) 허나 막판 몰아가기, 용의자 둘과 대면하여 벌이는 번스 특유의 심리전은 언제나 독자를 불타오르게 한다. 또한 막스 플랑크의 양자설을 포함한 당대 물리학의 핫 이슈들이 주변장치로 쓰인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 번역문을 봐서 원문을 상상하는 정도로는 원문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한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순전히 직업상의 아쉬움이지만, 이 책만큼은 과학 분야에 발이라도 담가본 사람이 한번 다시 번역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여기서 묘사된 시기는 바로 물리학의 황금기가 아닌가. 물리학과 수학이 사건의 요점을 흐리는 장치로 등장하는데 이름이 전부 일본식으로 되어 약 70%정도만 누구인지 캐치할 수 있었다는 것은 굴욕적이기까지 했다. 보르헤스를 생각나게 하는 가짜 사실주의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용되는 인물들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수록 재미가 있을 텐데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용서할 수 없는 것 : 구판에 있었던 리만-크리스토펠 텐서를 타이핑한 메모랑 저택의 지도가 빠져 있다. 이것도 주요한 미스디렉션의 일부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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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 혐오 동서 미스터리 북스 64
에드 맥베인 지음, 석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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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레라 형사가 나오는 87분서 시리즈. 너무 어렸을 때 읽어서 제목조차 생각나지 않았죠. 구판을 이미 읽으셨던 분은 이 책의 원제가 경관 嫌惡 던가 뭐 이런 한자로 되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한자를 읽을줄 몰라서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으나 제목은 까맣게 잊었던 것이 바로 이 '경관 혐오'였습니다. 다시 읽으며 든 생각은 최근 우리가 재미있게 보고 있는 구미의 경찰 드라마들이 이 87분서 시리즈의 신세를 고스란히 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캘레라의 시행착오는 마치 'Law & Order' 드라마 한 편의 궤적을 쫓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미 해문판으로 나와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벌써 주문을 넣은 뒤라서 아차, 싶었으나 (해문판이 어쨌든 값싸니까... 책 상태를 따지지 않는다면) 다행히 권말에 수록된 '한밤의 공허한 시간'이란 중편이 손해 본 듯한 느낌을 해결해 줬습니다. 이 중편은 우리가 이미 캐릭터에 익숙해진 것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좀더 추리소설 같고 더 재미있습니다. 크리스티의 '친구(Companion)'를 연상케 하는 트릭이지만 알아내기는 쉽지 않더군요. 어디서 본 것 같은 트릭의 단순함을 커버해 주고,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정글과 같은 도시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모래사장에서 조개껍질 하나를 찾는 것 같은 수사의 암담함이나,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힘든 업무에서, 가정 내부 문제에서 겪는 갈등을 묘사하는 것이 주가 된다는 것도 특징적이죠.

87분서의 다른 시리즈도 계속 나와주길 바라면서, 미국 경찰 소설의 원조를 읽어보고 싶은 분께 추천해 드립니다. 추억 속의 책이라 별점을 객관적으로 주지는 않았다는 것을 밝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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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의 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76
에릭 앰블러 지음, 임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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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소설의 원조로 알려진 에릭 앰블러의 소설이라고 해서 기밀 서류, 고문, 암살 음모, 뭐 이런 것들을 연상했는데 완전히 헛다리 짚다. 차라리 히치콕의 '이창'과 같은 스릴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선량한(?) 시민이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인물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너무 많이 알게 된 주인공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 이런 방식의 서술이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놀랐다. 아직도 많이 써먹는 수법 아닌가. 만일 디미트리오스나 그 짝패, 경찰의 입장에서 얘기를 진행했다면 그저 시니컬한 코믹이 되었을 것이다. ('아기는 프로페셔널'이랑 비교되는 사항) 탁월한 연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두고두고 몇번씩 읽을 정도로 치밀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하루 저녁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재미는 있었다. 배신의 제왕인 디미트리오스와 그 주변 군상의 묘사도 실감났다. 39년작이니 2차대전 발발 직전의 물건인 셈인데 하는 짓들이 편지 쓰는 것만 빼면 현대인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걸 보면 문명이란 게 별게 아닌듯 하다.

줄거리 상으로 재미있는 것은, 이 어리버리한 디미트리오스의 보즈웰은 그의 작가적 호기심으로 인해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을 취재했는데, 결말에서는 아가사 크리스티적인 퍼즐놀이를 쓰기로 맘먹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겪은 현실(?)이 훨씬 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었지만 생명의 위협까지 겪게 되자 지적 유희로 도피하고 싶어진 것일까? 아니면 지은이(에릭 앰블러)가 본격 소설에 대해 하고팠던 얘기를 슬쩍 끼워넣은 것일까? 확실히 본격 추리는 인물이 보다 명료하다. 오죽하면 동기와 수단만을 가슴팍에 써넣은 puppet 들처럼 느껴지겠는가. 아마도 지은이는 '추리 퍼즐과는 달리, 현실에서 범죄란 훨씬 복잡하고 추악하며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소산이다' 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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