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김서원은 오빠와 헤어진 후, 편의점으로 향했다. 약간 쳇기가 도는 듯 했다.그 이대원이라는 동행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을 유심히 지켜보다 일어섰던 송우현의 시선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다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나쁘게만 느껴졌다. 끈적끈적한 느낌이 드는 듯 했다.
"어? 일찍 나왔네."
서원이 오기 전 오후에 가게를 지키는 알바생과 함께 일하던 사장이 그 여자를 반갑게 맞아준다. "너무 이른 거 아냐?"
시계를 보니 한 시간 정도 이른 듯 하다. 생각에 잠기다 일찌감치 와버린 거였다.
"이런 날도 있어야죠."
서원은 그저 웃어버린다. 편의점에는 손님이 많았다. 사실 두 사람도 버거운 그 시간대에 서원이 한 시간 일찍 온 것이 활력을 찾게 해 주었다.
그렇게시간이 흐르고 바쁜 시간도 지날 즈음, 서원은 편의점에서 혼자가 됐다. 그제야 서원은 의자에 주저 앉는다. 잠도 덜 잔 데다, 낮에 일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 즈음, 전화가 걸려왔다.
"응, 오빠?"
오빠는 서원이 식당을 나간 뒤에도 그 이대원이라는 사람과 함께 있었다. 이 대원은 그녀의 오빠와는 가까운 선후배 사이였고, 그 교수님이라는 아저씨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제자라고 했다.
"서원아, 근데 말이야..."
오빠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대원이가 너 관심있어 하던데.."
서원은 그 말에 '그래?'라고 반문할 뿐이다.
" 따로 만나볼래?"
서원은 그제야 오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빠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함부로 집에 데려오지 않았고, 아무나 식구들에게 소개하지 않았다. 신중한 성격에 조금 내성적인 면이 강했던 것이다. 그런 오빠가 친 여동생을 소개할 만한 사람이라면 그 이대원이라는 사람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러나 서원은 거절했다.
"...왜?"
오빠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래도 오빠가 소개한 사람인데...
"그냥... 아닌 거 같아서..."
그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어서 오세..."
수화기를 떼지도 않은 채 인사가 먼저 나갔다. 버릇이다. 그리고 서원은 당황했다.
"서원아... 야..."
오빠의 목소리에 서원은 '좀 있다 전화를 걸겠노라'고 짧게 말한 뒤 바로 끊는다.
"어서 오세요."
다시 인사를 하자 그가 웃는다.
"잘 지냈어요?"
그는 물건을 사러 온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서원은 그를 보고 망울만 있던 장미 한 송이가 '팍' 소리를 내며 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 유현승씨도 잘 지냈나요?"
그 여자의 말에 그 남자가 웃는다.
"네.. 그런 것 같네요..."
현승의 말이 웃기다고 생각하면서 그 여자는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 남자도 그 여자만 바라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참 편안한 여자다 라고 느낀다.
그 남자 유현승은, 그 짧은 대화 후, 편의점에 사람이 많이 와서 그 여자가 더이상 얘기 할 수 없을 만큼 바빠도 편의점을 떠나지 않았다. 탁자에 앉아서 커피조차 마시지 않고 그저 그 여자를 기다렸다. 그 여자 김서원은 그런 그를 곁눈으로만 보았다. 그 여자는 너무 바빴고 손님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 남자에게 무언가 대접할 수 있기를, 그대로 편의점을 나가지 않기를 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 참 흐른 후, 그 여자는 또 다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유현승 씨 뭐좀 마실래요?"
그 여자가 묻자 그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그럴까요? 김서원씨도 같이 마셔요 그럼."
"어떤 거 드릴까요? 제가 사드릴께요."
그 말에 현승은 미간을 약간 찌푸린다.
"전 커피면 되는데..."
"아무거나요?"
"네."
그 여자가 커피를 타는 동안 그 남자는 말없이 그 여자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 여자도 그의 시선을 느껴 자기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걸 깨닫는다.
"언제 퇴근하세요?"
커피를 받아들며 그가 묻는다.
"내일 아침 8시요."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밤에 무섭거나 심심하지 않아요?"
그의 말에 살며시 웃는다.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지금은 워낙 하던 일이라...일할 것도 있고 책도 늘 가지고 다녀서 심심할 겨를도 없구요..."
그가 생각난 듯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책을 많이 가지고 다니셨구나."
"네"
그 말에 그 여자는 또 웃어버린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말이 없다. 그 여자는 편의점에 들른 한 손님의 계산도 해 준다. 그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아까 식당에서 본 그 분, 누구세요?"
그 남자는 짐짓 모르는 척 물어본다.
"한 분은 저희 오빠시구요, 옆에 흰 티 입으시고 마르고 키 크신 분은 오빠 후배시래요. "
그 여자는 그 남자가 누구를 이야기 하는지 다 알거라고 생각했다.
"오빠 되시는 분이 우리 학교 나오신 것 같던데..."
"유 현승 씨도 그 학교 다니세요?"
그 여자의 눈이 동그래진다.
"네..."
"아~ 그렇구나. 유 현승 씨 공부 잘 하셨나보다.
"아, 잘 한건 아니고 그냥 열심히.."
그의 말에 그 여자는 또 웃어버린다.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 또 웃기를 반복했다.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그 누구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두 사람의마음과 귀에는 서로의 진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